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를 바꾼 장애인 연극배우들
사회를 바꾼 장애인 연극배우들
  • 노인환 기자
  • 승인 2019.01.10 17:55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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英 장애·비장애 통합극단 '하이징스' 대표 초청강연 열려
장애연극 롤플레잉, 의료·보안 등 영역에 변화 일으켜
"장애인 배우의 연극은 사회인식 개선에 큰 역할"
다운증후군 장애인 연극배우(오른쪽)와 롤플레잉 수업을 하고 있는 의사(왼쪽). 노인환 기자

영국 장애·비장애 통합극단인 '하이징스(Hijinx Theatre)'의 연극 롤플레잉(role playing)이 의료와 보안 등 각종 영역에서 변화의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향후 영국 의사들은 다운증후군을 진단하기 위해 한 가지 절차를 거쳐야 할지 모른다. 다운증후군 배우와 롤플레잉 수업을 통해 당사자들의 의사소통 방식을 익히는 것이 진단자격의 조건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외에도 장애인들의 연극활동이 사회 다방면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오는 11일부터 13일까지 영국 장애예술공연 쇼케이스에 초청된 '프레드(Fred)' 공연이 국내에서 열린다. 본 공연에 앞서 연극팀 하이징스의 대표 클레어 윌리엄스(Clare Williams)는 9일 잠실창작스튜디오에서 '한계가 아닌 재능으로서의 장애'라는 주제로 강연을 진행했다.

클레어 대표는 "우리가 연극을 하는 것은 사회에 짙게 깔린 장애라는 부정적인 이미지와 상징을 없애기 위한 것"이라며 말문을 열었다. 하이징스는 '장애'라는 것을 '다양성'으로 인식하면서 창설된 극단으로, 장애인에 대한 사회 인식을 개선하고 당사자들의 사회 참여를 도모하는 데 목표를 두고 있다.

클레어 대표는 "장애인 배우들은 세상을 바라보는 독특한 방식이 있다"며 "비장애인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뇌구조와 시각을 갖추고 있어 배우로서는 매우 훌륭한 자질"이라고 강조했다.

그렇다면 하이징스는 어떤 시스템으로 장애인 연극배우를 탄생시키는 것일까?

하이징스 대표 클레어 윌리엄스.

클레어 대표가 자부심을 갖는 극단의 최고 활동은 '연극 아카데미'의 운영이다. 아카데미는 800시간의 교육훈련을 통해 장애인 참여자를 전문배우로 육성시킨다. 1년 과정의 서커스, 가면극, 코미디, 즉흥연기, 앙상블 등 다양한 수업을 진행하고 있으며 연극 전문가들이 항시 상주한다.

하이징스 아카데미가 여타 드라마스쿨과 다른 점은 '대본'이 없다는 것이다. 클레어 대표는 "우리는 대본 없이 장애인과 비장애인 배우가 놀이를 통해 연극 기술을 익히고 있다"며 "대본이 없어 셰익스피어의 유명한 작품은 공연할 수 없지만, 즉흥적인 놀이에서 발견되는 배우들의 독특하고 기발한 발상이 작품을 만드는 초석이 된다"고 전했다.

현재 극단과 아카데미에서 연극 활동을 하고 있는 배우는 70여명이다. 처음 아카데미가 개소된 2012년에는 하이징스의 인지도가 너무 낮아 참여자가 많지 않았다. 클레어 대표는 "지금은 행사 때마다 티켓 예매가 매진되는 인기 극단으로 올라섰으며, 아카데미 입소 대기자가 너무 많아 걱정이 따를 정도"라고 말했다.

물론 극단이 처음부터 성공을 거둔 것은 아니다. 극단 초창기, 웨일스의 한 작은 마을에 열었던 공연에 단 한 명의 관객도 오지 않아 실망한 적도 있었다는 클레어 대표. 결국 마을에 있는 모든 우체통마다 공연 티켓을 넣어 자체 홍보에 나서면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클레어 대표는 "극단의 가장 큰 성공모델을 꼽자면 주류 극단과의 협업"이라고 강조했다. 런던에 소재한 세계적인 극단 펀치드렁크(punchdrunk)와 협업을 통해 공연을 계획한 것이 큰 수확이었다고 덧붙였다. 클레어 대표는 "당시 하이징스는 무명이었고 펀치드렁크는 팬층이 두터운 극단이었다"며 "펀치드렁크의 공연인 줄 알고 방문한 관객들이 장애인 배우가 출연해 처음은 의아해하다 공연을 보고 놀라움과 감동을 받은 것이 인상적이었다"고 밝혔다.

특히 인형극으로 유명한 블라인드서미트(Blind SumMiT) 극단과의 만남은 곧 공연될 '프레드'의 탄생에 큰 역할을 했다. 프레드의 내용은 주인공으로 등장한 인형이 입도 거칠고, 유머감각도 뛰어나며, 성질이 고약한 것으로 표현된다. 남들처럼 일자리를 얻고, 이성친구도 사귀고, 집을 갖는 등 정상적인 삶을 원하지만 수많은 편견에 맞닥뜨린다. 클레어 대표는 "프레드는 장애인들의 심정을 인형극으로 표현하면서 비장애인들이 가지는 인식, 그리고 장애인 배우에 대한 인식까지 바꾸는 데 큰 역할을 한 작품"이라고 평가했다.

프레드뿐 아니라 장애계에서 쉽게 다루지 못했던 문제들을 연극을 통해 표현한 사례는 많다. 현재 장애인과 사회 시스템의 괴리감을 표출하고 있는 영화 작품이 제작되고 있다. 내용은 매년 전담의사에게 '난 여전히 장애인이다'라는 것을 증명해 정부 보조금을 지원받는 현실을 비꼰 것이다. 정부와 의사로부터 요구되는 기대치를 충족하며 모욕감까지 받을 수 있는 각종 질문에 냉소적인 답변을 제시하는 것이 이 작품의 특징이다. 이 외에도 장애인들의 성(性) 문제 등 사회적으로 다루기 어려웠던 부분을 연극으로 자연스럽게 접근하고 있다.

9일 잠실창작스튜디오에서 하이징스의 클레어 윌리암스 대표가 '한계가 아닌 재능으로서의 장애'라는 주제로 강연을 진행했다. 노인환 기자

그렇다면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하는 연극공연은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클레어 대표는 "장애인 당사자뿐 아니라 이들을 바라보는 비장애인, 그리고 사회가 변하고 있다"고 말한다.

클레어 대표는 "아카데미에 등록하기 전 한 장애인은 오줌도 자주 싸고 겁도 많은 학생이었지만, 연극에서만큼은 하고 싶다는 열망을 크게 가졌다"며 "이후 연극을 통해 사회생활을 직·간접적으로 접하면서 이전에는 통제하지 못했던 신체적, 감정적 변화를 컨트롤하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또한, "폭력성이 심한 장애인이 지금은 최고의 배우 중 하나로 타사에 캐스팅되기도 했다"며 "지금은 전혀 공격성을 보이고 있지 않다"고 밝혔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한 연극, 놀이, 교육 등이 장애인의 생활에 큰 변화를 주고 있는 것이다.

연극은 비장애인들의 인식에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클레어 대표는 "비장애인 관객들은 장애인 연극배우가 출연하면 처음에는 놀람과 신선함으로, 이후에는 배우들의 독특한 사회적 시각과 솔직함에 매료된다"고 말했다. '연극'이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연결한 매개체가 된 셈이다.

사회 인식과 제도의 변화를 이끈 가장 큰 역할에는 연극 수업의 롤플레잉을 꼽을 수 있다. 클레어 대표는 "현재 아카데미 배우의 60%는 롤플레잉 예술가로 일하고 있다"며 "특히 장애인 배우의 롤플레잉은 사회에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는 의사, 경찰, 보안요원들에게 큰 도움을 주고 있다"고 밝혔다. 현재 하이징스는 의사들이 장애인 배우와 롤플레잉을 통한 다운증후군의 의사소통 방식을 익혀야만 진단자격이 부여되도록 영국의료보험공단(NHS)과 협업 중이다. 또한, 공항의 보안요원들은 자폐증 장애인이 검색대를 통과하거나 몸수색을 할 때 이들이 겪는 긴장감과 두려움을 어떻게 줄일 수 있는지 롤플레잉으로 교육받고 있다.

하이징스의 장애인 배우들은 자존감을 찾고 사회에 참여하는 방법으로 '연극'을 선택했다. 단순한 예술활동으로 여길 수도 있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비장애인 배우와 관객들에게 또 다른 시각과 경험을 투영시켰다. 더 나아가 의료, 보안 등 다양한 영역에 '장애'를 자연스럽게 연결시키고 있다.

강연이 끝난 후 클레어 윌리엄스 대표(왼쪽)와 김원영 변호사(오른쪽)가 대담하고 있다. 노인환 기자

강연 이후 클레어 대표는 '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의 저자 김원영 변호사와 대담을 가졌다. 김 변호사는 "장애인이 비장애인과 함께 할 수 있다는 것에 큰 감동을 받았다"며 "한국에서 참고할 만한 좋은 사례들이 너무 많아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고 전했다.

다음은 김 변호사와 클레어 대표가 나눈 대담 중 일부다.

Q. 김 변호사: 연극배우로서 프로가 되려면 혹독한 훈련을 받아야 한다. 장애인 배우에게 압박감이 높은 훈련강도를 부여하면 인권문제가 결부될 수 있다. 어떻게 생각하는가?

A. 클레어 대표: 우리는 놀이를 통해 연극 수업을 하며 전문적인 연극훈련도 실시한다. 발레, 현대무용, 서커스, 인형극 등 매우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잘할 수 있는' 분야를 배우에게서 찾아낸다. 재능을 찾게 되면 압박감을 주지 않아도 스스로 하게 되며 우리는 그들을 압박하지 않는다. 다시 말해, 재능 있는 분야를 찾고 이를 연극으로 승화시키는 것, 그것이 핵심이자 답이다.

Q. 김 변호사: 주류 극단과 협업해 하이징스의 이름을 알렸다. 하지만 비장애 극단들이 공익활동이라는 개념으로 장애 극단을 이용할 수 있지 않을까?

A. 클레어 대표: 우리 배우들을 자신들의 사회환원, 봉사활동의 수단으로 이용한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다양한 관계를 거치다보면 우리와 같은 뜻을 가진 극단을 찾게 된다. 이것은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Q. 김 변호사: 현재 극단 홈페이지를 통해 장애인 배우들의 프로필을 공개하고 있다. 장애 유형을 공개하고 프로필로 분류하는 것은 배우의 다양한 면모를 덮을 수 있는 위험이 따를 것으로 보인다.

A. 클레어 대표: 물론 기존의 사회 인식이라면 맞는 말이다. 그리고 장애인 배우의 장애 유형을 공개하는 것은 양날의 검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이 '장애'가 배우들이 가진 또 다른 경쟁력이자 정체성이라고 생각했으면 좋겠다. 불리한 점이 아닌 특별한 프로필이라는 점. 장애가 키가 크거나 얼굴이 작거나 하는 등 다양성처럼 인식되기를 바란다.

한편, 하이징스의 인형극 '프레드(Fred)'는 오는 11일부터 13일까지 서울 종로구 이음센터에서 개최하며 주한영국문화원과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이 공동 주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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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진 2019-01-13 12:52:28
다양한방면에서 비장애인들과 함께하는 모습을보면 옛날보단 장애인을보는 시선이 많이달라졌다는 것을느낍니다 연극계도 진출을한다면 또한번의 도약이 아닐까요.

진*영 2019-01-11 09:34:30
저희 나라에도 장애인들의 인식을 조금 더 바꿀 수 있는 "장애인 연극단"이 생겼으면 좋겠습니다.
사회 활동을 하지 못하고 있는 장애인분들에게 조금이라도 자존감을 향상 시킬 수 있는 "장애인 연극단"이 저희 나라에도 있었으면 하는 저의 바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