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자원봉사를 받는 게 아니다!" 활동지원서비스 유연화 촉구
"우리는 자원봉사를 받는 게 아니다!" 활동지원서비스 유연화 촉구
  • 김태일 기자
  • 승인 2019.06.20 23: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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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 활동지원서비스의 '일자리 확충 도구화' 비판
당사자 선택권 존중되는 유연화, 개인예산제 도입 촉구
▲19일 국회앞에서 열린 ‘활동지원서비스 유연화 촉구 기자회견’에서 성동느티나무장애인자립생활센터 김은선씨가 기자회견문을 낭독하고 있다.

[소셜포커스 김태일 기자] 6월 19일 오후 2시 여의도 국회 정문 앞에서는 서울지역장애인소비자연대와 서울시장애인자립생활센터총연합회 주최로 제2차 만민공동회 ‘활동지원서비스 유연화 촉구 기자회견’이 열렸다.

이날 기자회견은 7월1일 정부의 '장애등급제 폐지'안에 따라, 8년차를 맞이하고 있는 장애인 활동지원제도에 대해 장애 당사자들의 목소리를 내고 개별 장애인들의 요구에 맞춘 활동지원서비스 유연화를 촉구하기 위해 마련되었다.

국회 앞에 모인 50여 참가자들은 장애인의 서비스에 대한 통제 권한과 주관적 욕구를 옳지 못한 것으로 규정하여 원천적으로 배제하려는 현 정부의 활동지원서비스 정책을 강력하게 규탄하고, 본래 활동지원서비스에 내제되어 있던 ‘활동지원서비스 (개별)유연화’를 촉구했다.

기자회견을 주최한 강윤택 서울시장애인자립생활센터총연합회 부회장은 "활동지원서비스 예산이 1조원이 넘는다고 하는데 정작 우리의 삶은 바뀌는 것 같지 않다"고 여는 발언을 시작하면서 "우리는 주도적인 삶과 서비스 보장이 필요하지만 정부는 노동권 확보와 기구 만드는 데에만 혈안이다"라고 비판했다. 또한 강 부회장은 "정권이 바뀌면서 기대가 있었지만 결국 복지정책 박람회하는 것 같다"라며 "제도 유연화를 통해 우리의 삶을 제대로 살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변했다.

연대발언에 나선 더불어민주당 문상필 전국장애인위원장은 "지금까지의 장애정책은 생선가게에서 갈치만 먹으라고 강요한 것과 같다", "앞으로는 갈치도 먹고 고등어도 먹고 참치도 먹을 수 있는 환경으로 변해야 한다"고 비유하면서 장애인들의 자기선택에 따라 국가가 개인별 맞춤서비스를 제공할 것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오늘 이 현장은 장애인 복지의 패러다임을 한 단계 앞서는 투쟁을 하고 있는 것 같다"면서 "여러분의 의지가 당과 정부에 잘 전달될 수 있도록 하고 위원회 차원에서도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울산장애인소비자연대 권명길 대표의 연대발언

다음 연대발언을 위해 최근 서울지역 외 처음으로 소비자연대가 조직된 울산장애인소비자연대 권명길 대표가 사람들 앞으로 나왔다. "우리가 올해 소비자연대를 만들어 활동하기 시작한 것은 시청이나 복지부에서 제도만 만들어놓고 실질적인 장애인들의 의견을 전혀 반영하고 있지 않아 어디에 말 할 곳이 없어서였다"고 밝히면서 "오늘 여기에 참여함으로서 서비스 유연화에 대한 주제를 가지고 울산에 내려가서 활동을 이어갈 것이고, 특히 만65세가 되면 활동지원서비스를 받을 수 없는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서 노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자유발언도 이어졌다. 새날동대문장애인자립생활센터의 김연지씨는 활동지원서비스가 장애인의 필요에 따라 제공되어야 하는 원칙을 전제로 이야기를 시작하면서 "요즘은 근로시간 제한이 까다로워져 주말의 경우 시간이 턱없이 부족하거나 함께 외출을 했다가 중간에 활동지원사가 돌아가야 하는 경우가 많다"고 토로했다. "우리는 자원봉사를 받으며 사는 것이 아닌데 왜 우리가 수동적이 되어야 하나"라고 물으면서 "장애인의 자립생활이 실현될 수 있도록 활동지원서비스 예산을 늘리고 하루빨리 개인예산제도가 확립되어 서비스에 대한 선택권이 장애인 당사자에게 주어졌으면 한다"고 말하며 발언을 마쳤다.

은평늘봄장애인자립생활센터에서 참가한 이은재씨는 개별 장애인에게 맞는 활동지원서비스가 되기 위해서는 더 정확한 요구가 반영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체격이 큰 남성장애인에게 60대의 여성 활동보조사가 파견될 경우 휠체어를 옮기는 것 조차 어려운 경우가 있고, 누워서만 생활하는 장애인에게는 욕창이 생기기 쉬운데 지원사가 그런 일을 해내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발달장애인의 경우 그 사람을 이해하고 자기결정권을 존중하는 것이 중요한데 지원사 입장에서 편한 쪽으로 활동하는 경우에는 누구를 위한 서비스인지 모르겠다"며 장애 당사자의 권리가 제한되는 상황을 안타까워했고 "장애 당사자에게 지원서비스를 계획하고 선택, 변경할 수 있는 힘을 달라"고 요구했다.

마지막 자유발언으로 마이크를 잡은 새날동대문장애인자립생활센터 왕창호씨는 현재 장애관련법의 한계를 지적하면서 개인예산제 도입을 주장했다. 그는 "시혜적 사업으로 변질되고 있는 활동지원법을 버려야 한다"고 말하면서 "더이상 활동지원법과 근로기준법 사이에서 장애인이 버림받지 않도록 지원서비스가 개인예산제를 통해 새롭게 개편되기를 촉구한다"며 발언을 마쳤다.

참가자들은 기자회견을 통해 정부의 활동지원서비스 관련 정책이 본래 지향했던 가치인 장애인의 통재 권한과 개별유연화를 벗어나 당국의 일자리 확충을 위한 도구가 되어 장애인을 수동화, 대상화하는 돌봄서비스로 전락하고 있음을 강하게 비판했다. 국회앞을 지나는 시민과 신호에 걸린 차량 운전자들은 장애인들의 이야기에 잠시나마 귀 기울였으며, 참가자들은 끝으로 기자회견문을 낭독하며 이날의 일정을 마쳤다.

▲도봉노적성해장애인자립생활센터 이정민 동료상담가가 자유발언을 하고 있다.

 

<기자회견문>

 

 서비스 총량(시간) 확대와 더불어 사람에 따라 유연하게 변화되는 활동지원제도의 유연화를 쟁취하자!

 

 세계장애연구소(World Institute of Disability)에 의하면, 활동지원서비스는 장애인의 주관적 안녕(well-being), 외향성, 안락, 안전 그리고 지역사회와의 관계를 증진시키기 위한 서비스이다. 이 정의에 의하면 활동지원서비스에 담긴 철학적 가치는 일상 활동 수행 능력(ADL)의 부족으로 인해 장애인 개인이 스스로 수행할 수 없는 일상 활동을 보조하는 단순한 돌봄 서비스가 아니라, 그동안 제약받아 온 장애인 개인의 주관적인 선호를 분출하는 통로의 하나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복지서비스를 통해 각 개인의 주관적 선호를 충족하는 것이 개별유연화(personalisation)이다. 개별유연화는 정부가 일방적으로 규정해 놓은 복지서비스의 용도와 정의에 각 개인의 주관적 욕구를 가두는 것이 아니라, 각 개인의 선호와 욕구에 복지서비스의 내용, 범위, 용도를 최대한 유연화 시키는 것이다.

 

 이러한 복지서비스의 개별유연화는 유엔장애인권리협약 제3조(일반원칙)에 명시된 각 개인의 선택과 통제 그리고 자율성 원칙에 근거하는 것으로서, 영국, 미국, 캐나다, 프랑스, 독일 등의 세계 각국들에서 활동지원서비스 등의 돌봄 서비스의 개별유연화와 현금화를 통해 실현되고 있다.


 복지서비스의 개별유연화와 현금화는 신체장애인 뿐만 아니라, 발달장애인까지 포괄할 수 있는 것이다. 발달장애인의 자립지원의 핵심은 획일적인 복지서비스에서 벗어나서 당사자의 선호대로 서비스를 구매하여 이용하는 것이며, 이를 가장 빠르게 실현할 수 있는 것은 바우처의 유연화와 현금화이다.

 

 이러한 바우처의 유연화와 현금화는 2019년 3월부터 시행하고 있는 발달장애인 주간활동서비스에 그대로 녹아있다. 2019년 3월부터 실행되고 있는 발달장애인 주간활동서비스는 활동지원서비스와 똑같이 바우처 형태로 지급되지만, 여가, 문화, 대인관계, 자기계발 등에 필요한 영역에서 당사자가 원하는 곳에 가서 사용할 수 있도록 바우처의 용도 제한을 풀어서 시행하고 있다. 사실상 발달장애인 영역에서는 이미 바우처의 유연화와 유사 현금화가 시행되고 있는 상황에서 신체장애인의 활동지원서비스 바우처를 유연화 하지 않거나, 현금화하지 않는 것은 형평성에도 맞지 않으며, 오히려 신체장애인과 발달장애인을 구분하는 것으로서 ‘장애포괄(cross-disability)’ 원칙에도 어긋나는 것이다.  

 
 그러나 IMF로 인해 실업문제로 골머리를 썩어야 했던 노무현 정부는 사회서비스 분야에서의 일자리 확충을 대얀 중에 하나로 제시했고, 이 때부터 사실상 활동지원서비스가 고유하게 지향했던 개별유연화는 물 건너가기 시작했고, 사회적 돌봄(social care) 서비스로 전략하고 말았다.


 사회서비스 분야의 일자리 확충을 목적으로 제도화된 우리나라의 규격화되고 획일적인 활동지원제도는 장애인의 서비스 통제권과 주관적 욕구는 ‘부정(不正)’한 것으로 만들어버렸다. 다시 말해서 우리나라의 활동지원서비스 관련 정책은 서비스가 본래 지향했던 가치인 장애인의 통재 권한과 개별유연화는 온 간데없이 사라지고, 일자리 확충을 위한 도구가 되어 장애인을 수동적인 대상화하는 돌봄 서비스로 만들기 시작했다.

 

 활동지원서비스의 개별유연화는 정부가 일방적으로 규정한 활동지원서비스의 규정, 시간 할당 시스템 등에 얽매이는 것이 아니라, 서비스 자체를 장애인 개인 한 명이 한 명이 통제해야 한다는 개념이다. 따라서 활동지원서비스의 개별유연화는 부정수급의 논란, 서비스 시간 부족, 휴게시간 문제, 장애유형별에 따른 활동지원서비스 문제 등, 현재 활동지원제도를 둘러싸고 제기되는 다양한 이슈들을 포괄할 수 있다.

 

 오는 7월 1일부터 장애등급제 폐지를 앞두고 장애인들은 여러 가지 이유들로 인해 생존을 위협받는 두려움에 떨고 있다. 이를 관통하는 솔루션 키워드는 「장애유형과 개인별에 적합한 서비스의 유연화」이다. 이를 위해서 서비스 총량 확대와 함께 서비스 칸막이를 걷어내는 활동지원서비스의 유연화도 동시에 필요하다.
 이젠 더 이상 일방적이고 획일적인 서비스 기준과 칸막이는 다양화해지는 장애인 한 사람, 한 사람의 욕구와 선호를 충족해 줄 수 없다.

 

 서비스의 유연화 없이 총량이 아무리 늘더라도 장애인은 그 무언가에 의해, 그 누군가에 의해 여전히 사정되고 통제받아야 하는 대상이어야 하고, 그것에 조금이라도 어긋나는 것들은 모조리 ‘부정’이 된다. 비유를 하자면, 아무리 음식이 수 백가지, 수 천 가지로 늘어나도 내가 먹을 수 있는 음식과 먹는 시간, 먹는 방식까지 정부가 일방적으로 정해놓고 그것대로만 먹으라고 한다면, 음식이 수 백 가지, 수 천 가지로 늘어나도 그 음식을 먹는 것이 고역이 될 것이다.


 이제라도 늦지 않았다! 장애인을 옭아매는 칸막이들을 다 걷어내고 장애인 한 사람, 한 사람이 자신의 선호와 욕구대로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사람중심’의 새로운 활동지원제도 구축을 위한 여정을 당장 시작해야 한다. 서울지역장애인소비자연대와 서울장애인자립생활센터총연합회는 그 여정을 오늘로서 시작하는 바이다.

 

2019년  6월  19일
서울지역장애인소비자연대 서울시장애인자립생활센터총연합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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