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우울, 농인 덮쳐도… '상담은 음성언어로만'
코로나 우울, 농인 덮쳐도… '상담은 음성언어로만'
  • 박예지 기자
  • 승인 2020.10.07 15: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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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9 복지콜 등, 수어 상담 제공 전무… 장애벽허물기 등 7일 진정서 제출
진정인 "코로나, 지인 사망, 직장 문제 겹쳐"… 소통 차단에 고립감 극심
문자 보내봐도 "1339에 전화하세요" 자동 응답만
장애벽허물기 등은 129 보건복지콜 등에서 수어 상담을 제공하지 않는 것은 청각장애인 차별이라며 오늘인 7일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차별 진정서를 제출했다. ⓒ소셜포커스

[소셜포커스 박예지 기자] = '비대면 소통'의 벽에 가로막힌 농인들이 심각한 코로나 우울증을 호소하고 있다. 

지난 달, 한 40대 농인 여성은 심리 전문 상담을 포기할 수 밖에 없었다. 지인의 사망, 직장에서의 장애인 차별로 우울감을 느껴 상담을 시도했으나, 수어통역사들은 코로나19 감염 우려로 병원에 가는 것을 꺼렸다. 정부가 제공하는 전화 상담도 모두 음성 언어로만 상담을 제공하고 있다. 도움을 요청했던 장애단체에서도 "전문 상담을 받기는 어려울 듯하다"라는 답변을 받았다. 

이 농인 여성과 기초 상담을 진행했던 장애의벽을허무는사람들(이하 장애벽허물기)은 "농인을 위해 영상 전화 상담 등을 제공하지 않는 것은 장애인 차별"이라며 7일 오전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진정서를 제출했다.

현재 국민들의 코로나로 인한 우울증은 심각한 수준이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가 지난 9월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올 1월부터 8월까지 월평균 자살 예방 상담 전화는 1만6천457건에 이르렀다. 지난해보다 9천217건보다 78.6% 증가한 수치다. 이에 대응하기 위해 중앙사고수습본부는 지난 달 28일 "상담 전문 인력을 빨리 확충하겠다"고 밝혔다.

장애벽허물기 등이 제출한 차별 진정서. ⓒ소셜포커스

문제는 상담이 음성전화로만 가능하다는 점이다. 청각장애인도 코로나 우울증에서 자유로울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보건복지콜 129, 정신건강복지센터 1577-0199, 자살예방상담전화 1393 모두 영상 전화를 통한 수어 상담을 제공하지 않는다.

비농인들은 영상물이나 음성 소통으로 어느 정도 우울감을 해소할 수 있다. 그러나 농인들은 그조차 여의치 않아 더욱 심한 고립감을 느끼고 있다.

장애벽허물기가 이 여성과의 상담 내용을 기록한 바에 따르면, 그녀는 "129 복지콜을 통해 문자 상담을 시도했지만 연결이 잘 안 된다"며 "정신건강을 전문으로 다루는 상담사도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또 "음성언어 체계가 익숙하지 않아 문자 내용이 조금 이상하면 질병관리본부 1339로 연락하라는 자동 응답만 돌아온다"라며 좌절감을 호소했다.

그녀의 지인 또한 극심한 우울에 시달리고 있었다. 같은 기록을 살펴보면 "한 지인이 사회적 거리두기로 항상 조심해야 해서 얼마 전부터 예민해지고 짜증이 늘었다고 했다. 코로나19에 감염될까봐 외출도 못 하다보니 요즘 줄담배만 피운다고 한다. 영상으로 얼굴을 보니 얼굴이 수척해져 있었다. 너무 안타까웠다"고 나와있다.

기자회견에 참석해 발언한 A목사와 이영석 대표. ⓒ소셜포커스 

기자회견에 참석한 A목사(농인)는 "청각장애인도 존중 받아야 할 국민이고 인격체인데 유무형의 차별로 인해 피해 받고 울어야 하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지적했다.

유엔장애인권리협약이행연대 이영석 대표도 "청각장애인들은 우울을 느낄 수 밖에 없는 환경에 더욱 노출되어 있는데 대책은 없는 상태"라며 "정부는 어려운 시국일수록 사회 약자를 돌봐야 하고 이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발벗고 나서야 한다"고 호소했다.

이들은 회견을 마무리하면서 보건복지부에 △청각장애인의 정신 건강 및 자살 예방 상담 대책 마련과 예산 책정 △수어ㆍ문자 전문 상담사 양성을 요구했다. 또 정신건강보건센터에 △영상 전화기 설치 △문자상담 시스템 구축 △상담 중 수어 또는 자막 제공을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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