휠체어 타고 계단을 올라가라?
휠체어 타고 계단을 올라가라?
  • 조봉현 객원논설위원
  • 승인 2020.03.09 16: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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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공서 엘리베이터 없어 공무원 생활 포기해야하나?
[장애인 등 편의법] 시행령 개정 위한 입법투쟁 15년 계속...
국민행복법령만들기 아이디어 공모전에 입법제안서 제출
현행 법규정 모순 투성이... "독소조항은 당연히 개선되어야 한다"

우리나라에 「장애인·노인·임산부 등의 편의증진 보장에 관한 법률」(이하 장애인 등 편의법)이 제정된 지 20년이 넘었다. 그렇지만 아직도 장애인에게는 우리사회의 곳곳에 장벽이 너무 많다. 뿐만 아니라 법령에도 허점이 많다.

장애인 등 편의법에는 장애인 등 이동약자들이 공중시설을 이용하고 일상생활을 하는데 편의를 도모하기 위한 여러 가지 사항들이 규정되어 있다. 편의를 제공하는 시설은 장애의 정도가 심한 중증 장애인에게는 편의시설이라기 보다는 절박한 생존시설이다.

이중에서 공공건물의 이동편의에 대하여 대상시설별 편의시설 종류 및 설치기준을 명시한 시행령 별표 2에는 아래와 같이 규정되어 있다.

3. 공공건물 및 공중이용시설

 가. 일반사항

 (6) 장애인 등의 통행이 가능한 계단, 장애인용 승강기, ......

 (가) 장애인 등이 건축물의 1개 층에서 다른 층으로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그 이용에 편리한 구조로 계단을 설치하거나 장애인용승강기, 장애인용 에스컬레이터, 휠체어 리프트 또는 경사로를 1대 또는 1곳 이상을 설치하여야 한다. 다만, 장애인등이 이용하는 시설이 1층에만 있는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한다.

위 규정을 보면 2개 층 이상의 공공건물에 대하여 장애인이 다른 층으로 편리하게 이동할 수 있도록 계단이나 승강기 중 하나를 설치하도록 되어 있다.

“2층 이상 공공건물은 계단과 승강기 중 하나만 설치해도 된다.” 이 규정이 어떻게 장애인 편의시설일까? 지체장애인에게 있어서 계단은 공포에 대상이다. 2층 이상의 건물에 계단을 설치하는 것은 [장애인 등 편의법]이 아니더라도 필수적으로 설치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굳이 여기에 명시할 필요도 없다. 승강기를 의무적으로 설치하도록 명시해야 한다.

그리고 장애인 이용 시설이 1층에만 있는 경우에는 그것마저 제외해도 된다는 규정은 또 무슨 말인가? 장애인이 공공건물에서 근무할 수도 있고, 의무고용제도도 있다. 그때도 장애인은 2층 이상을 올라가지 말라는 것인가?

필자는 과거 부산에서 30년 이상 부산국세청 소속 공무원으로 공직생활을 했다. 당시 부산국세청에는 산하 20여개의 세무관서가 있었지만 10여 년 전까지 엘리베이터를 갖춘 청사는 단 한군데도 없었다. 지금도 승강기를 갖춘 청사는 절반에 불과하다. 다른 기관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장애가 있는 필자는 직장에 근무하면서 매일같이 2~3층을 계단으로 오르내리는 일은 사투를 벌이는 지옥이었다. 사람들의 눈을 피해 항상 비상계단을 이용해야 했다. 필자가 지금처럼 휠체어를 이용할 정도로 장애가 심했다면 아예 근무를 할 수가 없었을 것이다. 그때 공직생활을 하면서 평생소원이 엘리베이터를 갖춘 직장에서 근무해보는 것이었다.

필자가 잘 아는 어떤 장애인은 공무원 시험에 어렵게 합격하고는 배치된 곳에서 근무를 시작했다. 그렇지만 근무처의 건물이 관공서임에도 엘리베이터가 없어 공무원 생활을 얼마 하지 못하고 눈물을 머금고 그만 둘 수밖에 없었다.

1998년도에 [장애인 등 편의법]이 도입되었다. 이 법 제1조에는 장애인 등이 일상생활에서 안전하고 편리하게 시설과 설비를 이용하고 정보에 접근할 수 있도록 보장함으로써 이들의 사회활동 참여와 복지 증진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위와 같은 말도 안되는 조항으로 인하여 장편이 도입된 이후로도 수십 년이 흘렀건만 많은 장애인들이 층간 이동권을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 심지어 때로는 어렵게 구한 생업까지도 포기해야 하는 상황이다.

공공기관들이 장애인 의무고용을 준수하지 못하여 납부하는 장애인 고용부담금이 매년 수십억 원씩 쌓여가고 있다. 민간기업까지 하면 수천억 원이라고 한다. 의무고용 미달에 대한 부담금 부과도 중요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장애인들이 고용되어 제대로 일할 수 있는 편의시설을 갖추는 것이다. 편의시설 중에서 이동권 보장은 가장 필수적인 요소이다.

2층 이상인 건물임에도 승강기가 없는 많은 관공서는 민원실을 1층에 배치했다는 이유만으로 장애인 편의시설을 갖춘 것으로 끝내 버리는 경우가 많다. 이에 대하여 장애인 편의시설 주관기관에서도 더 이상 문제를 삼지 않는다.

필자가 이 처럼 엉터리 법령을 개정하여 달라고 입법투쟁을 시작한 것은 2005년도이다.

당시에 아무리 보아도 이상하여 이 법을 관장하는 보건복지부에 질의를 했다. 그런데 역시나 계단이나 승강기 중 하나만 설치하도록 규정된 것이 맞는다는 회신이 왔다.

그래서 필자는 다음 단계로 그러한 독소조항을 고쳐달라고 건의서를 보냈다. 현행 규정에서 계단은 편의시설이 될 수 없고, 당연히 설치되는 것이니 [장애인 등 편의법]에서는 “계단 또는”이라는 말을 빼고 승강기만 의무화 하고 단서규정도 삭제할 것을 요청했다.

보건복지부는 답장(재활지원과-3078, 2005.9.30.)을 통해 “5층 이하인 건축물에 승강기와 계단을 모두 의무화하는 사항에 대해서는 규제영향 평가가 선행되어야 하기 때문에 개정이 불가능하다”고 답했다.

규제영향 평가라고 하는 것은 국가에서 국민에게 새로운 의무사항을 명시하는 법령을 제정할 경우 국민에게 함부로 규제를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 마련한 제도로 알고 있었다. 때문에 당시 규제영향 평가를 담당하는 부처에 질의를 하였다. 그랬더니 국무조정실에서 다음과 같은 답장(2005.10.26.자)이 왔다.

필자는 이 회신을 첨부하여 다시 보건복지부로 [장애인 등 편의법] 시행령 개정을 위한 탄원서를 냈다. 그러자 이번에는 다음과 같이 더욱 이해할 수 없는 회신을 보내왔다.

필자는 일반 건물에 대해서 승강기 설치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었다. 국가가 건물주인 공공건물에 대해서 승강기 설치를 의무화하여 달라는 것이었다.

필자는 혼자서 정부를 상대하는 것보다 전문기관이나 단체와 공조를 하고 싶어서 장애인권익 연구기관을 방문하여 대표에게 나의 의견과 그동안 정부와 주고받은 각종 문서를 넘겨주었다. 그분 역시 나의 설명을 듣고 이 법의 독소조항을 인정하였지만 정부를 상대로 하는 법 개정에는 별다른 관심이 없어 보였다.

나는 또 모든 자료를 챙겨서 아는 장애인 국회의원을 찾아갔다.(십 수 년 전의 일임) 그 국회의원은 바빠서 그랬는지 설명을 자세히 들으려 하지 않고, 보좌관을 부르더니 잘 얘기해보라고만 했다. 그런데 그 국회의원도 그 보좌관도 그 이후 별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그 이후에도 기회가 있을 때마다 수많은 장애인단체나 장애인 인권운동을 한다는 시민단체들도 찾아다녔지만 문제점을 공감하면서도 역시나 입법추진에는 기대만큼 나서주지 않았다. 그 이후에도 보건복지부에 몇 번 더 진정을 해 보았지만 소용이 없었다.

그러는 동안 “공공기관에 승강기를 설치하지 아니하여 이용하는 장애인에게 불편을 준다면 이는 장애인 차별행위”라는 국가인권위원회 시정권고 사례도 몇 차례 나왔다.(국가인권위원회 06진차50, 2006.1.10., 10진정0371600, 2011.8.22., 10진정0140200, 2011.4.26. 등)

2017년도에는 국가인권위가 주관하는 장애인차별금지법 관련 토론회가 인권위 지방사무소별로 열렸다. 전주 토론회에 토론자로 참석해서 그러한 문제점을 집중적으로 제기했고, 다른 장애인 단체 등의 토론회에도 참석하여 문제제기 및 법령개선을 제안했다. 그렇지만 대부분의 토론회가 이벤트 행사로 끝나버리는 경우가 많다 보니 사회적 호소 이상의 결실을 맺기는 힘들었다.

이렇게 장애인 인권 침해를 막기 위한 외로운 입법투쟁은 무려 12년이나 계속되었다.

그러던 중 2017년도 법제처 주관 국민행복법령만들기 아이디어 공모전에 입법제안서를 제출하였다. 그 내용 중 일부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나는 이 제안을 제출하면서 과거에 보건복지부가 비용문제 등을 이유로 명백히 모순된 법령마저 개선을 거부하였던 점을 감안하여 아래의 논리를 추가했다.

[장애인 등 편의법]이 제정된 20년 전에는 재정문제를 우려하여 ‘계단 또는 승강기’로 완화한 것으로 생각되는바, 그로부터 20년 가까이 지난 지금의 국가 경제력(예산 6배 증가, GDP 4배 증가, 유가증권 시가총액 7배 증가)으로 보아 충분히 감당할 상황이 되었으며, 최근 신축하는 공공건물은 2층만 되어도 대부분 승강기를 설치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한적한 도로의 육교에도 대부분 승강기가 설치되는 등의 현실을 보더라도 이제는 재정문제를 떠나 현행과 같은 모순이자 독소조항은 당연히 개선되어야 합니다.

그 결과 법제처는 2017.8.22.자로 필자의 제안을 채택한다는 통지를 보내왔다.

그러나 [장애인 등 편의법]을 담당하는 부처는 보건복지부였다. 따라서 법제처의 입법제안 채택으로 법이 개정되는 것은 아니었다. 법 개정을 위해서는 보건복지부가 시행령 개정절차에 착수해야만 한다.

법제처는 필자의 입법제안을 채택하면서 보건복지부와 협의한 결과 다행히 보건복지부에서 개선과제로 선정하겠다는 의사를 보였다고 필자에게 설명해 주었다.

이로써 필자의 입법투쟁이 시작된 지 12년 만에 장애인의 층간이동권 보장을 위한 [장애인 등 편의법] 관련 조항이 개정될 실마리가 풀리나 싶었다. 그러나 그게 아니었다.

법제처가 필자의 입법제안을 채택했다는 통지를 받고도 3년 6개월이나 지났다. 입법투쟁을 시작한 해로부터는 15년째이다. 그렇지만 아직까지 이 법령이 개정될 기미는 보이지 않고 있다.

그동안 보건복지부의 담당자도 여러 번 바뀌었을 것이다. 필자는 최근 보건복지부에 [장애인 등 편의법]의 독소조항을 개선하여 이동약자에 대한 이동권을 보장해달라고 국민신문고를 통하여 다시 한 번 건의서를 보냈다. 이번에는 잘못된 법령이 바로잡아지기를 기대해 본다.

휠체어를 타고 계단을 올라가라?
휠체어를 타고 계단을 올라가라? ⓒ 소셜포커스

 

필자의 입법제안에 대하여 채택한다는 법제처의 회신
필자의 입법제안에 대하여 채택한다는 법제처의 회신(국민신문고 홈페이지 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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