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 아니어도 마음 나누고 대화할 수 있어
소리 아니어도 마음 나누고 대화할 수 있어
  • 김승근
  • 승인 2019.08.03 14:20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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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그녀를 처음 봤을 때 그녀는 물새처럼 뛰어 다녔고 나는 물새를 사랑하기 시작했다.“
[영화] 청설…소통, 대화의 방법이라는 편견 안에 갇혀있었던 것
▲영화 청설의 스틸 컷

어느 날, 카페에 앉아 노트북을 켜 놓고 시원한 에어컨 바람을 쐬면서 일을 보고 있었다. 그러다가 문득 고개를 들어보니 맞은편에 앉아 있는 사람들이 수화로 대화를 하고 있었다. 내 시선은 그들에게 향했고 알 수 없는 그들의 손짓에 잠시 시선이 고정됐다. 어떤 이유에서든 나는 그들의 대화를 엿듣는 모양새가 됐다. 그러면서 문득 ‘저 사람은 듣지 못하는 걸까? 말하지 못하는 걸까?’에 대해 궁금했다. 그래야 내가 혹여 실수를 하거나 배려하지 못하는 상황을 벌어지지 않기 위해서 말이다.

청각장애와 언어장애를 가진 사람을 일상에서 언제나 마주칠지 모른다. 막상 그렇게 수화를 하는 사람을 마주칠 때면 어찌해야 할지 당황스러워진다. 생각보다 많은 이들이 이런 고민을 할지도 모른다. 그러다보면 그들이 도움을 청해도 머쓱해져서 자리를 피하고 마는 상황이 발생된다. 내가 그들을 무시해서가 아니라 어떻게 도와야 할지 몰라서이다. 그런데 혹여 그들은, 자리를 피하는 내 모습에 상처를 받을지도 모른다. 그러고 보면 함께 살아가는 사람이라는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해야 하는 사회적 여건이 조성되지 않아서 일지도 모른다. 이런 오해가 소외계층을 만들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익숙하지 않다는 것이 가장 큰 원인인 것 같다.

이런 생각을 할쯤. 문득, 영화 청설(聽說, Hear Me, 2009)을 만났다. 첫 시작에서 남녀 주인공이 수화를 하며 대화하는 모습이 나왔다. 앞서 언급한 그 일이 떠오르는 것이 아닌가?

좀 더 영화 이야기를 해보자.

장애인올림픽을 준비하는 선수들이 연습하는 수영장에 갔고, 그 곳에서 수화로 다른 사람들과 대화하는 사람이 나왔다.

‘아, 저 사람은 수화로 듣거나 말하는 사람이구나.’

이렇게 생각하면서 청각장애인이라고 오해하고 수화로 말을 걸기 시작한 남자, 그리고 자신을 보자마자 수화로 말을 거는 남자를 보고 ‘이 남자도 우리 언니처럼 수화로 대화해야 하는 사람이구나’라고 생각한 여자, 두 남녀의 상황이 예전에 내가 수화를 하는 사람을 마주쳤을 때 했던 생각과 비슷했기 때문이었다.

누구에게나 충분히 벌어질 수 있는 이야기, 이 영화를 보며 청각장애나 언어장애를 가지고 있는 이들을 대할 때, 수화라는 것을 실제 보게 되었을 때 나의 모습을 다시 떠올려보게 되었다. 말로는 늘 그들을 이해하고, 그들이 별반 다를 없는 사람이라고 말하곤 했다. 하지만 정말 아무런 편견이나 장벽 없이 다가가 말을 걸고, 함께 즐겁게 지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있는 걸까?

혹은 가족이나 연인, 친구처럼 친밀한 관계를 가지는 데 아무런 불편함이 없다고 생각하고 있는 걸까?

“소리가 아니어도 우리는 충분히 마음을 나누고 대화할 수 있다.”

이 영화는 청각장애인에 관한 영화라고 하지만 그와 동시에 청각 장애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기도 하다. 주인공 양양과 티엔커는 서로를 처음 볼 때부터 청각 장애가 있어 수화를 한다고 오해했고 그래서 자신이 사랑하게 된 연인이 청각장애를 가지고 있으니 ‘어떻게 해야 하지?’라는 생각에 빠진다. 그리고 상대방과 마음을 나누고 대화하기 위해 수화를 더 공부하고, 더 청각장애인과의 관계에서 주의해야 할 게 무엇인지를 고민한다.

두 사람은 사실 청각장애를 가지고 있지 않은 비장애인이지만 그렇게 시작된 오해 덕분에 영화가 흘러가는 내내 수화로 대화하며 연애를 이어간다. 그래서 비장애인 두 남녀의 사랑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청각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사랑 이야기를 보는 것 같은 상황을 느끼게 만드는 것이다.

두 사람은 수화를 통해 대화를 이어간다. 소리와 손, 생각을 나누는 도구는 각자 다르다고 생각하지만 수화를 통해 서로 이야기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기에 두 사람에게 장애는 아무런 장벽이 되지 못한다. 아니 오히려 나는 음성으로 말할 수 있지만 수화를 통해 대화를 하는 내내 상대방에 대한 배려의 마음이 담겨져 있으니 더욱 만남의 시간을 소중하게 여길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런 두 사람의 주변에서 일어나는 여러 에피소드와, 주변 인물들과의 대화를 통해 나는 청각장애인과 함께 살아간다는 것에 대해 사람들이 가질 수 있는 다양한 생각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다.

아들이 만난다는 여자가 청각장애를 가지고 있다는 말을 듣고 스케치북에 하고 싶은 말을 적어서 보여주려는 티엔커의 부모님. 그들이 나올 때는 그렇게 편견 없이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을 다해 대화하려는 모습이 너무나 따뜻하다는 생각을 가지게 만들었다.

그런가하면 양양의 언니이자 진짜 청각장애를 가진 샤오펑. 그녀가 자신의 장애를 딛고 올림픽에 수영 국가대표로 출전해 금메달을 목표로 훈련하는 모습을 보며 청각장애를 가지고 있다 해도 그 꿈의 간절함과 순수함이 들리지 않는 것은 아님을 느낄 수 있기도 했다. 그리고 그런 언니의 꿈을 응원하며 열심히 일해서 돈을 모아야겠다고 생각하는 양양의 모습에서 장애인 가족을 둔 이들이 어떤 마음가짐으로 살아가고 있는지 그들의 마음을 조금은 헤아려보기도 했다.

들리지 않는 언니를 내가 보호해줘야 한다는 마음,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귀가 들리지 않으니 내가 좀 더 배려하고 사랑해야 한다는 마음, 이렇게 온통 따뜻한 마음으로 가득한 영화가 있었을까? 그렇게 이 영화 안에는 청각 장애를 가진 사람보다는 가지지 않은 사람이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온통 청각 장애를 가지고 살아간다는 것, 그 사람의 곁에서 함께 살아간다는 것에 대해 생각해봄직한 이야기들로 가득 차 있었다.

그리고 이 따뜻한 이야기를 보며 나 자신이 청각장애인에 대해 가졌던 생각과 태도가 어떠했는지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았다. 수화를 하는 모습을 보는 순간, 그 사람이 듣거나 말할 수 없다는 것을 아는 순간, 나는 왜 우리가 절대 대화할 수 없는 사이처럼 생각했던 것일까?

소리로 전달되는 것만이 소통, 대화의 방법이라는 편견 안에 갇혀있었던 것은 오히려 나였다. 소리가 들리지 않아도, 주변에 침묵만이 가득 차 있는 듯해도 우리는 충분히 마음으로 대화하고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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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회 2019-08-09 09:30:42
수어로 대화하는 그들의 모습 마음이 찡하네요.

김*보 2019-08-05 14:55:42
수어로 세상을 바라보고. 수어로 소통하는 그들의 삶속에 언제나 좋은 일만 가득하길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