휠체어 공원 탐방기 [ 2 ] – 서울 보라매 공원
휠체어 공원 탐방기 [ 2 ] – 서울 보라매 공원
  • 조봉현 논설위원
  • 승인 2020.04.22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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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군사관학교의 상징 보라매 떠난 자리에 조성된 공원
다른 공원의 모범이 될 만한 좋은 사례도 있지만…
유아 숲 체험장, 정작 유아 태운 유모차 출입은 곤란

보라매공원은 서울 동작구 신대방동(대방로 219)에 소재한 근린공원이다. 2호선 지하철 신대방역에서 남문 입구까지 330m 거리에 불과하고, 7호선 보라매역에서 공영주차장이 있는 서문 입구까지는 780m 거리이다. 주차장은 서문(정문)과 동문에 위치하고 있다.

요즘 동문 바로 앞에는 2년 후에 개통할 지하철 신림선의 동작구민회관역 신축공사가 한창이다. 지금도 대중교통 접근성은 좋은 편인데, 그 지하철이 개통되면 훨씬 좋아질 것 같다.

이곳은 옛날에 나라의 영공을 지키는 파일롯들의 산실인 공군사관학교 캠퍼스였다. 그런데 공군사관학교가 1985년도에 청주로 이전하면서, 이곳에 공원을 조성하여 1986년 5월 5일에 개원한 것이다. 그러한 유래를 살리기 위해 공군사관학교의 상징인 보라매를 공원의 명칭으로 사용하고 있다.

‘꿩 잡는 게 매’라는 말이 있듯이, 매는 길들여서 사냥용으로 쓸 수 있는 새다. 이 중 보라매는 생후 1년 이내의 어린 매를 말하는데, 아직 털갈이를 하지 않아서 보랏빛을 띠기 때문에 보라매라고 한다. 이 보라매일 때라야 사람이 훈련을 잘 시킬 수가 있다. 따라서 공군사관생도를 보라매의 이미지에 연결하여 공군사관학교의 상징으로 여겨 왔다.

보라매 이야기가 나왔으니 잠시 옆길로 빠져보자. 우리 민요 남원산성의 노랫말 중에 “수진이 날진이 해동청 보라매”라는 대목이 있다. 이는 매를 종류별로 나열한 것이다. 수진이는 길들인 매를 말하는 것이고, 날진이는 길들이지 않은 매, 해동청은 한국의 청매(푸른 매, 어린 매가 아닌 성체)를 말한다.

그리고 언제부터인지 공군 전체나 최신 전투기까지 보라매로 상징하게 되었는데, 의미가 너무 비약된 것이다. 보라매는 털갈이도 아직 안 한 훈련시키기 좋은 어린 매를 일컫는 말인데…. 한국의 공군이나 전투기는 훈련생이거나 훈련기 수준밖에 안 된다는 뜻이 되고 만다. 한국의 매를 해동청이라고 하니 푸르매라고 하면 어떨까?

공군 홈페이지에는 캐릭터를 푸르매로 소개하면서도, 여전히 공군의 상징을 보라매라고 설명하고 있다. 이미 고착된 표현을 잘못되었으니 바꾸어야 한다고 말하고 싶은 게 아니다. 그 의미와 유래를 따져보면 그렇다는 것이다. 아무튼 이 공원은 공군사관학교가 이사 간 자리이니 보라매공원이 어울린다.

보라매공원에는 잔디광장, 에어파크, 연못(음악분수), 다목적운동장, 인조잔디축구장, 배드민턴장, 게이트볼장, 암벽등반대, 지압보도 등 다양한 운동시설과 휴게시설이 있다.

특히 전투기 등 8대의 비행기가 전시되어 있는 에어파크는 옛 공군사관학교의 정기를 느낄 수 있으며, 보라매공원이라는 명칭을 음미해 볼 수 있다.

공원 내에는 동작구민회관을 비롯하여 청소년수련관, 장애인복지관, 시민안전체험관 등 여러 공공시설도 입주해 있다.

봄꽃이 한창 피어날 시기에 보라매공원을 찾았다. 공원 주변에 아파트가 많은 데다 주말이라서 그런지 가족 단위로 공원을 찾아온 사람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었다. 그런데 가족 단위로 온 사람들은 공통적인 특징을 보이고 있다.

아주 어린 아이는 유모차에 태웠고, 조금 걸을 수 있는 아이는 킥보드, 좀 더 큰 아이가 따라 온 가족은 소형 자전거를 가지고 나왔다. 개중에는 장난감 승용차도 끌고 나왔다. 청소년층은 공원 내 대여점에서 자전거를 빌려 타고 다니는 사람도 많다. 젊은 부부가 어린 자녀 둘을 데리고 나온 경우라면, 한 아이는 유모차, 한 아이는 킥보드 이런 식이다.

보행이 불편하여 유모차와 휠체어 비슷한 노인보행기에 의존하여 다니는 어르신들, 또는 휠체어를 타고 나온 장애인들도 가끔 눈에 띈다. 아빠는 롤러스케이트까지…. 아무튼 무엇인가를 타고 다니는 사람들이 절반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따라서 이제는, 그리고 앞으로도 공원이 보행자의 전유물이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다.

휠체어는 물론 다양한 탈것을 이용하는 탐방객들, 공원은 보행자 전유물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소셜포커스

그러나 우리나라 공원들은 어떤가? 대부분 성인 보행자만을 기준으로 설계가 된 것 같다. 공원에서 이러한 다양한 사람들이 차별 없이 이용하려면, 언덕길은 계단이 아닌 경사로 구조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보행로, 특히 일반보도에서 오솔길 등으로 진입해야 하는 부분에 턱이 없어야 한다.

또 보도의 바닥을 요철 블록이나 요철이 발생하는 노출형 자연석(또는 징검다리식 자연석)으로 시공해서는 안 된다. 휠체어 통행에 불편이 없을 정도로만 시공하면 모든 문제는 해결된다. 물론 다른 유형의 장애인에게도 불편이 없도록 해야 함은 당연하다. 그래서 장애인에게 편리하면 비장애인에게는 더욱 편리한 법이다. 그럼에도 공원 설계자나 시공회사 및 관계 공무원들은 이러한 인식은 아직도 너무나 부족한 것 같다.

보라매공원도 예외는 아니었다. 필자가 공원 전체를 훑어본 결과, 이동약자들의 이용에 불편이 없도록 신경을 쓴 흔적은 매우 많았다. 100점 만점에 75점은 줄 수 있을 만큼 다른 공원에 비해서 양호한 편에 속했다. 어떤 부분은 다른 공원에서도 따라 해야 할 모범사례도 있었다.

탐방로 중간 중간에 설치된 벤치나 피크닉테이블 등 휴게 공간은 턱이 없어서 접근성이 좋았다. 특히 벤치 옆에는 유모차나 휠체어 등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함께 쉴 수 있도록 공간을 별도로 만들어 놓고 표식까지 그려 놓았다.

실물 비행기나 조형물이 비치된 전시 공간도 전혀 단차가 없어 가장 가까이 접근하여 구경할 수 있다.

일반 통행로에서 화단이나 숲길 등으로 진입하는 갈림길도 일부를 제외하고는 대체적으로 단차 없이 편리하게 산책할 수 있는 구조로 되어 있다.

장애인 화장실은 남녀로 구분되어 밖에 설치되어 있다. 화장실 내부는 전동휠체어가 마음대로 회전할 수 있을 정도로 널찍하다. 특히 남자 화장실의 경우 소변기도 설치되어 있다. 필자는 작은 일을 보려고 남자용 장애인 화장실에 들어갔다가 소변기가 없어서 곤란한 경우를 참 많이 겪었다. 여기에는 소변기가 함께 있어서 매우 편리했다.

다수의 장애인 전용화장실이 성별 화장실 내부에 있는데, 이런 경우에는 이성인 활동지원사가 케어를 위해서 함께 들어갈 수가 없는 어려움이 있다. 그런데 여기서는 일반 화장실의 밖에 장애인 전용 화장실이 있어서 편리하다.

에어파크의 전시물은 주변에 단차가 없어 접근성 아주 좋다. ⓒ소셜포커스
에어파크의 전시물은 주변에 단차가 없어 접근성 아주 좋다. ⓒ소셜포커스
벤치 등 휴게시설은 항상 휠체어나 유모차 공간을 함께하고 있다. ⓒ소셜포커스
벤치 등 휴게시설은 모두 휠체어나 유모차 공간을 함께 조성해놓았다. ⓒ소셜포커스
휠체어 등의 접근성이 양호한 공원 내 피크닉테이블 등 휴게시설 ⓒ소셜포커스
휠체어 등의 접근성이 양호한 공원 내 피크닉테이블 등 휴게시설 ⓒ소셜포커스
장애인 화장실은 남녀가 구분되어 밖에 설치되어 있고 내부는 널찍하다. ⓒ소셜포커스
장애인 화장실은 남녀로 구분되어 밖에 설치되어 있고 내부는 널찍하다. ⓒ소셜포커스

시정해야 할 부분도 자주 눈에 띄었다.

공원 곳곳에는 통로에 단차가 있어 휠체어 등의 진입을 방해하고 있다. 또한 탐방로의 노면에 자연석을 가공한 판석을 노출되게 깔아놓았다. 때문에 휠체어 등 바퀴달린 이동수단의 통행을 방해하는 곳도 여러 곳에서 나타났다.

노면에 돌출물이 많을 경우 이동에도 불편하지만 부주의할 경우 자칫 넘어져서 부상을 당할 수도 있다. 이게 공원을 보행자의 전유물로 인식해서는 안 되는 이유다.

공원 한쪽에는 유아 숲 체험장이 있다. 그러나 진입로는 높은 단차가 있을 뿐 아니라, 이어지는 산책로는 목판을 징검다리로 깔아놓아 심한 요철이 발생하고 있다. 거두나 몇 개의 계단까지 거쳐야 하므로 정작 유아를 태운 유모차는 들어갈 수 없다.

한 엄마가 아기를 유모차에 태워 왔는데 그래도 그 숲 체험장을 아이와 함께 구경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유모차는 길가에 놔두고 아기를 안고 상당한 거리를 힘들게 갔다 오는 장면이 필자의 카메라에 잡혔다. 유모차를 길가에 세워두고 갔던 엄마가 마음 놓고 숲 체험을 할 수는 있었을까?

유아 숲 체험장이라는 간판이라도 없었으면 이렇게 황당한 생각이 들지는 않았을 것 같다. 그러니 휠체어가 들어가는 것은 꿈도 못 꾼다.

공원 내 여러 곳에 설치된 급수대는 단차가 없이 접근이 용이한 곳이 있지만, 그렇지 않는 곳도 있다. 같은 회사에서 시공했을 텐데 왜 이런 일이 생기는지 이해할 수 없다.

남문으로 들어오다 보면 아담한 화단이 조성되어 있다. 한화불꽃정원이라는 표지판도 있다. 사람들이 들어가서 꽃도 보고 앉아서 쉴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그렇지만 한 뼘 높이도 안 되는 턱 하나 때문에 제 발로 걸을 수 있는 사람이 아니면 들어갈 수 없는 구조물이다.

공원 중간에는 순국학생 충혼탑이 있다. 몇 개의 계단으로 인해 들어갈 수 없기 때문에 휠체어 장애인은 헌화 등 추모행위를 할 수가 없다. 장애인은 순국선열을 기리는데도 차별을 받아야 하는가? 이러한 풍경은 전국의 많은 충혼탑이나 현충관 등에서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우리는 언제쯤 이러한 차별이 없는 세상에서 살 수 있을까?

단차와 요철현상이 발생하는 노면은 많은 사람들의 이용에 불편을 준다. ⓒ소셜포커스
단차와 요철현상이 발생하는 노면은 많은 사람들의 이용에 불편을 준다. ⓒ소셜포커스
휠체어 출입이 불가능한 급수대, 반면에 우측 급수대는 접근성이 좋다. ⓒ소셜포커스
휠체어 접근성이 좋은 급수대와 휠체어를 타고서는 들어갈 수 없는 급수대가 대조를 보이고 있다. ⓒ소셜포커스
유아 숲 체험장에 정작 유모차가 들어갈 수 없다.(유모차를 세워두고 엄마가 힘들게 유아를 안고 이동하는 모습) ⓒ소셜포커스

 

장애인은 충혼탑에 헌화 등 순국선열을 추모하는데도 차별받아야 하나? ⓒ소셜포커스
장애인은 충혼탑에 헌화 등 순국선열을 추모하는데도 차별받아야 하나? ⓒ소셜포커스
이동평등권을 침해하는 대표적 차별시설인 계단, 인식을 바꾸면 대안은 많다. ⓒ소셜포커스
이동평등권을 침해하는 대표적 차별시설인 계단, 인식을 바꾸면 대안은 많다. ⓒ소셜포커스
계단보다는 경사로가 더 어울리는 공원시설 ⓒ소셜포커스
계단보다는 경사로가 더 어울리는 공원시설 ⓒ소셜포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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