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웠던 20대 국회 지나니 봄 왔다... 장애인 정치세력화 꽃 피울까
추웠던 20대 국회 지나니 봄 왔다... 장애인 정치세력화 꽃 피울까
  • 박지원 기자
  • 승인 2020.05.12 09: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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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명보다 많고 4명보단 적다... 비례대표가 소외계층 대변한다는건 옛말 “주류가 더 많아”
당선인들, 발언권 사수와 정책 공론화 중요... 단체들은 시위ㆍ운동으로 힘 실어줘야
공약 차별성 없었던 21대... 누구 찍으나 똑같아 “이렇게는 유권자 참여도 세력화도 어렵다”
외부영입 치중하는 정당 선택 의존말고 전문정치인 양성해서 유능한 후보 배출해야
장애인 정치세력화의 현 위치와 과제를 논하는 토론의 장이 열렸다. 지난 8일 여의도 이룸센터에서 '21대 총선을 통해 바라본 장애인 정치세력화의 의미와 과제'를 주제로 다양한 의견들이 제시됐다. ⓒ소셜포커스

[소셜포커스 박지원 기자] = 21대 국회 출범을 앞두고 장애인 정치세력화의 현 위치와 미래를 살펴보는 토론장이 열렸다. 이번 총선에서 장애인 정치세력화가 얼마나 이뤄졌는지 그 주역들과 과정을 돌아보고 앞으로 만들어갈 아젠다(의제)를 제시하는 시간이 마련됐다.

금번 토론회는 ‘21대 총선을 통해 바라본 장애인 정치세력화의 의미와 과제’라는 주제로 8일 오후 여의도 이룸센터에서 개최됐다. 가장 먼저 이번 총선 지각판을 뒤흔든 ‘준연동형 비례대표제’가 도마 위에 올랐다. 소외계층을 대변하는 비례대표의 상징성을 퇴색시켰다는 평이다.

 

사회 소외계층 대변한다는 비례대표... 21대 총선은? “글쎄... 장애계 자축하기 일러”

장애인 비례대표의 역사는 199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새정치국민회의 소속인 이성재(지체장애) 변호사가 비례대표 1호로 선출되고 2004년 17대 국회에 열린우리당 장향숙 의원과 한나라당 정화원 의원 등 여ㆍ야 모두 장애인 당사자가 선출됐다. 정당 이미지 쇄신을 목적으로 했다고 하나 19대까지 소외계층을 대변할 신진세력들을 줄줄이 비례대표에 배치하면서 비례대표는 소외계층을 대변한다는 풍토가 자리잡게 됐다.

발제를 맡은 대구대학교 이동석 교수는 “이번 21대 국회 비례대표가 완전히 사회 약자를 대변하는가?”라는 질문에 아쉬움을 드러냈다. 19명의 비례대표를 배출한 미래통합당의 경우 금융경제계에서 4명, 통일광복분야에서 3명을 배출했고 더불어시민당은 노동사회분야 5명, 정의당은 노동 분야로만 4명이 당선되는 결과를 낳았다. 소수운동에 포함되는 노동사회분야를 제외하고 외교안보, 금융경제, 보건의료, 법조계는 사회 주류에 포함되기에 비례대표 취지가 잘 살지 못했다는 평이다. 장애계에서는 20대에 비해 21대에 3명이나 배출을 했으니 성공이라 자축할 수 있지만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율을 따지면 갈 길이 멀다는 의견이다. 

이어 이 교수는 장애인 단체들이 정당 정치에 끌려다니는 모양새가 좋지않았다며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비례대표로 장애인 후보가 나오다보니 장애인 단체들이 정당에 줄을 대는 문제가 발생했다. 20대 국회에 장애인 비례대표가 표가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뒷순번으로 밀리고 결국 아무도 당선되지 못했던 참사를 겪으면서 장애인 단체들이 정당을 통한 국회의원 배출에 공을 들이게 된 것”이라며 그동안의 과정을 분석했다.

단체들의 노력으로 결국 3명의 장애인 국회의원을 배출했지만 이것을 장애인 정치세력화의 성과로 인정하는 세력이 있는 반면 장애인 표를 받기위한 정당의 구색 맞추기 혹은 이미지 순화를 위한 홍보도구로 활용됐다는 엇갈린 평도 나왔다. 세간의 평에 대해 이 교수는 21대 당선인들의 행보가 그 답을 정해줄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지호 민생당 전국장애인위원장도 이 교수의 의견에 힘을 실었다. 장애인 단체들이 한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지지하는 정당과 후보에 따라 분열되는 모습을 보였다는 것.

그는 “장애인 단체가 특정 당을 지지하는 경우 대부분 단체 구성원 간의 합의가 아닌 수장의 성향으로 결정되는 경향이 많았다”며 “최근 장애인 단체들이 장애인 폄하발언과 관련해서 지지하는 정당에는 침묵하고 반대 정당에는 비난성명을 내는 등 대립각을 세우기도 했다. 장애인 단체가 분열되면 목소리가 줄어들 수밖에 없는데 서로 지지하는 당이 다르다고 지지성명과 반박성명을 다르게 내는 것은 문제다"며 비판의 목소리를 냈다.

후보선출 과정에 대한 지적도 따랐다. 문상필 더불어민주당 전국장애인위원장은 “당 내에 장애인 운동성과 대중성, 감수성을 두루 갖춘 좋은 후보들이 많다. 그러나 당은 자꾸 외부에서 인형 뽑기하듯 인재 영입에만 열을 올린다. 전체 장애계의 조직화와 의식화가 절실한 이유다. 그럼에도 장애인 단체들이 이번 총선 과정에 앞장서서 정책을 제안하지않고 후보자 배출에 고심의 흔적이 보이지 않았던 점은 문제라고 생각한다”며 꼬집었다.

정의당 장애인위원회 박종균 위원장은 예상치 못했던 위성정당의 출현으로 입은 타격을 이야기했다. 박 위원장은 “사실 연동형 비례대표제로 정의당에서 2명은 배출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위성정당이 나올 줄은 꿈에도 몰랐고 정의당에서 외부영입이 될 줄도 몰랐다. 외부영입을 막느라 비례대표 순번에 신경을 못 썼는데 전국위원에서 순번을 정할 때 3-4번을 요청했지만 과거처럼 7-8번에 배치되면서 결국 장애인 당사자를 한 명도 배출하지 못하게 됐다”며 아쉬움을 표했다.

발제를 맡은 대구대학교 사회복지학과 이동석 교수가 발언하고 있다. 토론회 좌장을 맡은 한국척수장애인협회 이찬우 사무총장이 발제문을 읽고 있다. ⓒ소셜포커스

장애인 정치세력화에 대한 명확한 정의 없어... 정치세력 확장하기 위한 실질적인 방안은?

장애계가 주창해온 ‘장애인 정치세력화’의 정의는 무엇일까. 현재 장애계 내에서도 명확한 개념 정리가 되지 않고 있다. 여러 논문을 종합해본 결과 “장애인이 비장애인의 보호대상이 아니고 동반자의 위치에서 대우받아야한다는 주류화를 목표로 장애인의 권력 관계를 넓혀가는 총체적 과정”으로 설명됐다. 이를 위해 의회와 상부정치기구 진입만을 목표로 하지 말고 지방정부와 의회 등 다양한 분야로 진출해야한다는 의견이 모아졌다.

한지호 위원장은 장애인 정치세력 확장을 위해 적극적인 정책 참여를 제안했다. 한 위원장은 “선거 공천과정과 경선과정에서 수표가 많아야 장애인의 존재감이 생긴다. 당사자들이 전당대회든 각종 행사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야한다. 선거철만 되면 정치인들이 표 달라고 장애인 단체를 찾아가는 것처럼 장애인 단체도 철따라 움직인다는 게 문제다. 평소에 정치권과 유대관계를 가지고 꾸준히 교류를 해야지만 안정적으로 비례대표도 배출하고 정책도 제안하는거지 어쩌다 행사 때 찾아간다고 장애인 문제에 관심을 가질리가 없다. 후보 욕심이 있는 사람은 사전에 당원으로 가입해서 사전 훈련도 하고 당에 장애인 결사대 같은 세력도 만들어서 목소리를 내야하지 않겠는가”라며 적극적인 정당 활동을 강조했다.

좌장을 맡은 한국척수장애인협회 이찬우 사무총장은 “선거철과 국감 등 특정한 목적이 있을 때만 장애계가 뭉치고 움직였던 것 같다. 장애인 정치세력 확장을 위해 장애계가 조직적으로 꾸준히 시위나 운동을 펼치고 전략적으로 정치권에 세력을 입증해야할 것 같다”고 말했다.

한편 장애인 지방행정 진출 벽이 높다는 한계점도 나타났다. 문상필 위원장은 “중증장애인 25% 가산점이라는 게 있다. 문제는 현재 당선자들이 가산점 준다고 지역구 선거 나가서 당선될 확률이 얼마나 되겠느냐. 심지어 경증은 가산점도 없다. 지역별 할당제 등 방법을 찾고 장애계가 부단한 노력과 운동으로 이뤄내야할 부분”이라고 말했다.

정치권 밖에서의 장애인 집회와 시위에 대한 호의적인 반응도 모아졌다. 결국 정치권에서도 장애인 운동에 대해 의식하고 있다는 것이다. 장애인 시위와 운동이 이번 국회에 진출하는 장애인 국회의원 3명의 목소리에 힘을 실어줄 수 있다는 측면이다.

박종균 위원장은 “장애인운동을 하지 않고 장애인 당사자도 아니지만 장애인 정책에 관심있는 사람들을 많이 봤다. 더 좋은 장애인 정책을 만들기위해서는 그 분들과 연대해서 활동해야할 것 같다. 즉 장애인 정치인의 범주를 넓혀서 봐야한다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직업정치인 양성을 제안하고 싶다. 초선, 2선, 3선에 따라 할 수 있는 일이 다르지 않는가. 지역구도 마찬가지고 일찍부터 장애인 당사자들이 정치인이 되어서 활동을 해가야 실질적인 정치세력화가 이루어질 수 있지 않을까”라고 전망했다.

왼쪽부터 더불어민주당 전국장애인위원회 문상필 위원장, 한국여성장애인연합 박혜경 상임대표, 바른미래당 전국장애인위원회 한지호 위원장, 정의당 장애인위원회 박종균 위원장의 모습.
왼쪽부터 더불어민주당 전국장애인위원회 문상필 위원장, 한국여성장애인연합 박혜경 상임대표, 바른미래당 전국장애인위원회 한지호 위원장, 정의당 장애인위원회 박종균 위원장의 모습. ⓒ소셜포커스

다 똑같은 장애인 공약... 누굴 찍어도 똑같아 “이렇게는 유권자 정치세력화 어렵다”

장애인 공약 문제도 수면 위로 드러났다. 활동지원제도 개선과 장애인연금확대, 이동권 보장, 중증장애인 고용확대 이 네 가지 틀을 벗어나지 않는 모습이었다. 정의당만 탈시설 공약이 추가됐고 나머지 정당들은 차별성이 없다는 것에 모두 공감했다. 장애인 유권자의 입장에서는 어느 당을 찍으나 큰 차이가 없으니 유권자의 정치 세력화를 이루기 어려웠다는 평이다.

박혜경 한국여성장애인연합(이하 여장연) 대표는 지난 4월 8일 열린 장애인 리더스 포럼에서 후보들이 정당 공약만 되풀이할 뿐 개인의 신념이나 구체적인 의정 계획은 말하지 않았다며 회의적인 논조로 발언을 시작했다. 박 대표는 “장애인 정치세력화는 ‘여성’과 ‘노동’에서 나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번 총선에 여성 후보가 2명이나 있었음에도 여성장애인을 위한 공약이 없었다는 것은 의식의 문제라고 보여진다. 후보 숫자에서도 성비 불균형은 여실히 드러난다”며 획일적인 공약 풍토와 여성 후보들의 의식 부족을 꼬집었다.

무엇보다 이번 총선에서 장애 문제를 이슈화시키는데 정책적인 전략이 부족했다는 의견도 나왔다. 나쁜 장애인정책이 나와도 국회의원들이 분노하지 않기 때문에 장애인 유권자들 입에서조차 오르내리지 못하는 현실 속에서 이번 총선에는 정당과 후보 모두 전략적인 이슈메이킹에 실패했다는 평이다.

문상필 위원장은 이에 반기를 들었다. 왜 꼭 장애인 정책이 특이한 게 나와야 하느냐는 것.
문 위원장은 “후보 당시 30회가 넘는 간담회를 진행했지만 다 중요하게 꼽힌 공약들이었다. 다만 정당 민주주의 틀 안에서는 정당과 장애계가 협력해서 정책을 만드는 과정이 필요한데 그런 과정이 여지껏 없었기때문에 당의 정책위원회가 총대를 매고 장총련과 장총, 전장연 등 장애인 단체에서 공약을 받아오는 구조가 굳어져버린 것”이라며 정당이 정책 실현에 앞장서야한다고 강조했다.

■ 당선자 국정 평가 반드시 필요... 비례대표 순번 결정권위해 당내 위원회ㆍ대의원 참여해서 세력화 이뤄야...

마지막으로 진정한 정치세력화 구축을 위한 다양한 의견들이 제시됐다. 최우선 과제는 장애인 국정수행에 대한 보고다. 문상필 위원장은 매년 1-2회 의정보고를 의무화하고 보좌진을 당에서 받지말고 장애인 단체에서 추천하는 방식으로 지체, 시각, 여성 등 최소 4명 이상의 당사자로 장애인정책연구원과 위원회를 꾸려서 당내 활동성과 인지도를 높여야한다고 제안했다.

1년에 한 번씩 장애인 정책을 잘 펼친 의원에게 메니페스토 상을 시상하는 방안도 많은 공감을 끌어냈다. 20대까지는 장애인 국회의원 9명의 국정수행평가를 따로 하지않았고 그들이 장애계를 위해 일했다기보다 개인 영달을 추구하는 모습이 많았기때문에 21대부터는 당선자들의 4년을 평가하고 유능한 사람이 의정활동을 펼칠 수 있도록 평가해야한다는 의견이 나왔다.

또한 장애계에서 장애인정치아카데미를 확대 실시하는 방안도 추천됐다. 현재 한국지체장애인협회에서 시행하고 있지만 아직 규모가 협소하고 커리큘럼이 짧아서 전문정치인을 양성하기엔 역부족이라는 평이다. 미국의 케네디 민주주의 학교가 선례로 총리와 많은 정치인을 배출했던만큼 한국판 장애인 정치아카데미가 활성화되어야한다는 측면이다.

또 당의 주요 결정권을 가진 전국위원장이나 대의원 자리에 장애인 당원이 가야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박종균 위원장은 “장애인 할당제도가 공직선거와 당직 선거에 같이 있다. 전국위원회나 대의원 등 할당 채우기도 바빠서 현실적으로 어려운 부분있지만 이러다가는 장애인 할당 못 채우겠다고 장애인 할당 없애자는 말까지 나올까봐 위기감이 든다. 비례대표 순번 결정하는 전국위원회에 장애인 당사자가 많이 가서 장애인위원회 위상도 높이고 순번 결정권도 가지고 와야한다”고 강조했다.

토론회를 마치며 이동석 교수는 “정당한 것에 분노할 줄 아는 국회의원”의 모습을 강조했다. 가장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고 장애인 문제를 쉽게 공론화할 수 있는 최적의 자리에 있음에도 부당한 것에 분노하지 않는 것은 직무유기라는 것이다. 장애인 유권자들의 분노를 이끌어내서 적극적인 정치 참여를 이룩하는 것이 정치세력화의 지름길이라는 것을 피력했다.

추웠던 20대 국회가 지나고 21대 국회라는 봄이 찾아왔다. 움추렸던 날개를 펼칠 당선인들의 행보에 주목하며 진정한 장애인 정치세력화를 위한 260만 장애계의 협동과 소통이 중요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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