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언어가 필요한 이유..."
"다른 언어가 필요한 이유..."
  • 노승재 학생인턴기자
  • 승인 2020.06.29 1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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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소통은 감정과 의미를 담은 배가 언어의 파도를 넘는 과정...
자막으로는 의미 전달 부족해... "온전한 수어 통역 방법 고민해야"
봉준호 감독과 그의 말을 통역하는 샤론 최의 모습 (사진_News1)

봉준호 감독이 영화 ‘기생충’으로 세계 유수 영화제에서 수상했을 때, 그의 옆에는 항상 누군가가 함께했다. 봉준호 감독의 말을 통역하는 ‘샤론 최’였다. 봉감독은 그에게 ‘언어 아바타’라는 찬사까지 붙이며, 자신의 생각을 위트 있고 섬세하게 풀어내준 것에 감사를 표하기도 했다.

한국어를 영어로 통역하는 광경은 사실 흔히 접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오히려 우리는 국제 공용어인 영어를 한국어로 통역하는 장면이 더 익숙할지도 모른다. 올림픽과 같은 세계적인 축제, 외국 정상의 방한 연설을 TV 화면으로 볼 때 전문 통역사들은 발 빠르게 현장의 언어를 우리 삶의 익숙한 언어로 바꾸어준다.

통역의 위대함은 여기에 있다. 구글 번역기처럼 기계적인 번역으로는 잡아낼 수 없는 상황의 맥락, 단어에 섞여 있는 감정의 농도, 말을 전달하는 목소리의 강단이 통역을 특별하게 만든다. 샤론 최는 그 역할을 훌륭하게 수행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스카 시상식을 보는 미국인들은 봉준호 감독의 수상 장면이 익숙치 않았을 것이다. 영어로 수상소감을 하는 것이 당연한 시상식이기 때문이다. 통역을 기다리는 몇 초간, 그들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누군가는 의미를 알 수 없는 말을 들어야 하는 짧은 ‘지연’이 낯설고 불편했을 것이다. 워낙 봉준호 감독의 말솜씨가 좋아 대부분은 불편함보다는 기대감이 컸겠지만, 그 ‘지연’이 미국인들에게 새로운 감각을 경험하게 해준 것은 틀림없다.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이 사실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것을 보여주었으니 말이다.

얼마 전 내게도 이와 비슷한 몇 초간의 ‘지연’이 있었다. 수어를 하는 유튜버의 채널 영상을 보면서 겪었던 일이다. 보통 광고 영상과 함께 왁자지껄 시작되는 일반 영상과는 다르게, 이 영상은 음소거가 된 게 아닌가 착각될 정도로 아주 조용했다.

자막이 등장하기 전까지 의미를 알 수 없어서 당황했던 그 ‘지연’은 일반 음성언어를 디폴트(기본값)로 생각하고 있었던 나의 고정관념을 무너뜨렸다.

당연히 영어가 나와야 할 수상소감에서 불쑥 나온 한국어가 미국인들에게 낯설었던 것처럼, 자막이 나오자 비로소 의미를 이해하고 고개를 끄덕일 수 있었다. 샤론 최가 통역한 영어를 들은 미국인들처럼 말이다.

아쉬운 것은 자막은 샤론 최의 통역처럼 언어의 생동감을 담지 못한다는 점이다. 자막은 의미만을 전달할 뿐 말의 뉘앙스나 어조, 강약을 정확하게 표현할 수 없다. 수어의 역동적인 움직임과 손과 손 사이의 관계성, 그 안에서 생겨나는 새로운 감각들이 어렴풋이 느껴졌지만 그저 어림짐작에 불과할 뿐 정확하게 느낄 수는 없었다.

그렇다면 반대로 생각해보자. 청각장애인들은 내가 어쩌다 한 번 느낄 이 아쉬움을 매번 느껴야 한다. 우리 미디어 사회는 아직도 수어 통역 없이 '자막만' 제공하는 것을 높게 쳐주기 때문이다. 많은 콘텐츠 플랫폼 회사들이 청각장애인을 위한 자막 서비스를 도입해 자막이 보편화되는 추세이지만, 온전한 언어로 통역하는 더 나은 방법을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언어는 보편적이지 않다. 한 언어로 모두에게 정확한 의미를 전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의사소통은 감정과 의미를 담은 배가 언어의 파도를 넘는 과정에서 비로소 완성되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에게 공평하게 감정과 의미를 전달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언어가 필요하다. 언어와 언어를 새끼줄로 엮어 촘촘하고 넓은 그물을 만들어야지만, 누군가 언어의 벽으로부터 배제되는 것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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