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자립센터의 새로운 발견… 우리동네 커뮤니티 '꿈장애인자립생활센터'
장애인자립센터의 새로운 발견… 우리동네 커뮤니티 '꿈장애인자립생활센터'
  • 박예지 기자
  • 승인 2020.10.13 14: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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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우울 사라져요!" 성인 그림책 독서토론 모임 '큰 호응'
한국장애인재단 지원으로 올해 말까지 진행
화곡동 모 아파트 1층에 위치한 꿈장애인자립생활센터는 요즘 동네 주민들의 사랑방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코로나19 여파로 복지시설이 휴관을 거듭하면서 일상이 비어버린 주민들이 삼삼오오 모여들었다. ⓒ소셜포커스

[소셜포커스 박예지 기자] = 매주 목요일 2시. 화곡동 소재 모 아파트 1층에서는 천천히 동화책을 읽는 소리가 들려온다. 목소리는 여러 사람의 것이다. 잔잔한 대화가 이어지다 박수를 치며 웃기도 한다. 바로 꿈장애인자립생활센터(이하 꿈자립센터)가 운영하는 '성인 그림책 독서토론 모임'이 열리는 날이다.

꿈장애인자립생활센터는 화곡동 소재 아파트 1층 한 켠에 자리하고 있다. ⓒ소셜포커스

꿈자립센터는 지난해 한국장애인재단의 2020년 프로그램 지원사업에 선정되어, 올 5월부터 매주 이 모임을 진행해오고 있다. 모임에는 장애 여부와 상관없이 참여할 수 있다. 코로나19 확산세가 잠잠해졌다 기승을 부리기를 반복하면서 복지관 휴관도 대중 없어진 시기. 꿈자립센터의 독서 토론 모임은 작은 지역 커뮤니티의 역할을 하며, 주민들의 답답했던 숨통을 터주고 있다.

토론 소재가 되는 동화책은 빵과 그림책의 추천도서 중 매주 참여자의 투표를 통해 결정된다. 빵과 그림책은 그림책의 가치를 알리고 대중화하기 위해 2016년 설립된 협동조합이다. 그림책 큐레이터 양성, 지역아동센터나 경로당 등을 찾아 그림책을 읽어주는 그림책 약방 등 다채로운 활동을 펼치고 있다. 꿈자립센터와는 지난해 강서구마을공동체 사업을 통해 인연을 맺었다.

본격적인 토론에 앞서 참여자들은 '진정한 경청'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누군가의 말을 들으면서 선악과 장단, 시비를 평가하면 끝이 없기 때문에 비평적인 요소는 줄여주시는 것이 좋습니다"

안준희 소장. ⓒ소셜포커스

꿈자립센터 안준희 소장에게 그 의미를 묻자 "오셨던 분들이 자주 오시기는 하지만 매주 똑같은 분들이 오시지는 않아요. 토론 형식으로 대화를 나누는 게 처음이거나 익숙지 않은 분이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올바른 토론 태도에 대해 먼저 이야기하고는 합니다. 오셨던 분이라 하더라도 필요한 내용이기도 하고요. 자유롭고 원활한 토론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하는 준비운동과도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라고 답한다.

참여자가 동화책을 소리내어 읽고 있는 모습. ⓒ소셜포커스

이날의 이야깃거리가 될 책은 '슈퍼거북'. 남녀노소 모두에게 익숙한 전래동화 토끼와 거북이의 스핀오프(원작을 바탕으로 새롭게 파생되어 나온 작품)이다. 경주에서 이긴 뒤, 이웃들의 기대에 부응하려 지나치게 노력하던 거북이 '꾸물이'가 토끼와의 재경기에서 지고 나서 오히려 편안함을 느낀다는 내용이다. 자리에 앉은 모두가 책 한 권을 돌려가며 내용을 낭독한다.

같은 이야기를 읽고도 각기 다른 감상들이 쏟아진다. 장애인, 비장애인이 함께여서인지 이야기를 바라보는 관점이 다양하다. 자신을 몰아부치던 거북이 '꾸물이'에게 공감하기도 하고, 우리 사회의 장애인식에 대해 날카롭게 비판하기도 한다.

참여자들이 돌아가며 책을 다 읽고 나면 토론이 이어진다. ⓒ소셜포커스

한 참여자는 "남들에게 약점을 들키고 싶지 않다는 부담감에 몸이 굳을 정도로 긴장할 때가 있어요. 자연스러운 나를 숨기려다 보니 그런가봐요. 평소에 말을 못 하는 것이 제 약점 중 하나라고 생각하는데, 여기 와서는 말을 조리있게 못할까봐 걱정하지 않아도 돼서 좋아요"라고 말한다.

한 참여자는 "우리나라 언론은 '슈퍼 장애인'만 부각하는 경향이 있어요. 뼈를 깎는 고통을 이겨내고 장애를 극복해야지만 대단한 장애인, 장한 장애인이라면서 알리려고 하잖아요. 장애인에게 장애는 자신의 일부인데 장애를 꼭 극복해야 하는 무언가로 정의하는 것이 안타깝습니다"라고 화두를 던졌다.

각자의 관점에 따라 다양한 의견이 쏟아진다. 서로의 의견에 동의하기도, 반박하기도 한다.ⓒ소셜포커스

다른 참여자가 "우리나라가 워낙 밑바닥부터 발전해온 나라이다보니 자수성가, 악바리에 특히 주목한다고 생각해요. 그 잣대가 장애인에게도 똑같이 적용되지 않나 싶네요"라고 덧붙인다. 고개를 끄덕인다.

진지한 토론이 끝으로 접어들 무렵, 오늘 모인 이들에게 꿈자립센터의 독서토론은 어떤 의미가 있을지 질문을 던져보았다.

화곡동 주민들에게 꿈장애인자립생활센터는 새로운 ⓒ소셜포커스

"코로나19 때문에 원래 독서토론 모임을 하던 복지관도 휴관하고, 방범대 활동도 못 하게 됐어요. 소일거리가 전부 없어져 버려서 무기력했는데 센터에라도 나오니 행복해요."

"주제가 있으니까 항상 속 어딘가 잠겨있던 말들이 쏟아져 나오는 것 같아요. 같이 즐겁게 이야기하다 보면 속이 시원해요."

꿈장애인자립생활센터는 더 이상 장애인만을 위한 곳이 아니다. 장애 여부와는 상관없이 화곡동 주민들이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 할 수 있는 곳, 동화책의 가치를 알리고자 하는 사람들과 뜻을 같이 하는 곳,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공간으로 거듭난 것이다.

한편, 한국장애인재단은 올해 꿈자립센터 이외에도 다양한 비영리 민간 장애인 단체의 사업에 최대 5천만원의 예산을 지원하고 있다. 중기사업으로 3년간 지원되는 '인식개선 및 인권보호 강화사업'외에 ‘장애인단체 연계 연구지원사업’, ‘장애청년지원사업’ 등 1년 이하의 단기 사업을 지원한다. 꿈자립센터의 독서토론 모임 역시 단기 사업으로 올해 12월 막을 내리게 된다.

한국장애인재단의 2021년 프로그램 지원사업 공고는 오는 10월 말 공지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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