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장애인권리협약(CRPD) 선택의정서 비준.... 언제될까?
유엔장애인권리협약(CRPD) 선택의정서 비준.... 언제될까?
  • 박예지 기자
  • 승인 2020.10.15 0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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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총련, CRPD선택의정서 비준 촉구 국제포럼 개최
호주, 헝가리, 네팔 3개 비준국 대표 발제… 코로나 여파로 실시간 온라인 참여
"선택의정서 비준... 정계 의지 가장 중요"… 장애계, 21대 국회에 기대감 고조
실효성 확보 위해 '법률 지원' 가장 필요… NGO와 연대해 전문성 확보해야
한국장애인단체총연합회는 지난 13일 유엔장애인권리협약 선택의정서 비준을 촉구하고 실효성 제고 전략을 모색하고자 국제포럼을 개최했다. 4개 해외 비준국 인사들이 온라인으로 참여해 각국의 비준 및 활용 사례를 공유했다. ⓒ소셜포커스

[소셜포커스 박예지 기자] = 우리나라는 언제쯤 유엔장애인권리협약(CRPD) 선택의정서 비준에 서명하게 될까? 장애인 단체는 물론 많은 장애인 운동 활동가들이 이에 대한 큰 관심을 기울이는 가운데 한국장애인단체총연합회(이하 장총련)가 유엔장애인권리협약(CRPD) 선택의정서 비준 촉구와 실효성 강화에 대한 전략을 마련하고자 13일 오후 국제포럼을 개최했다.

유엔장애인권리협약(CRPD) 선택의정서는 협약 비준당사국 장애인들에게 개인진정제도와 직권조사제도를 보장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현재 유엔장애인권리협약은 164개국이 성명, 181개국이 비준했다. 선택의정서도 94개국이 서명, 96개국이 비준했다.

개인진정제도란 국내에서 일어난 차별 사건에 대해 사법적 판결이나 보상을 받고자 국내 사법절차를 모두 소진했음에도 해결이 되지 않았을 경우, 유엔에 제소해 당사국에 시정 권고를 내릴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직권조사제도란 당사국이 중대하고 조직적으로 협약을 위반하고 있는 경우, 유엔장애인권리협약위원회가 직접 조사에 나서는 절차다. 

우리나라는 유엔장애인권리협약을 지난 2008년 채택, 비준했지만 선택의정서 비준은 아직 유보 중이다. 지난 2014년 유엔장애인권리협약위원회의 권고를 받고도 비준을 이행하지 않던 정부는 2019년 3월에야 제2차, 3차 병합국가보고서를 통해 "선택의정서 비준을 적극 추진할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장애계는 "협약 비준 후 11년이 지났음에도 모호한 태도를 취하며 구체적 비준 계획은 밝히지 않고 있다"며 선택의정서 비준에 대한 로드맵을 제시하라고 강력히 촉구한 바 있다. 게다가 2020년에는 코로나19 여파로 유엔장애인권리협약위원회의 국가보고서 심의가 지연돼 국제사회의 비준 촉구도 미뤄지면서, 정부가 손을 놓고 있다는 지적도 따르고 있다.

이에 장총련은 선택의정서 비준에 대한 관심을 다시 모으고, 촉구 여론을 형성하고자 이번 포럼을 열었다고 배경을 밝혔다.

1부 사례발표에 이어 2부에서는 국내 전문가들의 실효성 제고 방안에 대한 토론이 이루어졌다. ⓒ소셜포커스

이날 포럼의 첫 번째 세션에서는 선택의정서의 개인진정제도와 직권조사제도의 국제적 동향에 대한 3개국 해외 인사들의 발제가 이루어졌다. 두 번째 세션에서는 선택의정서 비준의 필요성과 개인진정 및 직권조사제도의 이행 과제에 대해 국내 인사들이 발제를 이어갔다.

호주의 로즈마리 키예스 유엔장애인권리협약위원회 부의장은 개인진정제도 활용 사례와 성과에 대해, 장애인 권리증진 NGO 발리더티(Validity)의 공동대표 스티븐 알렌은 헝가리에서 있었던 조사절차 활용 과정과 NGO의 역할에 대해, 네팔의 장애인권개발행동(ADRAD) 창립자 바렌드라 하라 포크하렐은 선택의정서 비준을 위한 효과적인 캠페인과 실제 경험에 대해 공유했다. 태국의 UN CRPD 위원회 몬티안 분탄 위원도 참석해 한국의 선택의정서 비준을 위해 조언했다.


■선택의정서 비준, 지금 이루어져야 하는 이유는?… "우호적 정치 환경 마련됐다" 

장총련 이용석 정책실장은 경과보고 중 "정치적으로 비준을 위한 우호적 환경이 조성되었다"고 발표했다.

21대 국회에 장애인당사자 국회의원이 3명 진출한 점, 지난해 1월 이낙연 전 국무총리가 주재했던 제20차 장애인정책조정위원회에서 선택의정서 비준을 적극적으로 검토하기로 논의했던 점을 고려했을 때, 지금이 비준을 적극적으로 밀어부칠 수 있는 '적기'라는 것이다.

장애인차별금지법(이하 장차법)의 한계를 이미 체감했음에도 장차법의 단계적 시행을 핑계로 비준을 늦출 수 없다는 의견, 개인의 청구권 남용으로 국제기구의 과도한 개입을 우려하는 것은 정부의 기우일 뿐이라는 의견도 제시됐다.

법무부 등 관계부처는 협약보다 약 8개월 앞선 시기에 장애인차별금지법(이하 장차법)을 시행하면서 선택의정서 비준을 보류했다. 관계 부처들은 "장차법 단계적 시행 후 국내 제도적 여건이 상승하면 시도하자", "선택의정서 비준국들의 동향을 파악하고 나서 하자"며 비준을 미뤄왔다.

대구대학교 이동석 교수. 
ⓒ소셜포커스

이에 대구대학교 사회복지학과 이동석 교수는 "정부는 장차법 시행 후 10년이 지난 시점에 같은 이유로 비준을 늦추는 것은 더 이상 허용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국가인권위원회 장애차별조사1과 안은자 과장 또한 최근 지하철 승강장에 안전발판 없어 휠체어장애인이 나뒹군 사건에 대해 법원이 장애인 차별이 아니라고 판결한 사례를 들며, 선택의정서 비준의 필요성에 대해 설파했다. 당시 서울동부지방법원은 "사건이 일어난 2개 역의 완공이 장차법 시행보다 앞서기 때문"이라고 판결 이유를 밝혔다. 장차법으로 장애인차별이 구제될 수 없는 경우가 분명히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이어 이 교수는 "헝가리, 호주 등 해외 사례를 보면 개인진정제도가 남용된다고 볼 수 없다. 선택의정서를 비준한 지 10년이 넘은 나라들을 보면, 2019년 말 기준으로 진행됐거나 진행 중인 개인진정 건수는 총 31건이다. 국내법 절차를 다 거쳐야 하기 때문에 정부가 겁낼 필요는 없다"고 정계의 적극적인 비준 검토를 요구했다. 태국의 몬티안 분탄 CRPD위원 또한 "국제기구의 개입을 우려하는 것은 정부의 핑계에 지나지 않는다"며 한국의 비준을 촉구했다.

세이브더칠드런 오준 이사장은 격려사에서 "국가는 인권 보장의 주체이면서 가장 심각한 인권 침해자이기도 하다. 국가에 의한 인권침해에 대해 항의할 수 있는 제도, 청원권(진정권)이 보장되어야 비로소 현대적 인권 체계를 갖추었다고 할 수 있다"며 한국이 비로소 인권 선진국으로 거듭나야 할 때라는 것을 강조했다.
 
■ 장애유형 간 갈등, 정계 의지, 인식 제고… 비준 앞서 해결할 문제 많아

해외 비준국의 경우, 유엔장애인권리협약과 선택의정서를 함께 비준한 경우가 많았다. 호주와 네팔이 그러했다. 그 배경에는 장애계와 NGO 등 인권관련단체들의 연대를 통한 적극적인 인식 제고 활동이 있었다.

호주의 장애당사자단체들은 협약과 선택의정서 동시 비준을 이끌어내는 데에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정부의 활발한 협의 끝에 2008년에 협약과 선택의정서를 동시 비준했다. 이 과정에서 협약과 선택의정서 실질적 활용에 대한 전략도 함께 논의됐다.

네팔 의회는 2009년, 협약과 선택의정서 비준에 의회 전원이 만장일치로 찬성했다. 네팔 장애인연합(NDFN)은 이를 위해 포괄적인 인식 제고 캠페인을 벌였다.

2006년, 네팔에서는 민주주의 회복을 위한 시민운동이 일어났다. 이 과정에서 평등과 비차별의 기본 원칙이 대두됐다. 소외계층이 정치적 대표성을 얻기 시작했다. 그러나 협약과 선택의정서 비준은 협약 일부 조항이 청각장애인의 권리를 침해한다는 반대 의견과 장애인 정치세력의 약화에 부딪혀 난항을 겪었다.

비렌드라 하리 포크하렐.
ⓒ소셜포커스 

이때 네팔장애인연합은 오해를 불식하고, 정치인들의 협약 이해도를 높이기 위해 국가인권위원회와 협력했다. 내용을 네팔어로 정확하게 번역하고, 번역비준도구(Toolkit)을 개발해 활용했다. 단식 투쟁도 불사했다. 당시 네팔장애인연합 회장이었던 비렌드라 하리 포크하렐은 의회에 장애인 의원을 포함하라고 요구하며 무기한 단식 투쟁에 돌입했다. 그 결과, 언론의 관심을 유도해 정당과 정부, 국민 전반적인 인식 개선도 이루어 협약 비준을 위한 정치적 분위기를 조성해냈다.

태국의 몬티안 분탄 CRPD위원은 "한국은 다른 아시아 국가보다 입장이 좋은 편이다. 비준의 필요성에 대해 충분한 목소리가 나오고 있고, 긍정적인 움직임이 보인다"고 낙관하면서도 "시간을 들여 비준 필요성에 대해 정부를 확신시키고 설득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 개인진정 결과 '권고'로 그칠까 우려… 법률 지원 등 인권기관, NGO 역할 중요해

장애계가 가장 우려하는 것은 유엔의 개인진정 결과는 당사국에 '권고'될 뿐, 법적 구속력이 없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선택의정서가 비준되더라도 유명무실해질 수 있어 실효성 있는 활용 전략을 모색해야 한다는 여론이 지배적이다.

호주 CRPD위원회 로즈마리 카예스 위원은 "진정 과정을 법률적으로 지원하는 시민단체와 연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발언했다. 장애인 차별 문제를 법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구조가 마련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어 "당사국 사법 절차를 밟는 과정에서 권리협약과 충돌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는데 이 또한 연대단체들과 의견을 모아 협약위원회에 제출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또 "국내 사법, 행정적 절차를 모두 소진하는 긴 시간 동안 당사자들의 진정 의지를 끌고 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이탁건 변호사. ⓒ소셜포커스 

다만, 이런 국내에서 적용했을 때에는 한계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재단법인 동천 이탁건 변호사는 개인진정 결과를 바탕으로 다시 소송을 제기해 배상을 청구하기 어려운 국내법적 한계가 있다고 우려했다. 국가배상법상 원고는 자신의 손해를 안 날로부터 3년, 행위가 있는 날로부터 5년 내에 소송 등을 제기해야 한다. 이미 소송 등 국내 구제절차를 모두 밝고 난 후, 다시 소를 제기하는 것은 불가하다. 유엔의 진정 결과를 근거로 재차 배상을 요구하는 것이 불가능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 높아지는 탈시설 요구… 직권조사 중요성도 주목해야

올해에만 루디아의집, 평택 사랑의집 등 시설 내 학대 사건이 잇달아 드러났다. 이에 탈시설 요구는 연일 높아지고 있어 직권조사의 중요성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장애계의 탈시설 요구에 대해 '커뮤니티 케어'라는 정책을 내놓았다. 장애인이 지역사회에서 더불어 살아갈 수 있도록 지역 안에서 대책을 마련하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 정책은 "장애인 자립에 대한 부담을 지자체에 책임을 떠넘기고 있다"는 장애계의 빈축만 사고 있다. 지난 6월 변재원 정책국장은 커뮤니티 케어에 대해 "공문서에 멋지게 쓸 말 말고 실질적인 대책을 마련하라"며 강하게 규탄한 바 있다.

비슷한 사건에 대해 직권조사제도를 활용한 예로 헝가리의 '토파즈 복지시설 사건'을 들 수 있다. 지난 2017년 이 사회복지시설에서 장애인 220명이 고문과 학대에 시달린 충격적인 정황이 드러났다. 시설은 운영기금을 EU 구조투자기금으로부터 지원 받고 있었다. EU 구조투자기금이라는 막대한 자본 지원은 장애인 학대가 벌어지는 시설의 비대화를 초래하고 있었다.

스티븐 알렌. ⓒ소셜포커스 

헝가리의 정신장애 권익옹호 센터 발리더티(Validity)는 이를 권리협약을 위반한다고 판단하고 직권조사 신청 과정에 착수했다. 2019년 파견된 장애인권리협약위원회 현장 조사단은 2,300 페이지에 달하는 문서 증거를 수집했다. 이를 바탕으로 헝가리의 후견인 제도와 시설화가 "정신장애인의 삶에 상당히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다"고 헝가리 정부에 전달했다.

발리더티와 연대 조직들은 이를 근거로 헝가리를 비롯한 중동부 유럽 국가들의 신규 소그룹 시설 '그룹 홈' 설립에 대해 전략적 소송을 준비하고 있다. 장애인이 지역사회에서 자유롭게 살아갈 권리를 침해한 국가와의 소송에서 승소한 사례를 만들기 위함이다. 발리더티 공동대표 스티븐 알렌은 헝가리 정부의 권고 이행 사항에 대해 계속해서 모니터링 해 나갈 것임을 밝혔다.

우리나라는 시설 내 범죄를 '개인의 범죄'로 치부하며 가해자 처벌에 그치고 있어 직권조사의 중요성 또한 주목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포럼의 끝에 정부 측은 비준에 대한 의지를 보이며 장애계의 기대감을 모았다. 보건복지부 정충현 장애인정책국장은 "오늘 포럼 내용을 들으며 우리나라가 많이 늦었다, 신속한 비준이 필요하다는 것을 실감했다. 여러 나라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많은 장벽이 있겠지만 치밀한 전략과 지속적인 노력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장애계 내에서 장애유형 간 갈등을 충분한 의견 수렴을 통해 극복해야 좋은 성과가 있기를 기대한다. 앞으로 복지부, 법무부 등 정부부처는 신속하고 치밀하게 비준을 추진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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