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접근 가능?" 무장애 관광 현주소를 되짚다
"누구나 접근 가능?" 무장애 관광 현주소를 되짚다
  • 박소윤 기자
  • 승인 2019.11.12 19: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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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12일 '무장애 관광 정책의 혁신과 비전 세미나' 열려
스페인ㆍ미국ㆍ호주ㆍ캐나다 등 해외 무장애관광 선진 사례 소개
제도적 안착-긍정적 사회 분위기 함께 어우러져야
11월 12일 서울 여의도 이룸센터 이룸홀에서 '무장애 관광 정책의 혁신과 비전 세미나'가 열렸다. ⓒ소셜포커스
11월 12일 서울 여의도 이룸센터 이룸홀에서 '무장애 관광 정책의 혁신과 비전 세미나'가 열렸다. ⓒ소셜포커스

[소셜포커스 박소윤 기자] = 미국의 심리학자 마틴 셀리그만(Martin Seligman)은 인간이 행복한 삶을 영위하기 위해서는 긍정적 감정, 몰입, 좋은 관계, 존재의 의미, 성취감 등 '행복의 5대 영양소(PERMA)'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행복의 5대 영양소를 섭취하는 방법은 다양하다. 이 중 일상생활을 떠나 다른 환경에서 일정한 시간을 보내는 여행은 행복 영양소를 얻을 수 있는 수단의 하나로 꼽힌다. 여행을 계획하고 이동하는 과정, 현지에서의 다양한 체험, 여행을 마친 후 회상하는 모든 단계에서 인간은 풍부한 행복 영양소를 섭취하게 된다.

행복 종합 비타민과 같은 여행. 이조차 마음껏 누리지 못하는 이들이 있다. 바로 장애인 관광객 등 관광약자들이다. 이들은 '서비스 받을 때 차별 당하는 기분', '동정과 시혜적인 시선 때문에 여행을 망쳤다', '관광 정보에 대한 접근이 차단돼 있는 경우가 대다수', '장애인을 위한 시설을 찾아보기 힘들다' 등의 이유로 여행 자체를 포기하곤 한다. 

11월 12일 오후 서울 여의도 이룸센터 이룸홀에서 '무장애 관광 정책의 혁신과 비전 세미나'가 열렸다. 장애인 등 관광약자를 위해 무장애 관광 전문가, 활동가가 한 자리에 모여 다양한 의견을 서로 나누었다. 

유엔세계관광기구(UNWTO)는 1991년 '모두를 위한 관광'을, 2016년 '보편적 접근성'을 강조했다. 이와 같이 접근 가능한 관광이 방문객의 여행 경험과 관광의 질을 향상시킬 수 있는 핵심 수단으로 떠오르면서 무장애 관광과 관련한 정책의 중요성이 대두되기 시작했다. UNWTO는 접근가능한 관광 향상을 위해 △접근가능한 서비스 및 시설에 대한 명확한 정보 제공, △국제적 통용 안내표시 사용, △장애인 고객 직면 문제 이해 및 처리 가능자 대기 필요, △감각장애인과 의사소통 가능자 필요 등 권고사항을 내세웠다.

배화여자대학교 글로벌관광학과 윤혜진 교수, 한국접근가능한관광네트워크 전윤선 대표, 한국장애인관광협회 홍서윤 대표, 서울다누림관광센터 정영만 센터장. ⓒ소셜포커스
배화여자대학교 글로벌관광학과 윤혜진 교수, 한국접근가능한관광네트워크 전윤선 대표, 한국장애인관광협회 홍서윤 대표, 서울다누림관광센터 정영만 센터장. ⓒ소셜포커스

해외의 경우 국내와 달리 해당 권고사항이 전반적으로 잘 이루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스페인 수도 마드리드는 공식 관광 웹사이트에 '접근가능한 마드리드'라는 이름을 걸고 무려 300페이지에 달하는 접근가능 숙박, 대중교통 정보 등을 제공하고 있다.

이에 대해 배화여자대학교 글로벌관광학과 윤혜진 교수는 "마드리드는 의회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며 중앙, 지방정부 차원에서 장애인 관련 단체와 협력해왔다"며 "무엇보다 접근가능한 관광을 위해 인적자원, 노하우, 예산, 접근가능한 상품과 서비스의 개발, 인식 증진이 뒷받침된 모범 사례"라고 설명했다. 

세계에서 가장 접근성이 우수한 도시 중 하나로 꼽히는 미국의 수도 워싱턴 D.C의 사례도 소개됐다. 워싱턴 D.C의 보도는 휠체어 사용자가 이용하기 편리하도록 매우 넓으며, 수도 중심 지역은 경사 없이 대체로 평평하다. 특히 백악관, 워싱턴 기념비, 링컨기념관, 제퍼슨 기념관, 박물관 등 세계적으로 유명한 관광 명소에 휠체어 사용자 역시 쉽게 접근할 수 있다. 이외에도 △접근 가능한 대중교통 시스템 구축, △고령자, 장애인을 위한 'ALL-IN!(2015-2020 Accessibility in the National Park Service)' 정책 등 무장애 관광 선진지다운 면모를 보이고 있다. 

윤 교수는 "독일의 '에이펠(Eifel)' 국립공원 탐방 프로그램', 호주의 '도해법'ㆍ'워킹트랙 등급 시스템', 일본의 '유니버설 투어리즘', 캐나다의 무장애 안내 체계 'Access Now', 영국의 'HCS(Holiday Care Service) 등금 시스템' 등 수많은 우수 사례가 존재한다"며 "우리나라에서 벤치마킹할 만한 가치가 있는 제도들"이라고 말했다.

국내 무장애 관광을 위해 윤 교수는 "우선 관광 전-관광지-귀가까지 접근성을 고려한 종합적 관광 디자인이 필요하다. 무장애 관광 전문인력 육성 및 서비스 제공도 중요한 요소"라면서도 "무엇보다 사람들의 인식 전환이 절실하다. 여가, 문화, 관광을 누릴 권리가 인간의 기본권이라는 사실을 인식하고 글로벌 사회에 발맞춰 시대적 흐름과 변화에 대응해야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한국접근가능한관광네트워크 대표이자 휠체어 장애인 당사자 전윤선 대표는 "요즘 트렌드는 호캉스(호텔과 바캉스를 합친 신조어)다. 하지만 장애인 등 관광약자에게는 먼 얘기"라며 "수영장, 사우나, 바비큐장, 피트니스 등 호텔 내 많은 부대시설의 접근성이 떨어지는 것이 현실"이라고 말했다. 전 대표는 "편의객실 정보에 대한 접근성이 떨어지는 것은 물론, 이용자가 직접 보고 확인하지 않는 이상 정확한 정보를 취할 수 없다"며 "객실 내 편의시설도 제대로 구비돼 있지 않다"고 호소했다.

11월 12일 서울 여의도 이룸센터 이룸홀에서 '무장애 관광 정책의 혁신과 비전 세미나'가 열렸다. ⓒ소셜포커스
 11월 12일 서울 여의도 이룸센터 이룸홀에서 '무장애 관광 정책의 혁신과 비전 세미나'가 열렸다. ⓒ소셜포커스

한국장애인관광협회 홍서윤 대표도 말을 보탰다. 홍 대표는 "국내에서도 제도적 변혁과 함께 관광분야의 접근성 문제 제기, 유럽연합의 장애 인식 촉진 등 세계적인 흐름에 맞추어 제도 도입 속도가 빨라진 것은 사실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무장애 관광은 여행사슬(Travel Chain)이나 연결망이 원활하게 구축되지 않고 있다는 논쟁이 계속되고 있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홍 대표는 "하지만 무장애 관광은 복지 영역으로만 해결 가능한 문제가 아니다. 문화, 예술, 도시, 정책 등 복합적 요소가 함께 작용해야 한다. 환대산업이나 관광산업에서 해결할 수 없는 영역이라는 점에서 여전히 개선해야할 부분이 많다"고 말했다.

거시적 접근과 협의적 접근에 대한 명확한 구분이 중요하다는 점도 지적됐다. 무장애 관광 전문인력이나 무장애 관광지 인증제와 같은 '보여주기식' 제도에 대한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는 것. 홍 대표는 "인위적 시장을 구축하거나 무장애 관광을 별도 영역화하기 보다는 산업과 시장이 자생적으로 영역을 확대해 나갈 수 있는 간접적이고 유연한 제도적 뒷받침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대한민국의 무장애 관광은 시대적 흐름에 따라 급진적으로 발전을 거듭해 왔지만, 결코 무시할 수 없는 부작용도 발생했다. 무장애 관광 혹은 모두를 위한 관광이라는 형식의 또 다른 칸막이를 만들어서는 안될 것"이라며 "자생적 환류를 이끌어 내는 것이 핵심이다. 제도의 안착과 더불어 긍정적 사회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산업'과 '시장'의 냉소를 해소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주장했다.

해외 선진 사례에 힘입어 국내에서도 접근가능한 관광을 위한 움직임이 계속되고 있다. 서울다누림관광센터는 '누구나 여행하기 편리한 도시 조성으로 시민 행복 증진'을 목표로 장애인ㆍ고령자ㆍ임산부 및 영유아 동반자 등 관광약자의 여행기회를 확대하고 시민행복지수를 향상시키기 위해 마련됐다. 서울다누림관광센터 정영만 센터장은 "관광약자의 물리적 시설 및 정보 접근성 보장을 위해 현재 다누림 시티투어 버스, 다누림 관광버스 대여, 접근성 개선 사업, 유니버설 관광시설 인증제 등을 시행하고 있다"며 "앞으로도 '모두가 함께 누리는 여행의 즐거움'이란 뜻을 담은 '다누림'의 이름에 걸맞게 관광약자를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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