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수어법'은 있지만, 수어는 없는 '농인의 삶'
'한국수어법'은 있지만, 수어는 없는 '농인의 삶'
  • 류기용 기자
  • 승인 2020.02.04 1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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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수화언어법 공포 4주년 맞아, 청와대 앞 기자회견 진행
법 제정 4년 지났지만, 재난 위기 시 수어통역 제대로 제공되지 않아
농학교에서도 배제되는 수어... 전반적인 개선 필요해
장애인 단체들은 4일 청와대 앞에서 수어를 사용하는 농인의 복지정책 개선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 소셜포커스

[소셜포커스 류기용 기자] = 차가운 영하의 날씨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이하 코로나바이러스)도 농인을 막지 못했다.

장애의 벽을 허무는 사람들(이하 장애벽허물기), 한국장애인연맹(DPI), 동서울장애인자립생활센터, 자립생활지원센터 with, 원심회, 에이블 업 등 장애인 단체들은 4일 청와대 앞에서 수어를 사용하는 농인의 복지정책 개선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특히 이날 기자회견은 ‘한국수화언어법’(이하 한국수어법)이 공포된 지 4주년을 맞았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열악하기만한 청각장애인의 복지 정책을 근본적으로 개선해야 한다는 단호한 손짓이 확인됐다.

■ ‘법은 있지만 수어는 없는’ 현실... 여전히 사각지대에 놓인 ‘농인 그리고 수어’

농인들은 오랫동안 수어를 사용하지 못했다. 가족안에서 수어를 사용하지 못하게 했다. 사회적으로 수어를 사용할 수 있는 서비스 체계도 없었다. 학교에서 가르쳐 주지도 않았다. 수어는 사용하면 안되는 언어였다.

그러던 중 지난 2015년 12월 31일 농인들의 오랜 숙원인 한국수어법이 국회를 통과했다. 그리고 이듬해 2월 3일 법률이 정식 공포됐다. 이제 떳떳하게, 편안하게 어디서든 수어를 사용할 수 있게 됐다고 생각했다.

‘한국수어법’에는 한국수어가 국어와 동등한 자격을 가진 농인의 고유한 언어라고 명시되어 있다. 또 법의 목적을 ‘한국 수화언어의 발전 및 보전의 기반을 마련하여 농인과 한국수화언어사용자의 언어권과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것’으로 규정했다.

법령 제정 후 정부는 수어에 대한 실태조사와 인식개선을 시작했다. 수어교육원과 수어교원 양성과정도 마련했다. 지난해 ‘강원도 산불 사건’ 이후부터는 정부의 정책을 설명하는 브리핑 현장에 수어통역사를 배치하고 공공행사에 수어통역을 제공하기 시작했다.

장애인 단체들은 4일 청와대 앞에서 수어를 사용하는 농인의 복지정책 개선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 소셜포커스

그렇다면 ‘한국수어법’ 제정 이후 정말 농인의 삶은 달라졌을까? 농인들은 아니라고 손을 저었다. 여전히 수어는 당연하지 않다.

올해 민족 명절인 설날 문재인대통령의 인사에서 수역통역은 찾아볼 수 없었다. 급속도로 확산중인 코로나바이러스에도 마찬가지다. 전세계적으로 벌써 사망자만 420여명에 이르고, 확진자는 3만7천명을 넘어섰지만 정부 브리핑이나 안내 동영상 어디에도 수어통역은 없었다. 결국 장애벽허물기는 3일 국가인권위원회에 차별 진정을 제기해야 했다.

장애벽허물기는 3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에 대한 수어통역 서비스를 요구하는 차별진정을 국가인권위원회에 제기했다. ⓒ 소셜포커스

이런 상황은 교육현장도 크게 다르지 않다. 특수학교에서 수어가 가능한 교사 배치는 의무가 아니다. 농학교에서도 수어를 기초로 한 교육이 없다. ‘한국수어법’은 있지만 수어는 찾아볼 수가 없다.

공공기관은 다를까? 공공정보에 대한 접근이나 기관 이용에 있어 수어통역은 ‘하늘의 별따기’ 이다. 수어를 통한 자유로운 의사표현은 당연하지 못한 것이 농인이 처한 현실이다.

장애인 단체들은 4일 청와대 앞에서 수어를 사용하는 농인의 복지정책 개선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 소셜포커스

■ 농인의 손짓 “보편적 언어로 ‘한국수어 정책’ 요구한다”

이날 기자회견에 참석한 장애인 단체들은 현실적인 정책 개선을 요구했다. 특히 농인을 위한 수어 사용환경을 조성하고 법과 제도를 반영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장애벽허물기 김주현 대표는 “한국수어법이 제정된 지 4년을 넘어섰지만 농학교에서 조차 수어를 배제하는 경우가 많다. 수어통역을 받고 싶지만 그러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며 “올해는 교육도 획기적으로 바꾸고 언제 어디서나 수어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도록 즉각적인 개선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청각장애인 대표로 나선 윤정기 활동가의 손짓은 더 단호했다. 윤 활동가는 “수어를 사용하는 농인들도 사람답게 살고싶다”고 주장하며, “수어로 자유롭게 소통할 수 있도록 지원이 필요하다”고 호소했다.

4일 청와대 앞에서 수어를 사용하는 농인의 복지정책 개선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에 참석한 장애인 단체 회원들의 모습. ⓒ 소셜포커스

정부의 이중적 태도에 대한 비판도 이어졌다. DPI 조태흥 정책실장은 “4년마다 정부가 UN에 제출하는 장애인권리협약에는 충분히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고 보고하면서, 실제로 국가적 재난 상황이 발생하면 수어통역 지원은 찾아볼 수 없다”며 “인간다운 삶, 권리 보장을 위해 정당하게 수어를 제공하고 농인의 마음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먼저”라고 강조했다.

장애벽허물기 김철환 활동가는 농인의 열악한 삶을 정부가 대변해 줄 것을 요구했다. 당당하게 대한민국의 국민의 권리로 수어를 이용하도록 지원체계를 마련해 달라고 호소했다.

이를 위해 구체적으로 ▲농교육의 전면적 개선 ▲일상에서 수어통역권 확대 ▲공공문서 등 공공정보의 수어정보 제공 ▲일반학교 수어과목 도입 제도화 ▲청와대 브리핑 현장 수어통역사 배치 ▲시청각 장애인을 위한 전문서비스 시행 등을 요구했다.

이날 김철환 활동가는 “한국수어법 제정 이후에도 여전히 농인들의 삶은 열악하다”며 “정부가 출범할 당시 소외계층 누구나 대접받게 하겠다는 정신을 잊지말고 꼭 실천해달라”고 밝혔다.

한편 이날 기자회견 후 장애인 단체 회원들은 청와대 측에 ‘복지정책 개선 요구서’를 전달하고 조속한 이행을 촉구했다.

기자회견 후 장애인 단체 회원들은 청와대 측에 ‘복지정책 개선 요구서’를 전달했다. ⓒ 소셜포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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