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가 죄는 아니잖아...
장애가 죄는 아니잖아...
  • 김승근
  • 승인 2019.09.24 01:49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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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을 통해 달라지는 자존감
야마모토 오사무 ‘도토리의 집’

두 아이가 있다. 

케이코는 평범한 가정에서 축복 속에 태어난 아이였다. 그런데 크면서 점점 큰 소리에도 놀라지 않는 것이 이상해서 병원에 데려간 결과 선천성 청각장애와 발달장애를 가지고 있다는 천청벽력 같은 말을 의사에게 듣게 된다. 

닥치는 대로 물건을 집어 던지고, 엄마 아빠의 얼굴을 할퀴어대며 말이 통하지 않는 아이, 벌거벗고 이웃집에 쳐들어가서 아무렇게나 물건을 던지기 시작하는 케이코. 그의 부모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다는 생각에 이르게 된다. 

주위를 어지르는 정도에서 끝나지 않고 본인 혹은 다른 사람들을 때리거나 할퀴는 등의 공격성까지 보이기 시작했다. 그의 부모는 모두를 위해 케이코를 시설에 보내 보호하게 하는 것이 최선이라는 결말에 다다르게 된다.

그리고 다른 한쪽에서는 키요시라는 남자아이가 있다. 키요시는 자폐아인데 늘 아버지의 제과점 쟁반에 돌을 올려두는 등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해서, 가족들은 장애아 보육시설에 키요시를 보내려고 한다. 주변 이웃들에게 폐를 끼친다거나 여러 이유를 붙이기는 했지만 결국 키요시를 감당하기에 너무 힘들다는 것이 이유의 전부였다. 

이 책 <도토리의 집(야마모토 오사무 저자, 김은진 역자 한울림 출판)> 이야기는 70년대 일본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그 당시는 남의 시선에 신경이 쓰이고, 주변에 자신의 아이가 장애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극도로 꺼리는 시대이다. 물론, 현재도 장애 아이를 가진 집안의 가족들은 그때와 다른 반응을 보일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과거는 분명 지금보다 공동체적 질서와 주변의 시선 등을 큰 의미로 생각했던 시대였다.

▲야마모토 오사무의 ‘도토리의 집’

형제이자, 자식이자, 가족인 아이를 버리는 것이 그렇게 쉬운 결정일까? 

어떻게 감당해야 할지 몰라서 아이를 버릴까도 생각했었다. 그런데 차마 그러지는 못하고 케이코를 결국 키우게 되었고 평범하게 생활할 수 있도록 기본적인 것을 가르쳐줄 학교를 알아보게 된다. 키요시의 가족 역시 키요시의 기이한 행동 때문에 당장 갖다 버리겠다던 아버지는 키요시가 사실 ‘아버지에게 맛있는 빵을 만들어 맛보게 해주고 싶다’는 뜻으로 돌을 가져다 놓은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어 눈물을 흘린다. 

가족 중에 장애인이 있다면 그를 무한한 사랑으로 감싸 안아 주는 그런 모습의 이야기가 아니다. 이 이야기는 매우 현실적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장애에 대해 무지하며, 언제든 내 가족이 장애아로 태어나거나 후천적으로 장애인이 된다는 가능성조차 염두에 두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포기하고 버리고 싶다가도 버릴 수 없고, 또 자신을 버리려했던 가족이었음을 알면서도 미워할 수 없이 이해해버리고야 마는 것. 
장애가 죄인가? 키요시와 케이코의 부모, 그리고 두 아이가 겪는 감정적인 변화를 읽으며 왜 이런 슬픔을 그들이 겪어야하는지 안타깝다는 생각을 가지게 된다.  

“못하는 게 많은 사람은 형편없는 인간일까? 할 수 있는 작은 일을 나누며 함께 기뻐할 것이다. 그리고 온 힘을 다해 최선의 노력을 할 것이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살아간다.”

아무 것도 할 수 없고, 그저 소리만 지르고 뭐든 던지는 것밖에 하지 못하던 케이코는 특수학교에 다니면서 변하기 시작한다. 혼자 밥을 먹고, 자신의 이름을 쓰고, 화장실에 혼자 가는 것도 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할 수 있는 일이 많아질수록 케이코는 밝아진다. 웃음이 늘어나고, 가족들 역시 그런 케이코를 보면서 이전의 절망과 슬픔만이 가득했던 표정을 지워가기 시작한다. 

서로를 사랑하지 않아 미워하고 헤어지려했던 것이 아니었다. 그저 갑작스럽게 다가온 장애라는 현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몰랐던 것뿐이었다. 말할 수 없는 것은 듣지 못했기 때문이니 이를 가르쳐줄 수 있는 사람이 이었다면 말하는 법을 배울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어떤 식으로든 소통할 수 있었다면 무언가를 집어던지고, 소리를 지르는 방식은 취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것을 가르쳐주기 전에는 아무도 몰랐다.

이 책은, 자신 때문에 슬퍼하는 부모를 보고 더 슬펐던 아이, 그리고 부모, 형제 시각으로 펼쳐지는 장애의 모습을 현실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이 이야기는 그렇게 가족에게 닥친 장애와 그로 인한 일들을 어떻게 이겨내야 하는지에 대해 말한다. 그리고 그 일을 견뎌낼 수 있게 돕는 선생님, 지도자, 학교의 필요성을 말하고 있다. 

이 아이들을 가르쳐주고, 참아내며 할 수 있다고 말해주는 선생님들이 없었다면 이 아이들은 아무짝에도 쓸모없이 산 바닥에 널려있는 도토리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누군가 주워, 예쁘다고 말해주었고, 그것으로 다른 것을 만들 수 있다고 해주었기에 그 도토리는 아주 튼튼한 나무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도토리의 집’ 실제로도 이런 중증 장애 아동들의 사회화화 교육을 위해 수많은 선생들과 자원봉사자들, 그리고 공간을 지원해주는 사람들의 노력이 이뤄지고 있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정신적, 체력적으로 힘 들지만 가족이기에 함께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이런 기관, 선생들만큼 큰 도움이 되는 존재가 있을까? 

교육을 통해 점차 변해가는 케이코와 키요시를 보며, 이 아이들에게 ‘할 수 있다’고, ‘힘내라’고 말해주고 가르쳐주었던 선생의 감사함을 느낄 수 있는 귀한 시간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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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회 2019-09-24 14:25:37
기사 제목처럼 장애는 죄가 아니에요.
겉모습만 조금씩 다를뿐 똑같은 사람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