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있으라면서, 쫓아내는 건 왠말이냐!” 위태로운 거리의 사람들...
“집에 있으라면서, 쫓아내는 건 왠말이냐!” 위태로운 거리의 사람들...
  • 박지원 기자
  • 승인 2020.05.29 10: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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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대 국회 개원 코 앞에... “법안 발의만 말고 제발 통과 좀 해달라”
방역대책으로 ‘집에 머물 것’ 권하면서 철거민 쫒아내는 잔인한 용역들
“달팽이도 집이 있는데... 왜 나는 쫒겨나지않을 권리조차 없는지”
기초생활보장법 사각지대... 뻔히 보이는 문제를 사각지대라고 하냐
노숙인 ‘등’? 개념 불명확... 복지부 조사 1만8천, 실제는 37만이 거리에
장애인 수용시설 폐쇄 철썩같이 약속해놓고 철썩같이 안 지킨 정부...
장애인과 가난한 이들이 참다못해 거리로 뛰쳐나왔다. 21대 국회 시작 이틀 전인 28일 장애인 단체와 시민단체들이 21대 국회에서만큼은 제발 상정해주길 바라는 입법과제를 담아 기자회견을 가졌다. ⓒ소셜포커스

[소셜포커스 박지원 기자] = 장애인과 가난한 이들이 거리로 뛰쳐나왔다. 방역대책으로 ‘집에 머물 것’을 권하면서 용역을 동원해 철거민을 쫓아내고, 노숙인과 노점상 단속을 강화하는 정부의 두 얼굴에 울분을 터트렸다.

28일 오전 빈곤사회연대(이하 빈곤연대)를 비롯한 시민단체들이 “장애인과 가난한 이들을 위한 21대 국회 입법과제‘ 6개를 요구했다. 이들은 ▲기초생활보장법 ▲주택임대차보호법 ▲행정대집행법 ▲노숙인복지법 개정과 ▲강제퇴거금지법 ▲장애인수용시설폐쇄법 제정을 요구했다.

 

■달팽이도 집이 있는데... 왜 나는 쫓겨나지 않을 권리조차 없는지...

지방에서 서울로 올라온 김OO씨는 값비싼 주거비 부담을 줄이고자 재개발 지역에 살게 됐다. 얼마 지나지 않아 용역이 들이닥쳤고 밤낮 없이 집을 부셔대는 통에 수도까지 파손되자 온 집과 생활물품이 물에 잠기게 됐다. 하루아침에 길바닥에 나앉게 된 김 씨는 울분을 터트렸다. 그는 ”작게나마 꿈을 이루고 싶어서 서울로 올라왔는데, 내가 왜 이런 수모까지 당해야하냐... 눈물 밖엔 안 나온다“며 통탄해했다.

주택임대차보호법(이하 주임법)은 경제적 약자인 임차권자의 권리를 현행 민법으로 보호하기 어려운 부분을 보완하기 위해 제정된 특별법이다. 1989년에 임대차 계약기간을 1년에서 2년으로 개정한 후로, 세입자들은 31년째 주거불안에 시달리고 있다. 2년마다 보증금을 올려주지 못하면 이사를 해야하기 때문이다. 

현재 코로나 사태로 실직과 급여감소 등 환경 변화가 심해지면서, 임대료 감액청구권조차 활용할 수 없어 세입자들의 숨통은 더욱 조여오는 실정이다.

28일 빈곤사회연대를 비롯한 시민단체들이 국회 앞에 모여 '행정대집행법', '주택임대차보호법', '기초생활보장법', '노숙인복지법' 개정과 '강제퇴거금지법', '장애인수용시설폐쇄법' 제정을 외쳤다. ⓒ소셜포커스

2018년 주거실태조사에 따르면, 전월세 세입자 가구의 평균 계속거주기간은 3.4년으로 자가 가구의 10.2년의 절반에도 못 미치고 있다. 현행 주임법은 계약갱신청구권에 대한 규정이 없어서 임차인이 임대인의 일방적인 요구를 수용하지 않으면, 임대차계약을 갱신할 수 없는 구조다. 

정용찬 사무국장 ⓒ소셜포커스

유엔 사회권 위원회 ’4차 심의 권고문‘과 유엔 주거권특별보고관의 ‘한국 국가방문 보고서’에서는 한국정부의 계약갱신청구권, 임대료인상률 상한제 도입을 권고하고 있다.

한국에도 형식적으로나마 ‘증액 인상률 상한 제도’와 ‘월차임전환율 상한제도’가 있지만, 계약갱신청구권이 보장되지않기 때문에 계약기간인 2년이 지나면 모든 것이 무용지물이 된다.

민달팽이유니온 정용찬 사무국장은 ”빌려쓰는 세입자는 쫓겨나지않을 최소한의 권리조차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며 "집을 소유한 사람들의 배만 불리지 않도록 ‘임대료 규제'와 불균형 상태의 임대차 시장을 조정하기위한 ‘전월세 신고제’ 도입 등 주임법의 개정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화려한 주상복합 건물 위에 부서지는 건 건물 아닌 ‘사람’... ‘강제퇴거금지법’ 제정하라

”여기 사람이 있다!“

2009년 1월 20일 서울시 용산 재개발 4구역에서 들려온 외침이다. 용산참사는 재개발 보상대책에 반발해온 철거민과 전국철거민연합회 회원 등 30여 명이 적정 보상비를 요구하며 이른 새벽 남일당 건물을 점거하고, 경찰과 대치하던 중 화재가 발생해 6명 사망, 24명이 부상을 당한 사건이었다. 

당시 더 이상 이런 식의 개발은 안된다며 여야가 앞다퉈 대책을 마련했고, 대통령 직속 사회 통합위원회를 만들어 제도 정비에 나서기도 했다. 그렇지만 그로부터 11년이 지난 지금, 참사 유가족은 보상액만 ‘찔끔’ 증액해주고 바뀐 것은 없다며 절규했다.

이원호 사무국장 ⓒ소셜포커스

제발 용산참사 재발만은 막자며 시민단체와 법률가들이 2년 간 '강제퇴거금지법'(이하 강퇴금지법)을 논의하고, 18대ㆍ19대ㆍ20대 국회에 이르기까지 법안 발의에 성공했지만 20대 국회가 문을 닫으면서 결국 통과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 

강제퇴거금지법이 발의된 이후 국회입법조사처는 법안에 반대 의견을 내놨다. 취지에 공감하고 필요성에 동의하나, 재산권 침해의 여지가 있다는 것이다.

용산참사 진상규명위원회 이원호 사무국장은 ”개발지역에 거주하는 주민들의 70%가 세입자다. 토지와 주택을 소유한 30%의 권리를, 그것도 외지에서 투기 목적으로 소유하고 있는 그들의 재산권을 수호하는 것이, 집 한 채 없이 살고 있는 사람들을 대책없이 쫓아내는 것보다 더 지켜야할 가치인거냐"며 분노했다. 

현재 현행법상 개발사업 시작 전에는 교통영향평가나 환경영향평가를 하게되지만, 정작 개발 사업으로 거주민이 받을 피해나 부정적 영향은 조사되고있지 않아 이 또한 문제가 되고 있다.  

발언이 끝날 때마다 기자회견 참석자들은 큰 소리로 외쳤다. "21대 국회는 빈곤과 불평등 해결을 위한 비전과 전략을 제시하라!" ⓒ소셜포커스

■용역 사서 부리는 국가... 노량진 수산시장 상인들 ”장사하려고 농성장에서 생선파는 것 같냐“

거리로 쫓겨날 위기에 처한 노점상들도 절박한 상황이다. 민주노점상전국연합의 최인기 수석부위원장은 (구)노량진 수산시장 상인들의 상황을 설명했다. 

2012년부터 수협이 ’수산시장 현대화‘를 명목으로 신(新) 시장 건립에 나서면서 구 시장 상인들과의 마찰이 빚어진 지 8년째다. 구 시장 상인들은 신시장의 비싼 임대료와 좁은 면적을 지적하며 신 시장이 완공된 2016년 이후에도 입주를 거부해왔다.  

그러나 법원이 수협의 손을 들어주면서 구 시장에서 버티는 것을 ’무단 점유‘로 명시했고, 수협은 2017년부터 10번의 명도집행으로 상가를 철거해왔다. 이 과정에서 발생한 몸싸움과 물리적 충돌로 150건의 고소ㆍ고발건이 발생했고, 상인들은 노량진역 입구에 농성장을 설치하고 있다.

최인기 수석부위원장 ⓒ소셜포커스

현재 동작구청은 이 농성장을 ’불법 노점‘으로 보고, 실제 상인들이 이곳에 점포를 설치해 수산물을 판매하고 있다며 이들을 고발했다. 상인들에게 ’행정대집행‘ 비용 5천8백만원의 구상권을 청구하며 강경 대응에 나섰다. 

최인기 위원장은 ”올 초 겨울에도 농성장 상인들에 대한 집행이 있었다. 아주 추운 날 해 뜰 무렵으로 기억한다. 용역인지 깡패인지 실체를 알 수 없는 수백 명의 사람들이 고용이 돼서 말그대로 아수라장을 만들었다. 그 중에는 미성년자처럼 보이는 앳된 얼굴의 젊은 청년들도 보였다“며 그 날을 기억했다.

그는 ’행정대집행법‘이 용역으로 국가의 업무를 대신하는 것이기에, 여기서 벌어지는 폭력은 국가 폭력으로 볼 수 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집행의 책임과 비용을 당사자에게 묻는 것, 사전 예고 없이 집행을 들이닥치는 것 등 독소 조항이 많고, 실제 법을 어겨도 처벌 기준이 약하니 밀어붙이는 경우가 많다며 처벌 기준을 강화하라고 주장했다. 

 

■”부양의무 없는 사람의 사유서를 받아와라“ 권리 포기하라는 거냐... 

부양의무제 폐지도 도마 위에 올랐다. 현행 「국민기초생활보장법」 안에는 ’부양의무제‘ 기준이 명시되어있다. 자신이 속한 가구의 소득 재산 이외에 부양의무자로부터 부양을 받을 수 없다는 요건을 충족해야하지만, 입증 과정이 어렵다는 게 문제다.

시위자들은 자신이 속하지 않은 가구의 소득과 재산을 기준으로 삼는 점과, 부양의사가 없는 사람에게 부양을 받을 잠재적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받는 것이 과연 공정한 처사가 맞냐며 따져물었다.  

당장의 생존을 위해 생계, 의료급여 수급이 시급하지만 부양기피사유서를 입증해야하는 어려움때문에 포기하는 사람들도 많다. 

 "21대 국회는 담장 넘어 우리를 보라!", "빈곤과 불평등한 세상을 바꾸기 위한 실천에 나서라!"라며 기자회견문을 낭독하고 있다. ⓒ소셜포커스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 김경희 간사는 현 정부와 20대 국회의 무능함을 강하게 비판했다. 현 정부가 부양의무제 폐지를 공약하고 1차 기초생활보장종합계획 중 주요 계획으로 발표했지만, 임기 4년차에도 여전히 부양의무제 기준 폐지에 대한 어떤 계획도 내놓고 있지 않다고 비판했다. 

김 간사는 ”물론 비수급, 빈곤층 일부에서는 부양의무자 기준이 폐지된 것은 맞지만 이는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다. 행정부의 노력에 앞서 국회는 어떤 역할을 했는지 되묻고 싶다. 더 이상 생명에 대한 권리를 예산 문제로 치부해서는 안된다“며 부양의무자 기준 완전 폐지를 외쳤다.

 

■어디까지가 노숙인...? 개념 불명확해, 장애인수용시설 폐쇄 대체 몇 년을 외쳐야... 

"탈시설 자립생활 국가계획 수립! 장애인수용시설폐쇄법 제정하라!"는 피켓을 들고 있는 장애인 당사자 ⓒ소셜포커스

현재 ’노숙인복지법‘에는 지원 대상에 ’등‘이라는 의존 명사를 붙어있어 노숙인의 범주가 어디까지인지 모호하다는 지적이 따랐다.

복지부는 노숙인 등의 사람이 1만8천명이라며 통계 조사를 내놨지만, 국토교통부의 주택위원회 조사에 따르면, 만화방이나 사우나 등 거처가 없는 다양한 노숙인만 전국 37만 명으로 집계됐다.

대상에 대한 문제뿐 아니라 소속 관할에 대한 문제도 제기됐다. 관할을 복지부가 아니라 국토부로 바꿔야한다는 것. 미국은 홈리스(노숙인) 주무부서가 주택 파트인만큼 우리나라도 주거 중심의 홈리스의 개념을 정해서 정책을 실시하고, 대인지원 서비스 등 부차적인 지원은 복지부가 해야한다는 것이다.

 문애린 상임대표 ⓒ소셜포커스

한편 문애린 서울 장애인차별철폐연대(이하 장차연) 공동대표는 ’장애인수용시설폐쇄법‘을 말하며 20대 국회에 대한 강력한 비판도 덧붙였다. 20대 국회가 국민들의 생존권에 직결되는 민생법안을 단 한건도 발의하지 않았다는 것.

문 대표는 "전국의 장애인들이 탈시설을 외쳐온지 10년이 넘어가고 있다. 그리고 문재인 정부는 3년째 이어오고 있다. 후보 시절 우리가 대구 희망원 건에 대해 정말 많이 대화했고, 당선 후에 장애인 수용시설 폐쇄법을 100대 과제로 처리하겠다고 '철썩'같이 약속했지만, '철썩'같이 지키지않고 있다"며 비판했다. 

이어 "우리가 아무리 탈시설 운동을 해도 법안이 제정되지않으면, 수용시설은 계속 생겨날 것이고, 또 수많은 장애인들이 인권유린당하고 목숨을 잃게될거다. 21대 국회에서만큼은 제발 법안 제정해야한다. 이번에도 기대를 품어보려하지만 마음이 복잡하다..."며 말을 잇지 못했다. 

"21대 국회는 빈곤과 불평등 해결을 위한 비전과 전략을 제시하라!" 이들은 6개 쟁점 법안이 담긴 피켓을 들고 21대 국회 앞에서 외쳤다. 이어 기자회견장을 방문한 정의당과 국민의당 측에 요구안을 전달하고 법안 제정을 위해 힘써달라 부탁했다.

정의당과 국민의당에 21대 국회 입법 요구안을 전달하는 모습 ⓒ소셜포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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