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비인후과에서 보청기 판매... 안과 전문의는 안경 팔아야
이비인후과에서 보청기 판매... 안과 전문의는 안경 팔아야
  • 염민호 편집장
  • 승인 2020.07.02 16:39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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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업과 협업을 통한 전문성 키워야 한다
장애인보청기 건강보험 급여제도 개선 시행령 개정.... 문제점 많아
다양한 보청기 종류 사례
다양한 보청기 종류 사례

이런 억지 주장을 해보자.

병원에 가서 진료를 받으면 처방전을 받아 약국에 가서 약을 받게 된다. 환자 입장에서는 여간 불편한 게 아니다. 그러지 않아도 몸 아픈데 병원 갔다가 약국에 들러야 한다. 환자의 입장이나 편의를 고려하면 의사가 진료하고 직접 약도 조제해주는 게 옳다.

이 글을 읽는 분들은 이 주장에 어떤 반응을 보여줄까 궁금하다.

몇 년 전 ‘의약분업’이라는 논쟁으로 온 나라가 뜨겁게 들끓었던 기억이 떠오른다.

당시 의사와 약사의 입장이 첨예하게 대립하며 양측이 피터지게 싸움을 했다. 의사가 병원 문을 닫고 파업을 하면 약사도 약국 문을 닫고 파업 농성으로 맞받아쳤다. 양쪽 공방이 계속되는 과정에서 몸 아픈 환자들이 애꿎은 볼모로 고통을 받았다. 잘 아시다시피 이 사건으로 ‘의약분업’ 제도가 정착했다. 결론적인 특징은 국민이 이 제도에 대해 별다른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런데, 지난 6월은 청각장애인에게 제공하는 보장구 가운데 하나인 보청기를 놓고 관련 업계가 들끓었다.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장애인보청기 건강보험 급여제도 개선에 대한 시행령 때문이었다.

관련 업계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시행령은 발효됐다. 규정 개정에 따라 이달 1일부터 청각계통을 진료하는 의사가 직접 보청기를 취급할 수 있게 됐다. 진료도 하고 장애인 보장구인 보청기도 직접 판매하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시력 보정을 위해 안과에 갔는데 처방전은 의사가 써주고 안경은 왜 안경점에 가서 맞춰야 할까? 조금 성급한 측면이 있지만 이런 예측도 충분히 가능하다.

앞으로 안과에서 진료를 받을 경우 의사가 직접 만들어주는 안경을 받아쓰게 될 수도 있다. 안과전문의가 직접 안경테에 맞춰 본을 뜨고 렌즈를 가공하는 것이다. 의사의 손길을 거쳐 전달된 안경을 더 신뢰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이왕 시작했으니 억지소리를 더 해보자.

앞으로 치과 전문의는 인공치아를 직접 가공하겠다고 나설 수 있다. 이 경우 치기공사가 할 일은 없어진다. 신체에 심고 부착하는 모든 의료용품이나 보장구를 직접 취급하면 부가가치가 더 높아 병원의 수익이 증대될 터인데 복잡한 구조를 모두 간소화 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병원에 입원해서 치료를 받는다고 가정하자. 자신의 몸 상태를 가장 잘 알고 있는 주치의가 직접 주사를 놔주어야 한다. 처방약도 주치의가 약 성분에 대해 친절하게 설명해주면서 직접 조제하여 전해주면 심리적으로도 더 안정되고 믿음이 더 갈지도 모르겠다.

질병을 진단하고 처치하고 처방하는 모든 과정이 의사의 고유 업무에 해당한다. 그런데 꼼짝없이 침대에 누워 있는 중증 환자의 목에 걸린 가래를 간호사가 뽑아준다.(가래를 제거하는 것을 석션이라 한다.) 굳이 사족을 달 이유는 없지만, 환자의 고통을 최소화 하면서 능수능란하게 석션을 해주는 간호사가 그리 많지 않다.

이렇듯 의사에게는 기피하고픈 험한 일이나 효율성이 떨어지는 일이 많이 있다. 수액 주사를 위해 혈관을 찾고 바늘을 꼽는 것은 경험 많은 간호사가 더 전문가라 할 수 있다. 석션이나 주사 놓는 일이나 체온 측정하는 것 등 많은 일을 간호사가 담당한다.

만일 의사가 직접 주사를 놓거나 중증 환자에게 석션을 하겠다고 나선다면 본인이나 이를 지켜보는 가족이 좋아하지 않을 수 있다. 왜 그럴까? 우리는 분업과 협업을 통한 전문성을 키우는 것이 더 이롭다는 것을 경험을 통해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장애인보청기 건강보험 급여제도 개선을 명분으로 이비인후과 전문의가 직접 보청기를 판매할 수 있도록 밀어붙인 것은 과도한 행정편의주의라 할 수 있다. 이번 시행령 개정은 이비인후과 전문의만을 위한 제도로 변질된 것이다. 제도의 개선보다는 오히려 사회통념을 역행하는 결과를 초래했다는 비난을 피하기 어렵다.

보청기는 작게 만들어야 하고 내구성도 좋아야 한다. 여러 가지 부품을 조립하여 완성되는 정밀한 전자제품이다. 판매한 보청기는 사후 관리 측면에서도 사용 가능 연한까지 전문적인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

이비인후과 전문의가 감당해야할 일이 다양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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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환 2020-07-02 17:52:22
청각장애인들이 이빈후과 병원에서 소통이 안되어 답답하다는 민원이 많이 들어옵니다. 이런 기본적인 내용도 해결이 안되는데, 이비인후과 의원들의 보청기 말이 안됩니다.

베*란 2020-07-02 17:35:13
이비인후과 의사의 욕심이 청각장애인과 보청기를 사용하는 소비자를 힘들게 하는 겁니다. 본인이 청각장애인이라면 그렇게는 안하겠지요. 소비자가 아무리 말해도 들은 척도 안하고 청각장애인 입장에서가 아니라 의사 입장에서 정책을 펴는 보건복지부가 답답합니다.
보건부라고 해야지 왜 복지부를 붙이는지 의문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