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중증장애인 노동자를 죽였나?
누가 중증장애인 노동자를 죽였나?
  • 류기용 기자
  • 승인 2020.01.28 17:17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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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 5일 ‘중증장애인 지역맞춤형 취업지원’ 동료지원가 투신
장애인 단체 "중증장애인에 맞는 일자리 사업 개선하라"
‘중증장애인 지역맞춤형 취업지원 시범사업’에 참여했다가 지난해 12월 5일 투신한 故설요한 동료지원가의 분향소가 지난 1월 23일 서울역 대합실에 설치된 모습. ⓒ 소셜포커스

[소셜포커스 류기용 기자] = 지난해 12월 5일. 차가운 겨울 바람 속에 장애인 노동자가 죽었다. 자살이었다. 25살의 꽃다운 나이에 고층 아파트에서 망설임 없이 뛰어내렸다. 그가 동료들에게 마지막으로 남긴 메시지는 ‘미안하다’는 네 글자였다. 그가 극단적인 선택을 한 이유는 무엇일까? 무엇이 그를 죽음으로 내몰았나?

‘중증장애인 지역맞춤형 취업지원 시범사업’에 참여했다가 지난해 12월 5일 투신한 故설요한 동료지원가의 49재에 참여한 전장연 회원들의 모습. ⓒ 소셜포커스

■ 중증장애인 취업지원 시범사업 고용자 故설요한 씨 “죽음에 이르기까지 9개월”

극단적인 선택을 한 지난해 12월 5일. 故설요한 동료지원가는 출근을 했다. 지난해 4월부터 고용노동부(이하 노동부)에서 시범사업으로 실시한 ‘중증장애인 지역맞춤형 취업지원 시범사업’에 고용되어 여수장애인자립생활센터에서 활동한지 9개월이 조금 지난 시점이다.

오전 10시에 출근을 하고 몇 일째 부지런히 실적을 정리하고 있었다. 4월부터 매월 4명씩 취업지원 프로그램 참여자를 발굴하여 1명당 5회씩 만나왔다. 4월부터 11월까지 여수지역 중증장애인 40명을 개별 상담했다. 동료지원가로 월 60시간을 꼬박 채워가며 일했다.

‘중증장애인 지역맞춤형 취업지원 시범사업’에 참여했다가 지난해 12월 5일 투신한 故설요한 동료지원가의 장례식에서 발언하고 있는 여수장애인자립생활센터 직원들의 모습. ⓒ 소셜포커스

정말 최선을 다해 일했다. 상담을 통해 중증장애인들의 취업 의욕을 고취시키고 직업 연계도 열심이었다. 장애인 자조모임을 결성해 장애인들의 사회활동을 지원하며 힘든 시간을 보람으로 이겨냈다. 이렇게 고된 노동으로 매달 받은 월급은 불과 65만9천650원.

바쁜 일정속에서 12월초 지방자치단체와 지역장애인 공단에서 중간 실사를 하겠다는 연락을 받았다. 그동안 진행했던 실적을 정리해야 했다. 하지만 잘 되지 않았다. 실적을 채우지 못하면 기관에서 임금을 반납해야 한다고 했다. 기관에 피해를 끼칠 수도 있다는 압박과 스트레스로 야근이 잦아졌다.

故설요한 동료지원가는 12시경 혼자 점심을 먹고 오겠다며 센터를 나섰다. 그리고 오후1시가 넘도록 센터로 돌아오지 않았다. 이상한 마음에 전화를 걸었더니 경찰이 받았다. 전남병원으로 오라고 했다. 여수장애인자립생활센터 박대희 소장과 사무국장이 서둘러 전남병원으로 향했다. 하지만 이미 그는 대답할 수 없었다.

‘중증장애인 지역맞춤형 취업지원 시범사업’에 참여했다가 지난해 12월 5일 투신한 故설요한 동료지원가의 장례식에 참석한 장애인 활동가들의 모습. ⓒ 소셜포커스

■ 장애인 단체 “1만개 중증장애인 일자리 요구했는데... 1만명 만나라는 정부”

전국장애인차별철폐(이하 전장연)를 비롯한 연대 단체들은 지난해 12월 11일 서울지방고용노동청 앞에서 故설요한 동료지원가의 장례식을 진행했다.

장례식에서 장애인 활동가들은 노동부의 무리한 시범사업 운영 방식을 지적하고, 충분한 예산을 지원하지 않는 기획재정부를 규탄하는 목소리를 높였다.

전장연은 지난 2017년 한국장애인고용공단 서울본부건물을 85일 점거 농성을 진행한 끝에 민관 협의체를 구성을 약속받고, 1년이상 노동부와 줄다리기 협상에 들어갔다. 전장연은 ‘권리중심-중증장애인 기준’ 일자리 사업을 요구했으나 정부는 단계적 일자리를 강조하며 중증장애인 실업자를 위한 일자리 대책으로 ‘중증장애인 지역맞춤형 취업지원 시범사업’을 강행했다.

‘중증장애인 지역맞춤형 취업지원 시범사업’에 참여했다가 지난해 12월 5일 투신한 故설요한 동료지원가의 49재에 참여한 전장연 회원들의 모습. ⓒ 소셜포커스

장애인 활동가들은 동료지원가로 취업한 중증장애인이 ‘실업자인 동료들을 만나서 동료지원 활동을 통해 취업의욕을 고취하여 경제활동을 촉진한다’는 목표 설정은 처음부터 잘못된 목표였다고 지적했다. 중증장애인 일자리를 위해 취업의식을 고취할 것이 아니라 정부 차원의 일자리를 마련하는 노력이 필요했다는 설명이다.

과도한 업무도 문제로 지적됐다. 동료지원가 1명이 월 4명, 연간 48명의 중증장애인 참여자를 발굴해 1명당 5회를 만나는 것이 무리라는 것. 중증장애인을 발굴하여 지속적인 만남을 통해 상담과 자조모임을 진행해야 했다. 그리고 센터에 돌아오면 서류작업이 한가득이었다. 최중증 뇌병변, 발달장애인 동료지원가가 모두 처리하는 것은 어렵다는 지적이다.

불안정한 노동과 수당 방식의 저급한 월급 체계도 수면위로 드러났다. 동료지원가가 48명의 참가자를 발굴하지 못하고 5회의 횟수를 만나지 못하면 실적에서 마이너스 부분이 생겨 지급받는 급여가 줄어들었다. 이런 부담이 동료지원가들의 무리한 노동과 스트레스로 압박했고 죽음까지 내몰았다는 것이다.

이같은 문제의 개선을 위해 전장연은 ▲동료지원가(중증장애인 지역맞춤형 취업지원) 전면 개편 ▲문화예술, 권익옹호 활동에 대한 공공일자리 직무 인정 ▲직장 내 장애인인식개선 교육 제도 전면 개편 ▲최저임금법 제7조(적용제외) 폐지에 대한 정부 발표와 실효성 있는 대안 마련 ▲노동부 중증장애인 일자리 예산 확대 등을 주장하고 나섰다.

또 지난해 12월 11일부터 기획재정부가 건물주인 나라키움저동빌딩에 故설요한 동료지원가의 분향소를 설치하고 중증장애인 노동 문제 해결을 위해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설 것을 요구하고 있다.

‘중증장애인 지역맞춤형 취업지원 시범사업’에 참여했다가 지난해 12월 5일 투신한 故설요한 동료지원가의 49재에 참여한 전장연 회원들의 모습. ⓒ 소셜포커스

■ 고용노동부 “협의하여 진행한 시범사업... 한 해동안 총 3차에 걸쳐 제도 개선했다”

노동부는 큰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중증장애인 지역맞춤형 일자리사업은 장애계의 공공일자리 1만개 요구에 따라 정부와 장애계, 전문가 등으로 구성된 민관 합동TF의 총 7차의 회의를 통해 마련된 사업이라는 설명이다.

또한 해당 사업이 동료지원가로 활동하는 중증장애인의 특성을 고려하여 1일 3시간을 기준으로 월 60시간의 근무조건을 설정하고, 최저임금 이상을 지급했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활동 횟수가 지나치게 많다는 현장 의견을 반영하여 동료지원 활동횟수 10회에서 5회로 완화했고, 동료지원 활동과 연계수당 인정범위의 확대 등 총 3차에 걸친 제도개선도 추진하는 등 제도 운영에 무리한 부분은 없었다는 입장이다.

노동부 관계자는 ”올해부터 동료지원가의 실적 부담에 대한 현장 지적을 반영해 건수를 대폭 축소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한편 노동부는 지난해 동료지원가 1인당 연간 서비스 인원이 48명에서 20명으로 대폭 축소할 방침이다. 그러나 인원 조정이 중증장애인 실적 부담에 큰 영향을 미칠지는 미지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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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칠 2020-01-29 11:10:16
장애인의 삶을 보장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