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파벳은 B.L.A.C.K로 시작한다”
“알파벳은 B.L.A.C.K로 시작한다”
  • 김승근
  • 승인 2019.07.05 0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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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블랙 … “검은 세상에 갇힌다는 것은 어떤 느낌일까?”
블랙 Black/ 드라마 : 인도  124분/감독 : 산제이 릴라 반살리/ 출연 : 라니 무케르지(미셀 맥날리), 아미타브 밧찬(데브라이 사하이)
▲블랙 Black/ 드라마 : 인도 124분/감독 : 산제이 릴라 반살리/ 출연 : 라니 무케르지(미셀 맥날리), 아미타브 밧찬(데브라이 사하이)

대부분의 사람들은 알파벳을 배울 때에는 일반적으로 A.B.C. 순으로 배운다. 하지만 오늘 이야기 할 영화 ‘블랙(Black)’ 속 주인공 미셸에게는 B.L.A.C.K의 순서로 시작됐다.

그녀에게 ‘검정색’의 의미는, 태어나서 유일하게 알고 느꼈던 세상의 모든 것이기 때문이다. 보이지도 않고 들리지도 않으며 듣지도 못하기에 말조차 할 수 없는 자신만의 ‘검은 곳’에 갇혀 버린 거다. 그런 그녀를 이 세상과 만나게 해주고, 세상에는 검정색 말고도 수많은 색깔과 아름다운 것이 있다는 것을 알려 주었던 그녀의 인생 스승인 데브라이 사하이.

이 낯선 인도영화는 설리반 선생님과 헬렌 켈러의 감동적인 이야기를 다시 풀어낸 이야기이다. ‘검정’. 그 어떤 색이라도 검정색이 닿으면 오로지 검정색만 나온다. 다른 색을 섞어 넣었다는 것조차 알 수 없을 만큼 모든 것을 집어삼키는 듯 한 색깔이 바로 검정색이다. 하지만 이 영화 속에서 검정은 그런 암흑 같은 두려운 색이면서도 동시에 희망과 특별함을 뜻하는 색이기도 하다.

“검은 세상에 갇힌다는 것은 어떤 느낌일까?”

언젠가, 예전에 정전되었던 순간을 떠올려보았다. 갑자기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사람들의 움직임 소리와 밖에서 들리는 웅성웅성 소리, 차가 지나다니는 소리들. 그때 문득, ‘세상에 이렇게 많은 소리가 있었나?’라며 놀라면서도 귀를 기울이던 그때 그 모습. 그나마 소리를 들을 수 있고, 이것이 잠시 지나가는 정전 때문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보이지 않는 ‘검정 세상’은 너무나 공포스러웠다. 손을 뻗어 무언가를 만지려고 하는 것도 두려움이 앞서곤 했다. 내가 내민 손끝에 나를 다치게 할 무언가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사실, 집 안에 있어봐야 무엇이 그렇게 위험했겠는가. 내가 알고, 내내 써왔던 것일 테고 내가 생활했던 공간에 빛만이 사려졌을 뿐인데도 마치 모든 것이 사라진 것 같은 기분이 들었었다. 미셸은 그런 세상을 태어나서 줄곧 보아왔던 소녀이다. 더군다나 그녀에게는 소리를 들었던 날조차 없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 세상, 나 이외에 모든 것이 나를 이끌고 가는 듯 그런 공포감.

이 영화는 그런 공포감에 휩싸인 듯한 미셀이 등장한다. 모든 사람들을 거부하면서 마치 짐승처럼 울부짖는 그녀, 그러나 그녀의 부모와 가족들은 그녀를 이해하지 못했다. 아니 이해하려 하지 않고 오히려 통제하려 한다. 다른 사람들 눈에 보이지 않게 그녀를 가두고 있었다. 그런 그녀 앞에 우연히 사하이라는 스승이 나타났다. 그녀에게 유일하게 애정을 쏟는 존재, 그런 특별한 사람이 등장하기 시작한 거다.

그리고 사하이는 이제껏 아무도 하지 않았던 일을 시작했다. 그것은 미셸이 세상을 만나게 해주는 일이었다.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한 설리번 선생과 헬렌 켈러의 이야기, 하지만 이 이야기는 단순히 ‘훌륭한 스승님의 가르침으로 제자가 삶을 찾아가는 것’으로 마무리되는 것이 아니다.

세월이 흐르면서 두 사람은 사이의 관계는 보호자의 역할이 바뀌게 된다. ‘스승의 스승’, 그리고 ‘제자의 제자’가 되면서 그들은 서로의 구원자이자 스승이 되는 모습이 그려진다.

“불가능이란 제가 유일하게 가르치지 않은 단어죠.”

영화의 큰 줄거리는 사제지간의 아름다운 감정과, 세상과 소통하는 미셸의 감동 스토리에 있다. 미셸의 스승이었던 사하이가 알츠하이머에 걸리게 되면서 반전이 시작된다. 미셸은 자신을 기억하지 못하는 스승에게 돌아와 스승에게 가르치는 이야기다.

과거를 기억할 수 없는 사하이에게 ‘워터’라는 단어는 이 두 사람의 재회를 이끌어 내는 단어가 된다. 그 한마디로 서로를 기억하고 마음을 전달하는 장면에서는 가슴 속 깊은 감동이 물밀 듯 솟구치는 장면이 연출된다. 그리고 그 장면은 많은 관객들에게 인상적인 명장면으로 남게 된다.

반면, 이 영화는 우리에게 또 다른 시사점을 가져다준다. 그것은 ‘장애’라는 것이다. 영화 속 미셸의 가족들은 처음부터 그녀를 숨기고, 감추며 다른 이들에게 보이지 않기 위해 가둔다. 그녀를 감추려는 그녀의 아버지는 너무나 냉정하고 잔혹해 보였다. 장애를 마치, 습하고 그늘 같은 것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가족의 시선조차도 저렇게 냉정하다니 정말 놀랍다.

그런데, 어쩌면 이것이 현실을 그대로 투영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장애를 가지고 있다면 오히려 적극적으로 희망을 안고 긍정으로 살아가야 한다고 말하는 건 말로만 존재하는 건 아닐까?
어쩌면, 이 영화감독은 이런 우리의 모습을 고발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장애라는 것 때문에 고통 받는 것 뿐 아니라, 주변의 시선이 더 많은 상처와 아픔을 준다는 것이 시리도록 슬프게 느껴진다.

영화 속에는 장애를 가진 미셸의 가족들 모습이 하나하나 섬세하게 그려져 있다. 장애가 있는 언니 미셸 때문에 자격지심과 소외감을 가지고 있던 동생. 그런가하면 자식의 장애를 어떻게 치료해야 할지 모르고, 인정하는 것조차 고통스러워하는 부모의 모습.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하는 딸을 포기하지 못하고 사하이 선생을 찾아가는 어머니의 모습도 있다.

검은 세상에서 따뜻함을 찾아내준 두 사람의 이야기에 깊은 감동을 느끼면서도, 장애인의 시각으로 바라보는 세상을 생각해 보게 된다. 나아가, 장애인을 보살피는 가족들이 공감할 부분과, 이 사회가 장애인들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를 생각해 보는 시간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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