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설 장애인 폭행 사망사고 왜 자꾸 반복되나?"
"시설 장애인 폭행 사망사고 왜 자꾸 반복되나?"
  • 박예지 기자
  • 승인 2020.05.18 18: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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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장연 등, ‘합천 정신장애인 구타 사망사건 대책마련 촉구’ 진정 제기
“정신건강복지법, 시설 폐쇄 강요 못해”…폭행치사·가혹행위 이어져도 버젓이 운영
“정신장애인 고립시키는 폐쇄병동 강제·장기입원, 학대 부추긴다”…탈시설 대책 요구
전국장애인철폐연대를 비롯한 장애인단체, 인권단체가 '겅남 합천고려병원 정신장애인 구타 사망사건'에 대해 국가인권위원회와 정부 관련 부처의 대책 마련을 촉구하며 기자회견을 열었다. ⓒ소셜포커스 

[소셜포커스 박예지 기자] = 정신장애인이 정신병원 간호사에게 폭행당해 사망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이유는 터무니없었다. 단지 ‘취침 시간에 병실로 들어가지 않았다’는 것.

이에 전국장애인철폐연대(이하 전장연), 대한정신장애인가족협회(이하 가족협회)를 비롯한 장애인 인권단체들이 경남 합천고려병원 정신장애인 구타 사망사건에 대한 대책 마련을 촉구하며 18일 오전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제기하고 기자회견을 열었다.

회견에서 장애인 단체들은 지자체와 경찰이 사건을 축소, 은폐하기에 급급할 뿐이라고 주장했다. 22년 전에 정신장애인을 학대해 사망에 이르게 한 병원을 버젓이 운영하도록 방임한 것도 모자라 사건 진상 규명과 재발 방지 대책을 요구하는 목소리에는 묵묵부답이라는 것이다.

■ 22년 전, 폭행으로 장애인 사망한 병원…폐쇄조치 왜 없었나?

경남 합천고려병원은 22년 전에도 종사자가 장애인을 폭행해 살해한 전적이 있다. 심지어 사망진단서를 허위로 작성해 유족에게 배포하고 거액의 의료보험 진료비를 가로챈 것으로 드러났다. 병원의 만행은 15명의 정신장애인이 계속되는 학대를 견디다 못해 병원을 탈출한 후에야 밝혀졌다. 그러나 당시에도 사건에 대한 특별한 조치는 전무했다.

염형국 변호사, 김성연 사무국장(왼쪽부터) ⓒ소셜포커스

공익인권법재단 공감의 염형국 변호사는 ”정신병원과 요양원에 대해 일반 복지시설과는 다른 법령을 적용하는 것이 문제“라고 말했다. 일반 복지시설의 경우, 학대 사건이 일어나면 장애인복지법에 의거해 최대 시설을 즉시 폐쇄하도록 시정 명령을 내릴 수 있다. 그러나 현재 정신장애인 입소 시설에 적용하는 정신건강복지법은 이와 같은 조치를 내리기에 강제력이 미비하다.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김성연 사무국장은 ”정신장애인은 장애인 안에서도 차별당하는 장애인“이라며 정신장애인에게 타 유형 장애인과 다른 법적 잣대를 들이대는 정부를 비판했다. 이어 정신장애인도 장애인복지법 테두리 안에서 적절한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와 같은 법적 처사가 정신장애인을 정신질환자로 치부하며 인권 침해를 당연시하는 사회적 분위기를 조장하는 데에 일조한다는 것이다.

■ 정신장애인의 ‘인간다운 삶’ 지역사회 안에서 찾게 해달라…탈시설 정책 요구

진정 단체들은 이러한 끔찍한 사건이 계속해서 벌어지는 근본적인 이유는 “정신장애인 정책이 폐쇄병동, 수용시설 수준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염형국 변호사는 정신장애인들이 불필요한 장기 입원으로 인해 시설에 고립되는 것이 폭행에 노출되고 있는 이유 중 하나라고 주장했다. 주변인, 사회의 감시가 부재한 상황에서 가혹행위가 만연하는 것을 막을 수 없다는 것이다. 진정 단체들은 이를 해결하기 위해 ‘정신장애인 지역사회 자활 정책’을 구체적으로 수립하라고 요구했다.

한국정신장애인자립생활센터 유동현 소장은 “정신장애인이 더 이상 병원에 갇혀 살아가지 않도록 민관이 긴밀히 협력하라“면서 더불어 “종사자에 대한 실효성 있는 장애인식 개선교육을 필수로 진행하라”고 촉구했다.

장추련 김성연 사무국장은 “현재 여러 장애인단체와 인권단체가 경남도청에 강력하게 시설폐쇄와 강제입원제도 삭제를 요구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 정신장애인 ‘없는 국민’ 취급하지 말아야

박김영희 대표, 권재현 정책홍보국장. ⓒ소셜포커스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박김영희 대표는 ”국가는 정신장애인을 마치 존재하지 않는 국민처럼 여겼다“고 규탄했다. 그동안 정신장애인 인권을 위해 지자체, 경찰, 인권위 등에 끊임없이 문제를 제기하고 대책을 호소했으나 달라진 것이 없다는 것이다. 이어 ”병실에 들어가지 않는다는 하찮은 이유로 사람이 맞아죽어도 사람들은 오늘 점심 메뉴를 더 중요하게 생각할 것“이라면서 장애인 문제에 대한 국민들의 무관심에 대해서도 한탄했다.

한국장애인단체총연맹 권재현 정책홍보국장은 ”이런 사태가 더 이상 반복되지 않도록 모두가 함께 해달라“고 국민들도 장애인 문제에 경각심을 가져줄 것을 호소했다.

끝으로 단체들은 사건에 대해 ”한 사람, 한 기관을 처벌해서는 끝나지 않을 문제”라고 한 목소리로 냈다. 진상 규명 수준에서 그칠 것이 아니라 나아가 제도와 정책 수립으로 풀어야 할 ‘사회적 문제’라고 거듭 강조했다.

이들은 사건의 진상을 규명할 것을 비롯해 ▲합천고려병원 인허가 취소 및 책임자 처벌 ▲전국 정신장애인 입소시설에 대한 인권실태 전수조사 ▲정신장애인 가혹행위 재발방지대책 수립 ▲정신장애인 탈시설 방안 제시 ▲정신장애인지원조례 제정 ▲대국민 인식개선사업 추진 등을 요구하며 기자회견을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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