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불통" 이비인후과에... 청각장애인들 “도저히 못 믿겠다!”
"소통불통" 이비인후과에... 청각장애인들 “도저히 못 믿겠다!”
  • 박지원 기자
  • 승인 2020.06.24 17:14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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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청기 구매하려면 지정 병원에서 진단서 받아야... 농인 올 줄 몰랐나 “소통 체계 전무”
농인 이해 낮은 이비인후과... 입 모양 안 보여 필담 부탁하자 "바쁘다, 보호자 데려와라"
초스피드 진료 시간에 "상담은 고사하고 질문은 패스" 이미 바닥으로 떨어진 병원 신뢰도...
복지부만 못 듣는 소리... “행정 예고 철회하라” 35만 농인, 600만 노인의 미래 외면하나
오늘(24일) 오전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장애단체와 청각장애인 당사자들이 복지부의 행정 고시 철회를 외치는 기자회견을 개최했다. ⓒ소셜포커스

[소셜포커스 박지원 기자] = 보청기 판매와 구매를 놓고 농인 커뮤니티에도 불만이 폭발하고 있다. 사건의 발단은 6월 3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보건복지부(이하 복지부)가 ‘장애인보조기기 보험급여 기준 등 세부사항’ 시행령 개정안에 보청기 판매 인력으로 ‘이비인후과 전문의 1명’을 포함하면서 불씨가 지펴졌다. 

직격타를 맞은 보청기 판매업소와 청능사들은 공분하고 있다. 보청기 판매 소상공인의 생계를 위협하고, 청능사들의 자리가 없어질 위기에 처하자 행정 철회를 외치며 반기를 든 것이다.  

특히 보청기 주 이용층인 농인과 노인들의 ‘불신’도 깊어질 대로 깊어진 상황이었다. 그 누구도 반기지 않는 행정 고시를 고수하려는 듯, 복지부는 내내 외면하는 모습이다.  

여름 장마가 시작된 오늘(24일), 비를 맞으며 거리로 나온 이들은 청각장애인 당사자였다. 모인 숫자는 적었지만 35만 청각장애인과 600만 노인의 미래가 달려있다며 이내 참담한 심경을 토로해냈다. 

오늘 자리하지 못한 황 씨를 대신해 친구 신 모씨가 부당 사례를 이야기하고 있다. ⓒ소셜포커스

이비인후과 병원은 청각장애 진단을 받기 위한 1차 관문이다. 진단이 나와야 청각장애 등록이 되고, 처방전이 있어야 보청기를 구매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이미 청각장애인들 사이에서는 “이비인후과를 방문할 때마다 너무 불편하다”는 의견이 팽배했다. 이비인후과에 대한 ‘신뢰’는 이미 바닥이었다.

4년 전 청각장애인 황 모씨(여자/40대)는 보청기 구매를 위해 이비인후과에 갔던 경험을 어렵게 털어놨다.

"의사가 바쁘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입으로 대충 말을 하는데, 무슨 말인지 도저히 알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필담을 해달라고 부탁했는데 바쁘다고, 쓸 시간이 없다고, 보호자를 데리고 오라는 말만 했습니다..."

보호자 동행이 어려웠던 황 씨는 괜히 서글픈 마음이 들었다고 토로했다. 답답함을 참고 접수 수납처 근처에 앉아있는데, 한참을 기다려도 부르지않아 가보니, 대답이 없어 그냥 넘어갔다는 말을 들어야했다. 결국 그녀는 접수 신청을 다시 해야했다.

병원은 청각장애인이 온다는 걸 정말 몰랐을까? 거리가 아무리 멀어도 '지정 병원'에서 진단을 받아야하는 청각장애인의 설움은 하루이틀 일이 아니었다.  

장애의벽을허무는사람들(이하 장애벽허물기)의 김철환 대표는 “지정 병원이라면 예약 단계부터 청각장애인과 소통할 수 있는 최소한의 장치를 마련했어야하는데, 어떤 병원도 미리 준비하는 곳이 없었습니다. 복지부가 여태껏 방조해왔기에 사태가 심각해진건데, 고시 개정까지 한다니요... 청각장애인들이 겪을 차별은 전혀 생각하지 않는 겁니다”라고 비판했다.

황 씨는 올해 다시 청각장애 검사를 받기 위해, 경기도 성남 소재의 한 이비인후과를 방문했다. 그러나 4년 전이나 지금이나 달라진 건 없었다. 병원에 있던 청능사는 필담으로 친절하게 기초상담을 해주었지만, 정작 진료실에 들어가면서 상황이 역전됐다.

"의사가 말을 너무 빨리해서 입술을 읽을 수도 없었고, 필담을 요청하니 옆에 있던 간호사에게 적으라는 시늉만 하더라구요? 그냥 대강 적어주는 것이 다였어요. 3차 검사 때는 아에 다른 의사가 앉아있었는데, 마스크를 쓴 채로 말을 하니까 무슨 말인지 도저히 알아들을 수가 없었어요..."

그녀는 듣지 못하는 청각장애인들을 투명인간 취급한다는 생각에 눈물이 났다고 말했다. 수어가 가능한 이비인후과 의사는 기대도 안하지만, 청각장애인의 특성조차 이해하지 못하는 의사에게 진료받기는 싫다는 것이다. 게다가 병원 특성상 상담을 오래할 수 없어, 궁금한 점들은 넘어가기 일수였다. 

한국보청기협회 손태환 회장이 발언하고 있다. 그는 얼토당토않는 행정 고시로 소상공인을 죽이지말아달라 호소했다. 옆에는 UN장애인권리협약이행연대 이영석 활동가가 함께 자리했다. ⓒ소셜포커스

한국보청기협회 손태환 회장도 자리해 어려움을 호소했다. 복지부의 행정 고시는 “사람이 먼저다”라고 외쳤던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는 소상공인 살리기 정책과는 정반대로 가고 있다고 비판했다.

손 회장은 “소상공인의 자리가 없어진다면, 높은 비용과 초래되는 모든 불편을 다 구매자가 떠안아야합니다. 보청기 청소만 해도 진료비 내고, 처리 비용내면 이중 비용이 드는데, 2~3시간 걸려서 멀리 있는 병원까지 찾아가야만 보청기를 살 수 있고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게 되는 건 너무 불합리합니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아직도 일부 병원에서는 보청기 판매를 거부하거나 불친절한 경우가 많은데, 도대체 농인과 노인들의 사정은 누가 알아줍니까. 의사는 진료를 해야되고 보청기 판매는 보청기 전문가들이 해야됩니다. 제발 이번 정부는 소상공인을 힘들게 하고 갈 곳 없게 만들지 말아줬으면 좋겠습니다”라고 호소했다. 

연대 발언에 나선 UN장애인권리협약이행연대 이영석 활동가도 부정적 입장을 내놨다. 그는 ”우리나라는 장애인복지법에도 나와 있듯이 의료적인 관점으로만 장애를 바라봐왔습니다. 가장 큰 권력을 가지고 있는 의사 집단이 이런 관점을 고수하고 있으니 문제가 생기는 겁니다. 보청기 사용자 중심으로, 장애인 당사자의 입장에서 고쳐나가야합니다“라고 주장했다. 

기자회견 후 이들은 국가인권위원회에 "의료인의 보청기 판매관련 이비인후과 병원과 보건복지부 차별진정" 요구안을 접수했다. 농인계뿐만 아니라 보청기협회, 청능사협회도 이비인후과 병원에서 이뤄지는 ‘불통’의 문제가 해결될 때가지 행정 고시 철회를 외치며 강력하게 투쟁할 것을 밝혔다.

(왼쪽) 비를 맞아 머리가 흠뻑 젖었음에도 기자회견에 참석한 청각장애인들을 위해 열심히 통역을 하고 있는 수어통역사의 모습.
(오른쪽) 기자회견 후 이들은 국가인권위원회에 의료인의 보청기 판매를 반대하는 진정서를 제출했다. ⓒ소셜포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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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비 2020-06-25 22:30:02
아....결국은 농인분들과 구매자들에게 비용은 비용대로, 부담은 부담대로 돌아가게되었네요..ㅠㅠ 부정수급을 막으려는 명목으로 장애인보조기기 보험급여를 개정했다고는 하지만 정작 당사자의 입장을 고려하고 고민한 것이 아니라, 의료적인 관점으로만 대책마련을 하고있기에.. 어찌보면 이런 현황이 당연히 생길 수 밖에 없었지 않았을까? 싶어서 마음이 아프네요.ㅠㅠ보조기기가 절실하신 분들이 많이 억울하고 힘겨우시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행정예고안 철회되기를 같이 응원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