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에 소리와 음악이 필수라고?
영화에 소리와 음악이 필수라고?
  • 김승근
  • 승인 2019.09.17 0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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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더스트럭(Wonderstruck)’ : 깜짝 놀랄만한, 아연실색할 만한 일
▲불의의 사고로 엄마를 잃은 소년 ‘벤’은 우연히 엄마의 서랍장 속에서 한 번도 본 적 없는 아빠에 대한 단서가 담긴 책 [원더스트럭]과 한 서점의 주소를 발견하고 뉴욕으로 떠난다

최근에도 이런 영화를 기억하는 사람이 있는지 모르겠다. 

‘무성영화’의 대부, 찰리 채플린은 중절모를 쓰고 늘 까만 양복에 콧수염을 붙이고 우스꽝스럽게 연기했던 배우이다. 요즘 세대들은 알고 있을까? 과거, 많은 이들은 그의 영화를 꽤 좋아했다. 

특별한 것이 있었던 가? 무성영화가 유행하던 시대에 태어난 사람이 아니었고, 소리도 없고 왜 저런 행동을 하는지조차 알 수 없이 그저 보기만 해야 했던 무성영화. 대부분 그의 영화를 처음 봤을 때에는 ‘뭐라고 하는 거지?’라는 의아함이 앞선다. 하지만 계속 보다보면 굳이 영화에 소리나 대사가 필요한가? 싶을 정도로 자연스럽게 영화의 내용과 의미를 이해할 수 있어진다. 

그것이 무성영화의 매력이다. 하지만 이내 그런 무성영화는 유성영화로, 그리고 흑백영화는 컬러풀한 영상으로 바뀌어 지금에 이르렀다. 1970년대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화려한 색채의 유성 영화가 전성기를 맞이했다. 

1920년대부터 70년대 이전까지는 흑백 화면에 대사 하나 없이 배경 음악과 효과음이 조금 나올 뿐이었다. 그런데 화려한 색감, 구구절절 서사가 이어지는 대사와 아름다운 음악이 영화를 채우게 된 지금이 익숙해진 지금. 오늘 이야기하려는 이 한편의 영화는 문득 그 무성영화를 떠올리게 만든다. 

영화에 소리와 음악이 필수라고? 물론 그것은 아름답지만 굳이 소리와 음악으로 채우지 않아도 영화는 충분히 풍요로울 수 있다는 것을 무성영화는 가르쳐주고 있는 듯 하기 때문이다.  

원더스트럭 (Wonderstruck, 2017)
▲원더스트럭 (Wonderstruck, 2017)

 

“유성영화의 출현은 비장애인에게는 기술의 승리이자 모든 발전의 원동력이었으나 청각 장애인의 관점에서는 즐길 수 없는 문화라는 점에서 비극이나 마찬가지였다.”

원더스트럭(감독 토드헤인즈/출연 줄리안 무어, 미셀 윌리엄스 등/ 2017년 미국)을 만든 원작자 ‘브라이언 셀즈닉’은 영화 속에 등장하는 1920년대와 1970년대로 상징되어지는 무성영화에서 유성영화로의 변화를 이렇게 말했다. 

사실 이런 원작자의 발언만으로도 이 영화가 다른 청각장애에 대한 영화와 확연히 다를 거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영화 제작과정과 실제 청각장애를 가진 주, 조연 배우들에 대한 이야기까지 듣고 나자 영화는 단지 청각장애인이 주인공인 영화가 아니게 되었다. 

이 영화 속에 등장하는 로즈라는 주연 배우는 실제 청각 장애인 배우를 뽑으려 했던 제작진에 의해 선발된 아이였다. 감독은 실제 청각장애인들과 작업하면서 다른 배우들이나 스템들이 청각장애인들의 생활방식에 익숙해지고 이해하기를 바랬다고 했다. 그런 의도를 가지고 아무런 격의나 차별 없이 고용한 청각장애를 가진 스텝과 배우들은 실제 영화를 보면서 ‘저 사람이 청각장애인이라고?’라는 생각을 가지게 만들만큼 놀라운 활약을 보여준다. 

이 영화 자체가 청각장애에 대해 우리 비장애인들이 가질 수 있는 편견이나 다른 시선에 대해 생각해보게 만들고 있는 것이었다. 

 

‘원더스트럭(Wonderstruck)’ : 깜짝 놀랄만한, 아연실색할 만한 일

이 영화 속에는 두 아이가 등장한다. 선천적으로 청각 장애를 가지고 있어 수화로 사람들과 소통하는 로즈라는 아이, 그리고 후천적인 사고로 인해 청각 장애인이 되어 말도 할 수 있으나 수화는 하지 못하고, 아직 귀가 들리지 않는 자기 자신의 삶에 익숙해지는 중인 벤이라는 아이가 있다. 이 아이들은 뉴욕 거리를 배회한다. 다름 아닌 자신들의 힘으로 어찌 할 수 없었던 부모와 관련된 일로 인해 말이다. 

그리고 미국 자연사박물관이라는 뉴욕을 대표하는 장소에서 만난다. 이 영화의 제목인 ‘원더스트럭(Wonderstruck)’ 이라는 단어는 경이롭고 아연 실색 할만큼 깜짝 놀랄 일이라는 의미가 있다. 그것은 자연사박물관에 소장 중인 수없이 많은 깜짝 놀랄만한 유물과 전시물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뉴욕이라는 세계에서 가장 복잡하고 변화가 빨랐던 도시에 갑자기 떨어진 두 소년, 소녀의 마음을 상징하는 단어 같다는 생각도 들게 한다. 귀가 들리지 않는 상태에서 뉴욕을 바라봤을 때 로즈와 벤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실제 영화 속에서 로즈가 등장하는 모든 장면과 벤이 등장하는 대부분의 장면이 소리가 없어 이런 상상을 자연스럽게 하면서 나도 뉴욕이라는 도시를 낯설게 바라보게 만든다. 소리가 없다는 것, 그것은 적막하고 마냥 외롭기만 할 것이라 생각했는데 이전에는 생각해보지 못했던 뉴욕 거리의 새로운 아름다움을 느끼게 만들어 그것이 참 신기한 기분이 들곤 했다. 

이 빠른 도시에, 수없이 넘쳐나는 소리 사이에서 두 소년, 소녀는 자신들이 듣고 싶은 부모님의 소리, 아름다운 미래를 말하는 소리를 들을 수 있을까? 그런 불안감과 염려를 담아 영화를 보게 만드는 매력이 있다. 

이 영화는 소통에 대한 영화이다. 태어날 때부터 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는 로즈는 뉴욕을 돌아다니며 자신이 알고 있는 수화와 다양한 방식으로 사람과 소통한다. 하지만 갑작스럽게 소리를 잃어버린 후천적 청각장애인 벤은 이제 막 들리지 않게 된 직후이기에 다른 사람들과 소통하는 방법을 하나씩 배워나가야 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수없는 시행착오를 거친다. 하지만 그것이 불쌍해 보이거나, 위태로워 보이지는 않는다. 조금 늦게 돌아가고 잇을 뿐, 소리가 없어도 두 소년, 소녀는 자신들의 눈으로, 촉각으로, 냄새로, 소통하며 세상과의 연결고리를 잘 잡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예쁜 모습에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지는 영화였다. 그리고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해도 이렇게 많은 아름다운 소통의 모습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만든 영화이기도 했다. 그래서 보고 난 후 마음이 따뜻해지는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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