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여행 제주 ‘김녕’에서 [ 2 ]
문화여행 제주 ‘김녕’에서 [ 2 ]
  • 전윤선 여행작가
  • 승인 2019.06.05 09: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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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상의 지혜 녹아 있는 전통가옥… ‘고향 지키는 자부심 가득’

# 마을의 안녕을 기원합니다.
조금 더 골목 깊이 들어가니 돗제를 만납니다. 돗제는 돼지를 뜻하는 제주 방언인 “돗(㘏)”과 제사란 의미의 ‘제(製)’가 합쳐진 말로 제주 김녕의 육신신과 김녕당굴의 주신 “태자 고뇌깃도‘의 노여움을 달래기 위한 제사풍습입니다. 
돗제를 지낼 땐 돼지를 잡은 뒤 육신에게 바치고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는 제례로서 마을의 축제이기도 합니다. 
돼지가 담장 위에서 지나가는 여행객을 바라보는 모습이 귀엽기만 합니다. 한 마리는 무엇을 봤는지 눈을 가리고 한 마리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호기심 가득한 눈동자를 가지고 있습니다. 또 한 마리는 예쁜 리본도 머리에 꽂고 속눈썹에 마스카라도 한 것 같았습니다. 가장 오른쪽에 있는 돼지는 지나가는 여행객이 보이질 않는다고 자리를 타박하는 것 같았습니다. 여행객이 있건 없건 귀여운 돼지들은 담장 밖으로 세상구경을 매일매일 합니다.

귀여운 돼지들의 담장 밖으로 세상구경...
귀여운 돼지들의 담장 밖으로 세상구경.... ⓒ전윤선

#신비의 용천수 
좀 더 골목을 따라 들어가 봅니다. 바다가 살짝 보이는 어느 집에 담벼락은 사람들이 나란히 걸어갑니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강아지도 따라 갑니다. 그 뒤엔 휠체어를 사용한 장애인과 휠체어를 밀어주는 사람도 있습니다. 
농부 아저씨는 누렁이와 뒤따릅니다. 아이들은 신나서 폴짝폴짝 하늘을 나는 것같이 즐겁습니다. 이집의 이름을 지어주어야겠습니다. 신나게 노는 집, 그 집 담벼락엔 나란히 걷고 있어 “나란히” 집으로 이름 붙여줬습니다. 
담장 너머엔 청굴물이 보입니다. 청굴물은 현무암 틈 사이로 스며든 빗물이 해수면 하부로 유입되는 것을 막아주기 때문에 해안선 부근에서 용천수들이 풍부하게 솟아난 곳입니다. 청굴물도 그중 한곳입니다. 여름철이면 김녕과 인근 마을 사람들까지 이곳에서 병을 치료하기 위해서 모여들었다고 합니다. 
청굴물 주변 바위틈에서는 “보드레기 고망나식”를 즐기는 사람들로 북적이던 곳이기도 합니다. 청굴물 쪽으로는 휠체어 사용 여행객은 접근하기 불편합니다. 담장 사이로 바다를 향해 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담장을 허물고 길을 내었지만 폭이 비좁고 바닥엔 현무암이 두 개가 있어 접근하기 어렵습니다. 
이런 사소한 부분 때문에 휠체어사용 여행객은 청굴물의 깊은 속까지 들여다 볼 수 없어 아쉬움을 남깁니다. 여행 당시 인근 주민센터 공무원이 나와서 접근하지 못하는 것을 보고 있었습니다. 개선해 달라고 부탁은 했지만 어찌 될지 아직은 모르겠습니다.

용천수가 풍부하게 솟아나는 청굴물
용천수가 풍부하게 솟아나는 「청굴물」 ⓒ전윤선

#'조상들의 지혜, 제주 돌집' 
마을엔 전통 돌집도 많이 남아 있습니다. 마을어른들은 전통가옥이 제주 지형에 더 적합하다고 합니다. 거칠고 크기도 제멋대로인 현무암을 막 쌓은 것 같지만 그 안엔 조상이 지혜가 녹아 있습니다. 옛 전통 가옥은 제주의 자연과 닮았습니다. 엉성해 보여도 강하 바람에 가옥을 지켜주는 참 담장인 것 입니다. 이를테면 강 줄기기가 지형에 맞게 흐르면서 곡선과 직선을 고르게 갖춰져 있는 것처럼요. 그런데 요즘에 새로 지어진 가옥의 담장은 반질반질 하고 네모반듯하게 깍은 현무암으로 담장을 두른다고 합니다. 가지런한 담장이 보기는 좋지만 태풍이 오면 제주의 바람을 막아내지 못하고 무너지기 일색이라고 합니다. 
반면 얼기설기 쌓은 옛 담장은 바람 길을 열어 놓았습니다. 바람은 구멍으로 통과해 거친 힘을 최소한 무력하게 하는 지혜가 담겨 있는 겁니다. 
마을엔 제주 돌집으로 게스트 하우스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전통 돌집엔 휠체어 사용여행객이 접근 할 수 없는 것이 흠입니다. 저도 전통가옥에서 제주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까지 체험해 보고 싶지만 아직은 관광약자인 장애인에겐 전통가옥이 호락호학 하지 않습니다. 제주 돌집은 지붕에도 볏짚 대신 억새를 얹었습니다. 육지의 초가는 볏짚으로 새끼를 꼬고 이엉과 용마름을 엮어 초가지붕에 올려 빗물이 지붕에 스며드는 것을 고려하여 경사가 급하게 삼각형 모양의 형태로 지붕을 이었습니다. 
하지만 제주도의 초가는 한라산 기슭에서 자생하는 친환경 재료인 억새(띠)를 사용하여 지붕 잇기를 했습니다. 제주는 자연 조건상 빗물보다는 강한 바람을 걱정해야 했기 때문에 바람에 강한 유선형으로 지붕을 이었습니다. 

자연친화적 재료를 사용하다보니 사람과 곤충도 건강한 안식처를 제공합니다. 초가지붕에 둥지를 틀고 사는 곤충은 굼벵이가 대표적입니다. 느리거나 행동이 굼뜬 사람을 굼벵이라고 놀리기도 하고 굼벵이도 구르는 재주가 있다는 속담도 있습니다. 
휠체어를 사용하는 장애인도 휠체어에서 분리되면 굼벵이 못지않게 느리거나 아예 움직일 수 없는 사람도 있습니다. 나도 휠체어를 사용하고부터 별명이 “졸라 빠른 굼벵이”로 불렸습니다. 
어느 날 학교 앞을 지나가는데 전동휠체어를 타고 쌩 하니 달려가는 내 모습을 본 중학생은 “어~졸라 빨라”하고 큰소리로 말했습니다. 학생의 그 한마디가 그 닥 싫지 않았던 건 속도에 대한 갈증 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휠체어에서 분리될 땐 생각과 몸이 따로 놀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빨리 움직이려 해도 몸은 생각을 따라오지 못해 나 스스로 굼벵이라는 별명을 붙여줬습니다. 그런데 전동휠체어만 앉아 있으면 “엄청 빠른 굼벵이”가 됩니다. 
또 하나의 별명은 “지구별 여행자”입니다. 휠체어를 사용해서 지구별 어디든 엄청 빠른 굼벵이가 되어 여행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주 오래전 장애가 없을 때 제주로 여행 온 적이 몇 번 있습니다. 제주 여행 때 마다 민속촌에 들러 굼벵이 가루를 사가지고 갔습니다. 굼벵이는 어혈을 풀어주고 간 질환에 효과가 있다고 해서 민간약재로 쓰이기도 합니다. 당시에도 내 간은 근육병의 전초전임을 암시하고 있었습니다. 원인도 없이 간의 염증 수치는 정상 수치보다 스무 배는 높게 나오곤 했습니다. 그렇다보니 간에 좋다는 약과 민간요법까지 안 해본 거 빼놓고 다 해봤습니다. 간이 시원찮은 나에게 굼벵이는 제주에서 꼭 사가지고 가야하는 필수품이었습니다. 제주 돌집에 초가지붕을 보면서 굼벵이에 대한 이런저런 생각이 오갑니다.

#동굴위에 자리 잡은 마을
돌집을 지나 게웃샘물굴을 만났습니다. 게웃샘물굴은 근처 만장굴과 이어졌다고 합니다. 김녕은 만장굴에서 파생한 지형이어서 깊게 파 들어가 가면 굴과 연결돼 있다고 합니다. “게우”는 전복창자. “게웃”은 전복창자처럼 한쪽으로 돌아갔다는 것을 이르는 제주 토박이 말입니다. 게웃샘 물은 청굴물 용천수와 맞닿아 있다고 합니다. 마을에 상수도가 연결되기 전까지는 주변 2백여 가구에서 이 물에 의존해 살았습니다. 
마을사람들은 “게웃샘물은 죽어가는 사람도 살리는 물”이라고 말합니다. 그만큼 차갑고 맛도 좋기로 소문나 있기 때문입니다. 게웃샘으로 가는 길은 땅 아래로 한참 내려가야 합니다. 작은 구멍사이로 내려가면 큰 동굴이 보인다고 합니다. 
휠체어를 사용하는 나는 내려가지는 못해 일행보고 내려가서 보라고 했습니다. 일행을 기다리고 있는데 마을 주민이 다가옵니다. 
“난 여기서 나고 자랐어요. 어릴 땐 이곳에서 장어도 많이 잡아서 먹고 했죠. 최근엔 게웃샘 장어가 천연기념물로 지정됐다고 하는데요. 우린 그런 거 몰라요. 엊그제도 한마라 잡아서 먹었으니까요. 이곳에서 대를 잇고 살아온 우리에겐 귀신 씨나락 까먹은 소리죠!”
주민은 어릴 때 게웃샘 굴에서 놀며 고기잡아먹던 추억이 아직도 생생하고 고향을 지키며 살아가는 자부심에 마을 자랑이 늘어집니다. 여행을 하다보면 뜻밖의 사람들을 만나서 현지의 문화를 자세히 듣기도 합니다. 

여행의 풍경에도 꽃말처럼 풍경 말이 있다면 어떤 말을 붙여주면 좋을까요. 그래서 지금은 여행에만 집중합니다. 제주는 일분일초, 한 시간 하루도 같은 풍경을 보여주지 않기 때문에 자칫 방심하면 여행하면서 많은 것을 놓치기 십상 입니다. 
오늘 김녕 여행도 그렇습니다. 자연이 만들어낸 풍경은 잠시라도 눈을 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생각이 추억을 지날 때 제주여행은 어떤 추억으로 남게 될까요. 

제주 ‘김녕’의 해안풍경 ⓒ전윤선

 •여행 동선
  김녕 지질트레인 해설사 강희자 (전화 010-3692-6191)
•가는 길 
  제주 장애인 콜택시 : 
  하루 전 예약 (전화 064-756-8277), 당일예약 09:00~21:00까지 (전화 1899-6884)
•먹을거리
  김녕 지질 트레일은 반나절 코스입니다. 그러니 먹을거리는 미리 드시고 가시는 것이 좋습니다. 근처에 휠체어 접근 가능한 식당이 마땅치 않거든요.
•화장실
  마을 보건소에 있습니다.
•잠자리(편의시설 갖춰진 곳)
  엘린호텔  휠체어 접근 가능한 객실 4개 (전화 064-743-5600)
  블루마운틴 휠체어 접근 가능한 객실 1개 (전화 064-731-8888)
•제주여행 도움 주는 곳
  제주 장애인 여행사 ‘두리 함께’ (전화 010-3180-0068)
  제주 관광약자 접근성 안내센터 (전화 064-751-8096~7)
  제주 한라산 핸드컨트롤, 리프트 차량 렌터카 (전화 064-748-8222)
•무장애여행 문의
  한국접근가능한관광네트워크 http://www.knat2016.co.kr/web/
•회원공간•휠체어배낭여행
  http://cafe.daum.net/travelwheel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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