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해 수호의 날’을 보내면서…
‘서해 수호의 날’을 보내면서…
  • 염민호 편집국장
  • 승인 2019.03.26 16: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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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터에서 살아 돌아온 군인을 부끄럽게 만들어야 할 이유가 있나?

지구상에서 가장 대표적인 다민족사회로 구성된 나라가 미국이다. 생각해보면 그 흔해빠진 ‘민족주의’라는 낱말도 자국에 붙여 사용할 수 없는 나라가 미국이라는 곳인데 어떻게 세계의 패권국가가 되었을까?

바로 국가를 위해 희생당한 사람에 대해 최상의 존경과 예우를 다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국가를 위해 헌신하는 것을 매우 자랑스럽게 여긴다.

지금 스마트폰에서 유튜브(YouTube)를 실행하고 검색창에서 “미군 전사자 예우”라는 내용으로 검색을 해보라! 수많은 내용의 게시물이 올라와 있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전사자 뿐 아니라 현역 장병에 대한 존중과 배려도 유별난 것을 찾아볼 수 있다. 국민 개개인이 이런 사람을 존중하고 사랑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부강한 나라의 국민으로서의 자부심을 스스로 고양시키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어떨까?

미안한 이야기지만 군인에 대한 예우와 배려는 고사하고 비아냥거림과 웃음거리의 소재로 삼기도 한다. 때문에 어느 전직 대통령은 국방의 의무를 감당하는 것을 “푹 썩고 돌아오는 시기”라고 발언했다가 여론의 질타를 받기도 했다.

며칠 전 ‘서해 수호의 날’을 보내면서 씁쓸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여론의 관심 밖으로 밀려나 잊히는 것은 물론이지만 정부가 의도적으로 의미를 퇴색하려는 것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기도 했다. 게다가 천안함 폭침사건의 생존자에게 심지어 ‘패잔병’이라고 표현하는 댓글이 달린 것을 보면서 분노감이 치밀었다. 불시의 기습공격을 방어하지 못한 것이 잘못된 것이라고 비난한다면, 그들이 살아남기 보다는 모두 죽었어야 옳았다는 것인지 되묻고 싶다.

“생존한 그 자체가 승리다!” 천안함 생존자회 회장 전준영 씨가 어느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눈물을 흘리며 했던 말이다. 그는 “포 한번 못 쏴보고 당했지만 생존한 자체가 위대한 승리”라고 말했다.

천안함 폭침사건 당시 공동조사단으로 참여했던 러시아 조사단은 천안함 함장이었던 최원일 중령에게 경의를 표하며 메달을 전달하기도 했다. 배가 어뢰 공격으로 침몰한 상황에서 46명의 부하 장병을 잃었지만 57명의 장병과 함께 살아서 돌아왔기 때문이다.

그런데 서해수호의 날에 천안함 생존 장병들을 ‘패잔병’이라 폄훼하는 사람들은 어느 나라의 국민일까? 우리사회의 이런 분위기를 방조하는 것이 과연 합당한 것일까?

군인이 전쟁터에서 살아 돌아온 것을 부끄럽게 만들어야 한다면 차라리 이런 나라는 존속할 가치조차 없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우리나라 국방장관이나 대통령에게서도 큰 기대감을 가질 수 없다는 것이 정말 창피하고 부끄럽다.

군인은 국가의 안위를 위해 목숨을 내놓는 것을 명예로 여긴다. 본인의 희생을 국가와 국민이 헛되이 여기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에 기꺼이 죽음을 불사하는 것이다.

군 지휘관이 부하의 희생을 예견하면서도 명령을 내릴 수 있는 것은 부하의 명예를 지켜주겠다는 각오가 확고하기 때문이다. 명령에 복종하는 것 또한 상관에 대한 믿음과 신뢰를 바탕으로 충성심을 발휘할 수 있다.

그런데 군대를 통솔하는 최고 지휘관이 군인의 희생과 죽음을 가볍게 여기는것처럼 언행을 보여주는 것이 과연 합당할까?

혹시나…, 국방장관이나 대통령이 ‘과거 정권하에서 벌어진 사건’ 정도로 여긴다면 그 직에서 앉아 있을 이유가 전혀 없다.

크건 작건 군사적인 충돌은 국가의 안위를 놓고 벌어진 적과의 전쟁이기 때문이다. 군대를 통솔하는 국방장관이나 대통령은 본인의 정치이념이나 가치관을 떠나 대한민국 국호가 존재하는 과거와 미래를 아우르는 모든 시대의 국방장관이어야 하고 대통령이어야 한다.

일제강점기에 싸웠던 독립투사의 희생만이 값진 것이 아니다. 평화와 번영을 구가하는 이 시점이라 할지라도 국가를 위해 희생한 모든 노력이 똑같이 고귀한 것이다. 비록 군 복무 중에 불의의 안전사고로 희생된 죽음이라 할지라도 똑같은 관점으로 예우하고 존중 해야 한다.

이것을 보장하고 지켜주는 것은 국방장관이나 대통령이 수행해야 할 가장 무겁고 막중한 책무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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