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세원법... "정신질환자 억압하는 악법" 당사자 단체 반발
임세원법... "정신질환자 억압하는 악법" 당사자 단체 반발
  • 노인환 기자
  • 승인 2019.02.08 1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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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세원법 입법 공청회' 8일 국회에서 열려
"당사자 없는 법은 차별이자 기만행위"
여의도 인근 정신장애인 단체 반발 거세..
한국정신장애인권연대 카미 등 관련 단체는 8일 서울 여의도 이룸센터 앞에서 정신건강복지법 개정안 철회를 주장하며 기자회견을 열었다. 노인환 기자

일명 임세원법으로 불리는 '정신건강증진 및 정신질환자 복지서비스 지원에 관한 법률(이하 정신건강복지법)' 개정안에 대해 정신장애인 단체들이 크게 반발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31일 강북삼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임세원 교수는 조울증 환자가 휘두른 흉기에 수차례 찔려 목숨을 잃었다. 이에 지난달 1월 25일 국회는 '정신건강증진 및 정신질환자 복지서비스 지원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발의했다. 그러나 정신장애인 단체들은 개정안을 철회하라며 반대 시위와 기자회견을 가졌다.

한국정신장애인권연대 카미 등 관련 단체는 8일 서울 여의도 이룸센터 앞에서 기자회견을 통해 "故 임세원 교수 유지에 반하는 개악을 강행하는 것"이라며 "정신장애인에 대한 차별이 훤히 보이는 정신건강복지법의 개정을 반대한다"고 주장했다.

같은 날 국회의원회관 제2세미나실에서는 윤일규 의원실과 대한신경정신학회의 주관으로 '임세원 법 입법 공청회'가 개최됐다. 공청회는 정신건강복지법 개정을 논의로 한 주제발표 및 지정토론회가 진행됐다.

하지만 공청회 현장에서도 정신장애인인권단체 파도손, 한국정신장애인자립생활센터, 한국정신장애인협회 등 14개 관련 단체가 공청회 및 개정안 추진에 대해 반대의 목소리를 외쳤다. 이들은 "임 교수의 유지에 반하는 개정안을 즉각 철회하라"며 "당사자가 참여하지 않은 공청회는 정부의 기만행위"라고 주장했다.

윤일규 국회의원은 개회사를 통해 "정신질환자를 위한 법안 마련과 개정을 위한 공청회인데 서로 다른 입장에서 바라보니 마녀사냥이 된 것 같다"며 "이 자리는 관련 전문가, 당사자들이 함께 토론하며 유익한 의견을 주고 받는 자리가 돼야 한다"고 공청회의 취지를 밝혔다.

윤일규 의원실과 대한신경정신학회의 주관으로 8일 국회의원회관 제2세미나실에서 '임세원법 입법 공청회'가 개최됐다. 노인환 기자
'임세원법 입법 공청회'가 열린 제2세미나실 안에는 많은 정신장애인 관련 단체가 참석해 정신건강복지법 개정안 철회를 주장했다. 노인환 기자

◆ 정신건강복지법... "제도·시스템·재원 모두 갖춰야"

정신건강복지법의 시초라고 할 수 있는 '정신보건법'은 1995년 복지시설에 수용된 정신질환자를 의료기관인 정신병원으로 이송하고 그들의 인권을 보장해주기 위해 마련됐다. 그러나 수차례의 개정을 거치면서 보호자의 의무만 강화되고 이에 따른 제도적 장치는 미비했던 것이 사실.

첫 번째 발제자로 나선 서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이동진 교수는 "보호자 의무는 강화된 반면 이 외의 법적, 제도적 지원장치는 크게 손질된 것 없다"며 "비자의(非自意) 입원율이 높고 정신병원의 입소가 장기화되면서 탈수용화가 더욱 어려워지고 있는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법 조문의 글자 몇 개를 바꾸는 것은 상징적인 법적 효과만 낳을 뿐"이라며 "제도적 장치가 뒷받침될 수 있도록 의료계뿐만 아니라 당사자의 현실을 모두 고려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카톨릭대학교 정신건강의학과 이해국 교수는 "중증정신질환자에 대한 탈원화 및 지역사회기반 치료의 온전한 실현은 당사자와 함께 추구해야 한다"며 "지금이라도 당사자의 현실을 제대로 직시하기 위한 전수조사를 실시하고 정부로부터 관련 예산도 확보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아픈 사람을 나쁜 사람으로 만드는 현 정신건강시스템을 개선해야 하고, 정신질환도 암이나 치매 등 주요신체질환에 준하는 적절한 예방과 치료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의 신체적 치료에만 집중된 정신질환자의 의료체계를 '심리적·사회적 치료'와 병행해 종합적인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정신질환치료의 공적재원 확대를 주장한 고려대학교 예방의학과 윤석준 교수는 "현재 우리나라의 정신질환관리예산은 너무 부족하다"며 관련 통계자료를 제시했다. 최근 몇 년간 정부의 정신질환관리예산은 증가하는 추세지만 보건예산 중 정신질환관리 부문은 1.5%정도다. 이에 대해 윤 교수는 "정신질환관리예산을 보건 분야 중 5.0%까지 끌어올려야 한다"며 "예산 없이 정신질환자의 치료체계가 제대로 구축되기는 어렵다"고 주장했다.

윤 교수는 "정신건강을 위한 공적재원은 경찰과 소방 협조를 통한 응급의료체계, 자기결정권이 보장된 치료환경, 정신과 응급수가의 차별화, 정신질환자의 주거 및 고용정책 등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말했다.

대한정신장애인가족협회 조순득 대표(왼쪽)와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최준호 법제이사(오른쪽).

◆ "낙인과 차별이다" vs "오해를 풀어달라"

주제발표가 끝난 뒤 지정토론이 시작됐다. 정신장애인인권단체 파도손 이정하 대표는 "개정안에 제시된 72시간 입원이나 보호입원과 같은 용어로 강제입원을 가리고 있을 뿐"이라며 "이번 개정안에는 정신장애인 당사자의 권익이나 삶에 대해서는 전혀 고민한 흔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이 대표는 "정신질환자를 위한 법이라고 하지만 실제 이 법에 대한 논의는 살인사건으로 시작됐다"며 "이미 정신장애인을 범죄자로 낙인 찍은 상황에서 법을 개정한다는 것 자체가 당사자를 부정적인 시각으로  몰아낸 것"이라고 말했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정신질환자들은 정신병원에 대한 트라우마가 상당히 심하기 때문에 퇴원한 이후 자살률이 높다고 주장한다. 개정안에 따른 강제입원, 비자의입원 등은 정신장애인의 생명에 크게 위협된다는 것이다. 그는 정신장애인의 범죄율이 비장애인보다 낮다고도 주장했다.

대한정신장애인가족협회 조순득 대표는 "지난해 정신건강복지법을 제정했을 당시에도 전문가들은 있어도 정신장애인 당사자는 없었다"면서 "누구든지 정신질환자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진다면 당사자의 현실이 반영된 법안을 마련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조 대표는 "정신장애인들이 치료환경을 개선해달라는 그동안의 목소리는 무시하면서 살인사건이 발생하자마자 개정안을 추진하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라며 "정신질환자를 범죄자로 인식하면서 과거 격리와 감금의 시절로 회귀하는 것 같아 무섭다"고 전했다.

이에 대해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최준호 법제이사는 "이번 정신건강복지법의 개정안으로 당사자들이 가지는 오해가 크게 3가지로 추려진다"면서 "정신질환자의 정의, 비자의 입원 요건, 심사의 유형으로 나눠 설명하겠다"고 밝혔다.

최 이사 발언에 따르면 정신질환자의 정의가 확대된 것은 종전에 중증질환자에게만 초점이 맞춰져 있는 대상을 좀 더 확대하겠다는 의도다. 이를 두고 정신장애인 단체는 정신질환자의 대부분이 강제입원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다음 비자의 입원요건에 해당되지 않는 경우에는 외래치료로 지원해 융통성 있는 치료환경을 구축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당사자들은 외래치료도 자유를 제한하는 제도라고 주장하고 있다.

개정안에 따르면 심사유형은 중기심사로 진행되고 있다. 중기심사는 단기간의 비자의 입원 후 퇴원시키거나 중간심사를 거쳐 계속 입원시키는 형태다. 당사자들은 중기심사에서의 의사 진단이 정확하지 못해 중기심사의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입장이다.

정신건강복지법 개정안에 반대하는 정신장애인 단체 회원들. 노인환 기자

◆ 임세원법 공동대책위원회... '정상화 촉구 성명서' 제시

이날 공청회에는 수십명에 달하는 임세원법 공동대책위원회(이하 공대위)가 현장 곳곳에 위치해 정신건강복지법 개정안에 반대했다. 다음은 공대위의 '정신건강 서비스 정상화 촉구 성명서' 중 일부다.

"우리는 대한신경정신의학회를 비롯한 일부 국회의원들이 내놓고 있는 여러 대안들에 대해 깊이 우려한다. 법원판결을 통한 강제입원, 외래치료명령제의 요건을 완화한 강제치료 강화 등을 보면 '정신질환자'를 잠재적 범죄자로 취급하고 있다. 정신질환 당사자를 죄인 취급하는 폐쇄병원을 즉각 없애고 응급치료를 제외한 모든 강제입원, 강제치료도 없애야 한다. 또한 정신장애인 당사자를 배제한 정신건강복지법의 제정과 개정안에 모두 반대한다"

정신장애인의 인권과 사회적 안전장치에 대한 간극은 이번 공청회를 통해서도 쉽게 해소되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당사자 의견이 배제된 것은 물론 전문가들이 고민한 법적 장치의 실효성도 양측의 입장에서 큰 온도차가 드러났기 때문이다. 이번 임세원법 입법 공청회가 향후 당사자를 비롯한 사회 전체에 유익한 방향으로 전개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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