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합부위통증증후군 환자도 장애인으로 인정하라"
"복합부위통증증후군 환자도 장애인으로 인정하라"
  • 박예지 기자
  • 승인 2020.10.16 09: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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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는 듯한 고통 참다 어금니 부서져도… '장애인 등록 거절'
뚜렛증후군 첫 등록장애인 판정에 걸었던 기대감 무너져
'꾀병쟁이', '마약중독자'로 보는 시선 견디기 힘들어… 장애인등록증 필요해
복합부위통증증후군 환자를 장애인으로 인정하지 않은 국민연금공단의 판정을 규탄하며,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는 15일 오전 국민연금공단 장애심사센터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제공=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소셜포커스 박예지 기자] = 정부의 융통성 없는 장애판정이 도마 위에 올랐다.

국민연금공단은 장애 등록 신청인이 실제 일상생활에서 큰 어려움을 겪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15가지 장애유형으로 정의할 수 없는 증상이라며 장애인 등록 신청을 반려했다.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이하 장추련)는 공단의 결정을 규탄하며 15일 오전 국민연금공단 장애심사센터 앞에서 기자회견을 개최했다. 

신청인은 복합부위통증증후군(CRPS) 환자다. 2012년 근무하던 종합병원에서 내시경 기계에 오른쪽 발목이 끼는 사고를 당한 후, 2017년 확진을 받았다. 약 8년 간 이어지는 작열통(불에 타는 듯한 통증), 돌발통(칼로 난자하는 듯한 통증) 때문에 노동은 물론 샤워 등 일상생활조차 어려운 상황이다.

신청인은 이 질병으로 인해 정상적으로 보행하기 어려워져 휠체어를 이용하고 있다. 양 발목 간의 체온 비대칭, 오른쪽 발목 운동 범위 감소, 관절 강직, 근력 저하로 스스로 걸을 수 있는 시간이 5분 남짓밖에 되지 않는다.

통증 조절을 위해 마약성 진통제를 매일 복용해야 하고, 배에 척수신경자극기를 삽입해 1주일마다 신경차단술을 받아야 한다. 돌발통이 견딜 수 없을 만큼 올라오면 응급실에 가서 몰핀을 주입해 간신히 통증을 완화시키기도 한다. 신청인이 2019년에 응급실에 내원한 것은 16번. 이 중 4번은 NRS 통증평가 수치의 최대치인 10점에 이르렀다.

간호사로 일하기도 불가능해져 접수창구에서 겨우 근무하게 됐지만, 신청인은 경력과 무관한 업무를 하게 되면서 큰 좌절감까지 느끼고 있다. '장애인복지법 시행령' 제2조 제1항에 열거된 15가지 장애 유형에 CPRS가 포함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장애판정을 거절하기에는 상당한 신체적, 정신적 고통이다.

업무 중 일어난 사고였지만 병원 측의 무책임한 대응으로 신청인은 산업재해 보상도 받지 못했다. 경구 마약성 진통제, 케타민 주사, 척수신경자극기 등 모든 의료 비용은 신청자가 감당해야 한다. 1천5백만 원 상당의 척수신경자극기는 배터리 교체 비용만 3백만 원에 달한다.

신청인의 발언문을 대독하는 조미연 변호사. (제공=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신청인은 "살인적인 통증을 견디느라 어금니가 모두 금이 가고 부서졌다. 통증에서 벗어날 유일한 방법은 자살밖에 없다는 생각까지 한다. 대한통증학회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만성통증을 느끼는 성인 중 35%가 자살충동을 느낀다. 이 어려운 싸움을 시작한 것도 이 때문이다. 필수적인 치료조차 못 받고 빈곤과 사회적 고립을 감내하고 있을 환자들이 비극적 선택을 하지 않도록, 복합부위통증증후군도 장애로 인정 받을 수 있기를 바란다"고 발언문을 통해 밝혔다.

이어 신체, 정신, 금전적 문제만 자신을 괴롭히는 것이 아니라고 토로했다. 그는 "바람만 불어도, 스치기만 해도 그 부위를 잘라내고 싶을 정도로 아픈데 직장 동료들은 '멀쩡해 보이는데 아픈 게 사실이냐'며 편견 어린 질문을 하기도 한다. 아픈 몸을 진통제로 겨우 지탱하고 있는데 '꾀병환자', '마약중독자'로 보는 시선에서 벗어나고 싶다"고 만성통증 질병을 장애로 인정하지 않는 사회적 시선에 대해서도 호소했다. 

장추련 박김영희 상임대표가 회견 중 대표발언을 하고 있다. (제공=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신청인과 장추련 측이 국민연금공단의 결정이 더욱 강하게 지적하는 이유는 장애 유형을 벗어나는 질병에 대해 일관적으로 등록 거부 판정을 내려왔던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지난 5월 뚜렛증후군 환자가 이례적으로 중증장애 판정을 받았다. 뚜렛증후군은 15개 장애유형에 해당하지 않는다. 하지만 국민연금공단은 신청자의 일상생활수행능력 등을 평가한 결과, 일상생활에 상당한 제약을 받고 있다고 판단했다.

이는 지난 2019년 10월 31일, 대법원의 판결에 영향을 받은 결과다. 대법원은 '장애인복지법 시행령' 제2조 제1항에 열거된 15가지 장애유형에 포함되는지 여부가 장애 판정의 절대적인 기준이 될 수 없다고 판결한 바 있다. 신청자가 오랫동안 일상생활이나 사회생활에서 상당한 제약을 겪고 있음이 분명하다면 유사한 장애유형을 유추 적용해야 한다고 판시했다.

당시 보건복지부는 뚜렛증후군 환자를 정신장애인으로 인정하면서 "장애인의 개별적 상황을 적극적으로 고려해 장애등급제 폐지 취지를 구현했다"고 자찬했다. "앞으로도 장애로 지원이 필요한 국민이 융통성 없는 행정 때문에 좌절하지 않도록 제도개선에 힘쓰겠다"고도 약속했다. 그러나 법적 장애 유형의 틀에 얽매여 장애인 개개인의 필요를 외면하는 것은 여전했다.

나동환 변호사. 
(제공=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장추련 나동환 상근변호사는 이 판결을 들어 "15가지 유형에 포섭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장애등록을 거부하는 것은 헌법의 평등원칙에 반한다"면서 "CPRS 환자들에 대해서는 지체장애나 뇌전증장애를 유추 적용해 장애를 인정함이 타당하다"고 주장했다.

미국, 캐나다, 호주 등 선진국에서는 이미 CRPS가 공식 장애로 인정받고 있다. 그렇지 않은 국가에서도 CRPS가 장애로 인정될 수 있는 방법을 열어두고 있다. 독일의 경우, 질병과 통증으로 인해 발생하는 기능 제한을 바탕으로 장애 정도를 판별한다. 당사자의 경험에 근거한 특별한 통증도 증상으로 고려한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CRPS를 진단하는 기준부터 상당히 엄격하다. 이뿐만 아니라 '통증'을 일상생활을 저해하는 질병적 요인이 아닌 '주관적 증상'으로 치부하는 경향이 강하다.

나동환 변호사는 "형식에 갇혀 장애인의 인간다운 삶과 생활안정, 권리보장에 힘써야 하는 국가의 책임을 져버리는 행위다. 폐쇄적인 장애인 등록제도가 장애인의 정당한 복지 수혜를 봉쇄하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라며 강하게 비판했다.

한편 장추련과 법률지원단은 지난 13일, 신청자 소재지 지자체에 장애인 등록신청서를 제출했다. 그와 함께 CRPS 환자를 지체장애 또는 새로운 유형의 장애인으로 인정해야 한다는 의견서를 함께 제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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