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릉도… 우산국을 찾아서
울릉도… 우산국을 찾아서
  • 전윤선 여행작가
  • 승인 2019.10.30 10:07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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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위로와 힘을 얻는 여행을 떠나요”

긴 시간을 만들어 동쪽 맨 끝자락 울릉도를 찾았다. 묵호에서 배타고 3시간 30분, 거리로는 161키로다. 그토록 먼 뱃길을 열고 우리 땅 울릉도 도동항에 썬플라워 2호는 닻을 내렸다. 울릉도에 도착했다는 안내방송이 들리면서 가슴은 뛰기 시작했다. 왠지 다른 나라에 온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워낙에 먼 뱃길을 달려야만 닿을 수 있는 곳이어서 그런지 울릉도를 여행하기 위해 많은 정보를 취합했다. 숙박에서부터 이동 접근까지 기존의 여행보다 훨씬 많은 준비와 노력을 해야만 했다. 울릉도행 뱃길은 여러 방향이 있지만 전동휠체어를 이용하는 장애인에겐 포항이나 묵호에서 출발해야 한다. 강릉항과 울진후포 항에서도 울릉행 여객선은 출항 하지만 배안의 편의시설이 변변치 않아 불편하다. 그렇게 준비한 울릉도가 눈앞에 다가왔다. 여객선 터미널에 내리니 여행객을 맞으려 피켓을 든 사람들로 발 디딜 틈이 없다.

묵호항에서 출발하는 썬플라워 2호에 오르기전 승선표와 함께 사진을 담았다. ⓒ 전윤선 작가

드디어 울릉도에 왔다는 흥분과 안도감으로 긴장이 풀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웬 사내가 내 앞으로 다가왔다. “울릉도에 온 걸 환영합니다. 숙소 직원인데요. 마중 나왔어요. 사내는 반갑게 인사하며 일행을 안내하게 시작했다. 우선 화장실부터 들러야 했다.

“여기 장애인 화장실이 있나요. 급한데요”

사내는 새로 지어진 건물로 안내했다.

“도동항에서 최근에 지어진 건물이 저기 해양경찰서 건물인데요, 거기에 장애인 화장실이 있어요.”

사내가 안내하는 데로 신축건무로 이동해 볼일을 마쳤다. 급한 용무가 끝나고 나니까 그제야 도동항 풍경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뾰족한 산이 병풍처럼 둘러싸인 도동항은 아늑했다. 태풍이 온 다해도 큰 어려움 없이 도동항과 마을을 지켜줄 것 같았다.

포항과 묵호에서 출발한 관광객들을 가장 먼저 반겨주는 곳도 도동항입구다. 도동항에 들어서면 왼쪽의 망향 봉이 오가는 이를 맞이하고, 만남과 이별의 숱한 이야기들을 묵묵히 지켜보고 서있는 이천년 된 향나무가 인상적이다. 도동지명의 유래는 ‘도방청’이란 말에서 시작됐다. 사람이 많이 살며 번화한 곳이란 뜻을 의미한다. 고종 때 울릉도에 개척령을 발포하면서 개척민에게 면세 조치를 내리자 점점 사람들이 입도하기 시작했다. 처음 개척민들이 울릉도에 들어와 보니 제법 시가지의 모습을 이루고 있어 이곳을 도방 청이라 불렀다. 울릉 8경 중에는 도동모범이라 해서 도동항의 석양 무렵에 오징어배의 출어하는 모습이 정말 아름답다. 그러고 보니 도동항엔 차량들로 뒤엉켜 있고 여행객은 피켓을 보고 일행을 찾아서 차량으로 이동한다. 도동항 주변은 경사가 급한 언덕과 좁은 골목으로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다.

숙소 주변의 골목 풍경 ⓒ 전윤선 작가
숙소 주변의 골목 풍경 ⓒ 전윤선 작가

사내를 따라 예약한 숙소로 향했다. 숙소는 항구에서 가까운 거리다. 삼층 건물에 턱이 없고 엘리베이터 까지 갖춘 최신식 건물이다. 여행 전 울릉 군청 사회복지과에 전화를 걸어 휠체어가 접근할 만한 숙소를 알아봐 달라고 부탁했다. 숙소엔 아주머니가 우릴 반겼다.

“하고야 이 먼데까지 우예왔노, 이 전동차 타고왔노, 장하데이, 이걸 타고 여그 올 생각을 다했으니 올매나 장하나!”

투박하지만 살가운 말투에 더욱 마음이 가벼워 졌다.

“여그가 도동항 근처에서 유일하게 엘리베이터가 있고 턱도 읍는 호텔이데이”

호텔이라고 하지만 모텔급 숙소다. 숙소 입구엔 턱이 없고 엘리베이터가 있어 우린 삼층 객실로 갔다. 객실입구도 턱이 없다. 그런데 휠체어 한 대가 들어서니 너무 좁다. 침대는 더블이지만 방이 좁아 혼자서 겨우 움직일 수 있다. 할 수 없이 방을 하나 더 써야 했다. 다행이 일층에 빈 객실이 있어 따로 쓰기로 했다.

짐을 풀고 나와 허기를 채워야 했다. 울릉도까지 왔으니 이곳만의 특별한 음식을 먹고 싶었다. 주인아주머니께 울릉도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이 뭐냐고 물었다. 주인은 울릉도 근해에서 잡아온 신선한 홍합을 넣은 홍합 밥을 권했다. 그런데 문제는 휠체어가 접근 할 수 있는 식당이 있느냐가 관건이었다.

“가만있어봐라, 우야노 여그가 워낙에 경사지대라 턱이 있는 곳이 많데이~ 골목 쩌쪽 끝에 보믄 그 끝에 홍합밥집이 유명하고 맛난데이. 근데 턱이 약간있데이. 주인한데 살짝 들어달라케라~.”

숙소 안주인은 나긋나긋한 경상도 사투리로 친절하게 식당까지 섭외해준다. 그리고 울릉도에 왔으니 이곳만의 먹거리까지 추천해 준다. 친절한 쥔장은 식당까지 안내 해준다고 따라나선다. 따라나서겠다는 사장님께 미안해서 극구 사양했다. 그리고는 골목을 따라 일러준 쪽으로 갔다. 점심도 점심이지만 울릉도 여행에 대한 기대감으로 배고픈 것도 잊고 있었다. 한참을 둘러보는데 휠체어가 접근할만한 식당이 없다. 죄다 턱이 있고 배가 들어온 시간이라 식당마다 여행객으로 북적였다.

한참을 서성거리다 보니 시장기가 몰려왔다. 식당을 찾아 주변을 샅샅이 뒤졌다. 숙소주변을 한 바퀴 빙 돌다보니 어느새 도동항으로 다시 내려오게 됐다. 도동항 근처 식당 몇 곳은 휠체어 접근이 가능했다. 한 식당을 골라 들어가 자리를 잡고 메뉴를 보니 해산물을 이용한 메뉴로 가득했다. 울릉도에서 가장 맛있는 메뉴가 뭐냐고 물었다. 식당주인 울릉도 ‘삼해밥’ 이라고 하며 자기네 식당에만 있는 메뉴라고 한다. 삼해밥은 전복, 소라, 홍합을 넣고 갖은 야채를 잘게 썰어 압력밥솥에 바로 지어 내는 밥이다. 음식은 시간이 걸려도 정성으로 조리한 음식이 보약이라고 너스레를 떤다. 이십분쯤 지났을까 맛있는 냄새가 진동하며 삼해밥이 차려진다. 삼해밥은 먹음직스럽기도 하고 색깔 또한 입맛을 자극한다. 양념간장을 밥 위에 넣고 젓가락으로 비볐다. 비비는 동안 침이 자꾸 고인다. 정신없이 먹다보니 사진 찍는 것을 깜빡했다. 몇 수저 먹다 말고 사진을 찍고 다시 먹기 시작했다.

울릉도 해안 절경 ⓒ 전윤선 작가

늦은 점심을 먹고 나서 독도행 배를 알아보기 위해 여객선 터미널로 갔다. 독도로 가는 항구는 도동항에서 백 미터 정도 떨어져 있다. 도동항 여객터미널은 새 단장을 하고 있어서 임시로 터미널을 옮겨 사용하고 있다. 전동휠체어로 도동항 근처를 기웃거리니 주민들도 우리가 신기했는지 만나는 사람마다 말을 건넨다.

“이 먼 곳을 우찌왔노, 기특하데이”

주민들에게 눈인사를 건네며 터미널로 발길을 이어갔다. 터미널은 비교적 한산했다. 독도행 표를 끊는 동안 안내원은 독도행 배가 출발하는 저동 항까지 가는 길을 일러준다.

독도로 가기 위해서는 사동항에서 배를 타고 가야한다. 도동항에서 사동항까지 5키로 정도 거리지만 산길을 달려서 가야한다. 울릉도에 장애인이 이용할 만한 대중교통이 없기 때문에 저동항까지 전동휠체어로 걸어가야만 한다. 초행길이라 미리 사동항 까지 답사도 하고 섬 여행도 할 겸 둘러보기로 했다. 그런데 가는 길이 만만치 않다. 울릉도 지형상 구불구불한 길의 연속이고 관광객이 이용하는 차량들로 좁은 도로가 더 복잡하다. 할 수 없이 사동항까지 가는 길을 포기하고 다른 방안을 모색하기로 했다. 그리고 근처 전망대로 발길을 이어갔다.

전망대 가는 길도 경사가 급하다. 케이블카를 타고 울릉도와 독도를 내려다보고 싶었다. 그래서 다시 올라가기 시작했다. 계속해서 급경사길 연속이다, 이대로 올라가다간 위험할 수도 있어 해도사만 둘러보기로 했다. 산 중턱에 아담하게 자리한 해도사는 해수관음상을 모신 작은 사찰이다. 사찰에 대한 안내문을 찾지 못해 언제 누가 창건했는지 알 수 없지만 독도 박물관과 독도 전망케이블카 승강장으로 가는 길목에 있다.

해도사 들어서는 순간 사찰을 감싸고 있는 산세가 예사롭지 않은 기운을 느끼게 한다. 천천히 경내를 둘러보는데 사륜오토바이 ‘사발이’를 타고 승복을 휘날리며 스님 한분이 올라오신다. 스님은 우릴 보고 깜짝 놀란다.

“안녕하세요, 스님.”

인사를 하고 울릉도에 여행 왔다고 했다.

“보호자는 어딧어예”

“저희끼리 왔어요. 보호자 없어요.”

“이 먼데까지 보호자 없이 우예왔노”

스님은 놀란 듯 자꾸 물어본다. “스님~사찰이 참 예뻐요. 울릉도 하고 너무 잘 어울려요” 따스한 햇살을 받은 사찰은 무릉도원에 온 듯하다. 혹시 피안의 세계가 있다면 여기가 아닐까. 해도사엔 오징어 조각상도 있어 사람들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동해바다와 한반도 수호의 염원이 깃든 해수관음상이 이곳을 지키고 있다.

“스님 여기선 저 사발이를 타고 다녀야 하겠는데요. 워낙에 지형이 높아서요.”

“울릉도 사람들은 지프차나 사륜구동 더 많이 타고 운전도 기똥차게 잘들해예”

그러고 보니 이곳에선 승용차를 별로 본적이 없다. 죄다 지프차나 미니 관광버스를 타고 움직이거나 봉고차로 움직인다. 택시도 지프차가 대부분이다. 그도 그럴 것이 이곳 지형을 보면 승용차로는 험한 도로를 따라 운전하기 힘들다. 스님과 얘기를 끝내고 다시 도동항으로 내려왔다. 도동항 내려가는 골목풍경이 이국적이다. 집집마다 빨래 대신 오징어가 널려있고 시간은 멈춰있는 것 같다. 온화한 바닷바람은 골목 곳곳을 애무하듯 스치고 울릉도 바다는 은빛 물결이 일렁인다. 골목의 집들을 들여다봤다. 울릉도를 왜 우산국이라 했는지 곳곳을 둘러보면 알 수 있었다,

집집마다 빨래 대신 오징어가 널려있다.
집집마다 빨래 대신 오징어가 널려있다. ⓒ 전윤선 작가
집집마다 빨래 대신 오징어가 널려있다.
집집마다 빨래 대신 오징어가 널려있다. ⓒ 전윤선 작가

삼국 시대 초기 우산국은 섬에서 얻는 식량과 물자가 한정된 곳이다. 울릉도를 지나가는 뱃길을 공격해 부족한 물건을 빼앗아 살았고 우산국과 지리적으로 가장 가까운 신라가 많은 피해를 당했다. 마침내 신라 지중왕은 이사부 장군으로 하여금 우산국을 공격하게 했고 결국 우산국은 신라에 항복해 공물을 바쳤다. 하지만 신라가 직접 우산국을 다스리지 않고 우산국 지주에게 다스리게 했다. 그 후 고려 왕건이 신라 동쪽 해안가 섬들을 함락시키자 우산국은 왕건에게 사신을 보내 공물을 바쳤다. 고려가 후 삼국을 통일하자 고려의 도움이 더욱 필요로 한 우산국은 결국 십일세기 이후 고려의 영토로 편입되면서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울릉도에 있었던 우산국은 삼국 시대에 신라에 의해 멸망했지만 아직도 우산국은 건재하고 있는 것 같았다.

개별국가였던 우산국은 지금도 독특한 문화가 남아있다. 해마다 우산지역 축제가 펼쳐지고 울릉도만의 문화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울릉도엔 또 다른 저명인사가 살고 있다. 울릉천국이라고 부르는 가수 이장희다. 이장희 집에선 울릉천국이라는 콘서트가 열린다. 울릉도가 너무 좋아 이곳에 집을 짓고 살아간다. 집 앞에 제법 큰 콘서트 장이 있고 그의 노래처럼 울릉도가 천국이라고 한다. 세상살이 지치고 힘들 때 사람들은 여행을 생각한다. 여행을 통해 삶을 위로받고 다시 살아갈 힘을 얻는다. 이장희씨도 타국에서의 삶을 정리하면서 울릉도에 정착했다.

이장희의 노래처럼 세상살이 지치고 힘들어도 울릉도가 함께 있으면 위안이 된 울릉도는 여행객의 허한 마음을 위로하며 채워 줄 것을 알기 때문이다.

•가는 길 ▶묵호여객터미널에서 오전 8시 20분 선 플라워 2호 출발 / 요금은 복지할인적용 우등석 왕복 5만7천원•일반석 5만4천원 / 묵호여객터미널, 대아여객 대표전화 ☎1544-5117 (홈페이지 www.daea.com)

•먹거리 : 홍합밥, 삼해밥, 활어 및 해산물, 호박막걸리, 울릉한우, 피데기(반건조오징어) / 도동항 식당•054-791=8948

•장애인화장실 : 도동항 해양경찰서 내

•잠자리 : 에이스호텔 054) 791-1090 / 대야리조트 054) 791-8800

•무장애여행문의 : 한국접근가능한관광네트워크 http://cafe.daum.net/travelwheel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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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칠 2019-11-05 13:15:51
가보고 싶어요 우리들 복지관에서도 문화체험으로 했으면 좋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