값진 것을 보기 위해 잠시 눈을 감아보자
값진 것을 보기 위해 잠시 눈을 감아보자
  • 김승근
  • 승인 2019.06.29 03: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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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달팽이의 별/ Planet Of Snail , 2012/ 멜로·로맨스 다큐멘터리/ 감독 이승준/ 출연 조영찬, 김순호
“가장 참된 것을 듣기 위해 잠시 귀를 닫고 있는 거다. 가장 진실한 말을 하기 위해 잠시 침묵 속에서 기다리고 있는 거다.”

나는 성격이 급한 편이다. 급하기로 소문난 우리나라 사람들 중에서도 ‘성격이 급하다’는 말을 들을 정도다보니, 온라인 쇼핑몰의 당일배송마저도 주문하고 ‘언제 오는 거야?’라면서 배송조회를 수시로 눌러보곤 한다. 그래서 간혹 스스로 ‘좀 여유롭고 느긋하게 기다려야 해’ 라고 몇 번을 되 내여야, 그제서 겨우 다른 사람들만큼 여유를 기다리는 것을 할 수 있다.

물론 서두른다는 것이 나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서두르다보면 조급증을 불러일으킨다. 그리고 그 조급증은 정작, 중요하고도 꼭 지켜야할 부분을 놓쳐버리게 만든는 일이 많다. 빠르다는 것은 하나를 빨리 볼 수는 있어도 그 하나를 보러 가는 길에 있었던 많은 것을 보지 못하게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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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이 급한 내가, 두 사람을 만났다. 어느 날 영화제 출품작이라는 말에 이끌려, 그저 영화 제목에 끌려 본 영화에서였다. 리얼리티 다큐처럼 영찬씨와 순호씨 부부의 이야기였다. 순호씨는 척추장애를 가지고 태어나 남들보다 조금 작은 몸집을 가지고 있다. 영찬씨는 선천적으로 태어날 때부터 약한 시력과 청력을 가지고 있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청력이 늦게 소실되었기에 말을 할 수는 있었다. 그렇지만 아무것도 들을 수도, 볼 수도 없는 세상에 살고 있다. 그리고 그런 두 사람이 어느 날, 우연히 운명처럼, 서로의 입이 되어주고 손이 되어주고 눈이 되어주기 만난 것이다.

달팽이의 별 스틸 컷 / 제24회 암스테르담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IDFA) 장편부문 대상
달팽이의 별 스틸 컷 / 제24회 암스테르담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IDFA) 장편부문 대상

두 사람의 삶은 아주 느리게 흘러갔다. 어느 날, 영찬씨와 순호씨의 집 안방 형광등이 깜박거리면서 수명이 다해간다는 신호를 보내기 시작했다. 순호씨는 형광등을 이리저리 살펴보다가 침대 위에 올라서도 보고, 의자를 가져올까도 생각해본다. 하지만 순호씨의 작은 키로는 형광등의 상태를 살펴보는 것도 쉽지 않았다. 그래서 이내 영찬씨에게 도움을 청한다.

두 사람은 높은 형광등을 보기 위해 목말을 타보기도 하고, 키가 큰 영찬씨가 침대 위에 올라가 형광등을 이리저리 만져보기도 한다. 어떻게 생겼는지, 고리가 어느 곳에 있는지, 어떻게 빼야 하는지 모두 손끝으로 확인해볼 수밖에 없다. 그렇게 아주 한참의 시간이 흐른 뒤에야 영찬씨는 형광등의 구조를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아주 천천히, 조심스럽게 형광등을 빼내고 새 것으로 갈아 끼우는 일을 한다. 순호씨는 그런 영찬씨를 아래에서 바라보며 기다린다.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사람과는 어떻게 소통해야 하는 걸까? 처음에는 두 사람이 함께 살아가며 어떻게 대화하는지, 그것이 가장 의문스러웠다. 그리고 이내 그 답을 찾을 수 있었다. 그것은 점화였다.

순호씨가 영찬씨의 손 위로 자신의 손을 포개고, 손가락을 톡톡 치면서 말을 전달하고 있었다. 들을 수 없고, 볼 수 없기에, 수화나 다른 방법보다 촉감으로 서로의 말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나는 하나씩 한번씩, 손등을 만지고 움직이는 그들의 손짓에 점점 집중하기 시작했다. 어느 순간, 내가 하고 있는 의사소통 방식인 말이나 눈빛보다도 저 손가락 하나가 더 의미 있게 느껴졌다.

말로, 눈으로, 손으로, 모든 오감을 이용해 대화하는 나의 삶이 더 낫다고 말할 수 없을 만큼, 그 손짓은 진심이 있었고 차분했고 너무나 다정한 모습이었다. 나와는 전혀 다른, 아주 느리게 사는 이들의 삶. 그 진정한 의미를 아는 두 사람의 이야기, ‘달팽이만큼 느리게 산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나는 오랜만에 무엇도 하지 않고 그저 영화를 보는 일에만 집중해보았다.

“내가 태어나서 한 번도 별을 본 적이 없지만, 한 번도 별이 있다는 것을 의심한 적이 없었다. 밤에도 태양은 우리 발 아래쪽에서 불을 뿜고 있다는 것을 안다.”

달팽이는 시각과 청각이 퇴화된 동물이다. 어릴 적, 학교에서 ‘달팽이 키우기’라는 관찰 실험을 한 적이 있다. 상추를 먹으면 초록색 똥을 싸고, 당근을 주면 주황색 똥을 싸는 달팽이가 너무 신기했다. 달팽이는 너무 느리게 움직였다. 한 시간을 보고 있어도 그 달팽이는 작은 수조의 왼쪽에서 오른쪽 끝까지도 가지 못했다. 그런데도 우리는 모두 그 작은 달팽이 수조를 한참을 보며 달팽이가 지나간 길마다 만들어지던 하얀 길을 쳐다보곤 했다.

우리가 보기엔 달팽이는 너무 느리게 지나간다. 하지만 달팽이의 입장에서는 우리를 보고 ‘왜 저렇게 빨리 걷지?’라고 이상하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빨리 걷는다고 모두 바른 방향이라고 말할수 있을까? 그것도 아인데 왜 그렇게 빨리 걸어가는 데 목숨을 거는 사람들이 이처럼 살아가고 있는 걸까?

영찬씨와 순호씨는 누구보다 당당하게 서로를 사랑하며, 자신만의 속도로 살아가고 있다. 마치 내가 이전에 보았던 달팽이처럼 말이다. 이들은 서로 함께 있으면 편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가끔 지팡이를 들고 혼자 길을 나서기도 한다. 서로의 팔에 기대어 살기도 하고, 또 혼자 사는 연습하기도 한다. 학교를 다니고, 점자로 글을 써서 수기 공모전에 도전하기도 한다.

영찬씨가 수기공모전에 출품했었다고 하는 글들은 그저 하는 말이 아닌, 정말 순수하고 마음이 담긴 글 같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그저 ‘지체 장애를 가진 여자’와 ‘시각, 청각 장애를 가진 남자’가 서로 부부가 되어 사는 평범한 이야기라고 생각될 수도 있겠지만, 나는 그렇게 느껴지지 않았다. 영찬씨가 순호씨와 함께 지내면서 얼마나 자신의 삶을 사랑하고 있는지, 순호씨와 깊이 사랑하고 있는지를 느낄 수 있었다.

무엇보다 자신의 삶을 달팽이에 비유하는 말들이 자신의 삶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여유가 느껴졌다. 그래서일까? 이들의 삶을 바라보면서 어느새 내 자신은 몹시 부끄러워졌다.

어린 왕자에 이런 글귀가 있다.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말. 우리가 단지 속도에 집중하고 겉으로 보이는 것에 현혹되고 남들이 하는 ‘옳다’는 것에 휘둘리는 동안, 그 두 사람은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 세상에서 자신들만의 삶을 사랑하며 살아가고 있다.

그 삶을 보며 나의 삶을 돌아보고, 또 내 말의 속도나 내 발걸음의 속도, 모든 것을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져본다. 빠른 결과, 빠른 답을 원하는 우리들. 가끔은 아주 천천히 걸어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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