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기자가 간다③] "전쟁같던 20분" 당진행 휠체어 버스에는...
[박기자가 간다③] "전쟁같던 20분" 당진행 휠체어 버스에는...
  • 박지원 기자
  • 승인 2020.06.09 17:26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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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10월부터 시범 운영, 휠체어 탑승~하차까지 "기사 홀로 고군분투"
휠체어 한 대 고정에만 15분... 20분에 2대 태우는 건 택도 없어 "시간 늘려야"
기사들 고충↑ 휠체어 주차구역에 불법 주차... 커피 쏟고는 나몰라라 도망도...
일반승객 휠체어 버스 잘 몰라... 긴 휴게시간에 휠체어 탑승객은 눈칫밥 신세
오늘은 당진행 '휠체어 고속버스'를 타는 날이다. 들뜬 마음으로 센트럴시티 터미널에 도착했다. ⓒ소셜포커스

[소셜포커스 박지원 기자] = 날이 밝았다. 오늘은 휠체어 고속버스를 타는 날이다. 행선지는 왜목마을 등으로 유명한 ‘충남 당진’이다. 들뜬 마음으로 센트럴시티 터미널(호남선)로 발걸음을 옮긴다. 탑승구는 맨 끝 12번인데, 쭉 걸어가니 13번 출구에 휠체어 전용 입구가 보인다. 노약자 편의공간에 마련된 휠체어 보관소와 전동휠체어 급속 충전기도 눈에 띈다. 

쭉 걸어가니 13번 출구에 휠체어 전용 출입구가 보인다. 터미널 곳곳 장애인 편의시설도 보인다.
(왼쪽) 노약자 편의공간 안에 위치한 '휠체어 보관소'
(가운데) 전동휠체어ㆍ스쿠터 급속충전기
(오른쪽) 휠체어 전용 출입구 ⓒ소셜포커스

오늘 함께 동행할 진경운씨와 김운호씨를 만났다. 벌써 5번째 모니터링에 참여하는데, 노련미가 물씬 느껴진다. 휠체어 고속버스 노선은 부산, 강릉, 전주, 당진 4곳이다. 10곳의 업체에서 버스 1대씩을 개조해서 최대 2대의 휠체어가 탑승하도록 되어있다.

휠체어 탑승객이 꼽는 가장 힘든 노선은 어딜까. 400km나 떨어진 부산이 아닐까 예상했지만, 의외로 전주를 꼽는다. 부산은 올 때 기차를 탈 수 있지만, 비슷한 시간이 소요되는 전주는 오고 갈 때 꼼짝없이 버스에만 있어야하니 답답하다고 말한다.

휠체어 탑승객은 최소 20-30분전에는 먼저 탑승을 마쳐야한다. 휠체어 한대를 고정하고 안전장치를 완비하는데만 15분 가량이 소요된다. ⓒ소셜포커스

출발 시간은 오후 2시 10분이다. 1시 40분이 되자 ‘휠체어 버스 탑승’ 구간에 버스가 들어온다. 일반 승객을 태우기 전에 휠체어 탑승객은 최소 20분 전부터 탑승을 시작해야 한다. 이때부터 진땀 빼는 전쟁이 시작된다. 

기사가 차량에서 리프트를 내리면, 휠체어 탑승객이 리프트에 탑승한다. 뒤로 떨어지지 않게 안전벨트를 단단히 채우고 전동 리프트로 버스 내부까지 진입할 수 있게 돕는다. 탑승객이 내부로 들어가자 기사는 재빠르게 안으로 들어가 휠체어를 고정 장치에 연결하기 시작한다.

“불편하진 않으세요?”

“네. 그런데 고정장치를 여기 말고 이쪽으로 해주셨으면 좋겠어요”

“그러면 휠체어가 움직일텐데, 한번 해볼게요. 움직이나 확인해보세요. 안전벨트는 어떻게 매드릴까? 이쪽으로 해드려야 편할까요?”

(왼쪽) 고리를 이용해서 휠체어를 차내 고정장치에 채운 모습
(오른쪽) 경운씨가 고정 장치를 휠체어 앞쪽에 해줄 수 있는지 묻는다. 탑승객의 편의를 고려해서 안전장치를 채워줘야한다. ⓒ소셜포커스
탑승객이 불편하지않도록 방향을 조정해서 안전벨트를 채우고 장치에 고정하고 있다. ⓒ소셜포커스
최문한 기사 ⓒ소셜포커스

이렇게 소통을 하면서 조율을 해야한다. 벌써 기사님 이마에 땀이 범벅이다. 이렇게 13분 가량이 흘렀다. 마음이 급하다. 오늘 운행을 담당하는 최문한 기사는 탑승 시간이 너무 촉박하다고 토로했다. 

최 씨는 “시간을 더 줘야되요. 최소 5분은 더 줘야한다고 봅니다. 휠체어 한 대만 고정해도 15분이 걸리는데, 두 대를 20분 안에 완료하는 건 택도 없어요. 조금이라도 늦으면 일반 승객들이 성화고... 오늘같은 날에는 마음이 너무 급해요”

이번엔 운호씨가 탈 차례다. 친절하신 기사님이 많지만, 바쁠 때는 대충대충해주는 것 같아 섭섭할 때도 있다고 한다. 휠체어 2대를 고정하고 나니 시계는 정확하게 2시 5분을 가르켰다. 치열했던 25분이었다. 2시 7분부터 일반 승객들의 탑승이 시작됐다.

당진행 버스는 탑승 시간이 짧기 때문에 휴게시간이 따로 주어지지 않는다. 노래를 듣는 사람, TV를 보는 사람, 자는 사람 제 각각이다. 경운씨와 운호씨도 휠체어에 스마트폰을 연결해 시간을 보냈다.

휠체어를 단단하게 고정하고 출발 준비를 마쳤다. 앞에서 보면 휠체어 탑승객이 탔는지 눈에 잘 띄지 않는다. 대부분의 승객이 휠체어 탑승객이 있다는 걸 모르고 있었다. ⓒ소셜포커스

앞자리에 흰 머리에 눈이 큰 남성분이 보인다. 휠체어 탑승 버스라는 걸 알았냐고 물으니 전혀 모른다는 표정을 짓는다. 집이 당진인데 서울에 있는 병원을 가느라 고속버스를 탔다고 한다. 휠체어가 어디에 있냐며 두리번 거리던 그는 “시내버스에서 휠체어 타는 건 종종 봤는데 고속버스에서 휠체어 탄 거는 처음 봐요”라고 말했다.

차내에 있는 다른 승객에게도 물으니 휠체어 이용객이 있다는 걸 모르는 눈치다. 뒤에서 보면 좌석에 가려져서 티가 잘 안 난다. 굳이 알 필요는 없지만, 휴게소를 들르게 되면 문제가 생긴다.

휴게소에 도착하면 보통 15분정도의 휴식시간이 주어지지만, 휠체어 탑승 고속버스의 경우 최대 45분까지 연장되기도 한다. 그럴때면 곳곳에서 볼멘소리가 터져나온다.

“왜 이렇게 휴게시간이 길어요?”

“도착 시간이 너무 늦어지잖아요!”

김운호씨 ⓒ소셜포커스

이런 불만은 고스란히 기사님과 휠체어 이용객의 몫이다.

경운씨는 “고속버스라는 게 그 날 교통상황이 안 좋으면 늦어지잖아요... 그 와중에 휴게소를 들르면 저희 때문에 시간이 더 연장되니 눈칫밥을 먹어야되요. 게다가 기사님 혼자서 휠체어 풀고 리프트 이동시키고 쩔쩔 매니까 마음이 불편하고... 어쩔 때는 그냥 화장실 가고 싶어도 참을 때도 있어요”라고 말한다.

듣고 있던 운호씨가 옆에서 한 마디를 툭 던진다. “그냥 기저귀 차야돼...”

(왼쪽) 휠체어 버스 하차 구역에 불법주차한 차량의 모습.
(오른쪽) 일반 승객이 커피음료를 쏟고 그냥 내려서 휠체어 탑승객 자리까지 흘렀다. 치우는 건 기사의 몫이다. ⓒ소셜포커스

4시가 되자 당진 터미널에 도착했다. 그런데 아뿔싸 휠체어 고속버스 하차 구역에 일반 차량이 떡하니 자리를 차지했다. 

“저런 불법 차량을 취재해야 돼요!”라며 기사님이 열을 낸다. 씁쓸히 돌아서 탑승 구간에 차를 세운다. 일반 승객들이 우수수 빠지자 바로 휠체어 탑승객을 내려주러 바삐 움직인다.

심지어 어떤 손님이 커피를 쏟고 갔다. 기사는 휴식도 없이 이내 청소에 매진해야한다. 구석구석 걸레로 닦느라 수고로움이 더한다. 

4시에 당진 터미널에 도착했다. 일반 승객들이 우수수 내리면 그제서야 휠체어 탑승객의 하차를 도울 수 있다. 이렇게 또 20분이 흐른다. ⓒ소셜포커스

“기사님은 언제 쉬세요?” 탑승부터 하차까지 땀을 흘리며 바삐 돌아다니는 모습이 안쓰럽기까지 하다. 이제 날이 더워서 더 걱정이라고 한다. 아주 더운 여름날, 아주 추운 겨울날이 기사들에겐 고역이다. 철로 되어있는 리프트를 만져야 하는데 뜨겁고 차가우니 손이 고생이다.

하필 오늘 리프트도 말썽을 부린다. 리프트를 차내로 집어넣으려면 수평이 맞아야 하는데 장정 4명이 붙어서 움직여보지만 꼼짝하지 않는다.

“기자님 오늘 서울 못 올라가겠는데요?”라며 너털웃음을 짓지만 문제가 꽤 심각해보인다. 이렇게 고장이 날 때는 최대 300kg가 되는 리프트 장치를 기사 혼자 들고 옮겨야 한다. 결국 손을 쓸 수 없어 업체를 부른다.

하필 이날 전동 리프트도 고장이 났다. 다행히 하차를 마친 후였지만, 장정 4명이 붙어봐도 꼼짝을 않는다. 20여분을 씨름하다 결국 업체에 전화를 건다. ⓒ소셜포커스
최민기 팀장 ⓒ소셜포커스

처음 고속버스를 개조할 때 시행착오도 많았다.

강남-당진팀 최민기 팀장은 “처음에 고속버스 만들 때 문이랑 고정장치, 리프트 만드는 업체가 다 제 각각이었어요. 그래서 문을 닫으려는데 정작 휠체어에 부딪혀서 안 닫히고 이런 불상사가 많았거든요. 한 번은 교통안전관리공단에 업체들이 다 모여있어서 저희 기사들이 이런 부분을 적극 건의해서 센서도 달고 많이 개선하게 됐어요”라고 말한다.

코로나 때문에 4개월 가량 중단됐던 시범 운행도 조금씩 시작되는 추세다.

총괄을 맡고 있는 대원고속 당진영업소 김기대 소장은 “증차가 된 지 얼마 안 됐어요. 지금 휠체어 차량 운영 안하는 곳이 많은데, 서울에서 당진은 거리가 짧다보니 오셔서 구경하고 다시 올라가시는 분들도 종종 계세요”라고 말한다.

김기대 소장 ⓒ소셜포커스

그는 “휠체어를 고정하고 해지하는 데 똑같은 시간이 걸려요. 휠체어 해지만 25분인데 휴게시간 30분은 너무 촉박하죠. 지금은 기사들이 능수능란하게 연습해서 겨우 30분을 맞춰보지만, 행여나 휴게시간이 길어져서 뒷 차량이 먼저 도착하게 되면 온갖 눈총을 받아야 해요. 그 와중에도 양해를 구하고 친절하게 응대해야 하니 어려움이 많습니다”라며 기사들의 고충도 알아달라고 말한다. 

휠체어를 탑승하고 해지할 때만이라도 보조 인력이 도와줄 수는 없을까?

대다수 휠체어 이용객들은 본인은 불편을 감수해도 된다는 입장이었다. 터미널에 30분 일찍 도착해서 기사가 여유롭게 탑승을 도울 수 있게 하는 것에는 찬성이었다.

시간적인 여유가 많지 않더라도, 터미널에 보조 인력 1명이 붙어서 돕는다면 수월하게 탑승 절차를 마칠 수 있다는 의견이다.

그러나 업체 대부분이 1인 승무 체제이고, 휠체어 이용객이 상시로 탑승하지 않고 최소 3일 전에 예약을 하는 시스템이라, 월 17회 근무하는 동안 기사들의 배차 일정과 맞추기엔 현실적인 제약이 따른다. 운행 업체의 인력 문제도 있다.

아직 시행착오를 겪고 있지만, 작년 10월부터 시작한 휠체어 고속버스 운행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최 기사는 “휠체어를 타고 장거리 여행을 가는 것이 난생 처음이라고 좋아하는 손님을 만나게 되면 다시 힘이 나고 그래요”라고 말한다.

서로의 배려와 희생이 더해져서 그럴까... 덜컹덜컹 들썩이는 길도 괜스레 기분 좋게 느껴지는 여행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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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비 2020-06-15 14:15:48
장애인 분들의 시야에 맞춰진 기사를 통해서 작은 곳에서부터 조율하고 개선해나가야 할 것이 많다는 것을 느끼네요ㅠㅠ아직도 많은 시행착오를 겪고 있지만 이런 내용의 기사가 많은 곳에 알려지고 일반인들의 인식이 조금씩이라도 개선되어 나갔으면 좋겠습니다! 기자님 좋은 기사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