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비인후과 전문의가 보청기 전문가?…농인 측 "장애감수성부터 부족"
이비인후과 전문의가 보청기 전문가?…농인 측 "장애감수성부터 부족"
  • 박예지 기자
  • 승인 2020.06.26 11: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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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청기 관련 수업 전문의 수련과정 중 단 3개
민간자격 청능사, '청각학' 전공해야 응시 가능…취득 후에도 3년마다 갱신해야
'이비인후과 전문의'에 보청기 제작 판매를 허가하겠다는 보건복지부의 행정 예고에 장애단체와 청능사협회가 24일 청와대 앞, 25일 세종시 정부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이어갔다. ⓒ소셜포커스 (제공=보청기급여 행정예고 철회 공동대책 위원회)

[소셜포커스 박예지 기자] = '보청기 판매를 이비인후과 전문의에게 허가하겠다'는 행정 예고를 철회하라며 청각장애인들과 청능사들이 연일 빗속 시위를 이어가고 있다.

경신청각언어연구소, 한국청능사협회 등 관련 단체들은 24일 오후 청와대 앞에서, 25일에는 세종시 정부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은 지난 6월 3일 보건복지부가 고시한 국민건강보험법 제51조 시행규칙 제26조에 근거해 "이비인후과 전문의 1인 이상"을 보청기 판매가 가능한 주체로 인정한다는 개정안에 대해 반발 수위를 높여가고 있다.

장애계와 청능사들은 이 개정안에 대해 '소비자를 우롱하는 행정편의주의식 발상'이라며 비판했다. 보장구인 휠체어는 물론 안경도 병원에서 팔지 않는데 왜 보청기 판매 권한을 의사에게 넘겨주느냐는 입장이다.

보건복지부는 "이비인후과 전문의는 국가자격이기 때문에 보청기를 제작, 판매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논리로 해당 개정안을 발표했다. 그러나 복지부가 고시한 전공의 연차별 수련교과 과정 중에는 보청기 관련 과목이 단 3개에 불과하다.

반면 청능사 자격은 현재 민간자격으로 분류되어 있으나 상당한 전문성을 요한다. 청각학을 3학년까지 수료한 후에야 시험에 응시할 자격이 주어진다. 특히 전문청능사 자격 시험에 응시하려면 청각학 학사학위 소지자로서 7년의 청능사 경력을 보유해야 하고, 140시간 이상의 보수교육을 수료해야 한다.

또한 3년마다 자격을 갱신해야 하는데, 자격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3년간 60시간 이상 보수교육을 이수해야 한다. 청능사 자격을 국가자격으로 인정해달라는 업계의 요구는 10여 년 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들은 해당 개정안에 담겨 있는 '전문성'의 기준에 대해 이해할 수 없다면서 오직 이비인후과 전문의들의 이익을 위한 것이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했다.

현재 보청기 비용을 지원받기 위해서는 청각장애 진단을 받아야 한다. 진단 비용은 건강보험 적용이 되지 않아 환자가 55여만원의 비용을 100% 부담해야 한다.

'보청기 급여 행정예고 철회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가 제시한 자료에 따르면, 2018년 발생한 급여 보청기 대수의 절반을 판매한다고 가정했을 때 이비인후과 전문의에게는 384억 원의 수익이 돌아간다. 청각장애진단, 보청기 처방전 수익과 더불어 보장구 검수확인서, 보청기 판매 수익을 모두 합하면 의료계가 매년 1천억 원의 이익을 챙겨갈 수 있다.

게다가 청각장애인과 원활하게 소통할 수 있는 의사가 극소수라는 것을 간과했다는 비판도 이어지고 있다.

이 단체들이 지난 24일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제기하며 열었던 기자회견에서는 장애감수성이 부족한 의사들에 대한 사례가 쏟아져 나왔다.

사례로 보호자 동반이 여의치 않은 농인에게 "바쁘다, 보호자 데려오라"며 필담 진료를 거부했다는 것.

이에 농인과 청능사들은 "개정안이 시행돼 이득을 보는 것은 이비인후과 전문의들 뿐"이라면서 "이 개정령안은 '사람이 먼저다"라는 현 정권의 슬로건에 반한다"고 비판하며 해당 개정령안의 입법예고를 취소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정부가 이들의 요구에 응답하지 않으면 해당 개정안은 오는 7월 1일부터 시행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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