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학자 이익의 얼을 품은 성호공원 [하]
실학자 이익의 얼을 품은 성호공원 [하]
  • 조봉현 논설위원
  • 승인 2020.10.12 13: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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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학자 이익 성호사설 등 대작 남기고 성호공원 앞에 잠들어
메타세쿼이아 산책로 사이로 40여 조각 작품 공원의 품격 높여
공원 내 김홍도 존(zone) 부조벽화들 김홍도 그림의 새로운 맛
공원 홈페이지 개설 등 정보접근성 개선 노력 아쉬워

[소셜포커스 조봉현 논설위원] = 안산시 상록구에 있는 성호공원은 조선 후기 실학의 선구자 성호 이익 선생의 얼을 품은 공원이다. 공원 내에는 성호박물관이 있고, 박물관 바로 앞 길 건너에는 성호의 묘지가 있다. 실제로 성호는 성호공원 근처에서 살았고, 세상을 떠난 후에는 성호공원 앞에 묻혔다.

성호 이익은 1681년에 태어나 1763년에 세상을 떠났다. 이익은 그 당시로서는 장수한 편이지만 가정적으로는 말년까지 불운했다. 과거에서 장원급제까지 한 똑똑한 외아들이 있었으나 34세에 요절했다. 늙은 나이에도 식솔들의 생계를 이끌면서 자신의 고질병을 다스리는 동안 경제적 몰락과 고초를 겪었다. 이런 고통 속에서도 생을 다할 때까지 학문을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성호사설 등 많은 저서와 제자들을 남겼다.

성호사설의 사설(僿說)을 글자대로 해석하면 세분하여 쓴 논설이라는 의미다. 사설(僿說)의 설(僿)자는 잘게 부순다는 뜻이다. 이 책은 성호가 80세 되던 해 세상에 나왔다. 책의 제목은 그냥 「僿說」이었고, 총 30책으로 묶었다.

『성호사설』은 천지, 만물, 인사, 경사(經史), 시문(詩文)의 크게 다섯 가지로 분류해 총 3천7편의 항목에 관한 방대한 양이 실려 있다. 당대 최고의 백과사전이었다.

천지편은 천문과 지리에 관한 글이다. 만물편에는 일상생활과 관련된 복식, 음식, 농상, 동·식물, 화폐와 도량형, 병기, 서양 기기 등에 관한 것들이 실려 있다. 인사편에는 정치와 제도, 사회와 경제, 학문과 사상, 인물과 사건 등을 서술했다.

평소의 체험과 연구를 통해 파악한 학문과 이치를 논한 것, 제자들과 문답을 통해 성호가 평소에 기록해 둔 갖가지 자료가 바탕이 되었다.

성호는 사설에서 당파의 대립에 대하여 “일단 당파가 갈리면 당인의 눈에는 자파의 이익만 있고, 국리민복은 안중에도 없다. 당파를 위해 용감하게 싸우다 죽는 자를 명절로 치고, 공정한 입장을 취하는 자를 못났다고 하니, 당쟁의 형세는 더욱 치열하다.”면서 통탄해 했다.

진영논리에 갇혀 자정 능력을 상실해버리고, 아무리 부정한 행위에도 자기 진영이라면 무조건 합리화시키는 오늘날의 세태를 본다면 또 무슨 말을 할까?

성호의 나이 82세 때 제자인 안정복은 이 성호사설 중 중요한 내용을 간추려서 「성호사설유선」을 펴냈다.

안정복은 「동사강목」이라는 역사책을 펴낸 실학자이다. 안정복은 이 책을 쓰면서 한국사의 주요 사건과 인물의 평가, 지명의 고증 등에 대해 의심이 날 때마다 스승인 성호에게 편지로 질문했다. 그리고 이익의 답변은 동사강목에 대부분 반영되었고, 그때 주고받았던 편지들은 동사문답이라는 책으로 전하고 있다.

성호는 83세 때 영조임금으로부터 첨지중추부사라는 벼슬을 받았다. 정3품에 해당하는 높은 벼슬이지만, 성호에게는 초고령자를 존경하는 의미의 명예직이었다. 1763년 세상을 떠나기 몇 달 전이다.

성호가 세상을 떠난 후에도 그의 사상은 제자들에 의해 계속 이어졌고, 많은 후학들에 의해서 꽃을 피웠다. 우리가 최고의 실학자로 존경하는 정약용도 그중 한 사람이다.

성호는 일생을 마치고 가까이 여주이씨의 선산에 잠들었다. 그곳이 바로 지금의 성호박물관 바로 앞에 있는 독주골공원이다.

이곳 묘역은 원래 성호의 숙부와 형, 아들, 손자 등의 묘도 함께 있었으나, 1997년도 반월공단이 생기면서 모두 이장했다. 성호의 묘도 함께 이장될 뻔했으나, 지역사회와 학계의 중론에 따라 이곳에 남아 경기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묘소 바로 옆에는 사당인 첨성사와 재실인 경호재가 있다. 성호의 묘역인 독주골공원은 아쉽게도 20개가 넘는 가파른 계단을 거처야 하기 때문에 이동약자는 접근할 수 없는 곳이다.

성호박물관의 모습 ⓒ소셜포커스
성호 이익의 대표작 성호사설 ⓒ소셜포커스
성호 이익의 대표작 성호사설 ⓒ(자료 : 성호박물관 공식 블로그)
성호 이익이 잠들어 있는 묘소 ⓒ소셜포커스
성호 이익이 잠들어 있는 묘소 ⓒ소셜포커스
성호 묘소의 입구와 재실 등 주변 풍경 ⓒ소셜포커스
성호 묘소의 입구와 재실 등 주변 풍경 ⓒ소셜포커스

박물관과 성호묘역, 식물원을 둘러보고 나면 쭉쭉 뻗은 메타세쿼이아 가로수가 자연스럽게 방문객의 발길을 유도한다. 이 공원이 2001년도에 조성되었으니 근 20년의 연륜이 쌓인 만큼 모든 조경이 안정적이고, 자연의 숲에서 내뿜는 피톤치드향이 그윽하다.

메타세쿼이아 가로수 탐방로로 들어서면 잔디밭과 아름답게 조성된 숲 사이로 이어지는 수많은 조각 작품들이 방문객의 시선을 붙잡는다.

국내 최고의 중견작가의 조각 작품과 단원미술대전에서 수상한 우수 작품들이다. 약 40점은 넘어 보였다. 성호공원의 품격을 한층 높여주는 조형물들이다. 멀리서 보면 멀리서 보는 대로, 가까이서 보면 가까이서 보는 대로 운치가 다르다.

조각 작품마다 바로 옆에는 제목과 작가 및 제작연대를 기록한 미니 표지석이 있지만, 너무 작은 데다 풀숲에 가려서 잘 보이지 않는다. 대부분 추상적인 모습을 띠고 있어서 제목이라도 제대로 알면 더 의미 있게 감상할 수 있지 않을까? 게다가 모두가 예술가의 창작품이니 작가의 이름도 좀 더 확실히 노출되었으면 좋겠다.

홈페이지라도 있어서 공원에 설치된 조형 예술품에 대한 설명 자료를 올려두면 이러한 자료를 통해서 아는 만큼 훨씬 똑똑한 관람이 될 것이다. 더불어 예술가들에 대한 명예를 드높여 줌으로써 예술발전에도 기여할 수 있지 않을까?

상편에서도 밝혔지만 안산에는 공원이 많은 편이다. 그러나 각 공원에 대한 정보접근성은 취약하다. 홈페이지를 갖춘 공원은 보지 못했다. 개별 홈페이지는 아니더라도 안산의 공원을 모아서 통합홈페이지를 갖추고 하위메뉴로 각 공원 홈페이지를 운영하는 방법도 좋을 것이다.

서울시에 소재한 공원을 조회하면 「서울의 산과 공원」(http://parks.seoul.go.kr)이라는 통합홈페이지의 하위메뉴에 있는 당해 공원의 홈페이지로 바로 연결된다. 그리고 그 공원에 대한 다양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이는 좋은 본보기이다. 안산의 공원들도 본받았으면 좋겠다.

메타세쿼이아 가로수와 숲이 어울린 공원 풍경 ⓒ소셜포커스
메타세쿼이아 가로수와 숲이 어울린 공원 풍경 ⓒ소셜포커스
넓고 평평한 공원 주탐방로와 울창한 숲을 갖춘 공원 ⓒ소셜포커스
넓고 평평한 공원 주탐방로와 울창한 숲을 갖춘 공원 ⓒ소셜포커스
공원의 품격을 높여주는 조각품(상단 좌측부터 제목 및 작가) : 만남의 공존(최병춘), 불멸의 도시(이상수), 비상의 공간, 유토피아 2001(이상철), 자매(김성룡), 자연+인간(김광우) ⓒ소셜포커스
상단 왼쪽부터 : 전환기(권치규), 하늘땅(안의종), 화목(유경원), 환한 이야기(김석우), 희망의 약속(임한희), 꿈결 같은 세상(정이웅) ⓒ소셜포커스

박물관에서 나와 숲속의 정취와 조각 작품들을 감상하면서 600m 정도를 이동하다 보면 김홍도 존(zone)에 이르게 된다. 위치상으로는 수인로와 성호로 사이로 길게 이어진 성호공원의 중앙에 해당하는 지점이다.

여기에는 김홍도의 풍속화 작품인 씨름, 대장간, 점심, 서당 등 22점이 커다란 부조 벽화로 제작되어 유적지 구조물처럼 세워져 있다. 종이에 평면 인쇄된 그림에 익숙한 우리는 여기서 김홍도 작품의 또 다른 아름다움에 빠져들게 된다.

단원 김홍도는 안산이 낳은 조선시대 최고의 화가였다. 타고난 재주에다 안산의 처가에서 은거 중인 강세황이라는 훌륭한 스승을 만났던 것은 그에게 큰 행운이었다. 김홍도는 중인 집안이었지만, 뛰어난 문인화가이자 명문사대부인 강세황에게 “젖니를 갈 때부터” 그림을 배우기 시작했다고 한다.

성호공원 내에는 식물원, 박물관, 조각원 외에도 어린이 놀이터, 야외공연장, 분수, 축구장, 롤러스케이트장 등 다양한 휴게시설과 체육시설을 갖추고 있다. 호국영웅비와 6·25참전유공자 기념탑 등 추모시설물도 볼 수 있다.

야외공연장 무대는 장애인도 쉽게 올라갈 수 있도록 경사로가 잘 갖추어져 있었다. 당연한 시설이지만 그렇지 않은 곳이 많아서 문제인데 이곳은 다행이다.

다만 체육시설로 진입하는 일부 탐방로의 노면이 자연석으로 깔려 있어 요철이 심하다. 깔끔해 보이지도 않고 이동약자에게 불편을 줄 뿐이다.

그리고 산책로에서 만나는 화장실마다 장애인 화장실은 남녀 공용인 데다가 좁아서 불편하다. 너무 노후하여 그런지 지저분하기까지 했다. 길 건너 노적봉폭포공원은 성호공원의 10분의1도 안 되는 작은 규모이지만 화장실만은 훨씬 깨끗하고 쾌적했다.

단원 김홍도의 풍속화를 벽화로 꾸며놓은 모습 ⓒ소셜포커스
단원 김홍도의 풍속화를 벽화로 꾸며놓은 모습 ⓒ소셜포커스
공원 내 시설들(어린이놀이터, 야외공연장, 물놀이시설, 체육시설) ⓒ소셜포커스
공원 내 시설들(어린이놀이터, 야외공연장, 물놀이시설, 체육시설) ⓒ소셜포커스
호국영웅비와 6·25참전 유공자 기념탑 ⓒ소셜포커스
호국영웅비와 6·25참전 유공자 기념탑 ⓒ소셜포커스
공원 내 화장실은 노후한데다 관리가 소홀함을 느낄 수 있다. ⓒ소셜포커스
공원 내 화장실은 노후한데다 관리가 소홀함을 느낄 수 있다. ⓒ소셜포커스

단원 풍속화 조형물을 감상하고 구름다리를 건너면 노적봉 공원이며, 왼쪽 방향으로 틀어서 산책로를 따라 내려가면 노적봉폭포와 폭포공원이 한눈에 들어온다.

폭포는 인공으로 조성되었으며, 물줄기는 시간을 정해놓고 내뿜는다. 폭포수가 떨어지면 흩날리는 물방울로 인해 무지개가 서기도 한다. 더위를 피해 시원하게 떨어지는 물줄기와 분수를 바라보며 땀을 식힌 후 산모퉁이를 돌아가면 단원미술관이다.

단원이 1745년에 태어났고, 성호는 1763년에 세상을 떠났으니 이 두 분은 지금의 성호공원 근처에서 18년 같은 시대를 살았다. 두 사람이 특별한 관계가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성호는 학문에서, 단원은 예술에서 큰 업적을 남겼다. 안산은 성호의 도시이자 단원의 도시이기도 하다.

성호공원에서 노적봉공원으로 넘어가는 구름다리 ⓒ소셜포커스
성호공원에서 노적봉공원으로 넘어가는 구름다리 ⓒ소셜포커스
노적봉공원의 산책로 ⓒ소셜포커스
노적봉공원의 산책로 ⓒ소셜포커스
노적봉폭포와 폭포공원의 풍경 ⓒ소셜포커스
노적봉폭포와 폭포공원의 풍경 ⓒ소셜포커스
성호공원 화장실과 비교되는 노적봉폭포공원 화장실 ⓒ소셜포커스
성호공원 화장실과 비교되는 노적봉폭포공원 화장실 ⓒ소셜포커스
모든 공원에서 탐방로의 요철 구간과 계단 및 단차가 사라져야 하는 이유 ⓒ소셜포커스
모든 공원에서 탐방로의 요철 구간과 계단 및 단차가 사라져야 하는 이유 ⓒ소셜포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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