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인다는 것, 그것은 생각보다 과대평가 되어 있다.”
“보인다는 것, 그것은 생각보다 과대평가 되어 있다.”
  • 김승근
  • 승인 2019.06.25 0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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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장애인들의 삶을 한번 떠올려보자. 안내견의 인도를 받아 걸어야한다거나, 노란 안내 선을 따라 흰 지팡이를 짚고 하나하나 확인해가면서 걸어가는 이들. 시각장애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조심스럽게 한 발, 한 발’을 걸어가는 이들일 것이다. 일상생활 속에서 부딪히는 아주 작은 턱이나, 집 주변의 골목, 도로에서는 주차되어있는 자동차라도 조심하며 사는 사람들로 인식하고 있다.

그런데, 내가 만난 ‘안디 홀처’라는 사람은 이러한 고정관념을 완전하게 뒤바꿨다, 처음에는 ‘미친 사람인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어마어마한 담력을 가진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선천성 색소성 망막염으로 인해 그는 이 세상이 어떤 색깔이고 어떤 모양인지를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사람이다. 그가 매일 올라간다는 암벽조차 그는 어떤 모습인지 본 적은 없다. 머리 위 하늘의 색깔이 하늘색이라는 것을 그는 책으로만 읽어 알고 있을 뿐, 실제로 본 적은 없다.

그런데, 그의 부모는 어려서부터 맹인학교가 아닌 일반 학교로 진학시켰고, 그를 처음 보는 사람은 그가 시각장애를 가졌다는 것을 알아챌 수조차 없을 정도로 무난하게 어울리며 훌륭하게 학교생활을 마쳤다. 그리고 학교에서 경험했던 여러 활동을 통해 스케이트, 크로스컨트리 스키, 자전거 등을 접했다. 나아가 그는 평평한 산책로를 걸어가는 것이 아니라 깎아질 듯한 날카로운 암벽을 올라가는 것을 좋아한다. 두 눈이 잘 보이는 비장애인들에게도 목숨을 걸만한 스포츠로 꼽히는 암벽등반이나 산악스키, ‘세븐서밋(seven summit - 7대륙 최고봉)’을 등반하는 것 등을 취미생활로 하고 있다.

그가 하나씩 정복해 올라가고 있는 ‘세븐 서밋’은, 일곱 대륙에서 최고봉이라 일컬어지는 산을 등반하는 말이다. 아시아의 에베레스트(8,848m), 유럽의 엘브루스(5,642m), 북미의 매킨리(6,194m), 남미의 아콩카구아(6,962m), 아프리카의 킬리만자로(5,895m), 남극의 빈슨(4,897m), 오세아니아의 카르스텐츠(4,884m)을 지칭한다. 그 중에서 안디 홀처가 아직 정복하지 못한 산은 에베레스트, 단 하나뿐이다.

“이날은 험난한 하루가 될지도 모른다는 느낌이 들었다. 바위가 침식되었거나 기상상황 때문에 바위가 부서지기 쉬운 상태가 되었을 때처럼 유황 냄새가 났다. 바위 깊숙이 패인 곳까지 스며든 미끄러운 물, 얼룩은 일종의 경고 신호와 같았다.”

시각장애인에 대한 일반인들의 편견, 늘 안전한 땅만을 밟고 살아야 한다는 말을 무색하게 만든다. 그는 산을 올라가는 데 필요한 것은 시각이 아닌 청각, 후각, 촉각, 미각이라고 한다. 그러면서 ‘시각은 과대평가되어 있다’라고 말한다. 손을 뻗어 손끝으로 느껴지는 암벽의 질감, 냄새를 통해 그 암벽의 단단함을 확인하고 몸을 지탱해줄 수 있을지를 판단한다. 청각으로 바람을 느끼고, 그 바람이 암벽에 부딪혀 꺾어지는 것을 보면서 그는 ‘내가 어디 쯤, 어떤 모양의 암벽을 올라가고 있는지를 확인한다’고 말한다. 그의 말처럼 그렇게 하나하나 떠올려보았다.

‘정말? 암벽을 올라가는 데 눈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큰 의미가 없을까?’

그의 말을 생각해보면서 손을 뻗어보았다. 암벽을 올라가며 손에 잡힐만한 돌을 바라보다가 손에 잡힐만한 돌을 보며 ‘저 돌이 안전할까?’라며 생각해본다. 역시 판단하기 어려웠다. 그의 말이 맞았다. 눈으로만 본다고 해서 저 돌이 내 몸을 지탱해줄 것이라고 확신할 수 없었다. 즉, 시각 장애인이라고 더 위험한 것은 아니었다.

저 먼 곳의 암벽 정상까지 다 보인다고 해도, 지금 당장 내가 손을 뻗어 만질 수 있는 곳은 내 손에 닿는 겨우 몇 미터 남짓의 공간이다. 보인다고 해서 열 발자국을 한 번에 올라갈 수도 없다. 보이는 이들이나 보이지 않는 이들이나, 똑같이 한 발자국, 한 손씩 올라가야 한다.

“모두들, 계곡에서도 이 암벽이 보이잖아요. 저는 손으로 직접 암벽의 마지막 50센티미터라도 만져 보고 싶었어요. 그렇게 하면 나머지 1399.5 미터가 어떤 모습인지 추측할 수 있단 말이에요.”

그래도 나는 내가 좋다(저자 안디 홀처/역자 여인혜/원제 Balanceakt : Blind auf die Gipfel der Welt)
그래도 나는 내가 좋다(저자 안디 홀처/역자 여인혜/원제 Balanceakt : Blind auf die Gipfel der Welt)

 

<그래도 나는 내가 좋다(저자 안디 홀처/역자 여인혜/원제 Balanceakt : Blind auf die Gipfel der Welt)>라는 이 책을 읽어나가며 마치 내가 그와 함께 산을 등반하는 사람이 된 것처럼 긴장하게 되는 순간들이 있다. 나의 편견처럼,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가 세븐서밋에 도전한다고 했을 때, 암벽 등반이나 산악 스키 등을 하겠다고 했을 때, 미치광이 취급을 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그런 사람들의 편견에 귀 기울이기보다는 스스로 암벽을 만져 보면서, ‘내가 한 발을 뗄 수 있는지’에 더욱 신경을 쓰고 있었다. 아마, 처음부터 산에 오를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하지는 못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다가 하나씩, 한 발자국씩 올라가기 시작했을 때, 그의 인생은 전혀 다른 자유로운 세상으로 바뀌고 있었던 거다.

눈이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못 할 것은 없다. 어디든 올라갈 수 있고, 무엇이든 할 수 있다. 삶도 마찬가지. 그는 스스로 이 모든 것을 증명해 보여주고 있었다.

그의 강인함은 놀랍다. 대부분 다른 사람들의 시선과 위험해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휩싸여 도전이라고는 생각조차 하기 힘들지 않겠는가, 이 모든 것을 이겨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안디 홀처’를 통해 자신의 한계는 뛰어넘으려고 결심하는 사람에게만 기회와 성공의 기쁨이 함께한다는 것을 새삼 느낀다. 겁내지 않기, 그리고 장애인이나 비장애인이나 누구에게나 한 발치씩 전진해야 한다는 평등. 이런 것들을 인정하고 도전하다 보면 우리의 삶이 더욱 행복해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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