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다 저술가, 고정욱 장애인 작가를 만나다
국내 최다 저술가, 고정욱 장애인 작가를 만나다
  • 조봉현 논설위원
  • 승인 2021.07.13 08:4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300권 넘는 저술, 총 450만권 이상 팔린 전설의 장애인 작가
장애인 받아주는 의대가 없어 의사 꿈 접고 문학박사 동화작가로 성공
장애인을 소재로 하는 다수의 작품, 장애 인식개선의 살아 있는 교본
다음 세상에서도 장애인으로 태어나 "더불어 사는 세상" 완성하고 싶어
고정욱 작가와 화상 인터뷰 ⓒ소셜포커스

휠체어로 전국을 누비는 중증장애인으로서 국내에서 가장 많은 책을 낸 작가가 있다. 책이 많이 팔리는 작가로도 유명하다. 특히 어린이와 청소년 독자들에게는 우상이다. 성균관대학교와 대학원에서 국문학을 전공하였다. 1992년에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고, 그 해 문화일보 신춘문예에도 단편소설 당선되어 작가로서 이름을 떨치기 시작했다. 현재까지 310권의 책을 저술하였고, 총 450만권 이상이 팔렸다고 한다. 고정욱 박사 작가의 이야기다.

그는 어린이나 청소년, 특히 장애인을 소재로 하는 작품이 많다. 「안내견 탄실이」, 「가방 들어주는 아이」, 「아주 특별한 우리 형」은 대표작에 속한다. 특히 「가방 들어주는 아이」가 초등학교 4학년 국어책에 실려있고, 「신영숙 선생님께」라는 편지글이 중학교 교과서에 실려있다.

작가는 말한다. “장애와 관련된 글을 쓰게 된 건 내가 장애인인 이유도 있지만, 무엇보다 이 세상을 장애로부터 자유로운 곳으로 만들고 싶다는 바람에서 끊임없이 싸우고 도전해왔던 내 삶의 작은 결론이기도 합니다.”

출판사로부터 인세로 받은 수입금액의 일부를 생활이 어려운 장애인이나 성공적인 삶을 작품의 소재로 제공하는 장애인들과 나누는 자선활동에 나서기도 한다.

고작가는 명강사로도 유명하다. 전국을 순회하며 매년 300회 이상의 강연을 한다. 장애인식개선교육 및 “작가와의 만남” 등의 강의가 많다.

작년부터 코로나로 인해 사회적으로 강연 기회가 많이 줄었다. 특히 장애인식개선 강의를 주수입원으로 하는 장애인들은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러나 고작가의 강의는 오히려 계속 늘어나고 있다. 유명세가 높기도 하지만 일찍부터 “줌”을 이용한 비대면 화상 강의에 주력했기 때문이다. 위기를 기회로 활용하는 지혜가 돋보이는 사람이다.

학교의 요청으로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강의가 많다. 주로 청소년들의 자기계발과 리더십 향상을 주제로 하며, 더불어 중증장애인의 몸으로 성공적인 삶을 보여줌으로써 자라나는 세대에 대한 장애인 인식개선에도 절대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저술과 강의로 워낙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는 고작가에게 어렵게 인터뷰 기회를 따냈다. 코로나 확산이 더욱 기세를 부리는 요즈음, 모처럼의 인터뷰도 줌으로 진행했다.

고정욱 작가와 화상으로 인터뷰를 하는 모습
필자와 고정욱 작가가 줌으로 화상 인터뷰를 하는 모습 ⓒ소셜포커스

Q1. 작가님께서 저술하신 책이 현재까지 310권이나 되고, 지금도 많은 글을 쓰고 계시는데, 이렇게 많은 책을 낼 수 있는 원동력은 무엇인가요?

처음에는 먹고살기 위해서 글쓰기를 시작했습니다. 첫 작품이 잘 팔리면서 출판사에서 인세가 제법 들어오고 살만했죠. 그러다가 어느 때부터 소명의식이 생기더라구요. 장애인을 소재로 많은 글을 쓰고, 독자들을 늘려가다 보니 장애인이 차별받지 않는 세상을 만드는데 이 글쓰기가 아주 무기가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장애인이였기 때문에 작가의 길로 들어오게 되었으니, 죽는 날까지 글을 쓸 계획입니다. 그러니까 결국은 저의 신체 장애가 많을 글을 쓸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Q2. 장애인이라는 사실이 많은 글을 쓰게 된 원동력이라고 하셨는데, 그런 계기가 있었나요? 작가님은 꿈과 직업을 여러 번 바꾸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

학창시절 저의 꿈은 의사였죠. 그러나 저 같은 중증장애인을 받아주는 의대가 없다는 것을 알고 어쩔 수 없이 국문과로 진학했습니다. 국문과에 들어갈 때만 해도 교수가 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장애인이 교수가 되는 것도 장벽이 많더라구요. 칠판에 판서가 어려우니 교수임용을 할 수 없다는 겁니다. 지금 기준으로 생각해보면 말도 안 되는 거죠. 아무튼 저는 할 수 없이 소설가로 방향을 바꿨습니다. 초창기에는 소설도 독자가 많았는데, 사회구조가 인터넷과 스마트폰의 사회 등으로 변해가는 과정에서 소설 독자가 많이 줄어들게 되었죠. 그래서 독자가 줄어들지 않은 장르가 뭘까 고민하다 동화작가로 방향을 바꿨는데, 20년 이상 꾸준히 인기를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저출산 추세로 동화 독자들도 줄어들 수 밖에 없는 상황이라서 요즈음은 저술 활동과 함께 강연과 글짓기 교실 운영 등 여러 가지를 겸하고 있습니다.

Q3. 일부 작품들의 인세를 어려운 사람들과 나눈다는 얘기도 있던데, 나눔과 배려에 대해 본인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제가 인세를 나누는 책이 30여 권 됩니다. 장애인의 성공 실화를 소재로 글을 쓰는 경우가 있는데, 소재의 주인공들을 격려하고 함께 나눌 수 있는 것이 없을까 하고 고민하다가 저한테 들어오는 인세 수입을 공유하는 게 좋겠다고 생각을 했죠.

출판사에 요청해서 저에게 들어올 금액 중 일정 비율이 바로 그 장애인들에게 송금이 되도록 했죠. 제가 그렇게 했더니 제 동화책에 그림을 그리는 삽화 작가도 동참을 해주시는 분이 있습니다. 또 그런 책이 더 잘 팔리는 경향도 있어서 나눔과 배려를 사회적으로 확산시킬 수 있었던 좋은 계기가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지금 생각해봐도 참 탁견이었던 것 같습니다.

Q4. 장애인으로 이 땅에 온다는 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저도 평생 고민했던 사항인데요, “내가 왜 이 땅에 장애인으로 왔을까?” 그런데 요즘은 그 답을 찾은 것 같습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장애인이라는 운명 자체는 바꿀 수 없다고 봅니다. 설사 로또를 맞아도 장애인이 비장애인 되는 로또는 없잖아요? 저는 스스로 사명을 찾아야 한다고 봅니다.

기독교적으로는 더 큰 십자가를 진 것이고, 불교적으로 보면 더 큰 해탈의 기쁨을 맛보라고 온 것이 아닌가 합니다. 기왕 장애인이 되었다면 거기에 맞는 깨달음을 얻고 남에게 선한 영향력을 줄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것이라고 봅니다.

Q5. 작가님 삶의 최종 목표를 소개해주시면 안 될까요?

제 삶의 최종 목표는 “더불어 사는 세상”을 만드는 일이죠. 세상이 많이 좋아졌다고는 하지만 아직 갈 길은 너무 멀다고 생각해요. 저는 죽는 날까지 책을 통해서 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바꾸고, 장애인을 삶을 바꾸는데 노력할 겁니다. 그래서 미래세대는 장애인도 비장애인과 완전히 동등한 입장에서 더불어 사는 세상이 되었으면 해요. 제가 말하는 동등한 입장이란 인식의 전환과 함께 장애인이 비장애인과 동일한 수준의 생활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장애인 불편해소를 위한 모든 물리적 환경도 포함됩니다.

Q6. 그 목표를 다 이루지 못하면 어떻게 하죠?

저에게는 의미가 아주 큰 질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말하는 더불어 사는 세상을 완전히 이루기는 힘들다고 봐요. 인간의 본성과도 관계되는 문제이기도 하고요. 제 나이가 올해 62세인데, 제 생애에 다 이루기는 더 어렵겠죠. 그래서 갈수록 초조한 마음이 들기도 해요. 그런데 얼마 전에 문득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깨달음을 얻었다고 할까요? “다시 장애인으로 태어나서 이번 생에 완성하지 못했던 과제를 수행하면 되지 않을까?” 하구요. 두 번 세 번이라도 장애인으로 다시 태어나서 완전히 평등한 세상을 만들고 싶습니다.

Q7. 이처럼 많은 책을 저술하고, 전국 순회강연을 계속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시간이 들어갈 텐데 무슨 비결이라도 있나요?

제일 중요한 것은 독서량이죠. 저는 초등학교 때부터 엄청난 독서를 했습니다. 그리고 장애인으로서 특별한 경험이 소재가 되기도 합니다. 제 경험 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과 어울리면서 얻는 간접 경험도 포함되죠. 장애인으로서 저만의 문학세계를 이루었다고 할까요?

제가 자주 쓰는 명언 중에 “신은 우리에게 매일 24만 원씩 주신다”는 말이 있습니다. 매일 24시간이 주어진다는 얘기죠. 그런데 매일 잠자면서 5~6만 원을 그냥 깨 먹어요. 남는 돈을 잘 아껴 써야죠. 시간은 금입니다. 조금만 한눈팔면 시간은 금방 날아가 버립니다. 저는 시간을 분 초 단위로 아껴 쓰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합니다.

또 글을 쓸 때는 인공지능을 활용하기도 합니다. 쓰고 싶은 글을 스마폰에 말로 입력하면 문자로 바꿔주는 기능이 있는데, 이러한 기능을 잘 활용합니다. 그런 것도 다 인공지능 때문에 가능한 것이죠. 인용하거나 참고할만한 기록이 있으면 그것을 그대로 찍어서 문자로 바꿔주는 기능도 있습니다. 그런 것을 잘 활용하면 시간을 엄청나게 절약할 수 있습니다. 벌써 4차 산업의 덕을 보고 있습니다.

Q8. 현재 국내 최다저술 기록은 이미 세우셨고, 역사상 최다저술을 목표로 삼고 있는데, 거기에는 유일한 경쟁자로 따로 있다면서요? 무근 얘긴가요?

현재 국내에 300권 이상을 저술한 작가는 저 말고 없는 것으로 압니다. 그런데 우리 역사상 가장 많은 저술을 남기신 분이 조선 후기 실학자인 다산 정약용 선생입니다. 500권 정도 저술했다고 하죠. 그 분이 조선시대 성균관을 나오셨으니 성균관대를 나온 저에게는 200년 정도 선배인 셈입니다. 그 선배님을 뛰어넘는 것이 제 목표입니다. 현재 310권이 나왔으니 200권 정도 더 쓰면 되겠죠?

단순히 권수로 비교하면 그렇습니다. 조선 시대와 지금의 출판방식은 큰 차이가 있기 때문에 지금의 출판개념으로 환산하면 저술 분량이 이미 그분을 넘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목표나 롤모델이 있다는 것은 중요합니다.

Q9. 작가님께서 쓰신 300여 권의 책 중에서 특별히 몇 편만 뽑아서 소개해주시죠.

동화책으로는 「아주 특별한 우리 형」, 「안내견 탄실이」, 「네 손가락의 피아니스트」, 「가방 들어주는 아이」, 「사라지는 날 시리즈」 이런 것들이 있구요. 청소년 쪽으로 가면 「까칠한 재석이」 등 재석이 시리즈, 그리고 소설로 가면 「원균」이라는 작품을 들 수 있겠습니다. 그리고 저의 에세이집으로는 「열정을 만나는 시간」 등이 있습니다.

Q10. 마지막으로 장애인들에게 부탁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저도 똑같은 과정을 거치기는 했지만 장애인은 위축되고, 소극적이고 우울한 면이 있지요, 장애는 천벌이 아니고 확률의 문제입니다. 사람이 살면서 고통 사고를 당할 확률이 있는 것처럼 말이죠. 세상을 살면서 누구에게나 장애인이 될 확률이 있어요.

장애가 있다는 사실로 고난을 알고, 오히려 더 크게 도전할 수 있는 역전의 발판으로 자기 역량을 최고도로 발휘해서 당당하게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고정욱 작가의 최근 근황
고정욱 작가의 최근 근황 ⓒ소셜포커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