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등급제 폐지와 민관 협력 방안
장애등급제 폐지와 민관 협력 방안
  • 이민규 원장
  • 승인 2019.07.16 14:07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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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작구립장애인보호작업장 이민규 원장

■ 장애등급제 폐지의 의미

31년간 장애인의 ‘낙인’과 ‘차별’로 여겨져 왔던 장애등급제가 폐지되었다. 엄밀히 말해 장애인등록제가 그대로 유지되는 상황에서 장애등급제 개편 정도로 바라 볼 수도 있겠고, ‘단계적’이란 꼬리표와 부족한 예산 반영으로 비판의 목소리가 크게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향후 장애인복지 현장과 장애인들의 삶에 혁신적인 변화가 나타날 것이라는 기대감에 방점을 두고 싶다. 이러한 기대감의 근거는 장애등급제 폐지는 단순히 등급을 부여하지 않거나 등급의 대안으로 다른 표현으로 대체한다는 정도가 아니라 장애인복지 정책의 근본적인 변화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또한 그동안 장애등급제로부터 파생된 여러 문제들이 장애인복지 정책과 현장, 그리고 장애인들의 삶으로까지 연계 확장되어 왔기 때문에 장애인복지의 새판을 짠다면 그 첫출발은 당연히 장애등급제 폐지로부터 시작해야 한다는데 반대 의견을 낼 사람들은 극히 드물 것이다.

기존의 장애등급제가 가지고 있었던 여러 문제점들을 살펴보면 ①장애가 있는 사람을 ‘의료적 평가’ 기준으로만 평가한다는 점 ②이러한 의료적 기준의 평가 결과로 동일 등급이면 동일 서비스를 거의 일률적으로 제공한 다는 점 ③기존의 지원 체계 내에서 관의 역할은 장애등급 신청과 판정업무 정도에만 국한되어 있어 소극적인 행정 업무만을 수행하였다는 점 ④이로 인해 서비스 지원 체계 내에서 서비스 지원의 주체인 장애인-민-관이 분절되고 단절되어 지원 체계 내에서 서로 함께 협력하지 못했다는 점 ⑤서비스 지원 과정에 장애인들의 참여가 제한되고 그들의 필요와 욕구에 맞는 적절한 지원이 이루어지지 못했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말해, 지금까지는 장애인의 욕구와 필요에 의한 서비스 지원이 결정된 것이 아니라 등급이 장애인들의 지원을 결정해 왔다고 할 수 있으며, 정부가 등급에 의한 지원으로 예산편성과 운영의 행정 편리성을 누리고 있는 사이 서비스 지원 결정 과정에 장애인들의 참여와 결정권은 점점 더 줄어들었다는 비판도 가능하다.

물론 정부가 발표한 단계적 장애등급제 폐지안이 위에서 언급한 문제들을 일소에 해결하기에는 상당한 부분에서 부족해 보이지만, 서비스 지원 주체들이 장애등급제 폐지의 취지를 살리기 위해 함께 노력한다는 것을 전제로, 장애인중심의 지원서비스는 개별 장애인의 욕구에서부터 시작한다는 장애인복지실천 의 핵심 가치를 실현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는 면에서 큰 의미가 있어 보인다.

최근 이승기 박사는 장애등급제 폐지의 의미에 대해 맞춤형 서비스 지원으로 정부의 역할 및 책무성이 강화될 것이고, 이를 위해 공공과 민간, 민간과 장애인, 공공과 장애인, 이 세 주체 간에 존재했던 단절을 극복하고, 이 과정에서 장애인이 더욱 주도적이고 적극적인 역할을 수행해 나가는 것이라고 한다.

■ 장애인 맞춤형 전달 체계

정부의 등급제 폐지안은 크게 두 가지로 정리된다.

① 장애등급제를 폐지 및 서비스 지원 종합조사를 도입하여 개인별 서비스 필요도 확인

② 확인된 서비스 필요도에 따른 맞춤형 지원서비스와 전달체계 구축: 찾아가는 상담 강화와 민관협력을 통한 사례관리 실시

이 두 가지의 안은 각각 별도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필요충분조건의 관계로 존재한다. 즉, ①의 서비스 지원 종합조사 단계에서 기존의 의학적(기능적) 영역의 배점을 낮추는 대신 사회·환경적 영역의 배점을 높이고, 민간의 서비스 지원영역의 필요도도 확인할 수 있을 때 ②의 장애인 중심의 맞춤형 지원 서비스와 전달체계가 구축되고, 체계 내에서 장애인-민-관이 상호 협력적인 관계로 작용하게 되는 것이다.

발표된 정부의 안에서 우려되는 점을 살펴보면

첫째, 활동지원등 4개 영역에서 적용되는 종합서비스 조사표에서 기능제한 영역의 ADL과 IADL의 문항수가 기존의 활동지원 인정조사표 15(62.5%)개에서 21(72.4%)개로 높아 졌다라는 점

둘째, 별도의 장애인복지 지원 체계가 아닌 지역사회보장협의체나 희망복지지원단 등의 기존의 전달체계를 활용한 탄력적 운영으로 정부가 기대하는 맞춤형 지원 사업과 복지사각지대 대상자를 발굴할 수 있을까? 라는 점

셋째, 이 모든 서비스 지원 과정에 장애인들의 참여가 보장 될 수 있을까?라는 점이다.

그러나 정부가 이미 단계적 폐지(이동지원분야 ‘20년, 소득고용지원 분야 ’22년)를 발표한 상황에, 우리가 기대하는 장애등급제 폐지의 완성은 당장은 기대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이지만, 이 시대 장애인복지 현장의 실천가들은 다소 시간이 걸리더라도 서비스 지원의 한 주체로서 제도 개선에 관여하고 준비하여 완성도 높은 정책으로 거듭나게 해야 한다는 시대적 사명감을 가지고, 장애등급 폐지의 한축을 이끌어 나가야 할 것이다.

■ 주체간 협력을 위한 제언

정부의 발표안에 따르면 민과 관의 협력이 강조되는 지점은 읍면동 단위의 초기 상담시 의사소통이 어렵거나 거동이 불편한 장애인을 위해 전문 인력과 동행하여 상담을 지원하는 찾아가는 상담(동행상담)과 장애인 전담 민관 협의체 구성과 운영으로 보인다.

서비스 지원 조사가 정부의 발표대로 장애인의 욕구와 환경을 고려한 서비스 지원 조사가 이루어진다는 전제 하에, 공고한 민관 협력 체계를 위하여 다음과 같이 제언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민은 언제든 관과 협력할 준비가 되어있다. 문제는 정부가 발표한 맞춤형지원서비스를 실현하기 위한 충분하고 현실적인 예산을 확보하는 진정성있는 자세를 보이는 것이 민관 협력의 최우선 전제 조건이다.

둘째, 기존의 민관협의체 즉, 지역사회보장협의체나 희망복지지원단등을 활용하여 운영하는 경우에는 각 협의체마다 명확한 역할 정립이 필요하고, 지역사회내의 장애인 당사자와 장애인 관련 민간단체와 실천 현장의 실천가들의 민간 위원 추가 위촉이 필요하다.

셋째, 진정성 있는 정책이 수행으로 민과 관이 상호 신뢰하고 협력하는 대등한 관계로 민관 파트너쉽 구축이 필요하다.

넷째, 우수한 민간 전문가들이 공공영역으로 진입할 수 있는 정부의 인력 개방 정책이 필요하다. 미국 뉴햄프셔주의 사례를 보면 대형거주시설에서 생활하던 장애인들의 탈시설 과정에서 훈련된 민간 전문가들 다수가 지역의 관련 업무를 수행하는 주정부기관에 공무원으로 재취업함으로써 지역 장애인들의 탈시설 정책과 지역사회자립지원을 위한 큰 시너지가 발생한 사례도 있다.

직업재활현장의 실천가로서 급변하는 직업재활환경과 맞물려서 소득고용지원안이 2022년으로 미뤄진 상황에 대해 아쉬움이 크지만 정부의 안이 나오기까지는 지속적으로 실천가들의 연대를 통해 이슈를 주도해야 할 것이다.

또한 장애등급제 폐지로 인한 맞춤형 서비스 지원 체계가 단순히 사례관리나 복지사각지대 대상자 발굴에만 머물면 안 될 것이며, 개인예산제등의 장애인복지 자원이 정부 중심에서 장애인 중심으로 옮겨가는 시발점이 되어야 한다. 서비스 지원의 선택과 통제를 정부가 아닌 장애인과 실천 현장의 자기주도지원기관이 맡아, 개별 장애인들의 필요와 욕구에 맞게 통합적이고 유연한 서비스 지원이 이루어진다면, 장애인들도 비장애인들과 동등하게 지역사회에 참여하며 주인 된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장애등급제 폐지의 지향점은 단지 제도적 변화가 아니라 장애인들의 삶의 변화에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이민규 원장 / 동작구립장애인보호작업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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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금 2019-07-26 09:47:51
장애인 등급제 폐지가 도움이 필요한곳에 꼭 필요한 새로운 제도로 자리잡기를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