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셜포커스 김태일 기자] = 조선시대까지 주요 도시를 구분짓고 전시에 최후 방어선이 되었을 '성벽'이 우리나라에 실존했다는 증거를 내눈으로 찾기가 서울에서는 사실 쉽지 않다. 군데군데 흔적만 남아있는 벽의 일부와 부분적으로 성문 정도만 남아있어 '대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성이었다는 거지?' 싶은 거다.
그런데 눈을 돌려 경기도 수원을 바라보면, 작지만 짜임새있고 화려하지 않지만 실용적인 '성'이 잘 복원되어 있으니 바로 '수원화성'이다. 뒤주에 갖혀 죽은 아버지 사도세자의 묘를 수원으로 옮기며 도성을 조성했다는 정조의 효심은 잘 알려져 있으나, 당시의 실학과 과학기술을 총동원하여 이를 바탕으로 노론세력을 극복하고 백성을 위한 개혁정치의 새로운 토대로 삼으려했던 시도는 축성 다음해 49세의 나이로 정조가 세상을 떠나면서 미완의 과제로 남았다.
징검다리 휴일의 '마지막 돌' 쯤 되는 날, 아이들과 수원화성을 찾아 낮은 언덕들을 거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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