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을 기다렸다" 이젠 UN CRPD 선택의정서 비준할 때!
"10년을 기다렸다" 이젠 UN CRPD 선택의정서 비준할 때!
  • 박지원 기자
  • 승인 2020.09.25 09: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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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2008년부터 선택의정서 비준 유보... 작년 적극검토 말했지만 여전히 계획 無
위원회 결정에 법적 기속력 없어... 권고 이행하려는 당사국의 정치적 의지가 가장 중요
"비준만이 끝은 아니다" 협약에 불일치하는 장애인 관련 국내법과 제도 개선 병행되야
유엔장애인권리협약 선택의정서 비준 촉구 및 실효성 강화를 위한 세미나가 24일 오후 복지TV 스튜디오에서 열렸다. 이번 세미나는 유엔사회권규약 위원회 신혜수 자문위원과 국제아동인권센터 이양희 대표가 발제를 맡았고, 조성민 더인디고 대표가 좌장을 맡아 UN CRPD NGO연대 및 국가인권위원회, 보건복지부, 법무부 등 정부 부처와의 토론이 진행됐다. ⓒ소셜포커스

[소셜포커스 박지원 기자] = 대한민국의 유엔장애인권리협약 선택의정서 비준을 위한 열띤 토론의 장이 열렸다. 「유엔장애인권리협약 선택의정서 비준 촉구 및 실효성 강화 세미나」가 24일 오후 복지TV 스튜디오에서 개최됐다.

유엔장애인권리협약(UN CRPD)은 장애인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2006년 유엔에서 채택한 국제인권조약이다. 대한민국이 유엔장애인권리협약을 채택한지 10년이 넘었지만, 2008년 선택의정서 비준을 유보한 후로 여전히 답보상태에 머물러있어 '반쪽짜리 의정서'라는 수식어를 면치못하고 있다. 

유엔장애인권리협약 선택의정서는 당사국이 협약에서 규정하는 개인의 권리를 침해했을 때 국내의 모든 권리구제절차를 거쳤음에도 불구하고 권리구제를 받지 못한 경우, 유엔장애인권리위원회에 권리구제를 청원할 수 있는 개인진정제도를 보장하고 있다. 또한 중대하고 조직적인 당사국의 협약 위반 사건이 발생할 경우 위원회가 당사국을 조사하는 직권조사 절차도 규정하고 있다.     

2014년 유엔장애인권리위원회가 대한민국에 선택의정서 비준을 권고했지만 이행되지 않았고, 2019년 3월이 되서야 정부는 제2차, 3차 병합국가보고서를 통해 "선택의정서 비준을 적극 추진할 계획"이라고 발표하며 기대감을 모았다. 

그러나 아직까지 비준 실행을 위한 정부의 구체적인 계획은 마련되지않고 있다. 선택의정서를 비준한다고 해도 유엔장애인권리위원회의 견해는 권고사항이기때문에 당사국이 이를 이행할 법적 기속력이 없다는 점에서 큰 한계점을 가진다.   

본 세미나를 개최한 한국장애인단체총연합회(이하 장총련)는 "우리나라가 비준한 국제인권조약은 8개로 이 중 선택의정서에 담긴 개인진정제도, 직권조사를 활용할 수 있는 조약은 절반에 불과하다"며 "먼저는 선택의정서 비준이 되어야하겠지만, 위원회의 견해에 대한 국내 법원의 인식변화와 이를 이행하기 위한 법적, 제도적 절차도 동반되어야한다"고 강조했다.  

(왼쪽) 발제를 맡은 신혜수 유엔사회권규약 위원회 위원장이자 유엔인권정책센터 이사장
(오른쪽) 좌장을 맡은 조성민 더인디고 대표 ⓒ소셜포커스

이미 비준된 유엔여성권리협약, 아동권리협약의 사례 살펴보니...

유엔아동권리협약 다음으로 비준국이 가장 많은 협약은 '유엔여성차별철폐협약' 이른바 '씨도(CEDAW) 협약'이다. 선진국에서는 미국만이 유일하게 비준을 하지 않았고, 아시아에서는 이란, 아프리카는 수단, 소말리아 등이 비준을 하지 않고 있다.

1979년 제정되어 현재 189개국이 가입한 씨도 협약은 1999년 선택의정서를 제정하고 114개국이 가입한 상태다. 대한민국이 씨도협약 선택의정서를 비준하기까지도 여러 험난한 과정이 따랐다. 당시 호주제에 여성차별적인 내용이 많아 선택의정서를 채택하면 씨도 위원회에서 직권조사를 나올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법무부가 반대의사를 표했고, 2005년 호주제가 폐지되고나서야 대한민국도 씨도협약 선택의정서 비준 대열에 들게 됐다.  

씨도 협약이 여성에 관련된 사건을 담당하고 있지만, 여성 '장애인'이 관련된 사안도 적지 않다. 실제 2011년 필리핀에서는 청각장애인 R씨의 사건이 논란이 됐다. R씨는 17세 때 주방에서 요리를 하던 중 이웃집 남성에게 강간을 당했고, 경찰에 고발을 했지만 재판과정에서 재판부가 강간 상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수어통역 등 정당한 편의 지원을 제공하지 않음으로서 씨도 협약 위반에 걸리게 됐다. 

당시 씨도 위원회는 R씨에게 금전적 배상과 무상심리상담 및 치료, 통역이 있는 장애친화교육 등을 제공할 것과 필리핀 정부에는 강간에 대한 법률 개정과 사법절차에 수어통역을 제공하도록 관련법을 개정할 것을 권고했다. 

유엔사회권규약 위원회 신혜수 위원은 "이처럼 개인진정제도의 경우 국내에서 아무리 애를 써도 권리구제가 안되는 사건을 국제인권협약을 통해 금전적 배상을 포함한 다양한 방식의 구제 절차를 밟을 수 있고, 위원회가 당사국의 미비한 법과 제도를 개선하도록 권고할 수 있다는 장점도 가진다"며 선택의정서 비준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아울러 "위원회가 개인진정조사, 직권조사를 했다는 사실만으로도 문제가 해결되는 경우가 있다. 헝가리의 사례를 보면 위원회가 피해자에게 배상하라고 권고를 내렸음에도 헝가리 정부가 이행하지않자, 위원회가 제네바 회의나 전기보고서 심의 때 헝가리 대표부에 지속적으로 이행을 촉구하면서 배상을 받아낸 경우가 있었다. 결국 당사국이 선택의정서를 비준하더라도 위원회의 결정을 이행할 정치적 의지를 가지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며 강조했다.

(왼쪽) 김미연 UN CRPD 장애인권리위원
(오른쪽) 발제를 맡은 이양희 前유엔아동권리위원회 위원장이자 現국제아동인권센터 대표 ⓒ소셜포커스

UN CRPD 비준 10년 지났지만... 선택의정서 왜 이렇게 미뤄질까?

현재 정부는 "현존하는 국내의 법과 제도를 통해서도 충분히 장애인의 권리구제가 가능하다"며 선택의정서 비준을 유보하고 있다. 이에 여러 장애인 단체들로 구성된 'UN CRPD NGO연대'는 정부의 입장에 "개인의 진정 사례가 넘쳐날 것을 우려한 처사"라며 비판하고 있다. 

NGO연대 조태흥 위원장은 "위원회에서 권고사항이 내려졌다고 해서 다 받아들여야하는 것이 아니다. 15조에는 선택의정서 개정에 대한 요청도 할 수 있게 되어있다"며 "정부가 선택의정서 내용에 대한 숙지는 미루고 괜한 염려로 미루고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며 지적했다. 

현장에서는 정치적인 이유도 있을 것이라는 추측이 제기됐다. 아동은 유권자가 아니라는 점과 전체 유권자 비율에서 장애인 비율이 적기때문에 아동이나 장애인에 관한 국제협약에 정부가 미온적인 태도를 보인다는 의구심도 따랐다.    

국가인권위원회(이하 인권위) 장애차별조사1과 안은자 과장은 국내의 장애인 관련 법이 유엔장애인권리협약에 일치하지 않고 있고, 모든 걸 담아낼 수 없기때문에 더욱 선택의정서 비준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안 과장은 과거 지하철 승강장 간격때문에 장애인이 사고를 당하자 장애인 단체가 소송을 제기한 사건을 예시로 들었다. 당시 법원은 '교통약자 이동편의증진법'에 안전 발판에 대한 의무 설치 내용이 없다며 장애인의 손을 들어주지 않았다.

「교통약자 이동편의증진법」 또한 「장애인차별금지법」 제정 이전에 만들어졌기에 유엔장애인권리협약의 내용과는 불일치하다. 선택의정서 비준을 하게 되면 이러한 국내법의 개정이 불가피하기 때문에 이 또한 비준 유보의 원인이 될 수 있다는 추측이 따랐다. 

법률 사각지대로 인한 어려움도 생긴다. 경찰에 신고도 하고 법원 판결까지 받았지만 권리구제가 되지않아 억울하다며 인권위에 진정을 하는 경우 별다른 수가 생기지않을 수도 있다. 인권위 32조 1항에 의거해 법원, 검찰, 기타 국가기관에 권리 구제 절차가 진행 중이면 이 또한 인권위의 각하 사유가 되기 때문이다. 안은자 과장은 가장 빠르고 적합한 권리구제 방안을 선택해야한다는 명목으로 되려 피해자에게 어려움을 주어서는 안된다며 선택의정서 비준을 촉구했다.  

장애인 단체로 구성된 UN CRPD NGO연대가 지난해 10월 28일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유엔장애인권리협약 선택의정서 비준을 강력 촉구했다. ⓒ소셜포커스

선택의정서 비준이 끝은 아냐... 국내에서 실효성 갖추려면?

선택의정서의 개인진정제도가 가지는 한계점도 거론됐다. 권리 구제에 상당히 오랜 시간이 소요되기 때문이다. 법무부 인권정책과 신유정 사무관은 자유권규약 선택의정서 실무를 맡으면서 느낀 한계점을 토로했다. 

신 사무관은 "길게는 몇 년까지 소요되는 과정에서 위원회가 결정을 내려도 정작 당사국이 권고 이행을 하지 않아 피해자가 더욱 절망하는 경우를 보았다"며 "선택의정서 비준이 단지 선험적으로 그치지않고 장애인의 인권 실현 등 궁극적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신혜수 위원님의 말처럼 정부가 위원회의 결정을 이행할 정치적 의지를 가지고 있느냐가 가장 쟁점이 될 것"이라며 강조했다. 

또한 법률상의 오류도 발생한다. 유엔의 개인진정제도는 국내 재판 절차를 다 소진하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기 때문에 개인진정제도까지 올라온 사례들은 이미 피해자에게 불리한 대법원 판결이나 헌법재판소(이하 헌재)의 결정을 받은 경우가 대다수다.

만약 헌재가 합헌으로 판단한 법률을 유엔이 규약 위반으로 판단하게 되면 유엔 위원회에서 피해자에게 배상책임을 내려도 헌재가 합헌으로 판단한 법률상의 책임은 제외될 수 있다는 문제가 생긴다. 장애인권리협약이나 자유권규약 등 대한민국이 비준한 조약은 국내법과 동일한 효력이 인정되지만, 선택의정서에 따라 국제기구가 발표한 권고는 법적 효력이 재판과 동일시 되지 않기 때문이다.

신 사무관은 "이런 사건을 어떻게 봐야하는가에 대한 입법이나 학설, 판례 등 확정된 방향이 없다. 우리나라뿐만이 아니라 선택의정서를 비준한 대부분의 국가가 유사한 문제를 겪는 것으로 파악된다"며 "위원회의 결정이 있어도 확정된 유죄판결이나 헌재의 귀속력을 완전히 뒤집지 못하는 사례들이 많고, 결국 정부의 이행 문제에 직면할 수밖에 없는 형태"라며 꼬집었다.

이어 "장애인권리협약뿐만 아니라 국제인권협약 등 국제기구 전반의 권고가 더 잘 존중되고 수용될 수 있도록 제도 마련이 시급하다"며 "법무부 또한 이에 가장 큰 책임을 느끼고 있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복지부, 외교부, 인권위, 여가부 등 다양한 정부 부처와 협력해가겠다"고 밝혔다. 

국제인권협약 자체는 법적 구속력이 있지만, 선택의정서에 진정된 사건에 대해 위원회가 권고 결정을 내렸을 때의 법적 구속력 여부에 대해서는 여전히 법조계와 국제법 학자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분분하다.   

현재 유엔인권정책센터 이사장으로도 재직 중인 신혜수 위원은 "저는 우리나라가 국제법 체계, 유엔 체제에 들어가서 선택의정서 논의까지 다 참여했으면 위원회의 권고까지도 적극적으로 이행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한다"며 "위원회가 아무리 권고를 해도 당사국이 이행하지 않는다면, 법률을 따로 제정해서 행정명령으로 이행하든지, 국제기구에서 권고한 사안에 대해서는 재판이 끝난 사안도 다시 재판을 여는 법률을 제정하는 등 주무부처인 법무부의 주도로 제도 보완을 해야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장총련은 본 세미나를 마치며, 대한민국 정부에 선택의정서 비준에 대한 구체적인 로드맵 제시를 촉구하고, 국회에는 정부가 선택의정서를 비준할 수 있도록 입법 행위에 열의를 다해달라고 당부했다. 오는 10월 13일에는 호주, 헝가리, 네팔, 태국의 CRPD 선택의정서 비준 과정과 활용 사례, 성과를 공유하는 국제 포럼도 개최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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