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탈시설화... "탁상공론 가능성 크다"
장애인 탈시설화... "탁상공론 가능성 크다"
  • 노인환 기자
  • 승인 2018.12.07 18:16
  •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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市 탈시설정책 45년... "무의미하다" 지적
장애인당사자 부모들 "탈시설 두려워해"
‘2018 서울 인권 컨퍼런스’ 이튿날인 7일 서울시청 8층 다목적홀에서  ‘시설과 탈시설 그리고 시설폐쇄법을 중심으로’라는 주제로 토론회가 열렸다. 노인환 기자

정부는 장애인의 탈시설 정책을 추진하고 있지만 이를 바라보는 이해당사자의 시각에는 회의감이 가득하다. 탈시설 정책을 위한 내년도 예산안은 국회에서 심의 중이지만, 원안대로 통과해도 순수한 사업비용은 12억원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이번 ‘2018 서울 인권 컨퍼런스’를 통해 정부와 이해당사자 모두 탈시설화에 대한 공감은 하면서도 정책의 실현 가능성에는 회의감을 갖고 있다는 느낌이 짙었다.

7일 ‘2018 서울 인권 컨퍼런스’가 두 번째 날을 맞이했다. 이날 서울시청 8층 다목적홀에서는 인권의 가장자리에 놓인 ‘장애인’들의 인권 문제를 놓고 ‘시설과 탈시설 그리고 시설폐쇄법을 중심으로’라는 주제로 열띤 토론회가 벌어졌다.

좌장은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박옥순 사무총장이 맡았으며, 지정토론은 스웨덴 자립생활협회 리타 레나 칼슨,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 김정하 상임활동가, 장혜영 다큐멘터리 감독, 대구대학교 조한진 교수, 동천의집 김영문 원장 순으로 진행됐다.

토론회의 핵심은 ‘탈시설’ 즉 장애인들이 시설이 아닌 지역사회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비장애인과 함께 사회에 참여하며 살아가는 것을 뜻한다. 지난해 대선 당시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 중 하나이자 현재 정부에서 추진 중인 정책이다.

그러나 탈시설 정책을 추진하려는 정부의 계획과는 달리 장애계 일선에서 실무를 맡고 있는 담당자들은 답답한 심정을 토로했다.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 김정하 상임활동가. 노인환 기자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 김정하 상임활동가는 현재 탈시설을 두려워하는 장애인들이 많다는 현실에 개탄했다. 김 상임활동가는 “한 시설에 갔더니 그곳에 있던 장애인분들이 우리는 대부분 중증이고 노화가 빨리 진행돼 이 상태로는 탈시설이 아무 의미도 없고, 나가면 갈 곳도 없다고 하신다”라고 말했다.

또한 “시설직원들이 외부활동을 통제하도록 시설 내 문열쇠를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다. 이런 시설구조를 ‘인간창고형’이라고 부른다”며 “한 시설을 조사하러 갔을 때 시설 내 문을 전부 열어 놓았는데도 단 한명의 장애인도 시설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방이나 생활공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 집단적 성향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고 전했다.

문제는 이처럼 장애인과 그 시설뿐만 아니라 외부에 있는 비장애인들의 인식도 잘못된 점이 많다고 지적했다. 김 상임활동가는 “어떤 비장애인들은 옛날 시대도 아니고 지금은 시설자체가 매우 좋아져서 괜찮다고 말씀하시는데 그건 시설을 직접 보지 않아서 하는 말들”이라며 “전국 75개 시설을 조사한 적이 있는데, 한 방에 3~5명이 지내는 시설은 52%, 6명은 36%에 달했다. 이에 대해 방은 크지 않냐고 질문한 비장애인분이 계셨는데 나는 이렇게 답했다. 이들이 일렬로 누우면 남는 공간이 없을 정도로 협소하다”고 전했다.

시설에 자진입소 하는 장애인도 적지 않은 게 현실이다.

김 상임활동가는 “자진입소자 중 발달장애인도 상당수 차지하고 있는데, 판단력이 떨어지는 발달장애인의 경우 자기선택이 아닌 타인에 의해 시설로 들어간 것”이라며 “자유를 박탈당하는 발달장애인이 안타깝다”고 덧붙였다.

오늘 국회에서는 예산안 본회의가 열리고 있으며 탈시설 관련 예산의 경우 정부가 28억원을 세웠다. 김 상임활동가는 “28억원 중 16억원은 형광등 교체나 설비를 개조하는 비용이고, 탈시설에 대한 순수한 비용은 12억원뿐”이라며 “전국 17개 시·도를 대상으로 사업을 해야 하는데 이 적은 돈으로 탈시설을 진행할 수 있을지 의구심이 든다”고 말했다.

모든 토론자들이 제언한 탈시설 방안은 ‘시설폐쇄법 제정’이다. 이에 김 상임활동가는 “이 법안이 마련돼 탈시설이 정착되려면 10년 안에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와 더불어 “해외 사례처럼 30~40년간 탈시설 계획을 진행해야 한다는 분들도 많은데, 그렇게 되면 거주시설에 있는 상당수 장애인들분들이 돌아가신다”며 씁쓸함을 전했다.

또한 “서울시에서 5개년 계획으로 300명의 장애인을 대상으로 탈시설하겠다고 발표한 적 있는데 이는 터무니없는 소리”라고 지적했다. 이어 “서울 시설에 있는 장애인만 약 2천500~2천700명인데, 5년간 300명이면 족히 9번이나 사업을 치러 45년이 걸린다. 이건 탈시설을 하지 말자는 것과 다름없다”고 주장했다.

토론자인 스웨덴 자립생활협회 리타 레나 칼슨 장애전문가는 스웨덴의 시설폐쇄법 사례를 제시했다. 리타 레나 칼슨은 “스웨덴은 시설폐쇄법을 제정해 2000년까지 모든 시설을 폐쇄하라는 시한을 뒀지만, 이후로도 탈시설화는 더디게 진행됐다”며 “결국 1997년 ‘특정 기능의 장애를 가진 사람에 대한 지원 및 서비스 관련법(LSS)’을 제정해 장애인들의 완전한 사회참여를 지원했다”고 밝혔다.

리타 레나 칼슨은 “LSS 제정과 더불어 탈시설화를 위해 ‘그룹하우징(grouphousing)’을 진행하고 있다”며 “이는 당국으로부터 허가를 받은 장애인 공동주택에서 당사자들이 같이 생활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직원이 필요할 경우 활동보조, 메디컬, 레저활동 등 다양한 서비스가 지원된다”고 덧붙였다.

이에 김 상임활동가는 “스웨덴의 그룹하우징은 탈시설화의 대표적인 사례이긴 하지만 운영방식에서 조금 만족스럽지 못하다”면서 “그룹하우징의 운영주체, 즉 계약자가 장애인 당사자가 아닌 이상 시설과 크게 다르지 않을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한국의 장애인 지원주택은 장애인 당사자가 직접 계약하는 형태로 유지돼야 한다”고 말하며 “만약 계약자가 비장애인 운영자라면 거주하는 장애인과 사이가 틀어질 경우 장애인이 나가야 하는 불상사가 벌어질 수도 있다”고 우려를 표했다.

장혜영 다큐멘터리 감독. 노인환 기자

토론자로 참여한 장혜영 다큐멘터리 감독의 경우 18년간 장애인수용시설에서 살다가 나온 중증발달장애인 여동생을 직접 지켜본 사람이다. 장 감독은 현실에서 느낀 감정과 생각을 허심탄회하게 쏟아냈다.

장 감독은 “부모님께서 동생을 시설로 보낼 때 이렇게 말씀하셨다. 동생이 사회에서 살기에는 너무 취약하고 위험하기 때문에 오히려 시설에서 장애인들과 함께 사는 것이 행복일 수도 있다고. 하지만 장애인 시설의 다양한 인권침해 사건이 터지고 동생이 시설에서 나왔을 때 나는 더 큰 충격을 받았다”고 전했다.

대략 5년 전 장애인 시설에서 발생된 인권침해 사고가 사회에 드러나면서 공론화되는 분위기였다. 장 감독은 “당시 장애인 학부모 간부를 맡고 있던 나에게 많은 부모님들이 찾아오셨다. 난 이 문제를 더욱 공론화하자고 찾아오신 줄 알았는데 오히려 공론화를 저지해달라고 부탁하셨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당시 학부모들은 이 문제로 내 아이가 있는 시설이 폐쇄되면 우리 아이는 어디로 보내야 하느냐. 우리는 돌볼 수 없다. 그렇다면 혜영씨 동생을 데리고 나가라”며 오히려 장 감독을 다그쳤다고.

한편, 토론자들 중 일부는 시에서 인권 컨퍼런스가 개최된 만큼 박원순 시장에 대한 요구사항과 질문을 거침없이 던지기도 했다.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 김정하 상임활동가는 “이 토론장에 박원순 시장이 계셨다면 한 말씀 꼭 드리고 싶었다”며 “탈시설화 정책은 10년 내로 진행되지 않는다면 의미가 없다. 저보다 더 열정 많은 분들이 나서 이것을 5년 내로 앞당겨야 한다”고 말했다. 또 “내가 희망하는 이 10년을 박원순 시장이 발표하는 그날까지 전력을 다해 싸우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장혜영 다큐멘터리 감독은 “장애인 인식의 문제는 간단히 해결될 수 있다”며 “이 자리에 박원순 시장에 계시다면 당신은 발달장애인 시민도 시장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지, 문재인 대통령이 계시다면 우리나라에 발달장애인 대통령이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하는지, 이 질문했을 때 그것의 상상 여부에 따라 인식의 벽을 가늠할 수 있다”고 말했다.

스웨덴 자립생활협회 리타 레나 칼슨 장애전문가는 토론의 끝에서 “우리와 관련된 정책은 우리가 참여해서 만들어야 한다. 장애인 정책이라면 장애인이 참여해 만들고, 장애인 없는 정책은 무의미하다. 결국 탈시설 정책도 장애인이 참여해 이뤄져야 한다"는 말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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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진 2018-12-13 15:06:36
장애인 정책은 주체인 장애인단체나 당사자분들이 꼭 참여한 가운데 이루어 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탁상공론은 절대 안됩니다.

차*영 2018-12-10 10:20:22
공감이 갑니다. 발달장애인 뿐만아니라, 다른 비슷한 유형의 장애인도 탈시설 가능성과 그후의 일에도 대책이 필요할 것 같다고 생각합니다.

오*미 2018-12-10 10:04:50
장혜영감독님의 말씀이 공감이 많이 가네요. 탈시설화는 무조건 장애인을 밖으로 내보내는게 아니고 많은 준비가 필요할 것입니다. 무엇보다 인식개선이나 정책이 제대로 갖춰져야 할것 같습니다. 발달장애인을 위한 성년후견제도에 대한 이해나 일반화도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