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강장 단차에 걸려 휠체어이용자 나뒹굴어도 '장애인 차별 아냐'
승강장 단차에 걸려 휠체어이용자 나뒹굴어도 '장애인 차별 아냐'
  • 박예지 기자
  • 승인 2020.07.28 17: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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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 "열차충돌 우려해 고무발판 설치 않은 것은 장차법상 면책사유"
장애계 "또 다른 비극 기다리나"
승강장 간격과 단차가 기준을 초과해 사고를 당한 휠체어 이용자 2명의 차별구제소송에 서울동부지방법원이 기각 판결을 내렸다. 원고 측과 한국장애인단체총연맹은 지난 27일 항소심을 청구했다. ⓒ소셜포커스 (일러스트=News1)

[소셜포커스 박예지 기자] = 서울지하철 2호선의 승강장 간격과 단차가 기준을 초과한 구간에 안전발판을 설치하도록 시정명령을 내리라며 지체장애인 2명이 제기한 차별구제소송에 대해 서울동부지방법원은 기각 판결을 내렸다.

원고 측 2명은 지체장애 1급에 해당하는 휠체어 이용자로, 모두 승강장 단차에 걸려 사고를 당했다.

전OO 씨는 휠체어 바퀴가 충무로역 승강장 단차에 걸려 몸이 튕겨져 나가 나뒹굴었고, 장OO 씨는 신촌역 승강장에서 하차하던 중 휠체어 앞바퀴가 열차와 승강장 사이 간격에 끼어 곤란을 겪었다.

이에 이들은 현행 도시철도 설계지침에 따라 신촌역, 충무로역 승강장 중 열차와의 간격이 10cm를 넘거나 단차가 1.5cm를 초과하는 구간에 안전발판 등 이동편의시설을 설치하고, 사고에 대한 피해보상금을 지급하라며 서울도시철도를 대상으로 소송을 제기했다.

그러나 법원은 서울도시철도에 시정명령을 내리기 어렵다고 판결했다. 2개 역사의 준공일이 간격규정 시행일에 앞서기 때문이다.

판결문에 따르면 신촌역과 충무로역은 각각 1984년, 1985년에 준공됐다. 건설교통부가 간격규정령을 시행한 것은 2005년 3월 5일. 도시철도건설규칙은 당시 '이 규칙 시행 당시 건설되었거나 건설중인 도시철도에 관하여는 종전의 규정에 의한다'는 경과규정을 두었고, 이후 소급 적용하도록 개정된 바가 없다.

또 피고가 교통약자 이동편의를 위해 정당한 노력을 하고 있기 때문에 '피고가 장애인을 차별했다'는 원고 측의 주장도 인정할 증거가 없다고 밝혔다.

법원이 제시한 피고 측의 노력은 ▲2008년부터 이동식 안전발판을 제공한 점 ▲충무로역이 2018년 11월부터 교통약자 안내전담인력 서비스 '원스톱 케어서비스'를 실시한 점 ▲전동휠체어로 안전하게 승하차할 수 있는 승강장을 안내하는 앱(App) '또타지하철'을 제공한 점이다.

(출처=판결문) 

심지어 원고에게 사고 책임을 떠넘기는 경향도 보였다. 법원은 판결문에 "피고 측이 제공하는 이동편의 서비스를 이용하면 휠체어를 이용한 지하철 승하차가 가능하다는 점에 대해서는 이견 없을 것"이라고 서술했다. 

이와 더불어 두 역사가 장애인차별금지법이 규정하는 편의시설을 모두 갖췄고, 고무발판이 열차와 충돌할 가능성을 고려해 설치를 포기한 것은 장애인차별금지법 제4조 제3항제1호가 규정하는 정당한 면책사유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이 판결에 대해 원고 측은 교통약자에 대한 차별을 용인하는 처사라고 반발하며 지난 27일 항소장을 접수했다. 

법원이 피고측의 노력이라고 제시한 서비스들이 제대로 홍보되지 않았을뿐더러, 이용을 위해 사전 연락이 필요하다는 것 자체가 비장애인과 동등한 수준의 이동편의를 보장하고 있다고 볼 수 없다는 것이다. 

한국장애인단체총연맹(이하 장총)은 2001년 오이도역 리프트 추락사건, 2017년 신길역 리프트 추락사건 등 전례에서와 다를 바 없이 안일한 법원의 태도를 비판하며 28일 오후 성명서를 발표했다.

이하는 성명서 전문이다. 

[성  명  서]

일상의 목숨 건 사투(死鬪), 희생자를 기다리는 지하철

"서울지하철 2호선 신촌역은 1984년 준공되어 개통되었고, 같은 역 홍대입구역 방면 3-2번 승강장의 승강장과 열차 사이의 간격은 12cm이다. 원고 장OO은 2019. 4.30. 위 승강장에서 하차를 하던 중 휠체어의 앞바퀴가 열차와 승강장 사이의 간격에 끼는 사고를 당하였다."

서울지하철 신촌역, 충무로역을 상대로 지하철 차량과 승강장 연단의 간격이 10cm를 넘거나 그 높이 차이가 1.5cm를 초과하는 부분에 대해서 '장애인 승객의 사고를 방지하고 정당한 이동편의지원을 위한 안전발판 등 설비를 설치'하라고, 지난해 7월 서울교통공사(이하 교통공사)를 상대로 서울동부지방법원(이하 법원)에 차별구제 소송을 낸 이유다.

하지만 법원은 지난 7월8일, 피고인 교통공사의 편을 들어 이 사건 청구를 모두 기각했다.

생명과 안전에 관해서도 '소급'을 운운하나.

도시철도건설규칙(도시철도법 제18조에 따라 도시교통권역에 건설하는 도시철도의 건설기준 등에 관하여 필요한 사항을 규정)의 위반 여부에 해당 법원은 '오래된' 이 역사들은 소급 적용 대상이 아니며, 심지어 설계지침 시행 이후 개량 사실 주장에 대해서도 증명이 없다는 이유로 모두 인정하지 않았다.

중증장애인의 본격적 이동권 투쟁의 시작을 알렸던 2001년 오이도역 리프트추락사건 이후에도 수많은 전철, 지하철 관련 사건사고와 희생, 그에 따른 뒤늦은 대응이 반복되어왔다. 장애인 등 교통약자의 안전과 생명에 직결된 일상의 이동에 있어서도 과연 '소급'을 운운하는 것이 법원과 교통공사의 역할일까.

누구에겐 12cm가 내딛기에도 무서운 절벽이란 걸. 한번이라도 생각해보았는가.

법률의 변화, 그 의미의 엄중함.

또한, 장애인차별금지법(이하 장차법)은 교통약자법 시행령 별표2를 준용하여 교통사업자가 제공하여야 하는 편의의 내용을 규정하면서도 원고들이 적극적 시정조치로 구하는 안전발판 등 설비는 규정되어 있지 않으므로 정당한 편의제공이 없다고 볼 수 없다 밝혔다.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와 한국장애인단체총연맹 등 장애인단체는 이미 수년 전 부터 교통시설과 여객시설 내 이동 및 이동편의시설 이용지원과 더불어 승하차지원 등 탑승보조서비스를 요구해왔으며, 이는 2020년 3월 12일 관련 법(교통약자이동편의증진법) 시행령,시행규칙의 개정으로 법적 근거를 마련하기에 이르렀다.

여기서, '승하차지원'이란, 차량과 승강장 사이의 간격이나 높이의 차이 등을 해소하기 위한 시설제공 등 교통약자의 승하차를 도와주는 것으로, 이는 더 이상 이런 저런 이유로 '선택'하는 것이 아닌, 지원해야하는 '필수'로의 개념 전환 시작을 의미한다.

'정당함'이란 제공자가 아닌 '권리의 소비자'가 느끼는 것.

현행 장차법은 ‘현저히 곤란한 사정'과 '과도한 부담'이란 이중적 사유로, 장애인차별구제의 면죄부를 마련(동법 제4조제3항제1호)하고 있다. 이번 판결에서도 법원은 충무로역에서 시행 중인 원스탑케어 서비스와 교통공사가 시행 중인 안전 승강장 위치안내 앱, 이동식 안전발판서비스 등을 들며 정당한 편의를 제공하고 있다고 봤다.

도대체, 그 '정당함'은 어디서 오는 것인가. 매일 이용해야하는 전철에서 몇 정거장부터 긴장하며 전화하고, 내가 탄 차량의 고유번호 질문에 스스로 답변해야하고, 역마다 다른 안전승강장 위치에 낙담하며, 불안한 이동식 발판을 이용하기 위해 수십여분을 기다려야하는 서비스가. '정당'하다는 것인가.

'정당함'이란 제공자의 면죄부가 아닌, 권리로서의 '서비스 소비자'가 느끼고 판단해야한다.

또 하나의 궤변, 원고측 주장의 왜곡.

아울러 법원은 판결문에서, 본 소송 청구내용만을 근거로 '안전발판 등 설비를 설치하는 것만'이 장애인의 접근을 가능하게 하는 정당한 편의제공이라고 주장했다고 했다. 이동식 안전발판을 이용한 서비스가 안전은 고사하고 편의를 담보할 수 없는 상태에서 제기한 소송 내용이 이런 해석을 불러올 수 있는가.

또한 '해외 사례에서도 이동식 안전발판서비스와 같이 인적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례가 다수 존재한다'고 원고들이 주장했다고 했다. 판결문에서도 인용했듯이 발판개수가 부족하고, 홍보가 제대로 되지 않은, 해당역사에 전화로 연락해야만 하는 우리의 이동식 안전발판서비스와 그들의 그것을 비교는 해보았는가. 아니 제출한 자료를 살펴는 보았는가.

끝도 없는 '정당함' 타령. 부끄러운 민낯.

법원은 설령 피고가 이 사건 지하철역 승강장 연단에 안전발판 등 설비를 설치하지 않은 것이 정당한 편의를 제공하지 않은 것으로서 차별행위에 해당한다고 하더라도, 장차법 상의 '현저히 곤란한 사정'이 있다는 취지의 판결문에서, '2016년경 감사원이 자동안전발판의 안전성을 검증해야한다는 의견'에 따라 실제 설치에 나아가지 못한 점. 해당 역사에 고무발판 설치시 위험과 안전상 우려 외 달리 설치할 사유가 없다는 이유를 들고 있다.

이는 감사원의 의견이 지자체와 공공기관의 교통약자에 대한 정당한 조치 의무와 차별 발생 판단에 근거 잣대로 해석될 수 있는 선례를 남길 것이며, 고무발판 이외의 추가적 시공기법에 대한 검토 노력조차 하지 않는 부끄러운 민낯으로 남을 것이다.

이 소송의 또다른 원고(전OO)는 '개인적으로 바퀴가 턱에 걸려 오르지 못하고 내 몸만 튕겨져 지하철 바닥에 나동그라지는 사고를 당했다. 당시 경험이 트라우마처럼 남아 있다. 장애인들이 매일 숨어있는 단차를 넘나들다 결국 누군가 죽어야 국가가 나설 것인가!'라며 언론을 통해 울분을 토했다.

본 소송의 처음과 현재를 함께하고 있는 한국장애인단체총연맹은 해당 원고와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한국장애인단체총연합회와 함께 항소를 결정하고, 지난 7월27일 항소장을 접수했다. 장애인당사자와 단체, 언론, 국회까지 그 연대를 넓혀갈 것이다.

장애인에겐 일상의 목숨 건 사투(死鬪)

매일 희생자를 기다리는 지하철.

더 이상의 비극은 막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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