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 아파트 재건축에 "배 아파"... 장애인 주택에 "화풀이"
이웃 아파트 재건축에 "배 아파"... 장애인 주택에 "화풀이"
  • 박지원 기자
  • 승인 2020.07.01 17: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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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공동현관에 "집값 떨어진다, 장애인세대 전부 철수" 벽보 붙여
"재건축 밀어보자! 안되면 보상금이라도.." 알고보니 재개발 대상도 아냐
"시끄러워 못 살겠으니 나가달라" 입주자 대표 아랫층에 민원 지시까지
지난 6월 17~18일 대구 동구청 부O타워아파트에 붙은 벽보 내용 ⓒ소셜포커스
(왼쪽) 재건축 추진에 방해가 되고, 집값이 떨어지니 장애인 세대는 전부 철수하라는 내용이 적혀있다.
(오른쪽) 입주자 대표는 아랫층에 "(장애인 주택때문에) 시끄러워서 못 살겠다고 하고, 다 데리고 나가라"며 구청에 민원을 넣도록 지시했다. 

[소셜포커스 박지원 기자] = 아파트 주민들의 "장애인 혐오"가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장애인이 산다는 이유로 재개발에 도움이 되지않는다며 대놓고 "나가라"는 대자보까지 써붙이고 있다.

현재 대구 동구청 부O타워아파트에는 장애인자립주택 3채가 있다. 대구시에서 하는 '장애인자립주택' 사업의 일환으로 2011년부터 장애인이 거주해왔다.

그 중 2채는 동구청 소유로 '장애인지역공동체'(이하 장애인단체)에 위탁해왔고, 탈시설장애인 2명씩 총 4명이 살고 있다. 나머지 1채는 단기프로그램용으로 코로나19때문에 현재 거주자가 없는 상태다.

발단은 이랬다. 바로 옆에 40년 된 백O맨션이 재건축에 들어가면서, 부O타워아파트 주민들도 재건축 추진에 돌입하게 됐다. 문제는 재건축 동의서를 받는 과정에서 장애인 세대 2곳이 참여하지 않는다며 노골적으로 차별적인 언사를 퍼부은 것.

지난 6월 17일 오후, 자립주택 담당 직원 B씨는 아파트를 방문하던 중 공동출입현관에 붙은 벽보를 발견했다. 벽보에는 아파트 입주자대표가 구청장 및 건설국장과 나눈 면담 내용이 적혀있었다.

장애인 세대 전부 철수할 것. 집값 떨어진다고 함.

입주자 대표는 장애인 세대가 재건축 추진에 방해가 된다며, 집값이 떨어지니 전부 철수하라는 내용을 적어 벽보를 붙여놨다.

장애인 입주민들은 억울함을 호소했다. 아파트 소유권이 구청과 단체에 있기 때문에 본인들이 재건축 추진에 동의할 권한 자체가 없다는 입장이다. 장애인자립주택을 위탁 운영하는 장애인단체 또한 재건축시 이사 문제 등 여러 협의가 필요하기에 서명을 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심지어 다음날 오전, 장애인 주택 아랫층에는 또 다른 벽보가 붙게 된다.

시끄러워서 못 살겠다고 하고, 다 데리고 (나)가라고 하세요.

입주민 대표가 장애인 구청 복지과 주무관의 번호를 써놓고, 이 곳에 전화해서 "(장애인 주택때문에) 시끄러워서 못 살겠다. 다 데리고 가라"며 민원을 넣도록 지시하는 내용이었다.

입주자 대표의 태도는 당당했다. 장애인단체가 항의를 하자 "옆에 있는 백O맨션 재건축에 우리도 재건축되거나 보상금으로 이익을 받으려는데, 너희는 왜 협조를 하지 않느냐. 그래서 이렇게 하는거다"며 고압적인 태도로 일관했다.

심지어 해당 아파트는 재건축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 것으로 드러났다. 동구청에 확인해본 결과, 2002년 8월 2일에 완공된 아파트로 재건축 대상도 아니었다.

집 값이 떨어진다는 주장도 허위로 밝혀졌다. 동구청이 2019년에 매입한 1채의 현 시세가는 6월 22일자 기준 1억 9천만 원으로, 매입 당시 1억 7천만 원이었다. 1년 전에 비해 시세가가 2천만 원이 오른 것이다.

민원을 넣으라는 입주자 대표의 주장처럼 층간 소음문제도 심각했을까?

장애인단체 측은 "가끔 클러치를 사용하는 경우 바닥을 찍거나 휠체어 바퀴소리가 신경쓰인다는 민원이 있어, 기능보강공사를 진행해 바닥 매트를 깔고, 주민들에게도 사과를 하며 잘 풀어갔다"고 해명했다.

또 장애인자립주택은 스프링쿨러 등 편의시설을 다 설치해놓았기에, 만약 재건축을 추진한다고 해도 이사가는 것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아파트 내 장애인 혐오는 오래 전부터 있어왔다. 대구 서구에서는 장애인 주택이 들어온다는 소식에, 주민들이 차로 애워싸서 짐이 못 들어오게 막은 일도 있었다. 다른 곳에선 아파트 주민들의 반발이 심각해, 구청이 매입한 장애인자립주택을 도로 팔아버리기도 했다.

장애인자립주택 입주민들은 2년 전부터 입주자 대표가 노골적으로 차별적인 언행을 일삼았다고 호소했다. 장애인 단체의 항의로 해당 벽보는 다 사라진 상태이지만, 단체에서 법적인 대응을 한다고 하니, 입주자 대표는 좋게 해결하자며 다른 태도를 보이고 있다.

장애인지역공동체의 조민제 사무국장은 "장애인 자립주택은 시설도 아니고 말그대로 개인이 거주하는 아파트다. 문제는 주민들이 '시설'이라고 인식하고 그냥 혐오한다는 것이다. 같은 이웃으로 생각하지 않고, 이해하려고 하지 않으니 안타깝다"고 말했다.

장애인단체는 현재 입주민 대표 등을 상대로 법적 대응을 준비 중에 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은 입주민 대표가 장애인이 살고 있다는 정보를 적시하며 철수를 요구하고, 집 값이 떨어진다는 허위 사실을 유포해 차별을 조장하는 등 악의적으로 행동했다며 함께 대응할 것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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