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포커스] 우영과 제재의 결혼 이야기
[무비포커스] 우영과 제재의 결혼 이야기
  • 김윤교 기자
  • 승인 2019.11.28 14:3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영화 '나비와 바다' / 박배일 감독/ 2013년 1월 24일 개봉
제 16회 부산국제영화제(BIFF) 비프메세나상 수상작
중증장애인 연인 통해 결혼 조명
영화 '나비와 바다' 스틸컷. (출처=네이버 영화)
영화 '나비와 바다' 스틸컷. (출처=네이버 영화)

[소셜포커스 김윤교 기자] = 결혼은 막막한 바다를 건너가는 일과 같은지도 모르겠다. 김기림의 시 ‘바다와 나비’를 읽다보면 그런 생각이 든다. 그 시에 ‘아무도 그에게 수심을 일러준 일이 없기에/흰 나비는 도무지 바다가 무섭지 않다’라는 구절이 있다. 이 영화를 만든 감독이 김기림 시에 영향을 받았는지는 정확하지 않으나 아무래도 그렇지 않았을까 짐작한다.

우리가 그 바다의 깊이와 거센 파도의 정도를 알았더라면 쉽게 결혼 결정을 못했을 수도 있다. 반면 요즘은 이 바다에 대한 정보가 너무 많아졌다. 모르고는 건널 수 있어도, 알고 나서는 쉽게 엄두가 안 나는 것, 그것이 결혼이라는 바다라고 한다면 억지일까?

박배일 감독의 영화 ‘나비와 바다’는 뇌병변 장애를 가진 남녀의 결혼 과정을 다뤘다. 바로 신랑 우영과 신부 제재(본명 재년)의 이야기다.

우영은 8년간의 연애를 마치고, 이제는 결혼하고 싶다. 하지만 제재는 처음 청혼을 받았을 때의 설레임은 어디로 갔는지 걱정만 한 가득이다. 몸이 건강한 사람도 어려워하는 결혼. 그런데다가 불편한 몸을 갖고 있는 자신이 시댁에 들어가 지낸다는 것. 이 모든 것이 결혼을 주저하게 한다. 사랑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을 제재도 아는 것이다. 두 사람만 좋아서 될 일이라면 누가 고민을 한단 말인가.

영화 주인공 강우영(좌측)씨와 노재년(우측)씨. (출처=네이버 영화)
영화 주인공 강우영(좌측)씨와 노재년(우측)씨. (출처=네이버 영화)

시집을 보내야 하는 제재 어머니의 심정과, 새 사람을 받아들여야 하는 우영 어머니의 마음도 엿들을 수 있다. 아무리 못해도 시부모님 이불이라도 한 채 좋은 것으로 마련해서 보내고픈 신부 어머니의 마음. 내 아들도 건강하지 못한데, 장애를 갖고 있는 며느리를 받아들여야 하는 것은 뭔가 보살펴야 하는 아이 하나가 더 늘어난 것 같은 제재 어머니의 마음. 보내는 사람과 받아들이는 사람의 입장이 어떻게 다른지 들려준다.

한 여자와 한 남자가 만나서 결혼에 이르는 과정은 누구랄 것 없이 비슷하다. 부모의 입장 역시 마찬가지인데 다른 것이 있다면, 좀 더 건강한 상대를 만났으면 하는 점이다. 말을 조금만 더 잘했으면 하고 바란다거나, 몸이 더 튼튼해서 좀 더 케어를 해줄 수 있는 배우자였으면 바라는 속마음이 좀 다른 점일 것이다.

영화 '나비와 바다' 스틸컷. (출처=네이버 영화)
영화 '나비와 바다' 스틸컷. (출처=네이버 영화)

이 영화를 끌고 가는 것은 남자 주인공 우영의 목소리지만, 실상 결혼을 함에 있어서 가장 불안한 심리적 요소들을 보여주고 있는 것은 제재이다. 우영은 오빠가 무조건 잘할 테니 모든 것 걱정하지 말고, “오빠만 믿어”라고 말하지만 적장 제재는 걱정 투성이다. 정상인이 아닌 몸으로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 하는 것은 도무지 자신이 없는 까닭이다.

결혼을 망설이고 고민하는 제재에게 주변 지인은 이렇게 말하기도 한다.

“재년(제재)아 사람이 살다보면 맨날 걱정한다고 해서 해결 안 된다. 사랑하는 사람 있으면 결혼해서 살아가다보면 또 해결이 된다. 경제적이라던가 이런 것도 살아보면 세상에 좋은 사람도 많아가 도우는 사람도 있고 이러다보면 서서히 해결이 된다. 너무 큰 걱정하지 마라”

영화 '나비와 바다' 스틸컷. (출처=네이버 영화)
영화 '나비와 바다' 스틸컷. (출처=네이버 영화)

꽃 피는 봄, 놀이공원에서 데이트 하던 시간과 갈대가 흔들리는 계절을 지나 다시 꽃 날리는 봄까지. 제재는 걱정이 많았다. 그런 제재를 위해 우영은 정성스런 편지를 쓰기도 하고, 몇 년 지나면 주름이 많아져서 아무도 쳐다보는 사람이 없을 거라며 협박 아닌 협박을 해 보기도 한다. 그러다가 또 반지를 끼워주며 프로포즈를 하고 공개 이벤트도 한다.

한 사람을 배우자로 맞이하려는 설레는 과정 속에 우영은 아버지의 죽음을 경험한다. 인생에 있어서 기쁨과 슬픔이 교차하는 지점이 우리 삶 속에는 무수히 존재한다. 누군가는 죽고 누군가는 태어나며 만나고 이별한다. 누구도 죽음의 앞길을 막을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아버지, 솔직히 이날 이때까지 아버지하면 진짜 무서운 존재였거든요. 그래서 아버지랑 같이 밥 먹는 일도, 같이 말을 나누거나 이런 것도 저는 무서웠어요. 하지만 지금까지 아버지가 저에게는 든든한 기둥과 같았어요. 이제 엄마하고 동생들하고 잘 살아갈 테니까 아무 걱정 말고 편안한 곳으로 가서, 하늘에서도 든든한 버팀목으로 우리 사형제 살아가는 모습 지켜봐 주세요. 실망시키지 않을 테니까」

                                                                                    - 우영의 대사 中에서 -

계절이 지나가는 만큼 제재는 생각이 많았다. 그 고민의 시간을 다 보내고 둘은 드디어 결혼을 결심한다.

우영 씨는 재년 씨의 어디가 좋았을까? 반달모양 눈웃음에 반한 건 아닐까? 보기만 해도 따라서 기분이 좋아지는 그런 웃음이다. 한 남자와 한 여자가 만나서 하나가 된다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다. 세월이 바뀌었다고는 하지만 가부장적인 요소가 여전히 남아 있는 한국 사회에서의 결혼은 더욱 그럴 지도 모른다.

이들의 결혼 이야기를 쫓아가다보면 우리가 무엇 때문에 결혼을 망설였는지 또 어떻게 결혼에 이르게 됐는지 돌아보게 된다.

사실 바다를 건너는 것은 필수가 아닌 선택이다. 하지만 건너본 자만이 알고 있는 풍경이 있지 않을까 싶다. 우영과 제재가 시퍼런 바다를 파란 꽃밭을 지나듯 웃으며 건너가기를 바란다.

영화 '나비와 바다' 홍보 포스터. (출처=네이버)
영화 '나비와 바다' 홍보 포스터. (출처=네이버)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