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사자 현실 반영 안 된 장애등급제 폐지는 가짜"
활동지원·탈시설화 정책 등... "턱없이 부족한 예산"
5개월 후면 장애등급제가 단계적으로 폐지된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는 당사자의 현실이 반영된 '진짜' 장애등급제 폐지를 위해 이낙연 국무총리에게 면담을 요청했다.
이후 국무총리실에서 돌아온 답변은 "해당 민원은 보건복지부에서 처리토록 이송하게 됐다"는 회신. 결국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는 이낙연 국무총리에게 재면담을 요청하기 위한 기자회견을 열었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는 30일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진정한 장애등급제 폐지를 위한 '이낙연 국무총리 면담 요구 기자회견'을 가졌다. 진정한 장애등급제 폐지를 내세우며 당사자의 목소리를 내기 위한 발언이 진행됐다.
비슷한 시각, 정부서울청사에서는 이낙연 국무총리의 주재로 '제20회 장애인정책조정위원회'가 열렸다. 위원회에서는 '제5차 장애인정책종합계획'과 '유엔장애인권리협약 국가보고서'를 심의했으며 '장애등급제 폐지 추진방안'도 함께 논의됐다.
◆ 24시간 활동지원이 필요한 장애인은 어디로...
보건복지부의 예산 확정안에 따르면 장애인 활동지원서비스 예산은 지난해 6천900억원에서 올해 1조원으로 증액됐다. 그러나 전장연 측은 "최저임금 인상이 반영된 예산 확대일 뿐 활동지원서비스 대상자가 받는 지원은 미미하다"고 지적했다.
이날 발언자로 나선 장애인자립생활센터판 서기현 소장은 "활동지원서비스 예산과 대상자가 늘어난 것은 인정한다"면서도 "예산이나 대상자에 대한 지원이 매우 적고, 특히 24시간 활동지원서비스는 반영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서기현 소장은 "24시간 활동지원서비스가 필요한 중증장애인은 전체 장애인에 비해 매우 적지만 이들을 차별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하며 "이 상태에서 장애등급제가 폐지되면 24시간 활동지원서비스의 주체마저 기준에서 사라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는 "중증장애인이 인간답게 살기 위해서는 24시간 활동지원서비스가 꼭 필요하다"며 "정부에서는 형평성 논란이라는 입장만 고수하기보다는 모두가 잘 살 수 있는 정책에 집중했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같은 날 국민연금공단 부평계양지사 앞에서는 전장연 등 13개 관련 단체가 '장애인활동지원 제한하는 국민연금공단 규탄 및 무기한 점거농성 돌입 기자회견'을 가졌다. 이는 지난해 혼자서 식사가 불가한 뇌병변 장애2급 이 모씨가 국민연금공단의 결정에 따라 하루 2~3시간의 활동지원을 받고서 건강상태가 극도로 악화되면서 발단이 됐다.
◆ 장애인 거주시설... "나의 시간, 나의 삶이 빼앗기는 곳"
유엔장애인권리협약은 2008년 말 국회의 비준을 받고 이듬해인 2009년부터 발효됐다. 이에 따라 정부는 장애인권리에 관한 국가보고서를 유엔장애인권리위원회에 제출해야 한다.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 최재민 활동가는 국가보고서 내용 중 '시설 중심의 장애인 정책 폐지'에 초점을 맞춰 발언에 나섰다.
최재민 활동가는 "내가 만나 본 장애인들은 거주시설에 대해 '나의 시간, 나의 삶이 빼앗기는 곳'이라고 표현한다"며 "하루 종일 프로그램화된 일상을 살아가야 하는 그들의 삶은 인권적이지 못하다"고 주장했다.
2014년 유엔장애인권리위원회는 한국 정부에서 제출한 국가보고서에 대해 "정부의 실효성 있는 탈시설 정책이 필요하다"고 평가했다. 이후 2017년 문재인 대통령은 국정과제 중 탈시설 정책을 강조했으며, 2018년 커뮤니티케어를 통해 시설수용중심의 장애인 정책을 탈시설 및 자립생활로 바꾸겠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최재민 활동가는 "그러나 올해 정부의 탈시설 예산은 제대로 집행되지 않았다"며 "보건복지부가 계획했던 탈시설 예산 43억원은 기획재정부와 국회를 거쳐 14억원으로 삭감됐다"고 지적했다.
그는 "장애인 거주시설에 투입되는 5천억원과 비교하면 턱없이 부족한 예산"이라며 "탈시설 정책은 정부의 총괄적인 주도가 전제되지 않는 한 시행되기 어렵다"고 말했다.
최재민 활동가는 "탈시설 정책은 10년 내로 장애인 거주시설의 단계적 폐쇄와 더불어 관련 정책이 세부적으로 마련돼야 한다"면서 "탈시설이라는 이름으로 시행되는 주택개조서비스만으로는 그 효과가 현실적이지 못하다"고 말했다.
◆ 활동지원서비스 대폭 확대? "정부의 과장된 표현이다"
올해 정부는 활동지원서비스 대상을 7만8천명에서 8만1천명으로 늘렸다. 그러나 정부에 따르면 활동지원이 필요한 대상은 전체 장애인 중 14%, 약 35만명에 이른 것으로 드러났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박경석 공동상임대표는 "정부가 유엔장애인권리위원회에 제출할 올해 보고서 초안에는 과장된 표현이 있다"며 "활동지원서비스 대상자가 3천명 정도 확대됐는데 이를 '대폭 늘렸다'라는 표현으로 기재했다"고 밝혔다.
그는 "정부에서 직접 추산한 활동지원서비스 필요 인원은 약 35만명이지만 실제 지원대상자는 전체 중 23%에 불과하다"며 "외부에는 장애인 복지가 크게 개선된 듯한 표현을 썼다"고 주장했다.
박경석 대표는 "장애등급제는 당사자의 현실이 반영된, 충분한 예산이 집행된 상태에서 폐지돼야 한다"면서 "당사자가 배제된 종합서비스조사표가 대체 무슨 소용이 있나"라고 말했다.
발언이 끝난 뒤 박경석 대표는 이러한 내용을 담은 서한을 국무총리실 관계자에게 전달했다. 박 대표는 "오는 7월 장애등급제가 폐지되기 전에 국무총리와의 면담을 통해 진정한 폐지를 위한 우리의 목소리를 전달하겠다"고 강조했다.
한편, 이날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는 이번 기자회견의 연장선으로 설 명절을 기점으로 국무총리공관 앞에서 '장애등급제 진짜 폐지를 위한 고사'를 열겠다고 밝혔다. 이 외에도 다양한 기자회견과 단체활동이 계획돼 있어 장애계를 비롯한 관련 단체의 행보에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다각적인 검토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무엇보다 등급제 폐지로 인한 혼란을 최소화 하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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