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수궁 돌담길과 정동길… ‘가비’ [2]
덕수궁 돌담길과 정동길… ‘가비’ [2]
  • 전윤선 여행작가
  • 승인 2020.02.14 11: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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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탄의 삶을 살았던 고종황제의 흔적을 찾아서

정동길 여행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지난번엔 고종이 즐겨 먹던 가비에 얽힌 두 남자의 꿈을 이야기 했습니다. 이번 글에도 가비가 가져온 변화의 시대를 방문해 봅니다.

따냐는 조선인이지만 아비가 역적으로 몰려 어릴 때 러시아로 도망친 조선에 대한 애증을 가지 여인입니다. 그러나 고국으로 돌아온 따냐는 고종 옆에서 통역과 시중을 들며 나라를 사랑하고 백성을 걱정하는 고종의 진심을 알아갑니다.

고중은 따냐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중전을 보내지 않았다. 하여 아직 장례도 치르지 않았다. 허나 지금은 조선을 지키는 일만 생각하겠다!”고 했습니다.

아비를 죽음으로 내몬 조선을 원망하고 있었지만 조선인인 따냐는 나라 잃은 조선을 보면서 애증으로 괴로워하며 마음이 흔들립니다. 조국이 없는 민족은 떠도는 바람과 같다는 것을 러시아를 떠돌면서 뼈저리게 느꼈기 때문입니다.

고종황제 모습.
고종황제 모습. ⓒ news1

고종은 따냐에게 조금씩 마음을 열기 시작했습니다. “사는 게 죽는 것보다 치욕스럽다 해도 나는 살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조선을 대한제국으로 만들어 황제가 될 것이라고 따냐에게 선포합니다. 고종에게 마음을 연 따냐는 고종이 좋아하는 커피를 볶으며 말합니다.

“가비를 볶을 때는 과일과 꽃향기가 섞여나고 뜨거운 물에 우려낼 때는 은은한 향을 내면서 가비만의 고소한 향이 납니다. 가비는 검고 쓴맛이 강해서 독을 타는데 이용되기도 합니다”

마음을 연 따냐는 고종이 좋아하는 가비를 기미해 고종에게 건넵니다. 따냐는 어릴 때 러시아로 도망쳐 그곳에서 성장했습니다. 따냐의 직업은 무기와 가비를 밀거래 하는 밀거래 상입니다.

가비를 건네며 밀거래 하던 때를 회상합니다. 그날도 따냐는 기차 안에서 밀거래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단속하는 러시아 군에게 잡혀 죽음 직전에 조선인 ‘일리치’에게 극적으로 구조 됩니다.

따냐와 일리치는 러시아와 중국, 일본을 오가면서 무기와 가비 등 밀거래 할 만한 물건을 조선이나 일본 등으로 반입하게 됩니다. 그들의 몸은 타국에 있었지만 나라를 되찾아야 한다는 일념으로 자금을 만들었고 독립군에게 보내집니다.

일리치에게 구조된 따냐는 사랑에 빠졌고 밀거래 자금을 조선 의병에게 보냅니다. 산속에 숨어 의병을 도와 일하다가 러시아 군에게 발각돼 총살 직전 일본군에 구출됩니다.

일본군은 따냐의 목숨을 담보로 일리치에게 의병 소탕을 지시합니다. 어쩔 수 없이 둘은 일본이 시키는대로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돼 버렸습니다.

일본군은 따냐에게… 러시아에 밀사로 온 ‘민영환’에게 의도적으로 접근하도록 하고 러시아 공관에서 통역사로 일하게 됩니다. 따냐와 고종은 그렇게 만나게 됩니다. 한 남자에게 가비는 사랑이고 또 다른 한 남자의 가비는 제국의 꿈이었습니다.

정동길은 가비와 연결된 한국 최초의 카페가 있는 곳입니다. 기록에 의하면 1894년 고종에게 처음으로 커피를 대접한 장소는 손탁 여사가 세운 ‘손탁호텔’ 1층에 있는 커피숍이었다고 합니다.

호텔 커피숍은 ‘정동구락부’라는 친목단체에서 활동하는 정치세력들이 이용했다고 합니다. ‘정동구락부’엔 민영환, 윤치호, 이상재, 서재필, 이완용 등이 있었고 외국인으로는 미국공사 실과 프랑스영사 플랑시를 비롯해 당시 한국 정부의 고문으로 초빙된 다이와 리젠드르, 미국인 선교사 언더우드와 아펜젤러 등이 있었습니다.

구락부의 주요 회원으로 일본인들이 전혀 없는 것을 볼 때, 열강 세력의 성쇠속에서 친구미파 인사와 주한 구미 외교관들의 연대를 위한 연락기관으로서의 역할을 행하였던 것 같습니다.

이들은 손탁호텔 커피숍에서 주로 만남을 가졌습니다. 그러니 한국의 커피 골목은 정동길에서부터 시작된 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손탁호텔 자리는 지금의 이화박물관과 존슨박물관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화박물관. ⓒ 소셜포커스

이화박물관 안에는 유관순 열사의 빨래터도 있습니다. 당시 열여섯 정도의 꽃다운 소녀는 나라 잃은 심정이 어떻게 다가왔을까요.

어른들이 생각하기에 너무 어린나이에 무엇을 알겠느냐고 하겠지만 십대는 십대만의 시대적 고민을 하고 자신들의 미래에 대한 고민도 하고 있었을 겁니다. 저도 그랬습니다.

나라에 큰일이 생기면 걱정하는 건 나이와 상관이 없습니다. 게다가 어려운 시대이다 보니 지금의 청소년처럼 한층 성숙한 생각을 했을 거란 짐작이 됩니다.

나라 걱정에 가족의 끼니와 안위도 걱정되었을 겁니다. 3·1운동에 앞장서며 일제 강점기에 저항의 깃발을 높이든 유관순의 열여섯 삶은 누구라도 추모하지 않을 수 없을 겁니다. 정동길은 그런 길입니다. 백년 전 숱한 아픔을 품고 있는 저항의 길이기도 하고 가비의 문화를 처음 전파 한 곳이기도 합니다.

이화박물관 안 유관순 열사가 빨래하던 우물
이화박물관 안 유관순 열사가 빨래하던 우물. ⓒ 소셜포커스

그래서 정동길 카페엔 유난히 가비의 향이 짙은가 봅니다. 가비향에 이끌려 카페 루소로 들어섭니다. 카페 루소는 캐나다 대사관 바로 옆 정동빌딩에 있습니다.

정동빌딩은 누구나 접근 가능하게 유니버설 하게 디자인된 착한 빌딩입니다. 카페엔 가비를 볶는 냄새가 가득합니다. 가비 향에 이끌리지 않을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가비는 악마의 음료라고 하나 봅니다.

향에 유혹당해 가비를 마셔보면 극과 극을 오간다고 해서 그런 별칭이 붙었나 봅니다. 쓴맛을 즐기는 사람은 가비의 진한 맛을 선호하지만, 쓴맛을 즐겨하지 않는 사람은 사약 같다고도 합니다.

카페마카다(macada)
카페마카다(macada). ⓒ 소셜포커스

가비가 흔하지 않았던 7080 세대는 일명 다방 커피 타는 기술도 중요했다고 합니다. 커피 두 스푼에 프림 두 스푼, 설 탕 세 스푼 이렇게 커피를 믹스하면 맛도 기가 막힌 다방커피가 만들어지는 거죠.

예전엔 집안에 예쁜 커피 잔 세트를 들여놓고 손님이 오면 귀한 음료 가비를 달달하게 제조해 내왔습니다. 저도 그때의 기억 때문인지 달달한 가비 맛이 훨씬 좋습니다.

그렇지만 가비 전문점에서는 다방 커피보다는 그윽하고 연한 아메리카노 가비에 달달한 도넛츠와 쿠키를 곁들어 먹는 것을 선호합니다. 정동길 여행에 빼놓을 수 없는 가비는 악마의 음료라는 별칭처럼 가비의 달달함과 사약 같은 쓴맛의 역사가 함께 공존합니다.

커피자연주의 루소 카페에서 맛보는 연한 아메 리카노와 따듯한 레몬차, 부드러운 케이크.
커피자연주의 루소 카페에서 맛보는 연한 아메 리카노와 따듯한 레몬차, 부드러운 케이크. ⓒ 소셜포커스

 

• 가는 길 : 지하철 1호선, 2호선 시청역
• 먹거리 : 유림(50년 전통의 가락국수집, 지하철 10번 출구) 
             부대찌개 덕수정(정동길) 
             자연주의 카페 LUSSO(캐나다 대사관 옆 정동 빌딩 1층)
             카페 다락(서소문 서울시청사 13층)
• 장애인화장실 : 시청역, 서소문 서울청사 1층,
                      성프란시스코성당 작은 형제회, 정동빌딩 1층
• 무장애여행문의 : 한국접근가능한관광네트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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