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의 경기전, 장애인은 주변만 봐라?
전주의 경기전, 장애인은 주변만 봐라?
  • 조봉현 논설위원
  • 승인 2021.07.05 15:42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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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의 어진을 봉안한 경기전
인접 한옥마을과 함께 전국에서 많은 관광객 찾아와
경기전 내 전주사고 실록각 및 어진박물관도 좋은 볼거리
다 좋은데 핵심시설인 어진실은 휠체어 이용자만 접근불가
경기전 정전의 모습 ⓒ소셜포커스
경기전 정전의 모습 ⓒ소셜포커스

전주시에 소재한 경기전은 주변의 한옥마을과 함께 전국에서 많은 사람이 찾아오는 관광지다. 외국의 관광객에게도 한국의 전통문화를 느끼기에 이만한 훌륭한 자원을 찾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얼마 전 그곳을 찾아갔다. 점심때가 되어 인근 식당을 방문했는데 코로나 방역을 위해 입구에 비치된 방문객 출입기록을 보니 모두 외지에서 온 사람들이었다. 전국적인 명소임을 실감했다.

경기전은 조선왕조를 연 태조 이성계의 초상화, 즉 어진을 봉안하고 제사를 지내는 장소다. 경기전이 이곳에 처음 지어진 것은 1410년(태종 10년)이다. 당시 건물은 임진왜란 때 소실됐고 광해군 때 중건했다.

전주는 전주 이씨의 본향으로서 조선을 건국한 이씨 왕조의 뿌리가 있는 곳이다. 그래서 이곳에 경기전을 지어 상징물을 두고 후손들에게 기리게 했을까?

경기전은 1만5천여 평의 넓은 대지에 어진을 모신 정전과 함께 여러 부속건물이 어우러져 있다. 누구든 말에서 내려야 한다는 신성함을 표시한 하마비에서부터 붉은 색칠을 한 홍살문, 외신문, 내신문을 거쳐 정전까지 일직선을 이루고 있으며 그 주변으로 제사 준비 등을 위한 전각들이 있다. 태조의 어진은 국보로 지정되었고, 이를 봉안하고 있는 경기전의 정전은 보물로 지정되어 있다.

이조 500년간 27명의 왕이 거쳐 갔지만 어진이 남아있는 것은 몇 사람에 불과하다. 사진기록이 가능했던 고종ㆍ순종을 제외하면 철종 때까지 25명 임금 중 실제 모습으로 어진이 남아 있는 임금은 태조와 영조, 철종 이렇게 3명뿐이다. 이처럼 어진이 워낙 귀한 데다 조선을 건국한 태조의 어진인 만큼 각별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만약 세종대왕의 어진이 남아 있었다면 세계적인 보물이 되지 않았을까 하고 가끔 상상해 본다.

경기전의 정전으로 들어가는 내신문 ⓒ소셜포커스
경기전의 정전으로 들어가는 내신문 ⓒ소셜포커스

경기전 바로 옆에는 또 하나의 국보급 유적이 있다. 전주사고 실록각 건물이다. 이곳에 사고(史庫)가 설치된 것은 1439년(세종 21년)의 일이다. 지금의 건물은 수백 년이 흐르는 동안 여러 번 중개축을 거친 것이다.

조선왕조는 창업과 동시에 모든 정사(政事)를 실록에 자세히 기록하여 소중히 보관했다. 모든 실록은 분실이나 화재 등을 대비하여 전국의 4곳에 나누어 보관했는데, 다른 사고에 보관된 실록은 임진왜란 등을 거치면서 모두 소실됐다. 그러나 이곳 전주사고에 보관되었던 것만 살아남아 오늘날까지 한국사의 바이블이 되고 있으며 세계문화유산으로서 인류가 남긴 명품으로 인정받고 있다.

임란 때 경기전이 불탔기 때문에 바로 옆에 있었던 사고도 화를 피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때 사고 관리자와 몇몇 선비들이 온갖 고난 속에 목숨을 건 사전 대피 작전을 편 덕분에 무사할 수 있었다.

임진왜란 때 왜군의 정유년 재침으로 무사하던 전라도까지 전쟁의 참화가 미쳐왔다. 그러자 경기전 참봉 오희길, 태인 지방 선비 손홍록과 안의 등은 전주사고에 있는 모든 실록을 내장산으로 옮기고 밤낮으로 지켰다고 한다. 수송수단이라곤 사람과 마소의 등짝이 전부였던 당시 전쟁 와중에 많은 도서를 다른 먼 지역의 산속으로 무사히 옮긴다는 것은 엄청난 일이었을 것이다. 

조선왕조실록을 유일하게 지켜냈던 전주사고의 실록각 ⓒ소셜포커스
조선왕조실록을 유일하게 지켜냈던 전주사고의 실록각 ⓒ소셜포커스

경기전 안에는 이 외에도 볼거리가 또 있다. 정전을 나와 쪽문을 거쳐 뒤쪽으로 이동하면 태조 어진과 함께 현존하는 6점의 어진들이 전시된 국내 유일의 어진박물관이 자리하고 있다.

여기에는 만원 권 지폐에 등장하는 세종대왕의 어진도 있고, 정조대왕의 어진도 있다. 그러나 모두 현대 화가들의 상상에 의한 것이다. 가장 오래된 태조의 어진은 잘 보관되었음에도 이후 왕들의 어진이 전해지지 않은 것은 아쉬운 일이다. 태조 어진의 경우에도 당시에 그려진 것은 아니지만, 원본을 모사한 것이기 때문에 그림 속의 모습은 실제의 모습이다.

어진박물관은 2010년도에 개관했다. 이곳에선 어진뿐만 아니라 궁중의 풍속을 체험할 수 있는 다양한 시설과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다.

경기전 내 어진박물관에는 조선왕들의 현존하는 어진들이 전시되어 있다.
경기전 내 어진박물관에는 조선왕들의 현존하는 어진들이 전시되어 있다. ⓒ소셜포커스
어진박물관에 전시된 어진 행렬의 모습을 재현한 조형물
어진박물관에 전시된 어진 행렬의 모습을 재현한 조형물 ⓒ소셜포커스

필자는 얼마 전 경기전을 방문했다. 정문 입구에서부터 정전에 이르기까지 단차도 많고 계단도 많았지만 별도의 경사로가 설치되어 있거나 문턱에 나무판 경사로를 덧대어 휠체어 통행은 무난한 편이었다.  

관람 행렬에 끼어 어진을 직접 볼 수 있다는 설레는 마음으로 정정 건물 앞까지 갔다. 그리고 어진을 직접 볼 수 있는 어진실 앞에 이르렀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석축의 돌계단이 휠체어를 탄 필자에게만은 더 이상의 접근을 허용하지 않았다. 불과 2개의 돌계단이었다. 다른 사람은 모두 계단으로 올라가서 문이 열린 정전 안쪽을 들여다보면서 사진을 찍는 등 관람을 즐길 수 있었지만 휠체어를 탄 사람은 계단 아래서 다른 관광객들의 뒷모습만 쳐다보다 발길을 돌려야 했다.

다른 통로에는 장애인 접근시설을 잘 갖추었으면서 왜 하필이면 가장 중요한 어진실 앞은 이동 약자 접근시설을 갖추지 않았을까? 장애인을 약 올리는 것도 아니고 말이다.

관계자에게 문의했더니 다른 장애인이나 장애인 단체에서도 문제 제기가 있었다고 하면서도 속 시원한 답변은 주지 않았다. 더욱 이해할 수 없었다. 그동안 얼마나 많은 장애인이 참담한 심정으로 돌아갔을까?

이런 경우 책임 관계자에게 물으면 문화재 훼손 우려가 있어서 어쩔 수 없다는 변명을 할 것이다. 그러나 찾아보면 얼마든지 대안은 있다. 경기전 정전의 경우 어진실 바로 앞 계단이 조금 높은 편이지만 측면 등을 활용할 경우 경사로 설치가 불가능해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정전 양옆으로 회랑(여기에서는 '익랑'이라고 함)이 있고, 어진실 앞으로 연결되어 있다. 어진실과 연결된 부분은 어진실 높이와 거의 같고 진입로 쪽은 아주 낮다. 그리고 익랑 통로의 중간에 2개의 단차가 있지만 높지 않다. 따라서 이 높지 않은 각 단차에 경사로를 연결하면 휠체어도 조금 우회하기는 하지만 어진실 앞까지 충분히 접근이 가능할 것 같았다.

아니면 예산이 좀 들기는 하겠지만 어진관 앞의 계단 옆쪽으로 매립형 리프트를 설치하는 것도 가능하다. 몇 년 전 휠체어를 타고 대구의 이상화 고택을 방문했을 때다. 고택의 마루 앞에 매립형 리프트가 설치되어 있었고 도움 벨을 누르니 안내원이 리프트를 작동시켰다. 리프트를 타고 실내로 들어가서 여러 전시물을 본 적이 있다. 고택의 미관이나 기능에 전혀 훼손을 주지 않고도 편의시설을 운영하고 있었다. (본지 2019년 12월 3일 자 '가로수 단풍이 아름다운 대구에서'와 2020년 12월 8일자 '장애인에겐 닫힌 관광지?' 기사 내용 및 사진 자료 참조)

문화재에서 장애인 편의시설은 문화재의 가치를 훼손하는 것이 아니라 문화재의 가치를 증대시킨다. 보고 즐길 수 있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문화재의 가치가 올라가는 것은 상식이 아닌가? 문화재 관리자들의 열린 마음이 필요하다.

그 외에도 각 건물 간에 연결되는 통행문(쪽문)은 문턱이 해소되지 않았거나 문턱에 경사로를 덧대었음에도 단차가 발생하여 하나 마나 한 결과를 초래한 곳도 있었다. 이동 약자의 접근성을 인식하고 있음에도 제대로 설치하지 않은 것을 보니 더더욱 답답했다. 시급한 개선이 필요해 보인다.

어진실 앞에서 어진을 구경하는 사람들
어진실 앞에서 어진을 구경하는 사람들 ⓒ소셜포커스
정전 좌우의 익랑, 이곳을 단차는 높지 않으므로 경사로를 설치하면 휠체어도 어진실 앞에까지 접근이 가능하지 않을까?
정전 좌우의 익랑, 이곳의 단차는 높지 않으므로 경사로를 설치하면 휠체어도 어진실 앞까지 접근할 수 있지 않을까? ⓒ소셜포커스
경기전 내 각 전각으로 이동하는 출입문의 단차, 일부의 단차는 경사로를 설치하였음에도 단차를 해소하지 않아 하나마나하는 시설이 되고 있다.
경기전 내 각 전각으로 이동하는 출입문의 단차, 일부는 경사로를 설치하였음에도 단차를 해소하지 않아 하나마나하는 시설이 되고 있다. ⓒ소셜포커스
휠체어 통행이 가능하도록 경사로가 설치된 경기전 부속시설의 모습 ⓒ소셜포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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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수 2021-07-19 08:59:16
모든 문화관광소에 놀러가며 휲체어 접근서가 많이 없어 갈수 있는곳은갈수 있어도 중간에 갈수 없는곳 대부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