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을 만진다는 것”
“빛을 만진다는 것”
  • 김승근
  • 승인 2019.08.13 02:42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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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나, 그 어떤 것이 눈앞에 놓인다 해도 결국 그것을 이겨내고 더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것은 자신의 의지이다

빛을 만진다는 것. 나는 이 문장에 대해 한참을 생각해보았다. 
‘빛을 만지다’. 어쩌면 굉장히 이상한 말이지 않은가. 빛은 보이지 않고 만질 수 없는 투명하고 밝은 것이다. 물론, 빛이 투명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인간의 시각 범위 내에 태양빛이 그렇게 보이는 것일 뿐, 사실 빛은 일곱 가지가 넘는 여러 가지 색깔로 이뤄져 있다는 것을 우리는 어릴 적 학교 수업시간을 통해 이미 배웠었다. 

하지만 그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으레 빛은 한 가지 투명한 색이라고 생각하고 살아간다. 그저 우리 눈에 그렇게 비춰진다는 것을 이유로 말이다. 하지만 빛은 투명하되 여러 가지 색이며, 동시에 누군가에게는 늘 검정색이기도 하다. 투명하기에 만질 수 없다고 생각하며, 늘 우리를 감싸고 있기에 존재한다는 것을 잊어버리곤 한다. 

그런데 누군가에게 빛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전혀 다른 존재일 수 있다. 바로 이 영화<터치 오브 라이트(장영치 감독)>의 주인공 유시앙처럼 시각장애를 가진 이들에게 빛은 검정색일 수도, 투명하지 않은 하얀 색일 수도 있다. 

혹은 만질 수 있고 만지고 싶은, 분명히 어둠과 구분되는 공간일 수도 있다. 

‘빛을 만지다’. 시각장애를 가지고 있지만 피아노를 치고, 피아노 음이 흐르는 길을 따라 빛을 만지듯 살아가고 있는 유시앙, 그리고 그가 세상과 소통하는 가장 큰 통로이자 만질 수 있는 빛이었기에, 이 영화는 그렇게 빛을 보고 만지는 따뜻한 두 사람의 꿈에 관한 이야기이다. 

 

“춤을 춘다는 건 어떤 거예요?”
“심장이 더 빨리 뛰고, 그리고 살아있다고 느끼게 만들어요.” 

주인공 유시앙은 시각 장애를 선천적으로 안고 태어났다. 하지만 비상한 기억력과 음악적 감성을 가지고 있어 처음 듣는 곡이라 할지라도 똑같이 연주할 줄 아는 탁월한 재능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주변 친구들과 사람들은 그런 유시앙을 그저 앞이 보이지 않아 그나마 피아노를 치는 불쌍한 학생으로 바라보고, 엄마는 그런 유시앙을 유독 보호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늘 함께 다니며 보살펴주신다. 

그저 피아노를 칠 수 있다는 것에 행복해하던 어린 유시앙. 그의 꿈을 짓밟은 것은 “넌 앞을 볼 수 없어서 상을 받은 거야”라고 열심히 노력해 받은 파아노 콩쿨 시상식장에서 친구가 말했던 한 마디였다. 

그런가하면 시앙이 만나게 될 ‘치에’는 무용수를 꿈꾸는 평범한 소녀이다. 무용에 대한 열정으로 누구보다 무용을 하고 싶어 한다. 하지만 부족한 경제적 사정으로 인해 음료 배달을 하며 자신 안의 열정을 억누르며 살아간다. 누구보다 인정받고 지지받고 싶었던 엄마는 치에의 꿈을 부정한다. 

믿었던 남자친구마저 치에의 꿈을 비웃기만 한다. 아무도 어루만져주고 인정해주지 않는 꿈을 안에 품고 살아가는 유시앙과 치에, 이 영화는 두 사람이 어떻게 만나고, 서로를 위로하고 더 높은 곳으로 발돋움하게 해주는 지에 대해 그려내고 있었다. 

가슴을 뛰게 만들고, 살아있음을 느끼게 만들어 주는 것, 그런 것이 있다고 나는 말할 수 있을까? 아마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에게 그런 것이 있다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유시앙과 치에, 두 사람은 그런 것을 가지고 있음에도 가지고 싶다고 말할 수 없다. 

그 이유는 자신이 처한 현실이 그런 꿈을 꾸면 안 된다고 말하는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꿈을 꾸는 데 자격은 필요 없으나 그것을 알면서도 현실의 벽과 사람들의 시선이란 때로 불가능한 벽처럼 꿈을 가로막아버리는 것이니까. 나는 두 사람의 가로막힌 꿈이 어떻게 서로를 통해 사라지지 않았는지 조용히 지켜보는 마음으로 영화를 관람했다. 

 

“매번 남에게 의지하기 싫어. 남들도 싫어할테고...”

이들을 꿈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했던 것은 사람들이었다. 치에의 꿈을 비웃고 이룰 수 없을 거라고 단언했던 엄마와 친구, 열심히 노력해서 받은 상이었으나 장애인이라서 받은 것이라고 비꼬아 말하던 유시앙의 친구들, 겉으로는 장애를 가지고 있는 것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유시앙을 대했다. 

그리고 앞이 보이지 않아 불편할 테니 자신이 도와주겠다고 자신들끼리 순번을 정해서 등하교를 도왔다. 겉으로 보기에 사람들은 참 좋은 친구라며 칭찬해주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순번을 정하고, 도움을 받는 게 당연하다는 듯이 말하고, 무엇을 이루든 장애를 가지고 있어서라고 말하던 말이 유시앙에게는 자신의 처지를 더 비관하게 만들곤 했다. 

‘정말 그럴까? 열심히 연습해서 상을 받았다고 생각했지만 장애가 있기 때문에 내가 상을 받은 걸까?’ 

누구라도 유시앙의 처지에 놓였다면 그런 생각을 해보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유시앙의 대사에서 느껴졌다. 그리고 이제껏 그런 일을 수없이 겪었을 것을 떠올리니 왜 그렇게 소극적인 성향을 가지게 되었는지 절로 이해가 되는 일이란 생각이 들었다. 

장애를 가지고 있지만, 그 누구도 다른 이의 도움 없이 움직일 수 없고 해낼 수 없는 사람으로 살고 싶지는 않았을 것이다. 피아노든, 그 무엇이든 혼자 힘으로 해낼 수 있다는 생각으로 다시 일어선 치에와 유시앙, 두 사람이 그렇게 일어설 수 있기까지 얼마나 많은 용기가 필요했을지 상상해보며,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을 내내 했다. 

그리고 동시에 나는 장애인들과의 만남과 관계에서 이렇게 무심결에 그들에게 상처가 되는 말이나 행동을 하지는 않았는지 되돌이켜보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가엽게 여기고, 무조건 도와줘야 한다는 나의 생각은 그 사람들을 위해서라고 믿었으나, 그 사람들 입장에서는 나의 행동이나 말들이 무례하거나 부담스럽게 느껴졌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처음으로 들었기 때문이다. 

영화는 시각 장애를 가지고 있는 음악 천재의 성공기를 들려주려는 것이 아니다. 치에도 결국 오디션에 참가하겠다고 결심하고 연습에 매진하지만 결과는 좋지 않다. 유시앙 역시 공연에 다시 설 용기를 주변 친구들로부터 얻지만 그 결과가 나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것이 영화를 보는 내게 중요한 일은 아니었다. 

그저 꿈을 향해 다시 나아가기 시작한 두 사람을 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지곤 했으니 말이다. 장애나, 그 어떤 것이 눈앞에 놓인다 해도 결국 그것을 이겨내고 더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것은 자신의 의지이다. 그리고 그 의지를 북돋아 주는 것은 결국 우리 주변에 있는 사람들의 따듯한 말과 곁에 있다는 사실이라는 것. 이런 메시지를 담아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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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칠 2019-08-16 11:00:43
몸을움직이는 모든 활동은 장애인의 필수사항 입니다, 춤을 비롯한 모든 활동에 응원의 박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