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기자가 간다⑤] “육상에는 차별이 없어야죠” 국내 최초 온라인 레이싱 현장을 가다!
[박기자가 간다⑤] “육상에는 차별이 없어야죠” 국내 최초 온라인 레이싱 현장을 가다!
  • 박지원 기자
  • 승인 2020.07.10 19:40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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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인인권운동 지지하는 뜻으로 가슴에 "Black lives matter"쓰고 달린 선수들
1.6km 내내 오르막길 걸린 5명... 땀 한바가지 흘렸지만 간만에 몸 풀어 좋아
시설 폐쇄로 강도 높은 훈련 어려워... 온라인 대회와 훈련 방식 적극 고려해야
열악한 휠체어 육상 인프라... 신인 선수 양성 절실 "나를 뛰어넘는 선수 되길..."
7월 1일부터 12일까지 '온라인 국제 육상대회'가 열린다. 대한민국은 9일 오후 2시 의정부시장애인종합복지관에서 경기가 치뤄졌다. 이날 경기에 참여한 자랑스런 대한민국 휠체어 육상 선수들을 만나봤다. ⓒ소셜포커스

[소셜포커스 박지원 기자] = “Please I can‘t breathe!”(부탁이에요 숨을 쉴 수 없어요) 조지 플루이드 사건이 터지고, 미국에서는 흑인인권운동의 물결이 일었다. 비단 한 ‘흑인’의 죽음으로 시작됐지만, 전 세계에서는 “나도 조지 플루이드다”라며 차별에 저항하는 이들이 거리로 뛰쳐나왔다.

차별에 저항하는 방법은 다양하다. 피켓을 들고 목소리를 높일 수도 있지만, 롤러 위를 치열하게 달리며 흘리는 땀으로도 가능하다. 바로 대한민국 패럴림픽의 뜨거운 심장, 휠체어 육상 메달리스트들과 미래의 국가대표 꿈나무 선수들의 온라인 레이싱 경기가 열렸다.

7월 1일부터 12일까지 미국 '뉴욕 로드 러너스'가 주최하는 ‘온라인 국제 육상대회’가 진행된다. 극심한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로 세계적인 ‘뉴욕마라톤대회’가 전격 취소되면서, 주최 측은 최초로 온라인 대회 전환을 시도했다.

참가 선수들 모두 흑인 인권에 관한 문구를 적은 빕 넘버(bib number)를 가슴에 달고, 특수장치와 연결된 롤러 위에서 1.6km를 달리면, 자신의 이름으로 5달러씩 흑인 커뮤니티에 기부할 수 있게 된다. 

"Black lives matter"(흑인의 목숨은 소중하다) 경기 시작 전 선수들 모두 빕 넘버에 흑인인권운동을 지지하는 문구를 적는다. 차별받는 삶이 어떤 것인지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선수들에게 조지 플루이드는 또 다른 의미의 친구이기도 했다. 

조지 플루이드 사건으로 시작된 흑인인권운동을 지지하는 뜻으로 경기 시작 전 선수들이 빕 넘버에 "black lives matter"(흑인의 목숨은 소중하다) 등의 문구를 적고 있다. ⓒ소셜포커스

대한민국에서는 9일 오후 2시 경기도 의정부시장애인종합복지관 롤러 훈련장에서 대회가 개최됐다. 대한민국 휠체어 육상 간판 선수였던 김규대 IPC(국제장애인올림픽위원회) 육상 자문위원이 작년 대한장애인체육회 이천훈련원에 기부했던 롤러와 특수장비가 빛을 발하게 됐다.

이날 2008년 베이징 패럴림픽 동메달리스트 유병훈 선수를 비롯한 서울시 이윤오 감독, 신인 선수 김정범, 김병훈, 이종구 선수까지 총 5명의 선수들이 함께 했다.

(왼쪽부터) 유병훈 선수, 김병훈 선수, 이윤오 감독, 김정범 선수의 모습. ⓒ소셜포커스

 

스포츠계에도 불어온 코로나 강풍... “온라인 육상 대회의 가능성을 보다"

레이싱 휠체어 뒤에 빕 넘버를 달고 있는 김병훈 선수의 모습. 롤러와 특수 장비를 연결시키고 앱과 연동해 전세계 선수들과 동시에 경기를 하게 된다. 화면 상에는 세계 각국 선수들의 기록이 나오고 대화창을 통해 소통할 수 있게 되어있다. ⓒ소셜포커스

세계 선수들과 동일한 조건에서 경기를 하려면, 바퀴 사이즈와 스피드 값을 미리 설정해야한다. 대회 프로그램 활성화를 위해서 10초동안 37km/h의 속도를 내야하는데, 국내에서는 아무도 깨지 못했다고 한다. 형님들의 성화에 못 이겨 김정범 선수가 나서보지만 36.6km/h에 그쳐 아쉬운 탄성을 자아냈다.

경기 시작을 앞두고 순서를 정한다. 장비가 1개이기 때문에 선수 한 명씩 경기에 임해야한다. 결국 ‘나이순’으로 정해졌다. 허탈한 웃음을 지으며 17살 막내 김병훈 선수가 롤러 위에 섰다. 경기 시작 전 몸풀기를 하는데, 이 롤러 심상치가 않다. 평소 연습해오던 롤러보다 상당히 묵직한 느낌에 긴장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막내 김병훈 선수가 첫 번째로 경기를 시작했다. ⓒ소셜포커스

경기를 시작하자마자 오르막길이 나왔다. 웃프게도 이날 5명 모두 오르막길이 당첨됐다. 실제 대회장에서는 오르막길, 내리막길이 자주 나오지 않지만, 프로그램의 문제인지, 대회 시간이 잘못 걸린 건지 1.6km 내내 오르막길만 달리는 상황이 연출됐다.

두 번째로 뛰었던 김정범 선수에게 소감을 물으니 혀를 내두른다. “작년에는 오르막길 연습을 많이 했는데, 올해는 한 번도 못했어요. 아까 경기 전에 연습할 때는 24km/h까지 속도를 유지했는데, 속도가 12km/h까지 내려간 걸 보니 많이 지쳤던 것 같아요. 그래도 훈련에는 아주 효과적인 것 같습니다”라고 말했다.

신인 유망주 김정범 선수가 열정적으로 경기에 임하고 있다. ⓒ소셜포커스

김정범 선수를 담당하는 이윤오 감독도 오랜만에 레이싱 휠체어에 올랐다. 경기를 앞두고 몸을 풀던 그가 핀잔을 준다. “야, 힘들었어? 자동으로 둬도 속도 올라가는데?”라고 말하자 김 선수가 머쓱해한다. 그러나 오르막길 앞에서는 장사가 없다고 했던가. 이 감독도 “마치 절벽을 내내 올라가는 기분이었다”고 토로했다.

화면에는 경사도가 나오는데 12도에서 14도까지 숫자가 올라갔다. 이 감독의 숨소리가 거칠어지자 장내도 동시에 고요해졌다. 지켜보는 이들 모두 땀을 쥐고 있을 때, 김정범 선수 혼자 장난스럽게 웃고 있다. “감독님의 고통이 저의 행복이에요!”

유병훈 선수의 기록 ⓒ소셜포커스

오늘 경기 1위는 유병훈 선수가 차지했다. 평균 18.8km/h의 속도로 총 5분 11초만에 완주하며 가장 안정적인 페이스를 보여줬다. 처음 도전하는 온라인 경기라 3~4분 대 완주를 예상했지만, 내내 오르막길 레이스였던 걸 고려하면 성공적인 결과였다.

이윤오 감독은 “올해 선수들이 한 번도 대회를 뛰지 못한 상황에서 전체적으로 페이스가 다운되어있었는데, 오늘 동기부여가 되는 좋은 경험이 된 것 같아요. 온라인 대회가 기존에 없던 새로운 ‘실험’인데, 점점 ‘실현’이 되어가는 것 같습니다. 그래도 2번은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은 듭니다(웃음)”라고 말했다.

오늘 대회 주최에 앞장선 김규대 위원은 “소수 인종 차별에 저항하는 의미로 본 대회가 개최됐는데, 이런 문화가 한국에도 많이 알려졌으면 좋겠어요. 흑인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아시아인은 ‘소수 인종’의 상징이잖아요. 장애인 스포츠를 통해서 소수 인종을 대변하고 기부하고 장애인식개선까지 선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다는 걸 몸소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무엇보다 뉴욕마라톤조직위원회에 한국 선수들이 열심히 뛰고 있다는 걸 증명해서, 대회에 잘 출전할 수 있도록 IPC 위원으로서 징검다리 역할도 해야됐구요”라며 대회 취지를 밝혔다.

유병훈 선수가 오늘 최고 기록을 세웠다. 1.6km를 5분 11초만에 완주했고 평균 18km/h로 가장 안정적인 페이스를 보여줬다. ⓒ소셜포커스

 

가장 기대했던 도쿄패럴림픽... "선수들은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한편 도쿄 패럴림픽이 연기되면서 가장 기운이 빠졌던 건 선수들이다. 대회가 열려야 자신의 역량과 실력을 점검할 수 있지만, 코로나 사태로 모든 운동시설과 복지시설이 문을 닫으면서 연습 공간 마련도 어려워졌다.

작년 두바이 세계육상선수권 대회에서 은메달을 거머쥔 유병훈 선수는 그 기세를 모아 올해도 도쿄패럴림픽 메달을 목표로 하고 있었지만, 연이은 대회 취소에 선수들 모두 힘 빠지는 나날의 연속이었다고 말했다.

막내 김병훈 선수와 최고참 유병훈 선수의 모습. 코로나 사태로 대회가 연일 취소, 잠정연기되면서 선수들도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있다. ⓒ소셜포커스

유 선수는 “원래 실내 운동 시설에서 팀 선수들 다같이 집합 훈련하고 오후에 웨이트(근력운동)도 해야되는데, 시설이 다 폐쇄가 되다보니 현재는 오전에만 야외에서 운동하고 오후에는 개인적으로 운동하면서 버티고 있어요”라고 말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소위 ‘집콕’(집에서 하는) 운동밖에는 할 수 있는 게 없어졌다. 대회를 앞두고 강도 높은 훈련을 해온 선수들에게 밴드 운동, 맨손 체조가 성에 찰 리가 없다. 서울시 선수들의 경우 의정부시장애인종합복지관에서 야외 롤러 훈련을 할 수 있도록 배려해주었지만, “영차 영차” 작은 목소리로 거리를 두며 조심스럽게 해야하니 여러모로 답답한 상황이다. 

서울시 이윤오 감독이 장애인 스포츠계의 상황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소셜포커스

가장 힘든 운동으로 손 꼽히는 육상이지만, 여전히 인프라는 열악하다. 현재 우리나라에 등록된 휠체어 육상 선수는 24명이다. 그 중 15명의 선수가 활동하고 있다. 일본의 경우 등록 선수만 600명에 달하고, 400명이 활동하고 있다. 소규모이지만 국내 선수들의 실력은 이미 높은 메달 성적을 통해 세계적으로 증명되어왔다.

그럼에도 10년이 무색하게 이들의 뒤를 이을 선수는 나오지 않았고, 선배들은 어느새 40대에 접어들게 됐다. 휠체어 육상 선수들의 연령대가 높은 이유도, 아직 현장을 떠나지 못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자라나는 꿈나무 선수들이 한국 휠체어 육상의 큰 자산이라는 것을 알기에, 선수로서 지도자로서 자신들이 끌어줘야한다는 걸 모두가 동감하고 있었다. 

김규대 휠체어 육상 전 국가대표선수이자 현 IPC 육상 자문위원 ⓒ소셜포커스

김규대 위원은 세계를 다니다보니 한국 장애인 스포츠의 현실을 절감하고 있는 듯 했다. 그는 “사실 세계 어디를 가나 훈련하는 건 비슷하다고 봐요. 그런데 아직도 한국 선수들에 대한 대우나 관심은 많이 부족합니다. 비단 4년 전 리우 패럴림픽만해도 한국이 메달을 3개나 땄거든요. 은퇴하고 IPC 위원으로 활동하면서, 국제 대회에 한국 선수들을 초청해달라고 수도 없이 요청했지만, 그때마다 돌아온 대답은 ‘당신 은퇴했잖아’, ‘마음은 알겠는데 어떤 선수들인지 잘 모르겠다’ 등의 답변 뿐이었어요"라며 안타까워했다.

그는 한국 선수들의 국제대회 출전을 위해 한 명씩 영어 프로필을 받아 도쿄, 보스톤, 베를린 등 세계 각지의 육상 조직위원회의 문을 두드렸다고 했다. 그의 노력으로 홍석만 선수와 유병훈 선수도 일부 대회 비용을 지원받았고, 국제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었다. 오늘 개최된 온라인 대회도 김 위원이 새벽 무렵 급하게 조직위원장에게 연락을 넣어 개회사 영상을 받아 현장에서 송출할 수 있었다.

이종구 선수가 학업을 마치고 부랴부랴 도착해 열심히 경기에 임하고 있다. ⓒ소셜포커스

빛나는 메달 밑에 떨어지는 땀방울의 가치는 누가 알아줄까. 여전히 한국 육상은 그 정점을 찍기까지 아직 ‘과도기’에 머물러있다는 평이 따랐다.

선배들이 활동했던 시절은 그야말로 장애인 화장실조차 구비되지 않은 열악한 상황이었다. 선배들의 희생으로 운동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됐지만, 여전히 차별은 존재한다고 말한다.

이윤오 감독은 “저희 때만 해도 숙소가 2층인데 엘리베이터는 없고, 화장실은 5백 미터 떨어진 공용화장실을 써야했던 때가 있었어요. 그날 합숙에 들어가는 첫 날 시위를 했어요. 장애인과 비장애인 둘 다 똑같이 메달 따고 나라를 빛냈는데 왜 장애인은 연봉도, 연금도 다 차별받아야하냐고 소리쳤죠. 지금은 조건도 동등해지고 개선된 것들이 많지만, 깊이 들어가면 고쳐가야할 부분들이 많아요"라고 말했다. 

처음 운동을 시작할 때 장비 구매부터, 하물며 연습을 하다가 타이어에 구멍이 나도 지원받을 수 있는 시스템은 거의 전무하다. 레이싱 휠체어도 비싸기때문에 후배들은 선배들이 쓰던 장비들을 물려받아 쓰고 있다. 

육상 종목을 지원해달라 말하기엔 다른 종목과의 형평성 문제도 생긴다. 무엇보다 ‘메달’을 따야 무엇이든 요구할 수 있게 된다는 걸 알기에 선수들은 죽으나 사나 연습에만 매진할 수밖에 없다.

앞서 달려가며 지금의 휠체어 육상을 만들어온 선배들이 원하는 건 단 하나다. 후배들이 자신보다 더 뛰어난 기록을 내는 것.

"제발 우리 좀 이겨줘라! 은퇴 좀 하자!" "네 덕에 연금도 높아지고, 비행기 퍼스트 클래스도 타보자!"

장난스레 말하는 이들이지만 언제까지나 후배들 뒤에서 버팀목으로 함께할 이들이었다. 원래 비하인드씬이 더 재밌는 법 아닌가. 대한민국 휠체어 육상 최고의 순간 뒤에는 우애 가득한 선수들의 비하인드씬도 멋지게 자리하고 있었다.   

대회는 연기되었지만 좋은 성적과 기량으로 다시 만나길 기원하며 화이팅을 외치는 선수들의 모습. ⓒ소셜포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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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 2021-06-20 21:37:24
도쿄 패럴림틱이 연기된 것은 몰랐었네요. 이번에 휠체어 육상도 처음 알게 되었네요. 페럴림픽과 휠체어 육상이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졌으면 좋겠습니다.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장*비 2020-07-10 21:04:03
도쿄 패럴림픽이 연기되면서 준비하던 선수분들이 많이 허탈하셨을 것같아요ㅠㅠ 일본이 비해 대한민국에서는 패럴림픽에 대한 관심도가 낮다는 것이 내심 너무 아쉬워요. 그렇지만 소수의 선수들로도 뛰어난 기량을 보여주셔서 자랑스럽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코로나사태로 훈련할 수 있는 환경이 열악해졌지만 그 가운데에서도 온라인 경기를 통해서 차별에 대항하고 소수인종을 대변하고 계신 모습에 감명을 받았습니다!
선수분들의 목소리와 마음이 이 기사에 담겨서 그대로 전달이 되는 기분이예요!! 덕분에 곳곳에 계신 분들의 관점을 하나하나 알아가고 있습니다!! 역시 박기자님 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