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질환자가 아닌 ‘우리 이웃, 가족’ 입니다
정신질환자가 아닌 ‘우리 이웃, 가족’ 입니다
  • 류기용 기자
  • 승인 2019.11.05 17:09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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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병원과 제약회사는 공생하며 환자를 먹이사슬 구조에 올려놓고 있다
류기용 기자
류기용 기자

지난해 12월 서울의 한 병원에서 정신건강의학과 치료를 받던 환자가 주치의 임세원 교수를 칼로 찌르는 사건이 발생했다. 해당 주치의는 현장에서 안타까운 죽음을 맞이했고, 다음날 모든 언론은 ‘정신병 환자의 무모한 일탈’이란 주제로 대서특필 보도에 열중했다.

그리고 몇 달이 지난 올해 4월 경남 진주에서는 정신질환을 겪고 있던 안인득 씨가 살고 있는 아파트에 방화사건을 일으켰다. 안 씨는 대피하는 주민들에게 흉기를 휘둘러 5명이 사망하고 18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우리나라 언론매체는 이 두 사건을 집중 부각시켜 보도했고, 전 국민에게 정신질환자에 대한 공포심을 심어주기에 충분했다.

지금도 대한민국은 정신질환자에 대한 문제로 많이 시끄럽다. 정신질환을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잠재적인 범죄자 취급을 받는다. 수많은 정신질환 환자들이 흉악범인양 내몰리고 있는 것이다. 국민들은 그들이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는지, 누구인지도 모른 채 무조건 두려워하고 있다. 여러 가지 사건정황을 돌아보면 대한민국은 정신질환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된 공포심을 퍼 나르고 있을 뿐이다. 대한민국에서 정신질환을 대표하는 국제 질병기호 ‘F 코드’를 가지고 살아가는 방법은 딱 한 가지뿐이다.

바로 ‘정신병원 입원’이다. 정신질환에 대한 대책을 나누기 위해 개최되는 토론회에 참석해 의견을 들어보면 대다수의 시민들이 ‘정신병동 강제 입원’이 답이라고 말한다. 우선 내가 안전하기 위해서는 위험요소를 가두어두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것이다.

여기에서 궁금증이 발동하지 않는가? 정신질환자는 어떤 사람일까? 누가 대한민국에서 정신질환 환자들을 흉악범으로 몰아가는 것일까? 그들은 정말 두려움의 대상일까? 누가 그들을 정신병원에 가두고 있는 것인지 궁금하지 않을까?

정신장애인 차별
정신장애인 차별에 반대하는 내용이 담긴 포스터. ⓒ 소셜포커스

■ 차별의 시작 ‘정신건강복지법’

가장 먼저 정신질환자에 대해 법 규정은 어떤 시각을 담고 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현재 정신질환 환자들은 ‘정신건강복지법(이하 정신복지법)’ 아래에서 살고 있다. 현행 정신복지법은 지난 1995년 제정 이후 수차례 부분적인 개정을 거쳐 지난 2016년 전면 개정됐다. 2016년 개정된 법의 핵심은 ‘비자의입원 통제’와 ‘지역사회 중심 정신의료 확산’으로 요약할 수 있다.

전반적으로 보호입원이 까다로워졌다는 점이 특징이라 할 수 있다. 이전까지는 ‘자타해 위험 또는 치료의 필요성’이 있을 때 보호입원이 가능했다. 개정된 법에서는 ‘자타해의 위험이 있고 동시에 치료도 필요한 경우’로 요건이 보다 강화된 것이 특징이다. 정신질환자의 인권을 보호하고 강제 입원을 제한하기 위한 매우 긍정적인 취지로 법이 개정됐다고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더 가까이 들어가서 자세히 살펴보면 큰 문제점을 담고 있다. 정신복지법 개정으로 정신장애인들은 장애인복지법(이하 복지법)에서 열외자로 취급받는 것이다. 참고로 현재 국내 정신장애인은 10만 명 수준이다. 현행 복지법 15조에서는 ‘정신건강 증진 및 정신질환자 복지서비스 지원에 관한 법률(정신복지법)은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이 법의 적용을 제한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에 따라 정신장애인은 자립생활 및 동료상담 지원은 물론 장애인 복지관도 이용할 수 없다.

실제로 정신장애인들은 복지법 적용 제외로 인해 정부 기관에서도 소외되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 정신장애를 가진 당사자가 복지 서비스에 대해 보건복지부 장애인정책국에 문의하면 해당 부처에서는 복지법 15조에 따라 정신건강정책과로 넘겨버린다. 그런데 겨우 연결된 정신건강정책과에서는 정신질환과 관련된 전담인력이 전무하여 아무 도움도 줄 수 없다. 부서가 책임지고 있는 많은 업무 중에 정신재활 지원이나 요양시설만 겨우 관리하는 상황이다. 결국 정신질환자는 어디도 도움을 요청할 곳이 없다.

질문을 던져도 대답할 사람이 없다. 법이라는 기준으로 막혀 있는 행정 칸막이 속에서 선을 긋고 있다. 관련부처에서는 정신질환자 민원을 마치 폭탄 돌리기 하듯 떠넘기는 게 현실이다. 우스갯소리로 “부처 간의 협력이 통일보다 어렵다”는 말은 정신질환자가 처해 있는 상황을 잘 보여준다. 또한 법적 해석의 모호함이 가져오는 문제는 정부 기관의 인식에서도 큰 영향을 미친다.

지난 6월 국가인권위원회(이하 인권위)에서는 ‘정신장애인 인권증진을 위한 정책간담회’를 총 4회에 걸쳐 진행했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할 점은 한 달 동안 진행된 정책간담회에서 정신장애인 당사자가 토론자로 참석한 경우는 단 한 번에 불과했다는 것이다. 모든 토론회는 정신과 전문의와 정신건강복지센터(이하 정신센터) 담당 직원, 또는 심리학 등 학계 전문가들이 토론자로 나섰다. 참고로 보건복지부 담당 사무관도 바쁘다는 이유를 들어 딱 한 번 참석했을 뿐이다.

그럼 인권위의 간담회에서는 정신장애인 인권증진을 위한 개선방안을 무엇이라고 결론 냈을까? 다수의 토론자로 참석한 의료계는 “국민건강공단의 의료적 수가 인상을 통해 양질의 서비스 제공이 필요하다”는 주장을 펼쳤다. 정신센터는 “인력 증원과 예산 증액을 통해 정신질환 환자의 사례관리 강화”를 강조했다. 정말 의료계 수가 인상과 정신센터 인력 증원이 정신장애인의 인권증진을 위해 가장 먼저 필요한 대안일까?

■ 의료계 ‘안정적 수익의 대상’, 정신센터 ‘예산 확충을 위한 수단’

정신센터는 지역사회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정신건강 응급 상황을 해결하고 지속적으로 사례를 관리하는 기관이다. 이 기관은 지난 2008년부터 전국에 급속도로 확대됐다. 또 복지부는 정신질환자에 대한 지원 강화를 이유로 장기입원 환자에 대한 예산을 매년 큰 폭으로 증액해왔다. 그런데 왜 치료받은 환자나 의료시설에서 퇴원한 환자는 없고, 장기 입원환자만 계속 늘어날까? 또 지역사회에서 정신질환자 문제는 왜 끊이질 않는 것일까?

실제로 지역사회 내에서 정신질환을 겪는 환자들이 복지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시설은 극히 드물다. 정신센터는 주 3회 ▶알코올 중독 ▶자살 ▶우울증에 관한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실제로 정신질환자에게는 별 도움이 되지 않는 프로그램이다. 장애인 복지관에서는 복지법 15조를 이유로 정신장애인을 받아주지 않는다. 정신장애인을 위한 다른 서비스는 없다.

결국 갈 수 있는 곳은 정신병원뿐이다. 정신질환자가 정신과 전문의의 진단을 통해 정신질환에 해당하는 F 코드를 받으면, 약물복용과 입원하는 것이 치료의 기본이 된다. 병원은 환자가 오면 지속적인 약물 투약과 함께 전문의 판단에 따라 상황이 안 좋은 경우 입원을 권유한다. 그리고 잠깐일 것 같았던 입원은 장기입원으로 이어진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2015년 기준 국내 정신질환자 평균 재원 기간은 247일이었다. 이는 이탈리아 13.4일, 스페인 18일, 독일 24.2일에 비해 매우 높은 것으로 확인됐다. 또 국내 정신병원 입원환자 수는 2016년 6만9천162명에서 2018년 4월 기준 6만6천523명으로 큰 변화는 없었다. 그러나 국공립 정신병원 입원환자 상당수가 민간 병원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이와 같은 패턴은 병원이 환자를 통해 얻는 의료적 수가를 안정적인 병원의 수입으로 인지하기 때문이라고 의심할 수밖에 없는 부분이다. 입원환자의 숫자는 결국 병원의 수익으로 직결된다. 병원은 환자를 치료하여 퇴원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장기입원을 통한 수입 관리를 목표로 운영하는 것이다.

결국 정부에서 정신질환자의 치료와 자립을 위해 지원하는 막대한 예산은 병원과 제약회사로 그대로 들어가고 있는 상황이다. 병원은 환자에게 끊임없이 약을 투여하는 역할을 한다. 제약회사는 환자가 늘어날수록 영업이익도 커질 수밖에 없다. 병원과 제약회사는 공생 공존하며 환자를 먹이사슬 구조에 올려놓고 있다.

문제는 더 있다. 병원은 정신질환 환자들의 안정적인 관리를 위해 대부분 폐쇄 병동을 운영한다. 여기서 문제는 그 누구도 폐쇄 병동에서 일어나는 일을 알 수 없다는 것이다. 가족도, 친구도, 주변 사람들도 그 안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알 수 없다. 정신병원에 입원치료를 받았던 대부분의 정신질환자들은 끔찍한 인권유린의 경험들을 떠올리며 눈물을 흘린다. 그들의 기억 속에는 자신을 위한 인권은 없다.

■ 언론의 부정적, 자극적 보도로 ‘사회적 혐오와 차별 가중’

정신질환자에 대한 언론 보도는 거의 ‘테러’ 수준이다. 언론에서 정신건강에 대해 보도하는 양은 급격하게 증가했다. 그렇지만 대부분 뉴스의 시각이 부정적 측면에서 자극적으로 전달하는 것에 집중하고 있기 때문이다.

주요 방송사별로 나타난 통계를 살펴보면 정신장애에 관련된 보도는 1997년 연간 50건 미만이었던 것에 비해, 2010년 400건 이상으로 큰 폭으로 향상됐다. 그러나 언론 보도에서 정신질환의 주요특징이나 치료법에 대한 언급 없이 보도된 기사는 86.4%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람들의 흥미를 부추기는 내용이 46.7%로 자극적인 기사가 대다수인 것으로 확인됐다. 부정적 시각의 보도가 42.2%인 반면 긍정적 시각은 5.5%로 부정적 인식을 심는 보도행태가 8배 이상 높았다.

이와 함께 정신질환 사고를 보도하는 내용에서도 구체적 사실 명시나 정신질환자의 주장이 충분히 보도되지 않는 점도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다양한 매체에서 신속하게 보도하는 것을 요구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그러나 정신장애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이 부족한 상태에서 흥미 위주로 자극적인 기사가 성급하게 작성되어 보도되는 것이다.

또 최근 언론 보도가 사건 당사자의 목소리를 담으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주려한다. 그러나 유독 정신질환이나 장애인 관련 사건에서는 당사자의 목소리를 배제하는 차별이 공공연하게 나타난다. 언론의 이러한 보도 행태는 정신질환자에 대한 사회적 편견 확산과 나아가 혐오와 차별을 가중시키는 촉진제 역할을 하고 있다.

■ 정신질환자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것… 이웃으로 살아가는 삶

정신질환자가 처한 상황을 돌아보면, 그들이 우리 사회에서 함께 살아가는 이웃을 만드는 역할은 생각보다 간단하다. 먼저 정신질환자에게 차별적으로 적용되는 지원체계를 개선해야 한다. 장애인복지법 15조를 폐지하여 법적으로 정신장애인들에게 다양한 복지서비스를 충분히 제공해야 한다.

또 의료시설의 정비도 필요하다. 정신질환에 따른 입원은 국공립 병원을 위주로 운영할 필요가 있다. 민간시설의 경우 개방 병동으로 운영해야 한다. 정신질환자에 대한 인권유린과 학대 문제가 발생할 수 있는 소지를 바로잡아야 한다. 의료시설에서 단순한 약물 투약과 환자를 감금하는 치료 방법에서 벗어나 사회복귀와 재활을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 개발이 필요하다.

이와 함께 지역사회 지원체계의 정비도 필요하다. 전국에 설치된 정신센터에서 정신질환에 알맞은 맞춤형 프로그램을 개발하여 운영해야 한다. 또 지속적인 사례관리를 통해 건강하게 지역사회에 자립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특히 정신질환 환자가 지역에서 이용할 수 있도록 다양한 서비스 체계를 마련하여 당사자가 서비스를 직접 선택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즉, 정신센터나 의료시설, 상담센터, 장애인복지관, 안정화 쉼터 등 지역사회 내에서 다양한 서비스 인프라를 구축하여 정신질환 환자가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도록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

언론에 대한 정비도 시급하게 필요하다. 해외 언론의 경우 장애 유형별 특징이나 특정 장애에 대한 보도 지침을 두고 있다. 보도 금지사항과 의무사항을 가이드라인으로 설정하여 장애인의 인권 보호에 최선을 다하고 있는 것이다. 이를 참고하여 국내의 상황에 맞는 표준화된 지침이나 세부적인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의 관점을 바꾸려는 노력이다. 지역사회에서 정신질환 당사자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함께 할 수 있는 소통의 기회를 지속적으로 마련해야 한다. 정신질환자를 더 이상 집이나 병원에 가둬두지 말고, 지역사회에서 함께 활동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개발하여 함께 문제를 극복해 나가야 한다.

최근 한국장애인고용공단에서 정신장애인의 ‘도시 양봉가 양성과정’을 개발하여 지역의 대학과 협업 운영을 통해 뜨거운 호응을 얻었다. 정신질환자도 지역사회에서 할 수 있는 평범한 역할을 제공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준 사례였다. 정신질환자에게 필요한 것을 직접 말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소통해 나간다면 그들은 F 코드의 정신질환자가 아니라 우리의 이웃이며 한 가족이 될 수 있다.

한 가지 당부하고 싶은 것은 더 이상 정신질환에 대한 문제를 정신과 전문의에게 물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병원에 가두고 약만 잘 먹이는 시스템으로는 제2의 임세원 교수 사건이나, 안인득 씨 사건과 같은 사고를 막을 수 없다. 지역에서 함께 살아가는 삶, 같이 묻고 들어주며 진짜 이웃이 되는 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진짜 역할이 아닐까? 정신질환자의 손을 잡아보면 그들은 우리 친구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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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칠 2019-11-11 17:50:22
모두함께 어울리는 사회를 만듭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