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투표 현장, 엘리베이터 없고 화장실 있어도 이용 불가
장애인 투표 현장, 엘리베이터 없고 화장실 있어도 이용 불가
  • 박지원 기자
  • 승인 2020.04.14 10: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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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시기표소 있지만 내 표 제대로 행사됐는지 몰라 아쉬워
가파르고 좁은 경사로, 낙후 시설도 문제…"인권위 진정"
뇌병변장애를 겪고 있는 배재현 노원중증장애인독립생활센터 활동가가 11일 서울 도봉구에 설치된 한 사전투표장에 들어가기 위해 경사로를 오르고 있다. 재현씨는 이 경사로가 좁고 가팔라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News1

[소셜포커스 박지원 기자] = '전국 어디서나 별도의 신고 없이' 사전투표를 홍보하는 내용에 꼭 포함되는 것이 시민이 지정된 곳이 아닌 어디에서든 투표를 할 수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신체가 불편한 장애인은 '어디서나'라는 대상에 자신들은 포함되지 못하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11일 노원중증장애인독립생활센터에서 장애인 권익 옹호 활동을 하고 있는 뇌병변 장애인 배재현 활동가와 직접 사전투표소를 찾아 투표 과정에 장애인이 어떤 어려움을 겪는지 체험했다.

서울 도봉구의 한 투표장, 재현씨가 장애인콜택시에서 내려 마주한 사전투표소에는 이미 20~30명의 시민이 줄을 서 투표를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재현씨는 이 사이에 줄을 설 수 없었다.

투표장은 2층이었으나 투표소가 마련된 동사무소 건물엔 엘리베이터가 없었다. 재현씨는 2층으로 올라가지 못하고 임시기표소가 설치된 1층으로 향했다. 선관위는 몸이 불편한 사람을 위해 투표소장이 1층에 없는데도 엘리베이터가 설치되지 않은 투표소에 임시기표소를 운영 중이다.

하지만 휠체어를 탄 장애인에겐 1층도 '오르기'에 만만하지 않았다. 재현씨는 휠체어 하나가 들어가면 꽉 찰 정도의 너비인 경사로를 불안하게 올랐다. 그는 "경사로가 너무 높고 가팔라서 불안하다. 개선이 필요할 것 같다"고 말했다.

장애인이 투표장에 직접 들어가 투표할 수 없는 곳은 이곳만이 아니었다. 중앙선관위가 홈페이지에 게재한 사전투표소 현황을 분석한 결과 서울 시내 425곳 중 85곳은 투표소가 2층 이상, 지하에 있는데도 엘리베이터가 없었다.

임시기표소가 설치된 곳에서 투표절차는 선관위 방침에 따라 이뤄졌다. 재현씨는 신원 확인을 하고 투표사무원이 뽑아온 투표용지를 받아들었다. 참관인 2명이 지켜보는 가운데 임시기표소로 들어간 재현씨는 기표를 마친 뒤 투표용지를 봉투에 담아 투표사무원에게 건넸다.

다만 자신이 행사한 표가 투표함에 들어가는지는 확인하지 못했다. 임시기표소에서 투표하는 경우 투표사무원이 가지고 간 봉투를 투표관리관에게 전달해 투표함에 넣게 된다.

이런 문제 때문에 그동안 장애인 단체 등에서는 간이기표소 설치가 장애인 참정권을 보장하는 완전한 대안이 아니며 장애인이 직접 투표장으로 가서 투표할 수 있도록 사전에 대책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이승헌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활동가는 "임시기표소에서 기표를 한 뒤 투표지는 직원이 들고 투표함에 넣으면 정작 투표 당사자는 자신의 표가 투표함에 들어가는지 확인할 수 없다"며 "투표의 공정성이 훼손될 수 있는 일로 21세기에 말도 안 된다"고 말했다.

더불어 재현씨가 찾은 투표소에는 장애인화장실이 있다고 표기돼 있었지만 화장실로 향하는 입구가 너무 좁아 전동휠체어가 들어갈 수 없었다. 재현씨가 화장실을 쓴다고 하자 동사무소 직원은 "사용할 수 없을 것"이라며 만류했다.

화장실 이용을 포기한 재현씨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이런 상황들 때문에 오전 일찍 어딘가 움직여야 한다면 아침을 먹지 않는 것이 습관이 됐다고 토로했다. 장애인화장실이 없는 곳이 많고, 더러 있대도 이처럼 접근 자체가 불가능해서다.

투표를 마친 재현씨는 "전반적으로 투표를 안내해 주는 분들은 친절했다"면서도 "동사무소가 오래되고 시설이 낙후된 것 같아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 그는 사전투표는 꼭 거주지 주변에서 할 필요가 없으니 '엘리베이터 등 편의시설이 갖춰진 곳으로 이동해 투표를 하면 되는 것 아니냐'는 시각에 대해 기본적으로 장애인을 일반인과 다른 존재로 인식하는 차별적 시선에 기초한 생각이라고 지적했다. 

한편,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는 재현씨가 겪은 사례와 같이 이번 총선 투표 기간 장애인이 겪은 불편 사례를 모아 국가인권위원회에 개선을 요구하는 진정을 낼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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