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돌봐줄 사람이 없습니다” 가난을 증명해야하는 삶...
“전 돌봐줄 사람이 없습니다” 가난을 증명해야하는 삶...
  • 박지원 기자
  • 승인 2020.06.25 19:3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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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양의무자기준 완전 폐지!" 문재인대통령 공약 지켜달라... '장애인'과 '가난한이들'의 호소
2017년 복지부 "생계, 의료급여에도 폐지" 약속했지만, 작년에 "의료 급여는 유지" 말 바껴
연락안되는 부양의무자에게 동의서 받아야... 구청 직원에게 가족관계 증명해야하는 수치심
노모와 장애인 형 때려죽인 둘째... 그들의 수급비는 단돈 15만원... "이건 사회적 타살이다"
오늘(25일) 오후 청와대 앞에서 '부양의무자기준 완전 폐지를 위한 특별예산 편성 요구" 기자회견이 개최됐다. ⓒ소셜포커스

[소셜포커스 박지원 기자] = “부양의무자기준 완전폐지하겠습니다” 지난 19대 조기대선 당시 문재인 대통령이 시민사회가 개최한 토론회에서 내걸은 약속이다. 부양의무자기준 폐지는 문재인 대통령의 100대 국정과제였다. 기초생활보장법 도입 20주년을 맞은 올해, 문재인 대통령의 국정 기간도 2년이 남았다. 약속은 정말 지켜질 수 있을까.

정성철 활동가

오늘(25일) 오후 ’장애인‘과 ’가난한 사람들‘이 청와대 앞으로 모여들었다. 이들은 2012년 8월 21일부터 광화문 지하도에서 ’장애등급제‘와 ’부양의무자기준‘ 폐지를 외치며 농성 투쟁을 벌여왔다.

부양의무자기준이 완화되어온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2018년 10월 ’주거급여‘에서만 부양의무자기준이 폐지되었고, 정작 더 절실한 ’생계급여‘와 ’의료급여‘에서는 완화조치만 취해져 완전 폐지는 요원한 일이 되어버렸다.

빈곤사회연대 정성철 활동가는 “정부의 예상대로라면 2018년부터 2020년까지 진행된 ’제1차 기초생활 종합계획‘에 담긴 부양의무자기준 완화조치로 12만6천 가구의 생계ㆍ의료급여 수급자가 증가했어야했지만, 실제 신규 수급자는 6만5천829가구에 불과했다. 부양의무자 기준 완화로 사각지대를 해소할 수 없다는 것은 2003년 정부가 발표한 보고서에도 나온 내용이다”라고 꼬집었다.

'기초생활보장법' 도입 20주년이 된 올해, 여전히 '장애인'과 '가난한이들'은 생존권을 외치며 거리로 뛰쳐나왔다. ⓒ소셜포커스

문재인대통령 당선 이후 2017년 8월 박능후 보건복지부(이하 복지부) 장관은 광화문 농성장을 방문했었다. 당시 박 장관은 2020년 발표될 ’제 2차 기초생활 종합계획‘에 생계급여와 의료급여에서 부양의무자기준 완전 폐지 계획을 담겠다고 약속했고, 작년 4월 16일에도 한겨레 신문과의 인터뷰를 통해 부양의무자 기준 완전 폐지를 밝힌 바 있다. 

그런데, 갑자기 약속이 바껴버렸다. 작년 9월 복지부가 발표한 보도자료에 “의료급여에서는 부양의무자 기준을 유지하겠다”라고 써있었던 것. 

차일피일 공약이 미뤄지는 동안 작년 7월 관악구에서는 탈북 모자가 사망한 채로 발견되고, 같은 해 8월 강서구에서도 부양의무자(둘째 아들)가 노모와 장애가 있는 형을 살해한 뒤 자살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탈북 모자의 경우, 사망 전 기초생활보장제도를 신청하기 위해 주민센터를 찾았지만 부양의무자기준에 가로 막혀 신청조차 하지 못했고, 강서구 살해사건의 진상 또한, 노모와 장애인 형에게 지급된 수급비는 단돈 15만원에 불과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둘째 아들의 작년 소득 때문에 수급비가 삭감됐기 때문이다.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은 부상ㆍ질환ㆍ실직ㆍ노후ㆍ장애 등 소득 상실 원인을 묻지 않는다는 점에서 가장 일반적인 공공보조제도로 알려져있다. 그러나 여전히 생계 및 의료급여가 필요한 인구의 2/3만 혜택을 받고 있어 제도 달성율이 현저히 떨어진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시민단체들은 기초생활보장법의 효과성이 떨어지는 주된 원인으로 ’부양의무자기준‘을 지목하고 있다.

부양의무자기준은 부양의무자가 없거나, 부양의무자의 재산과 소득이 일정한 수준에 미달하거나, 부양을 받을 수 없는 경우에 기초생활보장급여를 수급할 수 있게 하는 요건이다. 정작 같은 가구에 속하지 않는 자식, 사위, 며느리의 재산과 소득을 기준으로 수급 자격을 따지고 있다.

때문에 수급자는 수급 진입단계와 이후까지도, 같은 가구가 아닌 부양의무자의 재산과 소득 규모를 증명해야하고, 그것을 향유할 잠재적 가능성마저 없다는 것을 밝혀내야만한다. 

박영아 변호사

가족의 소득과 재산을 이유로 제도에서 탈락하거나 급여가 삭감되는 이들은 극단적인 경우 삶을 비관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까지 발생하고 있다. 가족에게 금융정보제공동의서를 받는 것에 대한 부담감이 크고, 가족관계 해체를 증명해야하는 수치심에, 연락이 가는 것이 두려워 수급신청을 포기하는 실정이다.

공익인권법재단 박영아 변호사는 “같은 가구에 속하지 않은 사람과 그 가구원의 소득과 재산은 자신의 지배영역에서 완전히 벗어난 사항이다. 이를 급여요건으로 삼는 것은 근본적으로 공정치 못하다"며 “취약한 상황에 증명 책임을 더욱 부담시키는 것은 사실상 권리 행사를 포기하게 만드는 효과를 가진다. 부양의무자 기준이 국민기초생활보장법 사각지대 주범으로 지목되는 이유다”라고 말했다.

최용기 회장 ⓒ소셜포커스

최용기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회장은 “저는 이것을 사회적 타살이라고 생각합니다. 장애가 없는 동생이 부양의무자로서 두 사람을 책임져야하는 부담 속에서 어쩔 수 없이 형과 어머니를 때려죽였다고 생각합니다. 가난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의 문제입니다”라고 비판했다.

그는 “저는 은평장애인자립생활센터 소장으로 활동 중입니다. 하지만 저는 국민기초생활보장법에 따른 수급권자이기도 합니다. 제가 수급권자를 포기 못하는 이유는 ’의료 급여‘ 때문입니다. 제 몸은... 정말 제 안에서 전쟁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저는 마약성 약을 먹지 않으면 힘들어서 살 수가 없습니다. 또 장애특성상 욕창같은 문제 때문에도 의료급여가 상당히 많이 들어갑니다. 그래서 정말 어쩔 수 없이 급여를 포기하고 수급권자로서 이렇게 의료급여 혜택을 받고 있습니다. 많은 장애인들이 일을 하고 싶어도 의료급여 때문에 일을 못하고 하루하루 무료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라고 호소했다.

기자회견문을 낭독하는 모습. ⓒ소셜포커스

부양의무자기준 때문에 실제로 수급에서 탈락됐던 노들장애인자립생활센터 박지호씨의 사례도 소개됐다.

박 씨는 38년동안 재가장애인으로 부모님과 살다 3년 전 자립했다. 자립을 준비하면서 그의 가장 큰 걱정은 생활비였다. 세대 분리를 하면서 수급신청을 했지만 차상위에 그쳤고, 활동보조서비스 자부담은 많이 줄었지만, 여전히 월세에 대한 부담은 컸다. 센터에서 알려준 서울형 기초보장을 신청해서 ’서울형 생계급여‘와 ’장애인연금‘을 합친 50만원 남짓의 수입이 생겼지만, 월세를 내고 나면 12만원 정도만 남게 됐다. 그는 이걸 가지고 어떻게 살아야하나 눈앞이 깜깜했다고 말했다.

결국 박 씨는 권익옹호활동가로 부족한 생활비를 벌기로 했다. 올해 1월부터 중증장애인 수급자 가구에 부양의무자 기준을 적용하지 않겠다는 발표를 듣고 내심 많이 기뻤다고 말했다. 그러나 올해 3월 생계급여를 다시 신청하려는데, 구청직원은 해당 내용을 잘 모르고 있었다. 코로나로 구청이 너무 바쁘다며 답변은 계속 미뤄져왔고, 지금까지도 그는 목이 빠지게 기다리고만 있다. 

박지호 활동가가 자신의 실제 사례를 이야기하고 있다. ⓒ소셜포커스

박 씨는 “제가 하고 싶은 말은 가족을 보지말고 나, 박지호를 봐달라는 것입니다. 지금 장애인 일자리 사업에 참여해 근로소득이 생겼지만, 그와 상관없이 복지부가 말하는 소득이 적어 생계급여를 받지 못한 중증장애인 2만여 가구에 여전히 전 해당되지 않습니다. 2020년 1월 이후 도대체 몇 명의 중증장애인이 부양의무제에서 해방되었는지 묻고 싶습니다”라고 호소했다.

한편 ‘제2차 기초생활 종합계획’은 7월 말 중앙생활보장위원회의 논의를 거쳐서 8월 초에 발표될 계획이다. 해당 계획의 논의가 본격화되는 지금, 기자회견에 참석한 이들은 부양의무자기준 완전 폐지를 위해서는 특별 예산이 편성되어야한다며 시민사회수석실에 요구안을 전달했다. 

"우리는 문재인 대통령의 약속을 믿고 기다렸습니다. 더 이상 기다릴 수 없습니다. 여전히 부양의무자기준 때문에 수급에서 탈락한 사람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고 있습니다. 후보 시절 저희들 앞에서 했던 공약을 지켜주십시오. 당시 저희들이 박수쳤던 손이 부끄럽지 않게 만들어주십시오"

기자회견 후 이들은 부양의무자기준 완전 폐지를 위한 특별 예산을 편성해달라며 시민사회수석실에 요구안을 전달했다. ⓒ소셜포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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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비 2020-06-25 23:19:21
가구에 속하지 않은 사람의 소득과 재정까지 증명해야 하다니...ㅠㅠ수급자분들에게 너무나 외롭고 쓸쓸한 기준인 것같아요ㅠㅠ 부양의무자기준이 수급자의 부담감을 덜 수 있도록 점차 완화되어 빠른 시일내로 폐기되길 바랍니다!
(중간중간 설명을 넣어주셔서 이해관계를 이해하기가 좀 더 편안했습니다. 늘 좋은기사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