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병 재난에 대한 장애인의 두려움
질병 재난에 대한 장애인의 두려움
  • 서인환 객원논설위원
  • 승인 2020.03.24 14: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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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난… 무방비 상태에 놓이는 장애인은 항상 뒷전

2002년 8월 초에 서울에 장마가 쏟아졌다. 당시 나는 노원시각장애인복지관에서 일하고 있었다. 여름 방학을 맞아 맹학교 교사들을 대상으로 보행과 체육교육 연수를 실시하고 있었다. 밤새도록 비가 퍼붓더니 출입구 앞 거리에 빗물이 차올라 있었다.

아침에 식사를 마치고 인원점검을 하는데, 연수 참가자 중 시각장애인 교사 한 분이 보이지 않았다. 전화를 해 보니 차를 타고 집으로 가는 중이라고 했다. 비가 많이 와서 불안해서 긴급하게 집으로 가는 중이라고 했다.

나는 몹시 서운했다. 일기예보에 비가 많이 온다고 하고, 지금까지 온 비로도 불안하기는 하겠지만, 그렇다고 혼자 살겠다고 사전에 말도 하지 않고 혼자서 도주하듯이 집으로 가 버릴 수 있는가! 선생님이라는 분이 이렇게 사회생활을 하면 되겠는가 싶었다.

그날 밤 계속되는 비로 인하여 동부간선도로는 하천의 물이 넘쳐서 복지관의 지하실이 물에 잠겼다. 3천톤의 물이 지하실에 가득 찼는데, 지하실 창문으로 흘러들어간 물이 얼마나 수압이 높았던지 지하실 출입구 방화문 철문이 휴지조각처럼 떨어져 있었다. 지하실에 물이 차는 데에는 불과 5분밖에 걸리지 않았다. 식당 직원은 하마터면 탈출도 못할 뻔하였다.

이런 일이 있고서야 나는 먼저 집으로 간 선생님 심정이 이해가 되었다. 얼마나 다급했으면 그랬을까? 시각장애인 입장에서는 재난 시에 누구의 도움도 보장할 수 없는 상황이 올 수 있다는 불안과 뉴스에서 알려주는 긴급 상황, 그리고 밖에 나가보니 불이 아스팔트 위에 가득차서 발이 빠지는 상황에서 다시 복지관 안으로 들어오지 않고 바로 차를 불러 가야만 하는 심정이 이해가 되었다.

앞이 보이지 않으니 상황 파악이 힘들었을 것이고, 평소 방향을 잡기 위한 랜드 마크가 물에 잠겼으니 보행을 위한 정확한 방향조차도 잡지 못했을 것이다. 방향을 잘못 잡으면 하수구에 그냥 빠질 수도 있고, 정말 생명의 위협을 느낄 상황이 온다면 가장 불리한 자신을 미리 보호하고 싶은 절박함도 있었을 것이다.

장애인은 재난 시에는 가장 어려운 상황에 놓이게 된다. 그리고 재난에 희생될 가능성도 비장애인에 비해 몇 배 더 높아진다. 행동을 빨리 할 수 없는 상황도 오고, 인지나 대처 방법에 한계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누군가가 자신의 대처도 힘든데 자신을 희생하면서 장애인을 보호해 줄 상황이 될지는 불확실하다. 그러니 일단 피하고 보는 것이 오히려 고마운 일이었다.

요즘 코로나19로 전 세계가 신음하고 있다. 이런 때에 장애인은 더욱 질병에 대해 두려움을 느낀다. 먼저 기저 질병을 가지고 있고, 영양 상태가 좋지 않아 면역력이 약하니 일단 걸리면 치명적이다. 마스크 하나 사려고 해도 약국에서는 장애인은 대리인이 살 수 있도록 한다고는 하지만 공급 물량이 충분하지 않으니 구한다는 보장이 없다.

누군가를 만나면 혹시라도 확진자 접촉을 하게 되어 자가 격리 대상이 된다면 장애인은 혼자가 되는 것이 몹시 두렵다. 가족이 있다면 그 가족은 장애인의 신변처리와 일상생활을 도와주게 되는데, 가족이 각자가 따로 분리해서 생활하는 것이 불가능하므로 온 가족이 위험에 빠지게 된다.

일단 격리자가 되면 활동지원인도 서비스를 거부하거나 다른 핑계를 대고 오지 않을 것이다. 아무리 돈이 좋아도 위험한 질병감염을 감수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리고 같이 격리자가 동시에 되어버릴 것이다. 24시간 활동지원 서비스 비용에다가 추가 비용을 준다고 하더라도 출퇴근 하지 않고 격리 또는 감금 수준의 일을 하려는 자를 즉시 구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할 것이다.

그리고 생활치료센터나 병원, 격리시설로 간다고 한다면, 그곳에서는 활동지원 서비스가 제공되는지도 알 수가 없으니 불안하다. 그리고 그 곳에 편의시설이 되어 있는지도 알 수가 없다. 화장실에 휠체어가 들어가는 장애인 객실이 되어 있는 곳이 거의 없을 것이고, 식사야 도시락으로 넣어주는 것을 먹고 견딘다고 하지만 그 무료함과 불편함을 견디기는 정말 힘들 것이다.

그러니 불안하다. 불안을 넘어 두렵다. 그렇다고 이러한 어려움을 위한 사회적 안전장치가 있는 것도 아니니 더욱 두렵다. 장애인은 항상 목숨을 걸어놓고 살아야 한다. 이런 질병재난과 같은 사태가 벌어지면 그 두려움이 엄습하여 스트레스를 받고 우울증에 걸리기 십상이다.

최근 들어 그나마 화재 등의 재난에 대해 재난안전본부가 조금의 관심을 가져주는 것은 다행이다. 장애인 대피를 위한 어떠한 기술도 장비도 없지만 대피공간이라도 확보해 두면 잠시라도 대피하여 구조를 기다릴 수는 있다. 그것도 기존 건물에는 대피공간이 없으니 당장 어떤 보호를 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어떤 건물에 들어갈 때에는 만약 화재 등 비상사태가 벌어지면 죽을 각오를 하고 들어가야 한다.

그러나 질병재난에 대해서는 질병관리본부가 책임을 지고 지휘를 하게 된다. 당장의 대책에 모든 역량을 집중하게 되니 장애인에 대해서 신경을 쓸 여유도 없다. 질병관리본부 자체가 불난 집이니 장애인에 대해 뭐라고 한들 귀에 들어가지도 않는다. 그렇다면 평소 질병 재난에 대한 장애인 매뉴얼이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가 못하다.

공적 마스크 판매는 생각하지도 않던 새로운 비용이 들어가게 한다. 빠듯하게 생활하던 장애인에게는 마스크 구입비조차도 부담스럽다. 취약계층에 대해 지원 사항은 지자체 몫인데, 당장 경제를 살리고 피해자를 구하는 데에 급급하니 장애인을 일일이 챙기지 못한다. 그렇다고 공적 마스크에 장애인에 대한 공적 무료공급 대책이 있는 것도 아니다.

모든 시민들에게 재난에 대한 기본소득 보장을 한다면서 한 사람당 얼마를 나누어준다는 발표를 하기도 하지만, 그러한 돈을 사용하는 것도 예산을 더욱 어렵게 만드니 장애인을 위한 대책을 강구하는 예산을 마련하기는 더욱 어렵게 만든다. 그러니 장애인은 항상 뒷전이다. 그저 장애인은 서럽고, 그저 운명의 탓이라 여기고 참고 견뎌야 한다. 이런 경험 속에 살아가는 장애인에게 긍정적 에너지를 요구하는 사회는 너무나 잔인하다. 이는 죽음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기도 하다.

이미 경제적 타격이나 사회적 격리가 사회가 코로나19에 걸린 것이다. 확진자만이 감염된 것이 아니며, 코란19는 인간에게만 전염된 것이 아니다. 사회 전반에 모든 분야에 전염되어 우리 인간을 괴롭히고 있다. 이 괴로움 속에서 사회 안전망은 무너지고 장애인들은 무방비 상태에서 사회는 무관심을 정당화해 버린다.

홍수로 안양천 둔치공원이 흙탕물에 잠겨 있다.
홍수로 안양천 둔치 시설물이 흙탕물에 잠겨 있다.(2017.7.23_자료사진) ⓒ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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