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증장애인 직접 투표, 전례가 없다고 다음에 검토?”
“중증장애인 직접 투표, 전례가 없다고 다음에 검토?”
  • 박예지 기자
  • 승인 2020.04.03 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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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천군 선관위, “지원한다, 못한다” … 그동안 거소투표 신청도 끝나
장애인 결정권 무시, “공직선거법·장애인차별금지법 위반”
장추련, 옥천장애인자립센터 등이 중증장애인 참정권 보장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인권위에 긴급구제 진정서를 제출했다. ⓒ소셜포커스 

[소셜포커스 박예지 기자] =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이하 장추련)가 3일 오전 11시 국가인권위원회에 중증장애인 참정권 보장을 요구하며 중앙선관위, 옥천군 선관위 등을 상대로 진정을 제기하고 기자회견을 열었다.

진정 내용의 골자는 중증장애인도 의지가 있으면 직접 투표소를 찾아 선거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국가가 지원을 보장하라는 것이다.

진정 사례의 당사자인 중증장애인 이OO 씨는 근이영양증을 앓고 있다. 근육에 힘이 빠져 걷거나 앉는 것조차 힘들어 10년 넘게 외출을 거의 하지 못한 채 누워서 생활하고 있다. 때문에 선거 때마다 선관위로부터 거소투표만 안내받아왔다.

그러나 이번에는 중증장애인도 사회참여 의지가 있다는 것을 표명하고자 생애 처음으로 직접 투표소를 찾기로 결심했다. 이OO 씨는 이를 위해 지난 1월 29일 옥천장애인자립생활센터(이하 센터)에 도움을 청했고, 센터는 2월 14일 옥천군선관위에 응급차량과 지원 인력을 요청했다.

당시 선관위도 긍정적인 반응이었다. 센터는 당사자에게 이를 알리고 투표 진행을 준비했으나 이후 선관위는 태도를 바꿨다. 보건소 등 유관기관과 논의한 결과 “예산이 부족하고 만일 응급상황이 발생하면 대처가 어렵다”며 사실상 요청을 거절하고 당사자에게 거소투표를 안내하라고 요구했다.

김선희 활동가의 경과보고에 따르면 센터는 재협의를 요구했지만 유관기관 회의 소집 자체가 무산됐다. 옥천군선관위가 다음에 검토하겠다며 묵묵부답으로 일관하는 동안 거소투표 신청기간도 끝났다. 거소투표 신청기간은 지난달 28일까지였다. 선관위가 차량과 인력 지원을 선거 기간 내에 신속하게 결정하지 않으면 진정인은 이번 선거에는 아예 투표권을 행사할 수 없게 된다.

장추련과 센터는 장애인의 선택권을 무시하고 일방적으로 거소투표를 권유한 이번 사례는 공직선거법과 장애인차별금지법 위반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공직선거법 제6조 1항 ‘선거권자가 선거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필요한 조치를 취하여야 한다’ ▲장애인차별금지법 제27조 1, 2항 ‘국가는 장애인이 선거권, 피선거권, 청원권 등을 포함한 참정권을 행사함에 있어서 차별하여서는 아니되며 장애인의 참정권을 보장하기 위하여 필요한 시설 및 설비 등 정당한 편의를 제공하여야 한다’ 위 조항들이 그 근거다.

 

기자회견에서 발언하는 김준우, 임경미, 최용기 씨(왼쪽부터) 소셜포커스
기자회견에서 발언하는 김준우, 임경미, 최용기 씨(왼쪽부터) ⓒ소셜포커스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 김준우 공동대표는 “헌법에 명시된 참정권 보장을 회피하는 해당 처사는 엄연한 장애인 차별”이라며 중증장애인이 생애 처음으로 직접 투표하고자 한 용기를 응원하고 지원해야 할 국가가 손 놓고 있다고 비판했다.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최용기 회장은 “도대체 돈이 얼마나 들길래 예산이 부족하다며 거부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토로하면서 “거소투표 신청기간도 끝나 선관위가 당장 이 상황을 인지하고 편의지원을 결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옥천장애인자립생활센터 임경미 소장은 "이OO씨에게 투표소에 가서 투표하라며 의지를 불어넣은 것이 잘한 일인가 회의감이 든다”며 허탈함을 표했다. 또 “투표 연령이 18세로 하향조정됐다. 생애 첫 투표를 축하한다며 여기저기 광고가 많이 보인다. 누구의 첫 투표는 축하하고, 누구의 첫 투표는 나 몰라라 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지적했다.

진정인 이OO 씨는 장거리 이동이 불편해 현장에는 참석하지 못했다. 그러나 참정권 보장을 쟁취할 때까지 의지를 굽히지 않겠다는 뜻을 진정서를 통해 드러냈다. 장추련은 선거 기간동안 온·오프라인을 통해 장애인 참정권 차별에 대해 알리고 투쟁을 이어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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