누구에게나 개방된 장군의 생가… "휠체어는 NO!"
누구에게나 개방된 장군의 생가… "휠체어는 NO!"
  • 조봉현 논설위원
  • 승인 2021.05.28 1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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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일독립운동사 최고의 전과, 청산리 전투의 영웅 김좌진 장군 생가
충남 홍성의 장군 생가지엔 기념관·사당·백야공원 등 다양한 추모시설
누구에게나 개방된 생가와 사당, 휠체어 장애인은 들어갈 수 없어
출입구를 막아선 한 뼘의 단차를 없애는 것… 작은 관심이면 충분

[소셜포커스 조봉현 논설위원] = 일제 강점기 무장독립운동사에서 김좌진 장군의 청산리 전투만큼 통쾌하고 찬란한 전과를 올렸던 사례가 또 있을까? 

청산리 전투는 1920년에 김좌진 장군과 홍범도 장군이 이끄는 독립군 부대가 만주 지린성(吉林省) 허룽현[和龍縣] 청산리에서 일본군을 대파한 전투다.

청산리가 어디인가? 지금은 두만강 이북의 중국 땅이기는 하지만, 민족의 성산 백두산 자락에 위치하고 있으며 국민가곡 선구자의 노랫말에 나오는 해란강이 흐르고 있는 지역이다.

여기에서 독립군 부대는 일본군을 청산리 계곡으로 80리를 유인하여 10월 21부터 6일간 치열한 전투를 벌였다. 일본군은 1천300여 명의 사상자를 남기고 패퇴했고, 독립군에게는 100여 명의 전사 및 전상자가 나왔다. 무기와 보급이 절대 열세일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일본의 정규군을 대파한 쾌거였다.

홍성 백야김좌진장군기념관에 전시된 청산리 전투의 부조화
홍성 백야 김좌진 장군기념관에 전시된 청산리 전투의 부조화 ⓒ소셜포커스

백야 김좌진 장군은 1889년 11월 24일 충청남도 홍성군 갈산면 행산리에서 출생했다. 집안은 부유한 명문대가 였으나 아버지가 일찍 세상을 떠나고 형이 다른 집에 양자로 들어가는 바람에 어른이 되기 전부터 집안을 이끌었다.

17세 때는 자신의 집에서 거느리고 있던 30여 명의 노비들을 해방시켰다. 집안의 모든 노비들을 모아놓고 잔치를 벌인 후에 노비 문서를 불태우고 소유했던 전답을 노비들에게 무상으로 분배했다. 일찍부터 보통사람은 흉내 낼 수 없는 영웅다운 풍모를 보인 것이다.

그리고 바로 한성(서울)으로 가서 대한제국 무관학교에 입학했다. 거기에서 2년간 문무를 닦고 19세 때 다시 고향으로 내려왔다. 고향의 남은 가산을 정리하여 호명학교를 세우고 교육사업과 애국계몽운동을 시작했다. 호명학교는 “호서지역을 밝게 한다”는 의미를 지녔으며 호명학교 자리에는 지금 갈산중고등학교 교정이 있다.

1909년에는 《한성신보》 발간에도 참여했으며  오성학교 교감을 하는 등 문화ㆍ교육사업과 함께 구국운동에 나섰다. 1911년에 군자금 모금 혐의로 투옥되어 2년 6개월간 복역하기도 했다.

장군은 1918년 조국광복의 큰 뜻을 품고 만주로 망명한다. 장군이 망명할 때 다음과 같은 단장지통((斷腸之痛)이라는 우국시를 남겼다.

적막한 달밤에 칼머리의 바람은 세찬데
칼끝에 찬 서리가 고국생각을 돋구누나
삼천리 금수강산에 왜놈이 웬말인가
단장의 아픈 마음 쓰러버릴 길 없구나

망명 후에는 독립군 모집과 훈련 및 군자금을 모으는 등 독립군 양성에 노력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휘하의 북로군정서 총사령관이 되어 항일 무장투쟁을 전개했다. 그리고 1920년 그 유명한 청산리 전투를 대승으로 이끌었던 것이다.

1929년에는 북만주에 한족연합회를 결성하여 황무지개간, 문화계몽사업, 독립정신 고취와 단결을 이끌었으며, 항일무장투쟁을 계속 이어나갔다.

그리고 어이없게도 1930년 1월 24일 고려공산청년회의 사주를 받은 암살범의 흉탄에 맞아 쓰러졌다. 불과 41세에 많은 일을 남겨둔 채 하필이면 동족의 흉탄을 맞고 이 세상을 하직하고 만 것이다. 민족의 영웅은 이렇게 황망하게 사라졌다. 

백야공원 내에는 장군이 흉탄을 맞고 순국하면서 남긴 말씀이 새겨진 조형물이 있는데 보는 이의 마음을 더욱 아프게 한다.

김좌진 장군이 공산주의자의 휴탄에 쓰러지면서 순국 직전에 남긴 말씀이 새겨진 조형물
김좌진 장군이 공산주의자의 흉탄에 쓰러지면서 순국 직전에 남긴 말씀이 새겨진 조형물 ⓒ소셜포커스
충남 홍성 김좌진 장군 생가지에 있는 백야김좌진장군기념관의 내부 모습
충남 홍성 김좌진 장군 생가지에 있는 백야김좌진장군기념관의 내부 모습 ⓒ소셜포커스
김좌진 장군의 생가 모습 ⓒ소셜포커스
김좌진 장군의 생가 모습 ⓒ소셜포커스

김좌진 장군이 태어나고 자란 충남 홍성군 갈산면 행산리에는 장군의 생가지가 있다. 1989년부터 성역화 사업을 추진하여 본채와 문간채, 사랑채 등 생가를 복원했다. 그리고 그 주변으로 기념관 및 사당인 백야사와 공원을 조성했다.

필자는 얼마 전에 장군의 흔적을 찾아 홍성의 생가지를 방문했다. 기념관 제1전시관은 장군의 탄생부터 망명까지의 과정을 전시하고 있다. 장군의 집안, 가노해방, 교육을 통한 애국계몽운동과정 등을 전시하고 있다. 제2전시관은 장군의 최고 업적인 청산리전투 과정과 독립군과 일본군의 무기 및 전술 등에 대한 전시물을 볼 수 있다.

생가의 안채는 안채는 정면 8칸, 측면 3칸의 기와집으로 서쪽을 향하고 있다. 왼쪽부터 부엌 2칸, 아랫방과 윗방 각1칸, 통칸의 대청, 맨 끝방 1칸이며 끝방에는 한칸 높인 누각에 툇마루가 깔려있다.

사랑채는 정면 3칸의 팔작지붕집으로 '호명정사'의 현판이 걸려있다. 마당 한쪽에는 우물과 장독대가 있고 생가지 앞의 마구간 건물에는 화장실과 마구를 3칸 집에 만들어 두고 있다.

백야공원은 생가지 뒤편에 조성된 공원이다. 장군의 유년시절부터 독립군 활동을 묘사한 동상과 ‘백야 김좌진 장군 추념비’가 세워져 있다.

공원을 거쳐 언덕을 올라가면 장군의 사당인 백야사가 자리잡고 있다. 와룡재와 내외삼문 등 3채의 건물로 구성되어 있으며, 매년 10월 25일에는 이곳에서 ‘청산리전투 승전기념일’에 맞추어 추모제가 열린다.

기념관, 사당, 공원 등 생가지 일대의 시설 중 핵심시설은 장군이 태어나고 자란 생가 건물이 아닐까 싶다. 많은 사람들이 대문을 통해 들어가서 마당을 둘러보고 안채와 사랑채 건물을 살펴보면서 장군의 업적을 기린다.

그러나 휠체어를 이용하는 필자는 생가로 들어갈 수 없었다. 단 한 뼘도 안 되는 문턱이 가로막고 있기 때문이었다. 대문 밖에서 마당으로 들어가 보지도 못하고 돌아서야 했다. 이것은 장애인 차별이다. 의도적인 차별은 아니지만 결과적으로 차별을 받게 된 것이다.

인터넷으로 경사로를 조회하면 단 몇 만원이면 주문할 수 있다. 이 경사로를 문턱에 연결해 놓는다면 휠체어를 이용하는 장애인이 얼마든지 내부를 둘러볼 수 있을 것이다. 관계자가 조금만 인식을 바꾸면 쉽게 개선이 될 것 같다.

사실 장군의 생가라고는 하나 장군이 실제 살았던 시대의 건물은 아니다. 1992년에 복원한 것이다. 복원할 때 이동약자의 출입을 고려할 수는 없었을까?

생가지 뒤편에 있는 사당도 휠체어 접근이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사당의 정문 입구까지는 높은 지대임에도 완만한 언덕길을 통하여 접근이 가능했다. 그런데 정문을 들어서는 순간 단차 하나가 더 이상의 진행을 가로막는다. 장애인은 위인의 업적을 기리고 참배를 하는데도 차별을 받아야 한다. 이 또한 개선이 필요한 시설이다.

김좌진 장군 생가의 주변모습
김좌진 장군 생가의 주변모습 ⓒ소셜포커스
장군의 생가의 내부와 밖에서 들여다 본 모습
장군의 생가의 내부와 밖에서 들여다 본 모습 ⓒ소셜포커스

 

누구에게나 개방된 장군의 생가이지만 휠체어 이용자는 대문의 턱 하나로 인해 들어올 수 없다. ⓒ소셜포커스
누구에게나 개방된 장군의 생가이지만 휠체어 이용자는 대문의 턱 하나로 인해 들어올 수 없다. ⓒ소셜포커스
백야사 내 장군의 영정과 분향대
장군의 사당인 백야사 내 장군의 영정과 분향대 ⓒ소셜포커스
백야사 정문으로 올라가는 무장애 통로(상), 왜 이런 길을 사당 본전까지는 연결하지 못할까? 휠체어가 정문까지는 잘 올라갔으나 정문을 들어가니 한뼘의 단차가 더 이상의 접근을 허용하지 않는다.
백야사 정문으로 올라가는 무장애 통로(상), 왜 이런 길을 사당 본전까지는 연결하지 못할까? 휠체어가 정문까지는 잘 올라갔으나 정문을 들어가니 한뼘의 단차가 더 이상의 접근을 허용하지 않는다.(아래 사진) ⓒ소셜포커스
휠체어 출입을 어렵게 하는 생가지(생가+기념관+조경물) 정문 출입구의 단차, 2cm만 낮추었어도...
휠체어 출입을 어렵게 하는 생가지(생가+기념관+조경물) 정문 출입구의 단차, 2cm만 낮추었어도... ⓒ소셜포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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