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인과 세상과의 징검다리” 수어통역 촬영 현장을 가다!
“농인과 세상과의 징검다리” 수어통역 촬영 현장을 가다!
  • 박지원 기자
  • 승인 2020.08.07 10: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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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장애인재단, 장애인 실무자 대상 재무ㆍ회계 온라인 교육 진행
오는 17일~30일 2주간 총 4강으로 고양시니어클럽 신우철 관장 강의
[인터뷰] 수어통역 참여한 한현심씨, 그녀를 통해 본 수어통역의 세계
오는 8월 17일부터 30일까지 2주간 한국장애인재단에서 장애인단체 실무자를 대상으로 재무ㆍ회계 온라인 교육을 진행한다. 지난 4일 계원예술대학교 스튜디오에는 농인 실무자를 위한 수어통역 영상 촬영이 한창이었다. ⓒ소셜포커스

[소셜포커스 박지원 기자] = 농인의 귀가 되고 입이 되어주는 사람들이 있다. 화면 오른쪽 아래, 동그란 화면 안에서 농인과 세상과의 징검다리가 되어주는 수어통역사가 되겠다. 그 누구보다 농인의 문화를 이해하고, 사랑해야하는 직업이지만, 애정의 깊이만큼 감수해야할 고충도 상당했다.

지난 4일 계원예술대학교의 한 스튜디오에는 수어통역 영상 촬영이 한창이었다. 한국장애인재단(이하 재단)에서 진행하는 장애인단체 실무자를 위한 재무ㆍ회계 교육 영상에 수어통역을 덧입히는 일이었다.

회계를 좋아해서 이번 영상 제작에 자원했다는 한현심 수어통역사를 만나봤다. 30년 경력의 베테랑이지만 전날 꼬박 밤을 세워 회계 공부를 하고 왔다고 했다.

갑작스런 호우 특보 때문에 새벽부터 아침까지 수어통역도 하고온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교대 시간 내내 머릿 속에는 회계 용어들이 둥둥 떠다녔다고 한다.

대부분의 교육이 온라인으로 전환되면서 수어통역사들의 손도 더 바빠졌다. 최근 그녀의 일정을 물어보니 그야말로 홍길동은 저리가라다. 동해 번쩍 서해 번쩍 수어통역이 필요한 곳은 어디든, 하물며 경찰서, 검찰, 구치소라 할지라도 가야했다. 일반 주부로 살아갔다면 갈 수 없던 곳을 농인 덕분에 가볼 수 있었다고 말하는 그녀다.

촬영 시작 전 강의 영상을 보며, 통역을 연습하고 있는 한현심 통역사의 모습. ⓒ소셜포커스

듣기만 해도 절로 고개가 저어지는 회계를 수어로 통역한다? 그래프와 숫자가 난무할 것 같았다. 이번 교육은 △기부금 관련 법률 사례와 △재무ㆍ회계규칙, △예산 편성을 위주로 진행된다. 다만 수어를 한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어떤 분야든 다 통역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이전에 필라테스 강의를 통역한 적이 있는데, 근육 위치부터 동작 설명까지 이걸 어떻게 표현해야할까 아주 머리를 쥐어짠 적이 있어요. 1분짜리 홍보영상을 통역하는데 전날 그 영상만 4시간을 듣고 왔거든요? 통역사는 끊임없이 공부해야 되요. 주변 농인들에게도 물어보구요. ‘이 표현 어때~? 이해가?’라고 물어보면서 농인이 이해하기 쉽게 바꾸기도 하구요.”

촬영 시작 전, 오디오가 잘 들리지 않아 조율을 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통역사에게 가장 중요한 건 '소리'다. 영상과 자막이 도움은 될 수는 있지만 소리를 기반으로 통역을 해야 하기에 시끄러운 현장에서 근무를 할 때는 돌발상황이 발생하기도 한다. 

“너무 난처했던 경우도 있었어요.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2018년에 도보다리회담을 가졌잖아요. 당시에 제가 통역을 맡게 됐는데, 두 정상이 만나자마자 카메라 후레쉬가 무지막지하게 터지면서 아무 소리도 안 들리는 거예요. 말 그대로 정지 상태였어요. 그러나 제가 처한 상황이 어땠는지는 보는 사람 입장에서는 이해를 할 수가 없을 거예요. 통역이 미흡한 부분에 대해서 통역사 혼자서 책임을 지고 가야하는 어려움도 있어요."  

한현심 통역사가 오디오가 잘 들리지않는다며 촬영팀과 조율하고 있다. 통역사에게 가장 중요한 건 현장의 "소리"다. ⓒ소셜포커스

대다수의 영상은 청인 위주로 제작이 되고 있다. 처음부터 농인을 위해 제작하는 영상이 많지않기때문에 통역사는 어떤 상황에서든지 만능으로 통역을 해야만 하는 중압감에 처할 때가 많다.

“생소한 단어가 나올 때... 가장 어려워요. 청인도 생소한 단어를 들으면 그게 무슨 뜻인지 유추해야 되잖아요. 저희도 음성 통역을 할 때, 농인이 쓰는 지화 중에서 생소한 단어가 나오면 아무리 봐도 잘 안 익혀질 때가 많거든요. 이런 교육 영상도, 말을 천천히 한다든지, 농인을 배려해서 영상을 제작하지 않기 때문에 화면 속도에 맞춰서 통역을 하려면 중요한 부분을 위주로 요약할 수밖에는 없어요. 통계나 그래프가 나오면 화면에 맞춰서 막대그래프를 그린다거나 방향을 표시하는 등 화면과 똑같이 표현해야 하지요. 아마 통역의 어려움보다는 그걸 빠르게 읽어내야하는 농인의 고충이 더 크겠죠.”

1990년 그날 우연히 카톨릭복지관에 들어가게 됐고 한 농인 아저씨를 만나 대화를 하고 싶어 수어를 배우게 된 게 첫 시작이었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던가. 30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그녀에게 수어는 어려운 존재다.

“이번에 재난 방송할 때 천둥을 설명해야 되는데 천둥은 의미가 없거든요? 게다가 눈에 보이지 않으니까 '쿠르르 쾅쾅!' 이 소리를 표현을 해야 되는데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을 하고 있었어요. 농인에게 물어보니까 '눈에 보이는 번개로 전달을 하면 대충은 알아듣지 않을까?'라고 말해주더라구요. 항상 '의미전달’에 대한 갈증이 있어요. 어떻게 하면 더 정확하게 전달할 수 있을까. 심지어 한국말은 한자어가 70%에 일본어도 많이 섞여 있어요. 언어체계나 길이도 다르고 동음이의어도 많으니까 단어 하나를 여러 가지 수어로 표현해야할 때도 많아요. 정말 끊임없이 고민하고 연구할 수밖에 없는 직업인 것 같아요.”

촬영이 시작되자 고도의 집중력으로 통역에 임하는 한현심 통역사의 모습. 전날 밤을 새워 공부하고 끊임없이 생각한 덕일까? 막힘없이 술술 통역을 해나간다. ⓒ소셜포커스

아담한 체구로 이런 무자비한 일정을 소화해내는 그녀에게 대체 체력 관리는 어떻게 하냐고 물었다. "다들 저를 철의 여인이라고 불러요”라고 웃으며 말한다. 대부분 1시간 단위로 통역사가 교대로 투입되지만 오늘 영상은 2시간 연속으로 촬영을 하게 됐다. 팔이나 손목이 아플 거라고 생각하지만 그건 착각이라고 한다. 초 단위로 소리를 듣고 의미를 해석하고 전달까지 해야하니 머릿속이 혼란스러운 게 더 힘들다고 한다.

“각종 온라인 강의나 대학교 교양 수업 등 영상촬영하게 되면 업체 측에서 하루에 6강씩 찍자고 하는 곳도 있어요. 한 강의에 한 시간도 넘는데! 촬영팀이야 빨리 찍고 빨리 제작하는 게 목적이겠지만 통역사는 죽어나요. 그래서 한 사람이 통역을 오래하면 통역의 질이 떨어질 수 있어요. 촬영 현장에서 통역사에 대한 배려를 바라는 건 참 어려운 일이에요”

그녀는 수어통역사를 꿈꾸는 이들에게 “농인을 사랑해야한다”고 말한다. 농인 사회와 문화에 대한 깊은 이해도 필요하다. 그렇지만 한 발짝 물러서서 농인들이 주체적으로 결정할 수 있게 도움을 주고 기다리는 역할이 중요하다. 통역사가 앞에 나서거나 주가 되어서는 안된다고 말한다.

“소통이 안되는 것만큼 힘든 건 없어요. 점자도서관에 점자책은 있어도 수어도서관이나 수어책은 없잖아요. 그만큼 어디서든 자유롭게 대화할 수 없다는 건 너무 고통스러운 일이에요. 그 어려움을 오랜 기간 지켜봐왔고 알고 있기 때문에 더 마음이 아픈 거죠. 오늘 재무·회계 영상도 농인들이 알아두면 도움이 많이 될 것 같아 좋은 취지라고 생각해서 온 거에요. 농인들의 배움의 경계가 조금이라도 허물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촬영 잘 마치고 가겠습니다. 이따 새벽에 또 재난 방송하러가야돼요.(웃음)”

촬영 내내 뒤에서 지켜보고 있는 한 사람이 있다. 본 교육을 담당하는 재단 함태웅 주임이다. 그 역시 소규모 장애인단체 실무자들의 애환을 잘 알고 있었다.

함태웅 주임 ⓒ소셜포커스

“소규모 장애인단체의 경우, 정부 지원을 받기가 어렵고 또 별도의 교육 없이 바로 실무에 투입되다보니 고충이 많으시더라고요. 5월에 교육주제를 정하려고 사전 설문조사를 진행했는데, 작년에 이어 올해도 재무ㆍ회계 분야의 수요가 가장 높아서 동일한 주제로 진행하게 됐습니다. 무료 교육이지만 교육의 질이 상당히 높기 때문에 실무자들이 교육을 듣고 장애인 당사자분들에게 더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라고 있습니다.”

작년에 강의를 진행했던 신우철 고양시니어클럽 관장이 올해도 강의를 맡게 됐다. 참석자 80%가 강의에 만족한다는 의견을 남겨주었다. 작년 오프라인 강의를 들었던 ㅇㅇ장애인단체의 K대리는 “평소 헷갈렸던 내용을 법적 근거를 이용해서 명확하게 설명해주셔서 좋았다. 평소 접하기 쉽지 않은 교육 주제였는데 앞으로도 역량교육을 자주 해주셨으면 좋겠다”는 평을 남겼다.

실제 작년 교육 후기를 반영해 올해는 관항목 작성법 영상도 추가로 제작했다. 8월 7일까지 사전 신청을 받아 신청자에게는 영상 링크와 교육 자료를 주어 실시간으로 시청할 수 있게 한다. 8월 17일부터 30일까지 2주동안 총 4강으로 진행된다. 마지막 4강에는 사전 질의를 받아서 Q&A도 진행할 예정이다.

함 주임은 “코로나 때문에 작년처럼 집합 교육은 하지 못하게 됐지만 이동이 불편해서 직접 교육을 들으러 오기 어려운 분들 또는 지방에 계신 분들이 편리하게 들을 수 있게 공간적인 제약이 풀렸다는 점에서 전화위복으로 삼고 싶다"면서 "더 많은 장애인 실무자들이 참여해서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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